<강철 소방대 43화>
43화. 새로운 길 (2)
‘이게 뭔 개소리야?’
잘못 들었나 싶어 선배들을 돌아봤지만, 잘못 들은 건 아니었다.
“해, 해체? 성수야,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저도 똑같이 들었으니, 맞지 않을까요…….”
허석훈과 오성수가 패닉에 빠진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있었다.
순간 속에서 열불이 솟아났다.
‘아니, 목숨을 걸고 요구조자를 구해 왔는데도 칭찬은 못할지언정 난데없이 해체라고?’
상은 주지 못해도 벌은 주지 말아야 했다.
콰르르르르!
“달려!”
“빨리빨리!”
아직까지도 그 지옥 같은 탈출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순간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분을 토했다.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너무하다고?”
“갑자기 해체라뇨? 저희가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데요!”
그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이,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3팀의 해체를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행정과장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럼 어떻게 할까? 3팀의 자리를 그냥 비워 두어야 되나?”
“……네?”
“이성하, 너 조용히 안 해?!”
“아니야. 그냥 두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유상명은 만류하는 오성수에게 손을 내저으며 재밌다는 웃음을 지었고, 이내 이성하 쪽으로 의자를 고쳐 앉았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 나라도 갑자기 팀을 해체하라는 소리를 들으면 화날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지금 새로운 3팀의 발령은 당연한 일이야.”
“당연한 일이요?”
“그래. 며칠 전 보고를 받았네. 김필주 팀장은 어깨와 다리 골절로 최소 3개월. 허석훈 소방장 역시 갈비뼈와 장기 손상으로 3개월. 그리고 오성수 소방교는 4개월은 있어야 하더군. 자네 역시 두 달에서 세 달은 입원해야 되고 말이야. 그러면 그동안 길현대는 어떻게 운영하지? 1, 2팀으로만 돌릴 수가 있나?”
“그, 그건…….”
“왜 말을 못 하나? 자네가 정말 1, 2팀만으로 돌리길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겠네. 그렇게 하면 되겠나?”
“…….”
이성하는 그 말에 대답을 못 했다.
안 그래도 인원이 부족하기로 유명한 곳이 길현대였다.
자신이 부상으로 입원했을 때도 팀원들 모두가 야근으로 고생했을 만큼 인원이 부족한 곳이었고, 그런 길현대에서 팀 하나가 통째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 센터, 아니, 소방서 전체가 마비될 수 있었다.
“1, 2팀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대충 한 명당 스무 시간씩 나눠서 근무하면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으려나? 그러면 그 뒤엔 어떻게 하지? 아, 가까운 역촌대와 녹번대에게 지원을 요청하면 되나? 그래, 그러면 되겠어. 출동이 좀 늦긴 하겠지만 가능은 할 거야. 물론 출동해 봤자 이미 불에 다 탄 뒤겠지만. 그렇지?”
이어지는 유상명 과장의 말처럼, 은평구 내의 모든 소방 체계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된다.
이성하와 달리 다른 대원들이 아무 말을 못 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아직 막내가 시보라서 규정을 잘 모릅니다.”
“야. 너 빨리 과장님께 사과 안 드려? 장기 병가로 복귀가 늦어지는 대원은 원래 발령이 원칙이야, 인마.”
그들 역시 충격을 받긴 했지만 원래 장기 병가를 내는 대원은 다른 대원으로 충원을 하고 타 센터로 발령되는 게 소방서의 기본 인사 규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사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싫어…….’
이미 3팀을 가족이라 생각해서였다.
“그래도 해체는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
“야, 이성하!”
“선배들도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전 3팀이 좋습니다. 배운다면 선배들에게 배우고 싶다고요!”
이미 3팀이 아닌 곳에서 방화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말에 행정과장이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재밌네. 역시 요즘 애들이 열정이 넘치네요.”
권일섭을 향해 씨익 웃으며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고, 권일섭이 이성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야. 해체돼도 그대로 갈 거니까 망신 좀 그만 시켜.”
“네?”
“이 팀 그대로 간다고. 네가 말하지 않아도.”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3팀의 유지를 말했고, 그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 인마. 과장님도 장난 그만 치세요. 막내한테 그런 장난 치는 건 아직도 못 고치셨어요?”
권일섭이 유상명을 향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원래 신입의 열정을 볼 때가 제일 재밌잖아요. 근데 이 친구는 더 재밌네요. 하마터면 한 대 맞는 줄 알았습니다.”
유상명이 그게 사실이라는 걸 확인시켜 주듯 이성하를 향해 웃음을 지었고, 그에 이성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죄, 죄송합니다…….”
[멍청아. 말도 다 안 끝났는데 혼자 흥분해서 뭐 해?]
‘끄응…….’
렉스의 말처럼 행정과장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혼자 흥분해서 나댄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센터장님.”
“왜.”
“그럼 저희 팀은 어디로 갑니까? 저희처럼 팀 단위가 빠진 곳이 있습니까?”
센터장의 말처럼 기존의 3팀이 그대로 간다는 건, 최소 네 명의 결원이 발생한 팀이 또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센터장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모두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신설되는 팀이야.”
“신설이요? 혹시 그 동대문에 새로 생기는 센터입니까?”
“동대문은 무슨. 그대로 은평이야.”
“네? 은평이요?”
생각지도 못하게 은평소방서의 이름이 나왔다.
“야, 성수야. 우리 은평구에 센터 하나 더 생기냐?”
“아니요. 처음 듣는데. 무슨 말씀이시지?”
인상을 찌푸리는 허석훈과 오성수의 대화처럼, 은평구 내에 또 다른 센터가 들어선다는 계획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들이 가는 곳은 센터가 아니었다.
“은평 구조대로 간다.”
“구조대요?”
“그래. 은평 구조대 3팀. 기존의 3팀은 1, 2팀에 흡수 통합되고 너희가 그 자리로 들어갈 거야. 물론 대원도 몇 명 더 충원할 거야. 구조대니까.”
은평소방서 내에 직할로 근무하는 구조대가 그들의 발령지였고, 그에 허석훈과 오성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구, 구조대?”
“잠깐만요. 구조대라고요?”
그동안 진압대로만 활동하던 자신들이, 갑자기 구조대로 발령이 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그리고 내가 새로운 구조대장으로 갈 거다.”
“에에엑!”
권일섭 역시 은평소방서의 구조대장으로 발령이 날 거라는 말에, 모두가 아예 기겁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그런데 그 말에 잠자코 듣기만 하던 김필주가 피식 웃었다.
“드디어 마음 바꾸신 겁니까?”
다른 대원들과 달리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저께 찾아왔던 손님, 서장님이었죠?”
김필주는 난데없이 서장님을 거론하며 권일섭을 바라봤고, 그에 권일섭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그저께 밤 서장님 만났다. 결국 넘어갔고.”
“큭큭큭. 잘하셨네요.”
“웃지 마, 인마. 지금도 잘한 결정인지 후회 중이니까.”
김필주의 말처럼 이번의 인사 발령은 은평소방서의 서장을 만나며 결정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권일섭의 구조대 복귀는 예전부터 논의되던 일이었다.
“자네, 아직도 복귀할 생각 없나?”
“왜 또 그러십니까?”
“왜 그러긴? 자네가 필요해서 그래. 자네만 한 구조대장이 없다는 거 잘 알지 않나?”
그의 이름이 소방 역사에 살아 있는 신화로 남아 있는 만큼, 그 실력을 잊지 못한 서의 간부들이 꾸준히 구조대의 복귀를 요청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 요청을 권일섭은 꾸준히 거절해 왔다.
“됐습니다. 다 늙어서 무슨 구조대입니까? 그냥 지금처럼 후배 교육에나 힘쓰다 은퇴하렵니다. 저 말고도 좋은 후배들 많잖아요.”
자신이 아니어도 좋은 후배들이 많다는 생각에, 센터에 남아 있기를 고집해 왔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최근 바뀌었다.
‘인명 사고가 너무 많이 늘고 있어.’
최근 은평구의 인명 사고가 눈에 띄게 늘었다.
예전 같았으면 한두 달에 한번 정도 일어났던 화재 사고가 수시로 발생했고, 최근에는 소방관이라도 쉽게 겪을 수 없는 대형 재난이 연이어 발생했다.
<녹번 가구 단지 화재. 공장이 모두 전소되긴 했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없어>
<북한산 대형 산불.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대원들의 눈물겨운 사투>
사망자는 없었지만, 둘 다 일 년에 한 번 일어나도 자주 일어난다고 할 수 있는 대형 재난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현 구조대장인 강천호가 본부로 올라가게 됐다.
“강천호 대장, 조만간 승진해서 본부로 올라가네.”
“강 대장이요?”
“그래. 그럼 자네밖에 없어. 지금 팀장들로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잖아.”
그동안 권일섭을 대신해 구조대장을 맡고 있던 강천호가 승진으로 은평소방서를 떠날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권일섭은 진심으로 고민했다.
‘강천호가 아니라면 안 돼.’
소방서장의 말처럼, 아직 다른 팀장들이 구조대장을 맡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마음을 바꿨다.
“서장님, 생각해 봤는데 구조대장으로 복귀하겠습니다.”
자신의 부상을 걱정해 한달음에 달려온 서장에게 그동안 제의받던 구조대장 복귀 요청을 수락했고, 거기에 조건을 하나 걸었다.
“그 대신 제 밑에 있던 3팀을 구조대로 데려가고 싶습니다.”
“3팀을?”
“네. 키워 보고 싶은 후배들이거든요. 가장 믿고 있는 녀석들이기도 하고.”
자신의 밑에 있는 길현 3팀을 구조대로 데려가겠다고.
물론 그중 가장 데려가고 싶은 건 이성하였다.
‘성훈아, 너 때문에 구조대를 그만뒀는데 네 아들 때문에 돌아가게 됐네.’
아직도 잊지 못한 후배의 아들이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아직까지 가슴의 한으로 남아 있는 후배의 아들이 소방관이 되어 자신의 밑으로 들어왔고, 그런 이성하를 어느새 동료로 인정하고 있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무조건 살려…….”
산사태 당시, 이성하를 믿었기에 정신을 잃으면서도 동료들의 생명을 부탁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서장은 그 조건을 거절하지 않았다.
“좋아, 허락하지. 실력이 있다는 건 이미 확인했으니까 상관없겠어.”
북한산 화재 때 보여 준 능력만 해도 3팀이 구조대원으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된 상황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3팀의 구조대 발령은 빠르게 진행됐다.
“길현 3팀 바로 충원하게. 기존 3팀은 구조대로 발령하고.”
권일섭이 마음을 바꿀까 싶었는지 서장은 이튿날 바로 행정과장에게 3팀의 구조대 발령을 재촉했고, 그래서 행정과장이 오늘 3팀을 방문한 거였다.
“센터장님 말이 맞습니다. 3팀은 복귀하게 되면 전원 구조대로 발령받게 될 겁니다. 이게 그 발령장이고요.”
3팀의 구조대 발령을 확실하기 전하기 위해 직접 발령장을 들고 방문을 한 것이다.
하지만 허석훈과 오성수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황당했다.
“구조대? 갑자기요?”
“팀장님, 장난치는 거 아니죠? 진짜 우리 구조대로 갑니까?”
그냥 발령도 아니고, 구조대로 보직까지 변경된다는 말에 이게 장난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이성하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뭔 소리야? 갑자기 구조대는 뭐고, 서장님은 뭐야?’
3팀이 해체된다는 말에 놀라 행정과장에게 항의까지 했는데 갑자기 팀 전체가 구조대로 발령됐다는 말에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하지만 장난은 아니었다.
“정말입니다. 3팀은 복귀하게 되면 구조대로 발령될 겁니다.”
행정과장이 다시 한번 구조대의 발령을 언급하며 김필주에게 발령장을 내밀었고, 그에 이성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야, 너 땡 잡았다? 안 그래도 너 처음부터 구조대 가고 싶어 했잖아.]
렉스의 말처럼 처음부터 구조대를 희망하고 소방학교에 입소했다.
가장 존경했던 아버지처럼 구조대원으로서 당근복을 입고 근무하는 게 이성하의 꿈이었고, 지금 그 꿈이 눈앞에 있었다.
‘구조대.’
드디어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됐다는 사실에 환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권일섭이 피식 웃었다.
‘똑같네.’
이성하의 아버지였던 이성훈 역시, 처음 구조대로 발령받고는 아이처럼 기뻐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했다.
그 때문에 결심했다.
‘제대로 가르치마.’
후배인 이성훈을 대신해서 제대로 가르치겠다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구조대라. 뭐 생각보다 이르지만 상관없겠지.]
이성하의 어깨 위에 있던 렉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듯 불길을 일렁였으며, 그런 두 사람의 열기 때문인지 탁자에 놓인 종이가 펄럭였다.
<인사 발령문>
# 시행 일시 : 미정
# 발령 내용 : 보직 변경
# 발령자 : 권일섭 외 6명
# 발령 사항 : 은평 구조대 3팀으로 인사 발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