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42화>
42화. 새로운 길 (1)
구조대에게 발견된 길현대는 그 즉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비키세요!”
“응급 환자입니다! 길 좀 터 주십쇼!”
길현대를 비롯해 장건호와 요구조자까지, 총 일곱의 인원 모두 산소호흡기를 매단 채 신촌의 연성대학병원으로 이송됐고, 그 모습은 실시간으로 전국에 대서특필됐다.
- 안녕하십니까. KBC의 김성환 기자입니다. 속보로 전해 드렸던 북한산 화재 현장에 진입했던 소방대원들이 무사히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재 모두 의식을 잃은 상태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이며…….
- MBS의 이선화 기자입니다. 오늘 발생한 북한산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용감한 구조 활동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구했습니다. 다만 마지막까지 구조를 펼쳤던 소방대원들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데요. 현재 저는 소방대원들과 함께…….
여러 명의 소방관들이 시민으로 보이는 이와 함께 심각한 부상을 입은 모습으로 병원으로 이송되는 장면.
그 때문에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들 새벽인데도 온라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 미친…… 진짜 저길 들어가서 사람들을 구해 온 거야?
- ㅇㅇ. 봉우리 3개가 탈 정도로 큰 화재였는데 사망자도 없대요.
- 화재만이 아니래요. 불길이 너무 심해서 산사태까지 일어났는데 그것 때문에 지금 저렇게 병원으로 가는 거래요.
- 산사태? 갑자기 웬 산사태?
- 뉴스 못 보심? 비봉이랑 승가봉 사이 절벽이 통으로 무너짐. 근데 그거에 휩쓸리면서도 사람 구해 옴. 영상에서 가장 먼저 실려 가는 사람이 등산객이래요.
- 대박…… 개쩐다. 진짜 슈퍼맨들이네.
- 완전 영웅이죠. 저라면 절대 못 함. 진짜 자기 목숨 걸고 남을 구하는 거임.
- 은평 시민입니다. 직접 현장에서 봤는데 소방관들 모습에 눈물 났어요. 소방대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병원으로 실려 가는 소방대원들의 부상이, 산불 속에 고립된 등산객을 구조하다 입은 부상이라는 게 널리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보도될 일은 아니었다.
원래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일을 잘할수록 언론의 외면을 받았다.
열심히 구조 활동을 벌여 사망자가 없으면 재난에 속하는 사건이라도 짧게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 정도로만 보도되는 게 일반적이었고, 작은 사건이라도 사망자가 발생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소방서에 책임을 묻는 게 언론이었다.
<동해안 산불의 확대는 잘못된 소방관들의 초동 조치가 문제>
<서문시장 화재. 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전기합선 문제를 관할 소방서는 미리 대비하지 못했나>
<인사동 방화 화재. 소방청에서 야심차게 도입한 골목형 소방차는 쓰지도 못해>
정작 파고들면 소방관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음에도 가십거리를 위해 소방관들을 타깃으로 삼는 게 언론이 재난을 대하는 보도 방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방향이 달랐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남을 구한 히어로에 열광했다.
“피곤해서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일어나 보니 주변이 불길로 휩싸인 모습에 정신없이 위로만 도망쳤죠.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습니다. 만약 저를 구하러 와 준 소방관이 아니었다면 전 죽었을 겁니다. 그리고 부상을 입은 저를 끝까지 책임져 준 그 길현 센터의 소방관들도요. 정말 감사합니다. 소방관 분들께. 정말이요. 흐윽.”
병원으로 이송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요구조자의 인터뷰에 기자들이 눈을 빛냈고, 날이 밝아지자 화재를 마무리하고 현장 브리핑을 맡게 된 구조대장의 인터뷰에 이번 사건을 특종으로 결정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소방관들은 영웅입니다.”
“영웅이요?”
“네. 재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요구조자가 있다는 말에 구조를 결정했습니다.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데도 스스로 자원해서 이미 불길로 뒤덮인 산속으로 진입했습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그들이 심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끝까지 요구조자를 구해 복귀했습니다. 화재에 이어 산사태까지 발생해 그 어떤 소방관도 생환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요. 그래서 동료 소방관들을 대신해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돌아와 줘서. 그리고 포기하지 않아 줘서. 이상입니다.”
북한산 화재의 구조 지휘를 맡았던 구조대장이 브리핑 현장에서 고개를 숙였다.
길현대가 아니었다면 생환이 불가능했을 거라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으며, 그에 현장에 있던 모든 기자들이 핸드폰을 들었다.
“부장님, 특종입니다! 아침 메인 하나 비워 주십쇼!”
“편집장님, 지금 송고할 테니까 바로 메인에 올려 줘요!”
“야, 김 피디. 지금 찍은 거 바로 편집해서 속보로 내보내. 특종이야, 빨리!
그들 또한 처절한 사투를 벌인 소방대원들의 활약상에 가슴이 뜨거워지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있었다.
“하…… 강 대장. 왜 부탁도 안 한 일을 하고 그래?”
병원 이송 후, 하루가 지나 깨어난 권일섭이었다.
“여보, 정신 들어요?”
“아빠! 아빠, 괜찮아?”
“괜찮아…… 나 물 좀 줄래?”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에 안심의 미소를 짓긴 했지만.
“안녕하십니까, 센터장님. 한국신문의 정상호 기자입니다. 인터뷰 한번 할 수 있을까요?”
“센터장님, 고려일보의 박성진 기자입니다. 이번 길현 센터의 활약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표하고 있는데요.”
“……네?”
곧이어 들이닥친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권일섭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 잠시 후 확인한 언론의 보도로 그 이유가 후배인 강천호의 인터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왜요, 선배님. 틀린 말 한 거 아니지 않습니까?”
“뭐가 안 틀려? 그냥 사건 브리핑만 하면 되지, 영웅이니 뭐니 띄워 놔서 시끄러운 거 아냐? 에휴…….”
당연한 걸 했음에도 히어로 취급을 하는 언론의 기사에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 권일섭이었다.
하지만 강천호는 그런 핀잔에도 씨익 웃음을 지었다.
“영웅이라서 영웅이라고 한 겁니다. 상황이 얼마나 최악이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정말 진심에서 하는 말이었다.
아무리 소방관이라도 퇴로를 장담할 수 없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이번 북한산 화재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쉽게 만날 수 없는 산사태까지 동반된 대형 재난이었고, 길현대는 그런 산사태에 직격까지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면서도 요구조자를 구해 살아 돌아왔다.
‘나라면 불가능했어. 아마 산사태에 직격당한 순간 모든 걸 포기했겠지.’
말이야 권일섭을 믿으며 끝까지 수색을 외쳤지만, 내심 그 역시도 길현대의 생사를 어느 정도 포기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은 누가 뭐래도 이성하였다.
“이성하라고 했나?”
“네! 소방사시보 이성하입니다.”
한쪽에서 멀뚱히 앉아 있던 이성하가 난데없는 강천호의 질문에 깜짝 놀라 대답했다.
현재 권일섭을 포함한 길현대 모두가 6인실에 입원한 상태였다. 이성하는 그중 권일섭의 옆 베드에 앉아 있었고, 그런 이성하를 향해 강천호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팔은?”
“아, 괜찮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잘됐다고 합니다.”
“다행이네. 자네에게 큰 빚을 졌어.”
“네? 아, 아닙니다.”
“아니야. 자네가 아니었으면 장건호도, 권 대장님도 큰 위험에 빠졌을 거다. 정말 고맙다.”
길현대 모두가 영웅이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이성하가 포기하지 않았기에 모두가 무사히 생환할 수 있었다.
물론 이성하의 이름 석 자는 일부러 언론에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그게…….”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 어수룩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처럼, 괜히 기자들에게 이름이라도 들어갔다가는 곤란한 상황을 겪을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티를 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뭐야? 우리 막내한테 반한 거야?”
“반해요?”
“반해서 인터뷰에 그렇게 말한 거 아니야? 그래서 ‘동료 소방관들을 대신해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거 누가 봐도 이놈한테 한 말이잖아. 고개까지 숙이고 말이야.”
“하하하. 눈치채셨습니까?”
“눈치 못 채면 내가 바보게?”
핀잔을 내뱉는 권일섭의 말처럼, 이성하에게 고마움의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였던 게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옆에서 눈치를 보던 허석훈과 오성수가 야단을 떨었다.
“와, 그게 그 뜻이었어?”
“당연하지, 인마. 이번에 성하 아니었으면 우리도 우리지만 소방청 자체가 욕을 바가지로 먹을 뻔했는데.”
현장 브리핑을 맡은 책임자가 개인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건, 그 공로 또한 상부에서 알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이성하만이 그런 분위기에 얼떨떨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몸조리 잘하시고 서에서 뵈시죠.”
“그래. 가 봐. 다 나으면 술 한잔하자고.”
“하하하. 알겠습니다. 자네들도 서에서 보지. 몸조리 잘하게.”
“알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잠깐 시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천호 대장을 향해 이성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고, 그 이유는 귓가를 울리는 고함 때문이었다.
[그만큼 미친 짓이었다는 거다!]
‘아, 알고 있다니까요.’
[알아? 아는 놈이 그런 짓을 해? 너 잘못하다 팔 망가지면 그냥 현장에서 은퇴야. 네 동기들은 한창 현장에서 뛰어다닐 시간에 너 혼자만 컴퓨터 앞에서 땀 흘려야 되는 거라고!]
안 그래도 수술이 끝나자마자 온갖 잔소리를 퍼부었던 렉스가, 그때의 상황이 떠올랐는지 이성하에게 또다시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 그랬으면 다 죽었다니까요.’
팔에만 신경 수술을 한 자신은 그나마 경상에 속했다.
“막내야. 미안한데 나 거기 물 좀 주면 안 되냐?”
“네, 선배님.”
다리가 골절돼 철심을 박은 오성수가 이성하에게 손을 내밀었고.
“야, 근데 이 침대는 도대체 어떻게 올리는 거야?”
갈비뼈가 부러져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허석훈이 불평을 토해 냈다.
“이 새끼야, 티비 보는데 조용히 안 해!”
“큭큭큭큭.”
마찬가지로 늑골과 어깨, 다리 골절을 입어 붕대를 감고 있는 권일섭과 김필주에.
‘건호 형…….’
의식은 차렸지만, 상태가 제일 심해 아직 중환자실에 있는 장건호까지.
그 때문에 렉스는 이성하에게 다시 한번 경고를 던졌다.
[그래도 인마. 신경의 문제는 달라. 무슨 말인지 알지?]
렉스가 이성하에게 바라는 건 소방관으로서 오랫동안 사람을 구하는 거지, 스스로가 망가져 은퇴를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성하 역시 그 의미를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앞으로 좀 더 조심할게요.’
말로는 툴툴대도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신을 걱정하는 렉스의 마음을 이성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여긴가요? 3팀이 있는 곳이?”
3팀이 입원한 병실로 또 한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끼이익.
병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당근복이 보였고, 그와 동시에 허석훈과 김필주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유, 유상명 과장님?”
“뭐? 유상명이면 행정과장?”
“하하하. 다들 몸은 좀 어때요? 혹시 몰라서 과일로 사 왔는데.”
은평소방서의 행정과장으로 근무하는 유상명이 병문안을 온 것이다.
이성하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앉은 건 당연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소방사시보 이성하입니다!”
“그래, 자네가 이성하구먼. 반갑네.”
소방서 내의 모든 인사를 담당하는 막중한 직책이 행정과장의 위치였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표정은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그런데 김 팀장, 좀 안 좋은 소식이 있어서 왔네.”
이성하의 인사를 받고 자리에 앉은 유상명 과장이 김필주에게 멋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 좋은 소식이요?”
“그래. 미안한데 3팀 말이야. 새로 발령하기로 했네. 그래서 기존의 3팀은 해체해야 할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