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41화 (41/235)

<강철 소방대 41화>

41화. 가장 무서운 화재 (6)

물론 그에 따른 고통은 엄청났다.

“끄으윽.”

드는 게 아니라 로프로 끌어서 이동하는데도 그 막대한 무게에 고통의 신음을 토해 냈다. 무엇보다도 오른팔의 상태가 너무나 심각했다.

[야, 너 팔이…….]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이 새끼 이거 팔이 완전히 찢어졌잖아. 너 언제부터 이런 거야?!]

렉스가 팔을 보고 단숨에 고함을 질렀을 정도로, 오른팔에서 상당한 출혈이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오히려 로프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괜찮다니까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나을 상처였다.

또옥, 또옥.

오른팔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땅으로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지만 렉스의 회복력을 믿는 이성하는 로프를 잡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다들 금방 내려갈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

피 칠갑이 된 채였지만,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료들과 요구조자에 비하면 이 정도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렉스가 봤을 때 이성하의 상처는 중상이었다.

또옥, 또옥.

두꺼운 방화복을 입었음에도 외부까지 출혈이 드러난다는 건 어딘가 혈관이 끊어졌다는 말과 같았다.

그 말은 혈관 근처에 있는 신경 역시 손상을 입었을 수 있고, 그런 상태에서 힘을 쓰면 아무리 렉스의 회복력이라도 치료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미친놈아! 어쩌면 오른팔을 못 쓰게 될 수도 있다고!]

단순히 상처가 아물면 회복되는 외상과 달리, 신경은 회복돼도 장애가 남을 확률이 있는 부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렉스의 고함에도 이성하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 길현대, 지직. 길현대. 들립니까.

근처에 구출대가 있었다.

- 길현대, 응답 바랍니다!

자신을 향해 힘내라고 이야기하듯 끊임없이 길현대를 호출하고 있었으며, 이성하는 자신이 그 부응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갑니다, 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필사적으로 자신들을 찾고 있을 구출대와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성하라도 혼자서 여섯을 끌고서 이동하는 건 무리였다.

“허억, 허억.”

시간이 지날수록 동료들을 끌고 나아가는 속도가 느려졌고, 결국 잠시 뒤에는 그 걸음이 멈춰지다 못해 무릎을 꿇었다.

[이 새끼야, 무리라고 했잖아!]

“콜록, 콜록.”

무게도 무게지만, 부상을 입은 몸으로 동시에 둘이나 끌고 이동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할 수 있어요…….”

부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은 채, 몸을 일으켰다.

“끄으으윽.”

다시 한번 동료들을 끌기 위해 양팔에 힘을 줬고, 그래도 안 되자 로프 하나는 허리에 묶고 나머지 로프를 양팔로 잡았다.

[이 새끼…….]

스으윽. 스으윽.

어떻게든 동료들을 놔두고 갈 수 없다며,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성하의 뒤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콜록, 콜록. 뭐 하는 거야…….”

정신을 차린 권일섭 센터장이었다.

“허억. 허억. 깨셨습니까. 지금 이동 중입니다.”

“이동?”

“네. 근처에 구출대가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구출대가 있는 쪽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런 센터장의 목소리에 이성하가 잠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고는 계속해 걸음을 옮겼고, 그에 권일섭은 몸을 일으키려다 느껴지는 고통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크윽…….”

폐부를 찢는 고통이었다.

‘늑골이 부러진 건가…….’

예전에 입었던 부상을 떠올리며 자신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해 갔고, 그렇게 확인한 스스로의 몸 상태에 쓴웃음을 지었다.

‘살아난 게 다행이군.’

늑골만이 아니라 몸 곳곳에서 칼로 찌르는 통증이 느껴지자, 이렇게라도 살아 있는 게 천우신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성하가 말하는 구출대의 존재에 대해선 따로 묻지 않았다.

- 지직, 길현대, 길현대. 응답 바랍니다!

그의 귀에도 계속해서 자신들을 찾기 위해 송신을 해 오는 구출대의 무전이 들렸으니까.

하지만 권일섭은 문득 이성하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 무리야…… 지금은 몰라도 이런 속도라면…… 콜록. 콜록. 곧 불길에 잡힐 거다.”

현재 이성하를 제외한 모두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차라리…… 먼저 빠져나가서 구출대를 데리고 와…… 너 혼자로는 무리야…….”

아무리 이성하의 힘과 체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여섯을 데리고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구출대를 찾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성하의 상태 때문에도 더 그랬다.

또옥. 또옥.

“빠, 빨리!”

움직이고는 있지만, 이성하 역시 자신들 못지않은 부상을 입은 게 확연히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권일섭의 말에도 이성하는 멈추지 않았다.

“끄으윽.”

고통 어린 비명을 질러 가면서도 로프를 잡아당겼고, 그렇게 조금씩 다시 걸음을 옮겼다.

스으윽. 스으윽.

권일섭과 김필주의 몸이 그런 이성하에 다시 끌려갔으며.

“무, 무리…….”

권일섭이 다시 뭐라 말하려 했지만, 이성하는 그런 권일섭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쇼.”

“뭐?”

“놓고 갔다가 다 죽으면요?”

“…….”

“구출대를 데리고 왔는데 이미 다 죽으면요!”

쓸데없는 소리였다.

동료들을 두고 혼자 가라고?

으드득.

말이야 좋지만, 결국 혼자만이라도 살라는 말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그게 이성하가 배운 소방관의 자세였고, 그런 자세를 떠나 이성하에게 눈앞의 사람들은 가족이었다.

“막내야, 이거 먹고 해라.”

“야, 호스 관리를 누가 그렇게 해? 줘 봐. 내가 할 테니까.”

“얼씨구, 이성하, 감히 사수보다 먼저 퇴근을 해?”

현장에서는 때로 고함을 지르지만 센터에서는 누구보다 형제처럼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이 3팀의 식구들이었고, 그 관계를 정의해 준 게 권일섭이었다.

“뭐, 어때? 가족인데.”

“네?”

“가족인데 어떠냐고.”

단독 행동에 대한 문책 당시 자신 때문에 감봉을 받게 만들어 죄송하다는 말에, 가족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웃음을 지었던 사람이 눈앞의 권일섭 센터장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권일섭의 말은 개소리였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집중이나 하십쇼!”

악에 찬 눈빛으로 고함을 지르며 다시 걸음을 옮겼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권일섭은 아무 말을 못 했다.

“애송이가 건방지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집중이나 해!”

산사태에 파묻히기 전, 자기를 놓고 가라는 장건호에게 스스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았으니까.

그 때문에 권일섭은 고통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몸에 찬 장비들을 풀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콜록, 콜록. 어차피 남은 공기도 얼마 없어. 차라리…… 콜록.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는 게 나아.”

이성하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이성하의 입장이었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터였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인정했기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장비를 벗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김필주의 장비까지도 안 움직이는 몸을 움직여 가며 벗겨 냈다.

“아까 말은…… 취소다. 어떻게든 끌고 가라…….”

동료들을 살리라고.

“너라면 할 수 있어…… 무조건 살려…….”

이성하라면 무조건 할 수 있다며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고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세, 센터장님!”

그에 이성하가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아니야. 심박수는 그대로야. 그냥 잠깐 기절한 거야.]

부상에 대한 피로로 인해 잠시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이성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쪽에 남은 다른 동료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꽈아악.

또다시 허리에 로프 하나를 감고 양손으로는 다른 로프를 잡았으며, 그렇게 로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걱정 마세요. 어떻게 해서든 내가 다 끌고 갈 거니까.”

센터장의 말처럼 단 한 명도 죽게 하지 않겠다고 단언하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걸음은 굉장히 느렸다.

[괜찮냐?]

“허억, 허억.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아무리 이성하의 체력이 좋다 한들 그게 무한정 유지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느릴지언정 걸음이 멈추지는 않았다.

‘이제야 알겠어. 형이 어떤 기분으로 혼자 단독 행동을 했는지를.’

말로만 전해 들었던 장건호의 고통이 이제야 느껴졌다.

“허억, 허억.”

“으으…….”

정신을 잃은 채 신음만 흘리는 동료들의 모습에 이성하의 두 눈에서는 독기가 흘러나왔고, 그 독기는 지친 육신에 계속해서 힘을 보탰다.

“절대 죽게 하지 않아. 절대.”

자신의 걸음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동료들이 위험해진다는 생각에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그쪽은 어때?”

- 없습니다. 이쪽은 아닙니다.

바로 길현대를 구조하기 위해 뒤늦게 도착한 은평구조대였다. 그들의 눈에도 핏발이 서 있었다.

“길현대 응답 바랍니다. 길현대!”

“이런 X발,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응답해도 회신이 안 되는 무전에 악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눈에는 슬슬 분노에 찬 눈물까지 어렸다.

“대장님, 우리가 늦은 거 같습니다…….”

길현대의 생사를 장담할 수가 없어서였다.

“제기랄…….”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응답해요! 응답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산을 올랐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길현대에, 모두가 낙담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포기하지 않은 이가 있었다.

“시끄러워!”

구조대장인 강천호였다.

“끝까지 올라간다. 아직이야. 아직 수색이 완료된 게 아니야!”

그의 목소리에는 막연한 희망이 아닌 확신이 어려 있었다.

‘분명히 살아 있어. 권 대장님은 그렇게 쉽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야.’

예전에 그가 대장으로 모셨던 권일섭에 대한 믿음이 어린 생각이었고, 그 생각을 떠나 이곳에는 그가 책임져야 할 동료가 있었다.

‘장건호, 어디 있냐. 응답해라, 제발!’

같이 있던 요구조자들 때문에 구조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누구보다 장건호를 구조하러 가지 못한 것에 열이 받았던 사람이 강천호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부하대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뭐?”

“저기 오른쪽 말입니다. 잿가루라기보다는 연기가 너무 뿌옇습니다.”

불길에 휩싸인 산 능선 중 한쪽을 가리키며 의문을 표하는 말에, 그곳을 유심히 바라보던 강천호가 난데없이 고함을 질렀다.

“길현대다!”

“네?”

“길현대야!” 미끄러져 내려와서 먼지가 발생하는 거잖아!”

밤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불길 속에서 일렁이는 연기가 무언가를 끌어서 발생하는 먼지구름이라는 걸 용케 알아챈 것이다.

그 때문에 구조대는 가장 먼저 달린 강천호를 따라 전력으로 달렸다.

“달려!”

“빨리 이동해!”

죽었다고 생각한 길현대가 아직 살아 있다는 생각에 다시 희망이 솟아올랐으니까.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는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 할 말을 잊었다.

“마, 맙소사…….”

불길 사이로 한 소방관이 보였다.

제대로 토사에 휩쓸렸는지 찢어진 방화복에 엉망이 된 모습이었다. 그 소방관이 구조대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구, 구조대입니까?”

“누, 누군가?”

“소방사시보…… 이성하입니다…… 동료들을 좀 병원으로…….”

구조대를 보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신원을 밝히며 앞으로 꼬꾸라지는 모습이었으며,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도 구조대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대장님…… 저기…….”

“그래…… 보고 있어…….”

쓰러진 이성하의 뒤로 빨간 선이 보였다.

의식을 잃은 길현대와 장건호, 그리고 문제의 요구조자를 거쳐 산 능선으로 선명하게 물든 핏자국이 보였고, 그 흔적은 이성하가 손에 감고 있는 로프까지 이어져 있었다.

‘미친 새끼…….’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 이성하의 흔적에, 전율이 차올라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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