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40화>
40화. 가장 무서운 화재 (5)
산사태는 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가장 큰 징벌 중 하나라 불렸다.
순식간에 지반이 붕괴되며 그 밑에 있는 걸 모두 쓸어버린다 해서 자연재해라 불렸으며, 재해로 구분되는 만큼 그 범위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모르는 대형 재난.
그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나는 광경은 멀리서도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대단했다.
콰르르르르!
“엄마. 불덩이가 막 떨어져!”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야.”
“에구머니나, 산사태네.”
화재가 진압되기를 바라던 주민들이 그 광경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 사태에 놀란 건 주택가로 불길이 확산되지 못하도록 방어선을 펼치던 진압대였다.
“다, 단장님. 저 방향은 구출대가…….”
“이런 X발!”
산사태가 일어난 방향이 구출대의 퇴로로 계획했던 승가봉의 우측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현장대응단장이 다급히 무전기를 잡았다.
“김정범, 어떻게 됐어? 빨리 상황 보고해.”
산불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인근 아파트 정상에 올라가 있는 대원을 향한 무전이었다.
아래쪽에 있다 보니 좀 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무전이었고, 그렇게 온 무전의 결과는 최악이었다.
- 뒤, 뒤쪽이 완전히 쓸렸습니다…….
“뭐, 뭐?”
- 추정 반경이 1킬로미터입니다. 계곡까지 쓸린 거 같습니다…….
대원이 말하는 계곡은 승가봉의 등산로 초입에 있는 구기계곡이었다.
한마디로 승가봉 정상에서 등산로의 초입까지 산사태로 토사들이 밀려갔고, 그 말은 구출대가 산사태를 피하지 못했다는 말과 같았다.
“말도 안 돼…….”
“휘말렸다고? 저거에?”
무전을 듣던 소방관들이 동시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최악의 사태가 도래했다.
하지만 그 망연자실함은 짧았다.
“X발.”
“엿 같네.”
절망에 빠지긴 했지만, 각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눈에 독기를 품었다.
쏴아아아아!
불길을 잡기 위해 관창을 잡고 있으면서도 그 독기 어린 눈빛으로 산사태가 일어난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각자의 센터장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가야 합니다, 센터장님.”
동료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야 합니다!”
하나같이 흥분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센터장을 향해 자신들이 가야 한다며 고함을 질렀고, 그 생각은 각 대의 센터장들도 동일했다.
“단장님, 우리 역촌대가 가겠습니다.”
“녹번대가 가겠습니다. 저희가 북한산을 가장 잘 압니다.”
“은평대를 보내 주십쇼. 우리가 가는 게 맞습니다.”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르는 길현대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가 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센터장들의 의견을 현장대응단장이 일축했다.
“안 돼!”
“단장님!”
“저기까지 어떻게 가려고? 이미 불길에 완전히 막혔어. 길현대 구하려다 다른 대원들까지 잃을 셈이야?!”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진압대의 위치에서 승가봉까지의 이동은 불가능했다.
설혹 접근이 가능하다 해도 또 얼마의 피해를 입을지 몰랐고, 무엇보다 지금 상태에서 더 이상의 인원을 빼는 건 불가능했다.
화르르르르!
‘제기랄.’
언제 불길이 방어선을 뚫고 주택가로 번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료를 버리자는 뜻은 아니었다.
“강 대장, 지금 위치 어디야?”
현재 유일하게 예비대로 남아 있는 구조대를 떠올렸다.
요구조자들을 대피시키고 진입로를 찾겠다던 구조대는 그런 단장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 승가봉 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길현대는 저희가 구하겠습니다!
흥분한 구조대장의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흘러나와서였다.
“밟아! 빨리 밟아!”
“알겠습니다!”
그들 역시 산사태의 광경을 보고 이성을 잃어버리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 *
한편, 산사태가 일어났던 승가봉 중턱은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지반이 무너지며 쏟아져 내린 탓에 곳곳에 부러진 나무와 바위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이성하는 다행히 목숨을 건진 상태였다.
“세에엑, 세에엑.”
토사에 휩쓸려 땅 밑에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간신히 숨은 붙어 있는 아슬한 상황.
하지만 충격이 심했는지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꿈속인가…….’
힘겹게 눈을 뜨는 데는 성공했지만 칠흑 같은 어둠에 다시 눈을 감았고, 그렇게 이성하는 다시 의식을 잃어 갔다.
‘피곤해…….’
온몸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피로감에 자연스레 수마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이성하.]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아 귀찮다는 기분만 느꼈지만, 이내 그 소리가 명확히 들리며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성하, 정신 차려! 정신 좀 차리라고!]
“렉스…….”
다급한 렉스의 고함에 지금의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끄으윽.”
억지로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 순간 온몸에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졌다.
고통뿐만이 아니라,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직면할 수 있었다.
‘산사태…….’
[그래. 산사태야. 정신 들어?]
그 흉포하게 밀려오던 산사태의 순간이 드디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산사태를 직격한 것치고는 부상의 상태가 심하지 않았다.
“허억, 허억.”
아직 흙 속에 파묻혀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가장 심한 고통이 느껴지는 오른팔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의 상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갔다.
‘분명히 거대한 나무가 날 덮쳤는데…….’
마지막 순간, 자신을 깔아뭉개듯 덮치던 거대한 나무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렉스의 회복력이 발휘된 건가 하는 생각을 떠올려 보기도 했지만, 그 생각은 말이 안 됐다.
‘아니야, 아무리 회복력이라도 부러진 걸 낫게 할 순 없어.’
어디까지나 렉스의 회복력은 단숨에 부상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재생 속도를 올리는 능력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잊고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성하!”
나무와 토사가 덮치기 전, 누군가 자신을 끌어안았다.
콰르르르르!
엄청난 무게로 쏟아져 내리는 산사태로부터 스스로의 몸으로 자신을 보호한 것이다. 이어서 그렇게 끌어안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자, 이성하의 두 눈이 세차게 떨렸다.
“성하야, 미안하다.”
“……!”
콰르르르르!
자신을 끌어안은 채 미안하다며 처연한 웃음을 흘리는 장건호의 모습이 이제야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맞아. 그 녀석이 마지막에 널 보호했어.]
렉스가 씁쓸한 어조로 이성하의 기억이 사실이라고 확인해 줬다.
[그 때문에 네가 이 정도로 그친 거야.]
렉스의 말에, 이성하는 고통을 무시한 채 손끝을 움직였다.
“끄으윽.”
지금 자신을 옥죄고 있는 게 단순한 흙더미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억지로 손을 당겨 몸의 위쪽을 더듬었고, 그렇게 느껴지는 매끈한 재질에 고함을 질렀다.
“거, 건호 형!”
손끝으로 느껴지는 방화복의 재질을 통해,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게 장건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필사적으로 왼손을 움직여 공간을 만들었다.
“안 돼! 정신 차려! 정신 차려, 형!”
아무 미동도 없는 장건호의 모습에, 서둘러 흙더미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에 렉스가 고함을 질렀다.
[정신 차려, 인마! 너 그대로 생매장당하고 싶어?!]
현재 이성하가 파묻힌 곳은 아슬아슬하게 공간을 유지하는 상태였다.
운이 좋은 건지, 같이 파묻혔던 나무의 가지들 사이로 공간이 생겨 그나마 목숨을 건진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그래. 최대한 조심스럽게 파야 해. 안 그러면 그대로 무너질 거야.]
렉스의 말처럼 섣부르게 손을 뻗었다가 공간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탈출이고 뭐고 그대로 모든 게 끝나 버리게 될 터였다.
다행히 빠져나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돼, 됐다!”
깊게 파묻힌 건 아니었는지, 조금만 파냈음에도 금방 머리 위로 빛이 들어왔다.
하지만 또다시 표정이 굳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 이게…….”
빠져나오자마자 끌어낸 장건호의 상태가 심각해서였다.
[건들지 마! 완전히 부러졌어!]
장건호는 왼팔이 완전히 으스러져 기묘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거기다 입에 찬 공기 마스크는 피범벅이 돼 있었다.
“말도 안 돼…….”
숨은 쉬고 있지만, 내부 출혈까지 일어나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악은 아니라는 거였다.
[호들갑 떨지 마. 대동맥 파열은 아니야.]
“그, 그럼요?”
[병원에 가야 확실히 알겠지만 횡경막 탈장 같아. 어딘가 하나가 찢어진 거 같기도 하고.]
“후…… 다행이다…….”
대부분 현장에서 사망하는 대동맥 파열과 달리, 충격으로 장기가 이탈하는 탈장이라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성하는 다시 다급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었다.
“센터장님! 팀장님! 다들 어디 있어요!”
장건호의 심각한 상태에 잠시 잊고 있던 동료들을 떠올렸고, 그렇게 찾아낸 동료들의 상태에 이성하는 또다시 절망했다.
“흐윽, 다들 왜 그래요…… 일어나요! 제발!”
모두 부상의 정도만 달랐지, 다들 장건호 못지않게 처참한 모습으로 정신을 잃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담할 시간은 없었다.
[언제까지 질질 짤 거야!]
싸늘한 렉스의 말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시간 없어! 이대로 있으면 전부 죽어!]
시간이 없다는 렉스의 말에 드디어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이성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산불…….”
[그래. 빨리 벗어나야 해. 퇴로가 막히면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시간이 꽤 흘렀는지, 어느새 불길이 주변을 잠식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재 길현대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이성하 혼자였다.
“허억, 허억.”
“세에엑, 세에엑.”
이성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심각한 부상으로 간신히 숨만 내쉬고 있었고,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이성하 역시 정상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끄으윽.”
[너 괜찮냐?]
“괜찮아요.”
렉스가 걱정 어린 말을 건넬 정도로, 그의 오른팔 역시 부상으로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절망에 찬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 여섯이나 되는 인원을 데리고는 탈출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 지직, 지지직.
순간 멀리서 무전기의 기계음이 들렸다.
- 길현대, 지직. 들립니까?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길현대를 찾는 동료 소방관의 음성이 이어서 들렸고, 그에 이성하는 다급히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려가 무전기를 찾았다.
“구출대예요!”
[그래. 구출대다.]
산사태에 휘말린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구출대가 조직됐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이성하는 반쯤 파묻힌 무전기를 찾자마자 환한 표정으로 발신 버튼을 눌렀다.
“여기는 길현대 구조 요청 바랍니다. 대원 대부분이 부상을 입어서 자력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자신들을 구해 줄 동료들이 왔다는 것에,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 지직, 길현대, 지지직. 길현대 들립니까!
송신이 되지 않았는지, 계속 길현대를 찾는 무전이 울렸다.
“여기는 길현대, 구조 요청 바랍니다. 대원 대부분이 부상을 입어서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 지직, 길현대. 응답 바랍니다.
다시 한번 상황을 보고해도 여전히 같은 무전만 들리자, 이성하는 다급한 표정으로 다른 무전기를 찾았다.
“고장 났어요. 다른 걸 찾아야 돼요.”
산사태로 인해 무전기의 발신 기능이 고장이 난 듯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다른 무전기들도 상태가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안 돼. 이건 전원이 완전히 나갔어.]
완전히 고장이 났는지 무전기 태반이 전원의 불조차 들어오지 않았고, 그에 이성하는 울분에 찬 고함을 질렀다.
“왜…… 왜!”
동료들이 도우러 왔음에도 상황을 전달할 수 없는 것에 분통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러다 갑자기 든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렉스, 무전이 들린다는 건 근처에 있다는 거겠죠?”
중계기가 없는 산속이라는 걸 감안하면 대략 1킬로미터의 거리 안에 구출대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순 없었다.
[갈 거냐?]
“네, 거기까지만 가면 다들 살릴 수 있는 거잖아요.”
구출대에게 위치를 알릴 수 없다면, 직접 동료들을 데리고 찾아갈 마음을 먹은 것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판단한다면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허억, 허억.”
“쎄에엑, 쎄에엑.”
혼자가 아닌, 의식을 잃은 여섯을 데리고 그 먼 거리를 이동할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뿐이었다.
[로프로 하나씩 묶어.]
렉스의 말에 따라 동료들과 장건호, 요구조자까지, 여섯의 몸에 챙겨 온 로프들을 하나씩 묶었고, 그중 두 개의 로프를 각각 자신의 팔에 감았다.
‘두 명씩 나눠서 갈게요.’
한 번에 안 되면 두 명씩이라도 나눠서 끌고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이성하는 느리지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끄으윽.”
모두를 살리기 위해.
‘아무도 죽게 하지 않아!’
단 한 사람도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무거운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