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39화 (39/235)

<강철 소방대 39화>

39화. 가장 무서운 화재 (4)

길현대는 처음부터 향로봉을 목적지로 삼고 올랐다.

“언덕바위에서 탈출로로 정할 수 있는 곳은 향로봉뿐이야. 장건호도 그쪽에 있을 거다.”

장건호라면 향로봉을 탈출로로 삼았을 거라는 권일섭의 판단에서 이루어진 경로였고, 그렇게 목적지를 정한 길현대는 빠른 속도로 달려 산을 올랐다.

“뒤처지지 마. 이 페이스 그대로 유지해야 해.”

“후욱. 후욱. 알겠습니다.”

앞장서고 있을 장건호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을 다해서 등산로를 올랐다.

물론 중간중간 장애물을 만난 건 당연했다.

화르르르르!

길현대가 올라가는 등산로 역시 어김없이 불길에 휩싸인 평지 구간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불길들은 길현대의 발길을 늦추지 못했다.

“그대로 달려서 뚫는다!”

“넵!”

앞장서는 권일섭의 말에 그대로 불길을 향해 달렸다.

“성수야!”

“준비됐습니다!”

권일섭의 고함에 오성수가 앞으로 나섰고, 그런 오성수가 손에 들고 있는 건 준비를 할 때 챙겼던 휴대용 소화기였다.

“갑니다!”

쏴아아아아!

소화기로 불길을 날리면서 그대로 평지 구간을 돌파한 것이다.

당연히 진압대에서 쓰는 방식은 아니었다.

“끄으윽.”

불길을 진압하지 않고 돌입함에, 그 뜨거운 열기가 방화복 내부로 그대로 전해졌으니까.

하지만 지금으로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허 부장님!”

“그래!”

쏴아아아아아!

가지고 있는 소화기가 다 떨어지면 바로 다음 인원이 길을 뚫었다.

“필주 형!”

“센터장님!”

“이성하!”

한 명의 인원도 빠짐없이 모두가 돌아가며 불길을 뚫었고, 그 행동에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끄으윽.”

“허억, 허억.”

뜨거운 불길에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을 느낀다 하더라도.

“이 속도 그대로 유지한다!”

“알겠습니다!”

이 방법이 앞장선 장건호를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길현대는 예상한 시간보다 빨리 향로봉 중턱에 이를 수 있었다.

“잔량은?”

“10분 남았습니다.”

“저도 10분입니다.”

“9분 남았습니다.”

“11분입니다!”

각자가 공기통의 남은 시간을 공유하며 눈을 빛냈고, 그중 이성하의 입가에는 웃음까지 어렸다.

‘10분이나 단축했어요.’

[그렇게 뛰었는데 당연히 단축해야지.]

예상한 시간대로라면 향로봉 중턱에서 공기통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10분을 절약했다.

전력으로 달린다면 중턱에서 정상까진 10분 안에 도달할 수 있을 터였다.

길현대는 그대로 산을 올랐다.

“올라가서 요구조자 확보하고 장비 점검한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충분하다는 생각에, 장건호를 구하고 공기통을 교체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던 것.

하지만 그때.

화아아악!

순간 거대한 화광이 향로봉을 밝혔다.

어둡던 향로봉 주위가 단숨에 밝아졌고, 그에 허석훈 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쳇, 살벌하네.”

방금의 현상이 산불 화재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 중 하나라는 상승 기류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현상에 이성하가 손으로 가슴을 짚었다.

“……!”

순간적으로 심장이 옥죄는 느낌이 들었다.

“서, 설마.”

그에 자연스럽게 향로봉 정상을 올려다봤고, 그와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산을 올랐다.

“이성하!”

“죄송합니다! 먼저 가겠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렉스 역시 그 모습에 불길한 기분을 느낀 건 마찬가지였다.

[또야?]

지금까지 이성하가 저런 행동을 할 때마다, 큰 사고가 벌어졌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이번에도 맞아떨어졌다.

“건호 형!”

향로봉 정상에 도착한 순간, 장건호의 이름을 외쳤다.

어딘가에 있을 장건호가 듣기를 바라는 고함이었고, 그에 대한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몸을 날렸다.

[장건호다!]

“찾았다.”

한쪽에서 볼품없는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장건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뒤로 불길하게 치솟는 화광이 보였다.

“혀엉!”

[빨리 끌어내!]

렉스의 다급한 고함에 이성하는 더욱 속도를 높였고, 그렇게 도착하자마자 장건호의 목덜미를 그대로 끌어 던졌다.

“으아아아아!”

콰당탕!

순간적으로 눈앞에서 치솟는 화광에 방법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바로 옆에 쓰러져 있는 요구조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제발!”

순간적으로 눈앞까지 치솟는 불길에서 요구조자를 보호할 수 최대한의 몸부림이었고, 다행히 그 몸부림은 쓰러져 있는 요구조자에게 닿았다.

화르르르르!

“끄으으으윽.”

완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요구조자에게 향하는 불길의 대부분을 몸으로 막아 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를 장건호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성, 성하야.”

생각지도 못했던 이성하의 등장에 이게 꿈인가 싶었지만, 꿈은 아니었다.

화르르르르!

거세게 뿜어진 불길을 배경으로, 요구조자의 몸 위에서 일어서는 이성하의 모습이 들어왔다.

“허억, 허억. 드디어 찾았네.”

면체 때문에 확실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장건호가 기억하는 이성하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에게 그런 장건호의 놀라움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형, 진짜 미쳤어요?”

처참한 장건호의 모습 때문이었다.

“뭐, 뭐?”

“이게 뭐냐고요?!”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장건호의 상태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러다 보니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수 없었다.

“도대체 보고도 없이 단독 행동을 하는 소방관이 어디 있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장건호가 목숨을 잃었을 거라는 생각에 이성하는 고함을 질러 댔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장건호보다 자신을 걱정해야 했다.

쾅!

“아악!”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비명을 질렀고, 그렇게 때린 사람을 확인하고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이 새끼, 너 내가 단독 행동하지 말랬지!”

“…….”

어느새 올라온 오성수가 매섭게 뒤통수를 날려서였다.

“이성하, 이 새끼야!”

“아이구, 죽겠다.”

그 뒤로 허석훈과 김필주가 지친 얼굴로 등장했고, 마지막으로 올라온 권일섭 역시 굳은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봤다.

[큭큭큭. 그래. 보고도 없이 단독 행동을 하는 소방관이 어디 있냐, 큭큭큭.]

그대로 터져 나온 렉스의 비웃음처럼, 이성하 역시 단독 행동을 저지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다급했어도 잘못은 잘못이었다.

‘끄응.’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권일섭이 보였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잘못했습니다.”

권일섭이 산을 오르기 전에 무엇보다 강조한 게 단독 행동 금지였다.

하지만 권일섭이 표정을 굳힌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 속도로 오를 수가 있다고?’

먼저 치고 나간 이성하를 아무도 따라잡지 못했다.

“허억. 허억.”

“뭐야! 저 새끼 왜 저렇게 빨라!”

이성하가 가장 젊다는 이유로 예비 공기통을 두 개나 들고 있음에도 아무도 따라잡지 못했고, 그렇게 뒤늦게 올라와서 본 건 불길 속에서 두 명의 요구조자를 구해 내는 모습이었다.

‘거기다 상승 기류까지 예측했단 말이지.’

실전에 투입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신입이,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승 기류를 예측한 것에 전율이 솟아났다.

하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결과는 좋았지만, 잘못은 잘못이었다.

“지금 건은 내려가서 따로 이야기한다. 알겠나?”

내려가서 이성하에게 단독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 이성하 역시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유를 떠나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화르르르르!

이미 향로봉 정상으로 불길이 침범해 언제 퇴로가 막힐지 몰랐다.

“좋아. 빠르게 공기통 교체하고 예정대로 네 번째 봉우리인 승가봉까지 이동해서 우회로로 빠져나간다. 요구조자는 석훈이와 성수, 장건호는 필주와 성하가 부축해. 알았지?”

“알겠습니다!”

방향을 확정한 권일섭이 바로 출발을 서둘렀고, 그에 이성하 역시 굳은 표정으로 장건호를 부축했다.

이곳에서 서로의 과실과 안부를 묻기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그랬기에 길현대는 올라올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더 빨리 뛰어! 불길에 잡히기 전에 빨리 내려가야 해!”

불길이 퇴로를 막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는 심정으로 다음 봉우리인 비봉을 거쳐 목적지인 승가봉까지 전력으로 이동했고, 다행히 그 노력이 통했는지 아슬아슬하게 불길을 피해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센터장님, 성공입니다!”

“좋아, 빠져나왔어!”

완전히 산불을 피한 건 아니지만, 불길이 직접적으로 휘감은 지역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

또다시 가슴이 옥죄는 게 느껴졌다.

[야, 너 또 왜 그래?]

‘모르겠어요. 뭔가 이상해요.’

분명히 산불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길함이 느껴졌다.

조금만 내려가면 이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갈 수 있음에도 불길한 기분이 느껴졌고, 순간 그 옥죄는 느낌이 강해졌다.

“……!”

반사적으로 느껴진 불길함에 뒤를 돌아봤고, 그렇게 확인한 광경에 고함을 질렀다.

“세, 센터장님.”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와르르르!

정확히 말하면 불에 탄 나무들과 흙더미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에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지, 지반 붕괴!”

[이런 X발, 산사태야!]

지반을 구성하는 토석류가 산불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주 있는 현상은 아니었다.

“이게 왜…….”

대부분의 산사태는 산불로 약해진 지반에 비가 내려 발생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번만큼은 산불의 피해만으로 지반이 붕괴되고 있었다.

콰르르르르!

불이 붙은 나무들이 거대한 흙더미와 함께 와르르 쏟아져 내렸고, 그에 길현대는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전력을 다해 산 밑을 향해 달렸다.

“달려!”

“빨리빨리!”

물밀듯이 밀려오는 토사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정신없이 산을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쏟아져 내리는 토사들의 속도는 엄청났다.

콰르르르르!

뛰어서 내려가는 길현대는 달리 중력을 무시한 채 떨어져 내리는 게 산사태였고, 무엇보다 길현대에는 두 명의 부상자가 있었다.

“허억, 허억.”

“제, 제기랄!”

맨몸으로 달려도 피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서는 몸을 가눌 수 없는 부상자들까지 이송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 때문에 장건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권일섭에게 자신을 포기해 달라 외쳤다.

“센터장님, 두고 가십쇼.”

“뭐?”

“전부는 무립니다. 길현대만이라도 빠져나가야 합니다!”

자신과 요구조자만 버린다면 길현대만큼은 산사태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닥쳐! 그따위 소리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줄 알아?!”

이성하가 악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애송이가 건방지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집중이나 해!”

권일섭 역시 성난 표정으로 장건호에게 고함을 질렀으며, 다른 대원들 역시 장건호에게 성난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건방진 새끼.”

“넌 내려가면 죽을 줄 알아.”

“너 한 번만 더 그따위 소리 지껄이면 막내 동기고 뭐고 죽여 버린다.”

그들 역시 사람을 구한다는 숭고함에 반해 소방의 길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그랬기에 같이 죽을지언정 포기할 수는 없었다.

꽈악!

혹시라도 요구조자들을 놓칠까 하는 마음에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상황은 좋지 못했다.

콰르르르!

조금 전까지 멀리서 느껴지던 산사태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제발, 제발, 제발!”

그에 전력을 다해 발을 재촉해 봤지만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순간 눈앞이 어두워질 때 이성하가 고함을 질렀다.

“제기랄!”

[이성하!]

기어코 쏟아져 내린 토사들이 길현대를 덮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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