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38화 (38/235)

<강철 소방대 38화>

38화. 가장 무서운 화재 (3)

* * *

한편, 단독 진입한 장건호는 현재 난항에 빠져 있었다.

빠르게 결정한 탓에 아직 불길을 만나진 않았지만, 어두워진 하늘 때문에 도통 길을 찾지 못했다.

‘제길, 이쪽인가.’

북한산에서의 활동 경험이 없었던 탓에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좌절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 이쪽이야.’

어떻게든 요구조자를 구하겠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으며 산을 올랐고, 그러다 마침내 발견한 나무의 X 자 표시에 불끈 주먹을 쥐었다.

‘좋았어!’

눈앞의 표시는 진입 당시 구조대장이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기점으로 남겨 둔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점에서 요구조자가 있을 걸로 추정되는 언덕바위는 얼마 멀지 않았다.

“이곳이 중간 기점이다. 여기서 200미터만 더 가면 언덕바위와 향로봉 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야.”

기점을 표시하면서 말했던 구조대장의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랬기에 걸음을 서둘렀다.

‘이쪽에서 위로 가야 했어.’

기억을 더듬으며 등산객이 말한 언덕바위로 향했고, 그러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바위의 모습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드디어 요구조자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언덕바위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요구조자는 없었다.

“어르신, 계십니까! 소방관입니다. 어르신, 대답 좀 해 주십쇼!”

아무리 외쳐도 응답하는 목소리가 없었다.

“어르신! 소방관입니다!”

주변을 다시 체크하며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 봤지만 여전히 응답하는 목소리는 없었고, 그에 장건호가 분통을 터트렸다.

“제기랄, 늦었나.”

최대한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요구조자를 놓쳐 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분명 요구조자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확실히 있었어.’

불길에 놀라 급하게 도망갔는지, 요구조자의 것으로 보이는 등산 모자와 스틱이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정상적으로 탈출한 요구조자라면 자신의 물건을 챙기지 못할 리가 없었고, 그걸 생각한다면 요구조자는 확실히 있었다.

‘위쪽이다. 산불을 확인하고는 급히 위쪽으로 대피한 거야.’

빠르게 번져 오는 불길에 놀라 위쪽으로 대피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었다.

아래쪽은 절대 아니었다.

화르르르르!

소방관도 아닌 민간인이 저 뜨거운 불길 쪽을 도주로로 잡았을 리가 없으니까.

장건호는 위를 바라봤다.

‘향로봉.’

북한산 등산로의 두 번째 봉우리인 향로봉을 바라보고는, 이내 그곳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저기밖에 없어.’

민간인인 등산객의 관점에서 봤을 때, 유일하게 대피할 수 있는 장소가 등산로로 이어지는 향로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걸음을 멈춰야 했다.

‘제기랄, 언제 여기까지.’

북한산의 등산로는 대부분 불길이 침범하지 못하는 암석으로 이뤄진 능선인, 암릉으로 이뤄졌지만, 가끔 낙엽이 깔린 평지 구간이 있었다.

화르르르르!

그 평지 구간이 불길에 휩싸여 길을 막고 있었고, 그에 오른쪽으로 우회해 길을 찾았지만 그곳 역시 불길에 휩싸인 건 마찬가지였다.

“이런 썅!”

가뜩이나 건조한 날씨에 바람까지 강해, 산불의 확산이 비정상적으로 빨랐던 것이다.

그랬기에 장건호는 더욱 악에 찬 표정으로 진입로를 찾았다.

‘안 돼! 시간이 얼마 없어.’

화르르르르!

이렇게나 빠른 속도라면 언제 향로봉 정상이 불길에 휩싸일지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우회해 봐도 진입로는 보이지 않았다.

화르르르르!

마지막으로 선택한 절벽 쪽 진입로도 불길에 막히긴 마찬가지였고, 그에 장건호가 악에 받친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아무리 찾아도 향로봉으로 올라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에 분통이 차오른 것이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또 잃는다고?’

매일같이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꿈에 나왔다.

“살려 주세요…… 사, 살려 주세요, 소방관님…….”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매일 꿈에 나와 살려 달라고 자신에게 손을 뻗었고, 자신은 단 한 번도 그 바람을 들어주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흐윽.”

꿈에서조차 그들이 차디찬 시신이 되는 걸 막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려 댔던 것이다.

그런데 그 꿈에 또 한 사람을 추가할 순 없었다.

‘웃기지 마!’

자신은 그러려고 소방관이 된 게 아니었다.

“장 중사, 자네 전역한다며? 중사 진급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아깝지 않아?”

“하하, 저 소방관 해 보려고요.”

“소방관?”

“네. 멋있더라고요, 사람을 구하는 게.”

사람을 구한다는 숭고함에 반해 전역을 신청했다.

“193번. 정신 똑바로 안 차려? 구조대가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똑바로 하겠습니다!”

더 이상 군복이 아니라 주황 당근복을 입은 채 땅바닥을 굴렀고, 그렇게 소방관이 되면서 국민에게 맹세했다.

“나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모든 걸 바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고.

그랬기에 포기할 순 없었다.

‘다시는 누구도 잃지 않아!’

더 이상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용납할 순 없었다.

“소방이 갈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갈 수 없어!”

구조대원이 되면서 선배들에게 누누이 들었던 소방관의 신념을 입 밖으로 토해 냈고, 그래서 다시 악에 찬 표정으로 산길을 달렸다.

‘구한다! 꼭! 내가 구할 거야!’

그 매일같이 겪은 지옥으로 또다시 한 사람을 추가할 순 없었다.

화르르르르르!

하지만 이미 등산로 자체가 모두 불길에 잠식된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장건호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암릉으로 올라간다.’

불길이 침범하지 못하는 암릉을 통해 올라가자고.

만약 동료들이 알았다면 바로 미친 짓이라며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장건호가 바라보는 곳은 길이 되지 못한 채 절벽으로 남아 있는 암릉이었다.

기다시피 올라가야 할 정도로 경사가 가팔라 길이 되지 못한 거였고, 그런 암릉을 소방관인 장건호가 올라가는 건 불가능했다.

‘무겁긴 하네…….’

방화복과 공기통을 비롯해 온몸에 20kg이 넘어가는 개인 장비를 착용하고 구조에 나선 게 장건호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건호는 자신을 믿었다.

‘할 수 있어.’

그동안 이걸 위해 땀을 흘려 왔었다.

“호흡 조절!”

“허억! 허억!”

“조절해! 이 정도 가지고 헉헉대서 소방관이라고 할 수 있어!”

언젠가 찾아올 이런 순간을 대비해 소방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가혹한 훈련을 받아 왔다. 장건호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준비를 마쳤다.

철컥.

조금이라도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착용한 공기호흡기 세트를 풀었으며.

‘이것도 필요 없어.’

불길에서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방화복을 제외한 모든 장비를 버렸다.

‘할 수 있어!’

터억. 터억.

방화복의 무게만이라면 어떻게든 버텨 내겠다며, 기어코 암릉을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에 따른 고통은 엄청났다.

“끄으으으윽!”

맨몸으로 올라도 힘든 암릉을,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오르느라 온몸이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장건호의 입가에는 만족한 웃음이 어렸다.

‘된다, 가능해!’

느리지만 차츰차츰 암릉을 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전진할수록 조금 더 가까워지는 암릉의 끝에 손에 더욱 힘을 줬고,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어코 암릉을 오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

드디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던 암릉을 통해 향로봉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기뻐할 시간은 없었다.

‘제기랄.’

어느새 산불이 향로봉 턱 끝까지 도달해 있었다.

화르르르르!

방화복을 입었음에도 그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고, 그에 장건호는 서둘러 이곳 어딘가에 있을 요구조자를 찾아 나섰다.

“어르신! 소방관입니다! 계십니까! 어르신!”

퇴로가 막히기 전에 요구조자를 구해 서둘러 빠져나가야 했다.

그리고 다행히 이번엔 요구조자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요, 여기 있습니다!”

한쪽에서 그토록 찾던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콜록, 콜록. 괜찮아요.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입니까?”

어지간히 고생을 했는지 온몸이 흙으로 더럽혀진 노인을 만날 수 있었고, 장건호는 그런 노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기보단 탈출을 서둘렀다.

“어르신, 뛸 수 있으시죠?”

“네?”

“산불이 언제 여기까지 번질지 모릅니다. 최대한 빨리 대피해야 돼요.”

불길을 피하려면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다행히 노인도 그 말뜻을 이해한 듯 보였다.

“아, 알겠어요.”

상황을 짐작했는지 가지고 있던 수건으로 급히 입을 가렸고, 그런 노인의 모습에 장건호가 앞장서서 길을 열었다.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어르신.”

이제는 이 지옥 같은 숲에서 빠져나가는 일만 남은 상황.

하지만 그때였다.

“……!”

방금까지 거세게 불던 바람이 멎었다.

고오오오오.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한 고요한 울림이 들렸고, 순간 장건호의 눈에 거대한 불길이 보였다.

화르르르르!

일제히 산을 휘감으면 뻗어 오는 거센 불길이 보였고, 그런 불길을 장건호는 피하지 못했다.

화르르르르르!

“끄아아아악!”

산불이 순식간에 올라가는 상승 기류를 타고 장건호와 노인을 덮쳐 버렸다.

상황은 심각했다.

화르르르르!

방금까지 불길이 침범하지 못했던 향로봉 정상이 완전히 불길에 휩싸였다.

“허억, 허억.”

거센 화염 돌풍으로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장건호가 심한 타박상으로 고통을 호소했고, 아무 장비 없이 불길에 직격당한 노인은 아예 정신을 잃었다.

“화, 화상…… 어르신, 괜찮습니까?”

“…….”

“어르신! 콜록, 콜록. 정신 차리세요, 어르신!”

타박상은 물론이고,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불길에 노출되자, 끔찍한 고통에 그대로 정신을 잃은 것이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서, 설마…….”

또다시 거세게 불던 바람이 일순 멎었다.

고오오오오.

조금 전과 같은 상승 기류의 전조 증상이 다시 느껴졌고, 그에 장건호가 안간힘을 쓰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 안 돼…….”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불길에 직격당한다면, 이번에야말로 두 사람 모두 목숨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커헉.”

도통 진정되지 않는 통증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발, 제발.”

악착같이 몸을 일으키려 팔에 힘을 줘 봤지만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그에 장건호는 허탈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여기까지인가…….”

아무리 몸을 일으키려 해도 말을 듣지 않는 몸 상태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건호 형!”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인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지만, 또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형!”

‘……!’

절대로 잊지 못할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자.

“찾았다.”

“이, 이성하.”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성하가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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