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37화 (37/235)

<강철 소방대 37화>

37화. 가장 무서운 화재 (2)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무전기를 꽉 쥐어 봤지만, 혼자 불길 속으로 진입한 구조대원은 장건호가 맞았다.

- 장건호? 그 친구는 휴직 상태였잖아.

- 지난주에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때 또 사망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휴직에 요구조자를 잃은 것까지, 이성하가 알고 있는 장건호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분통을 터트렸다.

- 바보같이 왜 그런 거야! 왜!

동료들에게 말도 없이 요구조자를 구하러 되돌아간 장건호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물론 왜 그랬는지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소방관의 현장 진입은 안전이 확보된 상황에서만 가능하게 돼 있었다.

아무리 구해야 할 요구조자가 있더라도 안전 확보가 어렵다면 진입하지 않는 게 소방관이 가장 우선시하는 매뉴얼이었고, 구조대원인 장건호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게 원통했던 거야?’

일부러 말을 안 하고 혼자 간 거였다.

‘그렇게 원통했냐고, 혀엉…….’

사실을 말하면 동료들이 가지 못하게 할 게 뻔했기에, 혼자 단독으로 진입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표정을 굳히고 무전기를 잡았다.

“구조대장님, 장건호 대원 구하러 가십니까?

장건호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 미친놈.]

그 모습에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렉스가 실소를 흘렸지만 이성하의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 네? 잘 안 들립니다. 뭐라고요?

“혼자 재진입한 장건호 대원이요. 구하러 가십니까, 구조대장님?”

수신이 잘 안 됐는지 되묻는 구조대장에게 다시 한번 장건호의 구조를 물었고, 그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김필주와 허석훈이 고함을 질렀다.

“야, 이 미친놈아!”

“오성수 뭐 해, 무전기 안 뺏고!”

지휘관들끼리 이야기하는 무전에 일반 대원이, 그것도 아직 정식 임용을 받지도 못한 소방사시보 따위가 끼어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이미 작정한 상태였다.

- 네?

- 지금 무전 누구야?

“길현센터 소방사시보 이성하입니다. 장건호 대원과 동기입니다. 꼭 알고 싶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힘은 물론, 또다시 장건호의 구조를 물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말에 이성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우리가 선택한 탈출로는 폭포 쪽 불광사 방향이야. 올라오는 불길을 우회해서 비등산로로 탈출했고, 아까 말했듯이 그 경로는 현재 불길로 뒤덮인 상태야.

“설마 진입로가 아예 없는 겁니까?”

- 그래. 이쪽 길은 대부분 암석으로 이뤄진, 암릉이야. 몇 개 안 되는 경로 모두 불길에 막힌 상태고. 현재로썬 진입할 방법이 없어. 대피 중인 요구조자들도 많은 상황이라 여유 인원도 없다.

“그게 무슨…….”

진입로와 먼저 구해 낸 요구조자들로 인해, 당장은 구조 작전을 시행할 수 없는 게 구조대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 하지만 구출 작전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야. 우선 구해 낸 요구조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새로운 진입로를 찾아서 올라갈 생각이다.

늦게라도 새로운 진입로를 찾아 구조 작전을 펼칠 거라는 구조대장의 말이 들려오긴 했지만, 그 말은 이성하에게 아무 위안을 주지 못했다.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간다고?’

현재 산불은 북한산의 초입이라고 일컬어지는 족두리봉까지 확산된 상황이었다.

장건호가 있을 거라 짐작되는 언덕바위는 바로 그 족두리봉 너머에 있었고, 그걸 감안한다면 장건호를 구조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한 시간, 이 정도 바람이면 한 시간이면 언덕바위까지 확산되겠네.]

옆에서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어조로 혀를 차는 렉스의 말대로라면, 대략 한 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없는 상황.

그런데 구조대가 현재 있는 요구조자들을 대피시키고 새로운 진입로를 찾아 장건호에게까지 도달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한 시간? 두 시간?

아니.

아무리 빨라도 세 시간이었다.

구조대가 대피 장소로 결정한 불광사에서 장건호가 있을 언덕바위까지만 해도 단순히 오르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고, 그게 가파르기로 유명한 북한산이라면 더 걸릴 수 있었다.

“늦습니다.”

- …….

“그때는 늦는다고요!”

아직 대피 지점까지 도착도 못했을뿐더러, 맨몸이 아니라 수십 kg에 달하는 방화복과 장비를 걸치고 움직여야 하는 게 소방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잠깐만, 강 대장.”

또 다른 목소리가 무전에 끼어들었다.

“요구조자가 있을 거라고 짐작되는 언덕바위가 몇 번 째지?”

끼어든 목소리는 장건호가 향했을 거라 짐작되는 언덕바위의 위치를 물었고, 그 목소리에 이성하를 비롯한 3팀이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세, 센터장님!”

“아니, 형님까지 왜 그래요?!”

무전에 끼어든 인물은 그들의 대장인 권일섭 센터장이었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 족두리 봉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바위입니다.

“두 번째?”

- 네. 구조대가 등반 연습하는 암벽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너머입니다.

“그럼 여기서 대략 1킬로미터 지점인가?”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권일섭 센터장이 북한산 안내도를 보며 거리를 가늠하고 있었다.

“흐음, 향로봉까지는 700미터고.”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지도에 선까지 그리는 모습이었고, 잠시 후 생각을 마친 권일섭의 말에 무전을 듣고 있는 모두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오케이. 이쪽에서 가지.”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건호 대원과 혹시 모를 요구조자의 구조. 이쪽에서 가겠네, 강 대장.”

“……!”

진압대 쪽에서 구출대를 편성하겠다는 폭탄 발언이었다.

당연히 그 말에 현장대응단장이 고함을 질렀다.

-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작스러운 결정에 화가 났는지 무전기를 통해 고함을 질렀고, 그것도 모자라 직접 길현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안 되네, 권 센터장!”

“안 돼요?”

“자네 지금 몰라서 그러는 거야? 산불을 진압하기는커녕 겨우 확산만 막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인원까지 빼겠다고? 북한산 전체를 태워 버릴 셈이냔 말이야!”

안 그래도 불길의 확산만 막는 게 고작인 상태에서 구출대를 편성하겠다는 말은, 산불의 진압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 말에 권일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뭐?”

“늦었다고요, 단장님. 하늘을 보십쇼.”

권일섭의 손을 따라 하늘을 본 현장대응단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언제 이렇게…….”

어느새 해가 져 어두워진 하늘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제기랄!”

해가 지면 산림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산불이 일어나면 지역 소방관들이 진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산불을 진압하는 건 산림청 소속의 공중진화대였다.

헬기를 타고 출동해 산불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낙엽을 긁어내 만드는 방화선을 구축하는 건 물론, 헬기로 직접 화점을 제압하는 이들이 공중진화대였고, 그런 그들이 없다면 산불을 진압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켜만 봐야 하는 건가…….’

펌프차가 있는 곳에서만 물을 사용할 수 있는 소방관들로서는, 기껏해야 산불이 옆으로 번지는 것만 막아 내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좌절할 시간은 없었다.

산불을 진압할 수 없다면 사람이라도 구하는 게 나았다.

‘두 명인가…….’

불길 너머로 보이는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구해야 할 요구조자의 숫자를 계산했고, 이내 그 결심을 입 밖으로 꺼냈다.

“인원은?”

“단장님!”

“아니, 센터장 말이 맞아. 이쪽에서 구출대를 보낸다.”

현장대응단장 또한 권일섭의 말처럼 진압대에서 구출대를 편성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질 걸 알기라도 한 듯 권일섭이 바로 숫자를 말했다.

“네 명만 붙여 주십쇼.”

자신의 밑에 있는 길현대를 둘러보며 하는 말이었다.

“김필주, 허석훈, 오성수, 이성하, 집합해.”

허락이 있기도 전에 대원들을 불러 모았고, 그 행동을 현장대응단장은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실력 좀 보여 주나?”

권일섭이 누군지를 잘 알아서였다.

지금은 센터장으로 있지만 은평소방서 역사에 이름을 새겨 넣은 구조대장이 그였다.

권일섭은 그런 현장대응단장에게 원하는 대답을 들려줬다.

“그럼요. 전부 살려 오겠습니다.”

전부 살려서 돌아오겠다고.

그랬기에 현장대응단장은 무전기를 잡았다.

“강 대장. 구출대는 이쪽에서 편성하겠네. 권일섭이 간다.”

진압대에서 구출대를 편성하는 걸 확실시하는 순간이었다. 그에 현장에 있는 모든 소방관들의 얼굴에 활기가 어렸다.

“좋아. 우리는 이곳에서 확실하게 불길을 막는다.”

“알겠습니다!”

그들 역시 동료가 혼자 고립돼 있다는 말에 안달이 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길, 나 때문에…….’

처음 무전기를 잡았던 이성하였다.

권일섭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가장 놀랐던 사람이 이성하였고, 그래서 구출대의 편성에 죄스러운 마음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센터장님.”

“뭐가?”

“저 때문에 결정하신 거잖습니까. 건호 형 구출…….”

권일섭의 결정이 자신의 버릇없는 행동을 무마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권일섭이 피식 웃었다.

“장건호, 너만 아냐?”

“네?”

“여기서 그놈 사정 모르는 놈이 어디 있어?”

부하는 아니지만, 손때가 묻은 후배였다.

장건호가 처음 요구조자를 잃었을 때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게 권일섭이었고, 그건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맞습니다. 그놈 살 많이 빠졌더라고요.”

김필주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안 가면 그놈 또 울지도 모릅니다. 얼른 가시죠.”

허석훈은 특유의 너스레를 떨며 씨익 웃었고.

“야, 센터장님이 가자고 하면 가는 거야. 너 내가 그렇게 가르쳤냐?”

오성수는 바로 인상을 찡그리며 엄포를 놓았다.

같은 팀이 아니라고 동료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울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소방이라는 이름으로 끈끈한 정을 보여 주는 동료들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 권일섭이 정색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만. 들뜨는 건 좋지만 더 이상은 안 돼. 이제부터 모두 집중한다.”

소방관이 겪는 화재 중 가장 위험한 화재가 산불이었다.

상승 기류 탓에, 툭하면 아래에서 위로 사람을 덮치는 불길과, 불길에 휩싸여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나무들까지.

뿐만 아니라 심할 경우 지반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성하를 비롯한 모두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미 산불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장비를 챙기는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각자 여비 공기통을 하나씩 챙긴다. 헤드라이트 부착하고, 도끼와 로프, 휴대용 소화기도 하나씩 챙긴다.”

센터장이 말하는 장비 모두가 오로지 생존에 필요한 장비였다.

그리고 그렇게 길현대가 모든 준비를 갖추자 현장대응단장이 고함을 질렀다.

“주수!”

“주수!”

쏴아아아아아!

길현대의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그나마 불길이 적은 등산로를 향해 집중 주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린 그 진입로를 향해 길현대가 달렸다.

‘건호 형, 버텨 줘.’

본격적으로 불길 속에 고립된 요구조자 구출 작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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