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36화 (36/235)

<강철 소방대 36화>

36화. 가장 무서운 화재 (1)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교통사고가 일어났던 갈현동의 4차선 도로는 언제 사고가 있었냐는 듯 빠르게 정비됐고, 이성하 역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동에 정신없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할아버지, 개가 어디로 갔다고요?”

“저쪽. 열심히 따라갔는데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아.”

물밀듯이 밀려드는 민원으로 인한 출동과.

“젠장. 왜 이렇게 연소가 빨라! 이쪽부터 잡자. 주수 해!”

“주수!”

쏴아아아아!

흔히 있지는 않지만, 가끔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화재와 같은 출동 속으로.

하지만 그런 출동 속에서 이성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젠장…….”

갈현동 사고에서 아이처럼 울부짖던 장건호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서였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살려 준다고 했다고요. 지난번처럼요. 으허허헝.”

상처가 가득한 눈빛으로 울부짖던 그 모습이 계속 떠올라 도통 현장에 집중을 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결국 사수인 오성수에게 멱살을 잡히는 일이 발생했다.

“이 새끼, 너 미쳤어?”

“죄송합니다…….”

“죄송? 너 때문에 허 부장님이 다칠 뻔했어! 부상자가 발생할 뻔했단 말이야!”

다른 곳에 신경이 팔린 나머지, 현장에서 파트너 역할이었던 허석훈을 위험에 빠트릴 뻔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선배에게 혼이 났음에도 이성하는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렉스.”

[응?]

“건호 형 괜찮을까요? 많이 힘든 거 같은데.”

이성하는 사고가 일어났던 이튿날, 장건호에게 연락을 취했다.

[형. 전화 좀 받아요. 걱정 돼서 그래요.]

여러 번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문자를 보냈고, 그에 받은 답장은 당분간은 연락이 힘들다는 대답이었다.

[미안. 좀만 정리되고 통화하자. 형이 요즘 힘들어서 그래. 그리고 그날 일은 미안했다.]

그날의 일이 많이 힘들었는지, 장건호는 이성하와의 통화를 거부했다.

그래서 이성하의 머릿속이 복잡한 거였다.

[그렇게 걱정되냐?]

“걱정되죠. PTSD라는데…….”

바로 장건호가 겪고 있다는 PTSD.

사고나 자연재해, 살인과 같은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에 대한 공포감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정신 질환이 PTSD였다. 장건호의 경우는 그 PTSD의 위험도가 굉장히 높았다.

“기분이 어떨까요?”

[기분?]

“네. 매번 같은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면서요. 뜨거운 불길이 덮치거나,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다시 목숨을 잃는 순간이요…….”

업무 자체가 언제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재난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이다 보니, 겪게 되는 불안 증세가 그런 상황의 재경험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뭐하려고?]

“형한테 한 번 더 전화해 보게요. 검색해 보니까 PTSD가 대화를 나눌수록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막연히 장건호의 연락을 기다리기보다는, 다시 연락을 취해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 마. 그런 거 하나도 도움 안 돼.]

“네?”

[네가 전화하는 거 도움 안 된다고. 너랑 통화한다고 장건호의 PTSD가 나을 거 같냐?]

“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렉스가 피식 웃으며 항변하는 이성하의 말을 잘랐다.

[아니. 도움 안 돼. PTSD는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물론 네 말처럼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게 PSTD 환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건 맞아.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면서 위로를 받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때뿐이야. 상담이나 대화로 호전된다고 해도 그건 일시적이고, 그게 끝나면 오히려 더 나빠져.]

“……더 나빠진다고요?”

[어. 네가 하루 종일 장건호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대화가 끝나면 그로 인해 얻었던 안정감은 사라져. 그리고 그때부터 불안 증세는 다시 시작되지. 잠시 잊었던 만큼 더 크고 잔혹하게 말이야. 그러니까 전화하지 마. PTSD는 혼자 이겨 내는 거야. 그건…… 그런 병이거든.]

씁쓸함이 담겨 있는 어조였다.

PTSD는 남이 도울 수 있는 게 아니라 혼자 이겨 내야 한다는 렉스의 말에 이성하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못했다.

‘렉스, 혹시…….’

렉스의 말이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생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에에에에엥!

- 화재 출동, 불광동 8구역 주택 단지에 화재 발생. 다시 말한다. 불광동 8구역 주택 단지에 화재 발생.

벽면에 붙어 있는 스피커에서 또다시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출동을 다녀온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출동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에 센터 안에 있던 3팀은 모두 다급한 표정으로 뛰쳐나왔다.

“제기랄!”

“뛰어, 뛰어!”

단순한 민원 출동이 아니라, 화재 출동이라는 소리에 모두들 급한 마음이 들었다.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들 꽉 잡아라! 밟는다!”

“알겠습니다!”

불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달려가는 게 소방관의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소방차 안에서 이성하 역시 마음을 다잡았다.

‘집중하자.’

짜악!

이성하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두 손으로 얼굴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러자 같은 차를 타고 있던 권일섭과 오성수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새끼.”

“좋아. 그래야 내 후배지.”

그 행동이 방금 전 출동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뜻임을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펌프차 안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 들었다.

“센터장님, 저기…….”

운전대를 잡고 있던 오성수가 손가락으로 창밖 전면을 가리켰다.

“상황실, 여기는 길현대. 현장 보고 부탁드립니다.”

창밖으로 시커멓게 물든 하늘이 보이자 권일섭이 무전기를 잡았고, 무전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현장 상황은 암울했다.

- 선착대, 불길 진압 실패했다고 합니다. 주택 안의 사람들은 모두 대피시켰지만, 현재 화재가 북한산으로 연소 확대됐다고 합니다.

“뭐라고?!”

- 산불 화재입니다. 은평대, 길현대, 역촌대 모두 출동 중이고 서대문에도 지원 신청했습니다.

“이런 X발.”

방금까지만 해도 주택 화재로 알고 출동한 상황이, 단숨에 산불 화재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 자리에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 신입인 이성하뿐이었다.

“센터장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주택 화재가 갑자기 산불이라뇨…….”

분명히 이성하가 기억하기로 불광동 8구역의 위치는 북한산까지 수십 미터의 거리가 있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생각에 권일섭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꼬마, 지금이 무슨 계절이야?”

“보, 봄입니다.”

“그걸 아는 놈이 그런 멍청한 소리를 지껄여? 가장 건조한 때야. 불씨 하나만 나무에 옮겨 붙어도 바로 화재로 격상할 수 있어, 그거 몰라?”

이성하가 그 말에 침음을 흘렸다.

“아…….”

권일섭의 말에 소방학교에서 배운 항목이 뒤늦게 떠올랐다.

모든 계절 중 가장 화재가 발생하기 쉬운 계절이 봄이고, 그 이유는 계절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습도가 가장 낮은 계절…….’

일사량이 많고 봄비의 양도 그리 많지 않아, 풀이나 낙엽 등이 바짝 말라붙는 계절이 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움대로라면 지금의 화재는 말이 되었다.

휘이이익.

차 안에서도 느껴질 만큼 강한 바람이 부는 게 오늘의 날씨였고, 그런 날씨에 건조함이 만난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맙소사…….”

화르르르르!

이성하로서는 처음 보는 대형 화재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험악함이었다.

“허억.”

방화복을 입었음에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열기에 주춤할 정도였다.

그런 이성하를 먼저 내린 권일섭이 옆에서 받쳤다.

“이미 불길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해라. 이번엔 정신 차려.”

이성하에게 나지막한 경고를 뱉고는 앞으로 나아갔고, 매서운 눈빛으로 현장을 둘러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길현대는 오른쪽으로 빠진다. 서둘러!”

먼저 와 있는 선착대와는 대화조차 없이 이루어지는 구조 행위였다.

“알겠습니다!”

“관창 풀어!”

그에 이성하를 제외한 3팀 전원이 번개같이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산불 진화가 이루어졌다.

“주수해!”

“주수!”

쏴아아아아!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진압해야 할 위치를 찾아 산불의 연소를 저지하기 시작했다.

선착대로 왔던 녹번대 역시 왼쪽으로 이동했다.

“중앙을 버리고 왼쪽으로 이동하며 주수한다!”

그들 역시 아무 소통이 없음에도 길현대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는 모습이었고, 거기에 다른 센터들이 속속들이 가세했다.

“은평대 도착했습니다!”

“역촌대 도착했습니다!”

은평소방서의 모든 진압대가 모여 산불을 잡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거세게 번져 가던 산불이 주춤대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 간다. 확실하게 틀어막아!”

“알겠습니다!”

“주수해!”

쏴아아아아!

조금씩 밀리는 듯한 불길을 보며 이성하 역시 엉겁결에 주수하던, 관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라면 막을 수 있어. 이대로라면.’

그의 눈에도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 보이던 불길이 힘을 잃어 가는 게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 여기는 은평 구조대…… 문제가 생겼습니다.

통합 채널로 맞춰 뒀던 무전기에서 이성하도 들은 바 있던 구조대장의 음성이 들렸다.

- 뭐야? 무슨 일이야?

그런 구조대장의 무전에, 뒤늦게 도착해 현장을 지휘하던 현장대응단장이 응답했고, 그 뒤로 들려오는 말은 현장에 있는 모든 소방관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 등산객들을 데리고 빠져나오는 도중에 대원 한 명이 이탈했습니다.

- 뭐?

- 향로봉 중간 언덕 바위 쪽에 노인 한 분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고 합니다. 빠져나오는 도중에 등산객 한 분이 그걸 말했는데, 대원 한 명이 그 노인을 구하려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도대체 안 말리고 뭐 한 거야!

- 죄송합니다. 저도 빠져나와서야 알았습니다. 후미를 맡던 대원이었는데 제가 파악했을 땐 이미 뒤쪽이 불길에 잡힌 상황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구조대원 한 명이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빠져나오는 도중에 단독으로 재진입을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그 말에 누구보다 경악하는 사람이 있었다.

‘설마…….’

이성하였다.

‘형, 아니지? 아닐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구조대장의 목소리에 이성하는 본능적으로 장건호를 떠올렸고, 그 불길한 예상은 안타깝게도 맞아떨어졌다.

- 그 새끼가 누군데?

- 구조 2팀 막내 장건호입니다…….

“이런 썅!”

끝까지 아니기를 바라던 이름이 들려오자, 이성하는 결국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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