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35화 (35/235)

<강철 소방대 35화>

35화. 생명 (3)

* * *

사고가 일어난 갈현동의 4차선 도로는 아수라장과 같았다.

“끄으으윽.”

“이 환자 먼저 병원으로 이송해!”

“알겠습니다!”

사고 차량에서 먼저 구조된 요구조자들이 구급차로 실려 가고 있었으며.

카가가가가각!

“허억. 허억.”

“금방 꺼내 드릴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조금만!”

아직 차량에서 빼내지 못한 다른 요구조자들을 꺼내기 위해 소방관들이 유압 장비를 든 채 악을 지르며 구조 활동을 벌이는 상황.

그런 상황에 길현대가 도착했다.

“빨리 움직여!”

“알겠습니다!”

먼저 차에서 뛰어내린 권일섭의 고함에 소방차에서 관창을 든 그들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멀리서 불길이 치솟고 있는 한 대의 차량이었다.

“연결했습니다.”

“좋아! 가자!”

화재진압대로서 출동 중 전달받았던 차량의 불길을 진압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이 차량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 있었다.

화르르르르!

차량 전체가 이미 불길에 휩싸여 맹렬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으며, 그 앞에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구조대가 있었다.

“요구조자는?”

“안에 있습니다…….”

“뭐?”

“윈치(차체에 쇠사슬을 연결해 당기는 기계)를 걸어 내부를 넓히려는 순간 폭발했어요. 못 구했습니다…….”

“젠장!”

혹시나 했지만 요구조자들이 사고 차량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져 버렸다.

그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으로 불타고 있는 차량을 바라봤다.

‘그럼 저게…….’

방금까지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사람처럼 보이는 실루엣이 있었다.

[그래, 사람이야. 총 셋이네. ……아이도 있고.]

렉스의 말처럼 운전석과 조수석, 그리고 뒷좌석까지 총 세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고, 그걸 확인한 순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제기랄…….”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요구조자의 사망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한 허탈감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입 밖으로 터트리진 못했다.

“그럼 요구조자가…….”

“꼬마, 입 다물어!”

센터장 권일섭이 이성하의 말을 잘랐다.

“일단 구조부터 한다. 망자 추정은 그다음이야.”

센터장은 손에 들고 있는 관창을 들어 보이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고, 그에 이성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팀원들을 따라 관창을 들고는 자리를 잡았으며.

“주수해!”

“주수!”

권일섭의 명령에 따라 불길이 타오르는 차량을 향해 주수했다.

쏴아아아아!

아무리 요구조자가 사망한 것처럼 보여도, 불길 밖으로 구조해 상태를 확인하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망 추정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좋아! 불길 잡히면 바로 요구조자 상태부터 확인한다!”

“알겠습니다!”

외상, 화재 등으로 인한 심정지의 경우, 명백한 사망 징후가 없다면 CPR을 하며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소방관의 구조 매뉴얼이었으니까.

그리고…….

쏴아아아아!

불길이 잦아들며 드러난 세 사람의 모습은 이미 새카맣게 타 있었다.

“젠장…….”

“하…….”

진압을 하던 김필주와 오성수가 그 모습에 탄식을 내뱉었고, 권일섭은 고개를 저으며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는 길현대. 갈현동 추돌 사고, 화재는 진압했지만 요구조자 모두 사망했습니다. 사망자는 총 세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상.”

안타깝지만 요구조자들의 사망이 확실시된 모습에 본부로 사망자 보고를 올린 것이다.

이성하 역시 그 모습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제기랄.’

[어쩔 수 없어. 차량 전소가 너무 빨랐던 거잖아. 운이 없었던 거지.]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요구조자들이 살아 있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아니야…… 죽지 않았어…… 어서 병원으로 옮겨야 해…….”

화재 진압 장면을 지켜보던 구조대원 한 명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사망한 요구조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저놈 뭐야! 못 다가가게 말려!”

“인마! 뭐 해! 정신 안 차려?!”

“선배, 아직 안 죽었어요……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 병원으로!”

동료들에게 붙들려 요구조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되자 절규하는 모습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거, 건호 형?”

눈앞에서 고함을 지르는 구조대원은 소방학교 동기인 장건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렉스가 의아한 음성을 내뱉었다.

[장건호? 저게 장건호라고?]

장건호의 모습이 한 달 전 이성하의 병문안을 왔을 때와 너무 달라서였다.

특전사 출신의 특채생이었던 만큼 그때의 장건호는 다부진 몸에 적당히 살집 있는 얼굴로 밝게 웃는 모습이었다면.

“놔요! 아직 안 죽었어요! 안 죽었다고!”

지금의 장건호는 바짝 마른 얼굴에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소방관은 장건호가 맞았다.

“CPR이요! 빨리 CPR해야 한다니까요!”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모습으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가 다급히 다가가 장건호를 끌어안았다.

“형, 진정해요! 이미 사망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동기인 장건호가 흥분한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순 없었다.

다행히 그런 이성하를 장건호가 알아본 모양이었다.

“성하야…….”

불도저처럼 사망한 요구조자들에게 다가가던 발걸음을 드디어 멈췄다.

하지만 그건 잠시에 불과했다.

“안 돼…… 얼른 CPR해야 해.”

장건호가 금세 자신을 끌어안은 이성하를 뿌리치고는 다시 요구조자들에게 다가갔다.

“형, 정신 차려요! 도대체 왜 이래요!”

그런 장건호를 말리기 위해 이성하가 그 팔을 잡았지만, 장건호를 말리는 건 불가능했다.

“비켜!”

콰당탕!

“거, 건호 형…….”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더 이상 이성하는 보이지 않는다는 듯 거칠게 밀치고는 사망한 요구조자에게 CPR을 행한 것이다.

하지만 그 소란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신 안 차려!”

퍼억!

지켜보던 구조대장이 나서 장건호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고는 그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크윽.”

콰당탕!

그 충격에 장건호 역시 땅바닥에 거칠게 나뒹굴었고,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구조대장이 권일섭과 이성하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가 가서 따끔하게 혼내겠습니다. 그리고 자네, 미안하지만 이해 좀 해 줘.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휘하 구조대원의 잘못은 그 상사인 구조대장이 책임지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구조대장의 말에 권일섭과 이성하는 아무 말을 못 했다.

“흐윽. 제가 살려 준다고 했어요.”

장건호가 울음을 터트려서였다.

“진정해, 인마. 네 잘못이 아니라고!”

“제 잘못이에요…… 제가 살려 준다고 했다고요. 지난번처럼요. 으허허헝.”

장건호는 자신을 붙잡은 동료들에게 안긴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염없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듯, 전신에 힘이 빠진 채였다.

* * *

사고 현장은 빠르게 정리됐다.

“견인은?”

“불렀습니다. 곧 현장 정리 끝날 겁니다.”

모든 요구조자들이 구조돼 현장 정리가 진행됐고, 그에 길현대는 센터로 복귀해 다음 출동을 준비했다.

“성수야, 급수해 놔라. 성하는 차량 정리하고.”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언제 다시 떨어질지 모르는 출동 명령에 대비해, 소모된 펌프차의 급수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 뒤로 출동은 없었다.

덕분에 아무 일없이 다가온 퇴근 시간에 다음 팀인 1팀과 인수인계를 가졌다.

“오늘 출동은 갈현동 교통사고가 전부입니다. 차량 정비는 끝냈고, 구급 출동이 총 네 건 있었습니다.”

“그래? 따로 정비할 건 없는 거지?”

“네. 모두 끝내 놨습니다. 바로 출동하셔도 됩니다.”

“오케이. 수고했어.”

“1팀도 수고하십쇼.”

“그래.”

주간 출동 보고와 업무 일지를 모두 전달한 후 하루를 마감했고, 그렇게 인수인계를 마친 이성하는 퇴근을 하는 게 아니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왜? 답답하냐?]

‘네, 형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어요.’

출동 때 오열하던 장건호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그런 이성하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온 사람이 있었다.

“퇴근 안 하고 뭐 하냐?”

센터장 권일섭이었다.

“한 대 피울래?”

“안 피우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새끼.”

알고 있었다는 듯 센터장은 자연스럽게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고,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놈. 꼬마, 네 동기지?”

“맞습니다.”

“그럼 그놈이 오늘 왜 그런지는 알고 있냐?”

“…….”

대답을 듣고자 한 물음은 아니었다.

부상에 부상을 거듭하다 오랜만에 출근한 이성하로서는 상황을 알 리가 없었으니까.

“후…….”

잠깐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권일섭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놈, 한 달 전 현장에서 요구조자를 잃었어.”

“요구조자요……?”

“그래, 기억나냐? 내가 너 병문안 갔을 때 지원 요청받고 나갔던 거.”

이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첫날 말씀하시는 거죠?”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이었다.

“출동입니까?”

“어. 지원 요청이야. 가 봐야겠다. 몸조리 잘하고 나중에 보자.”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하게 병실 문을 나서던 권일섭을 기억하고 있었다.

권일섭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진관동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했어. 4층 다세대 주택이었고, 다행히 모든 요구조자를 구조하는 데는 성공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망자가 있었다.”

“사망자요……?”

“그래. 62세 할아버지. 네 동기 놈이 등에 업고 나왔는데 이미 늦은 상태였어. 심정지 상태에 구급대원이 바로 받아 CPR했지만 그대로 사망했거든.”

센터장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이었다.

“왜 멈춰요……?”

“건호야, 그만해. 늦었어.”

“늦다뇨…… 방금까지 살아 있었어요…….”

“장건호!”

“안 늦었어요! 방금까지 저랑 대화했어요. 제가 살려 드린다고…… 방금까지 살아 있었단 말이에요!”

자신이 구해 온 요구조자가 사망했다는 말을 인정하지 못하고 난동을 피우던 장건호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똑같았다.

“아까 물어봤는데 한 달간 그 일 때문에 병가 냈다고 하더라.”

“병가요? 혹시…….”

“그래. PTSD라더라. 다행히 좀 괜찮아져서 며칠 전 복귀한 건데, 하필 오늘 또 눈앞에서 요구조자를 잃은 거래.”

말을 하던 권일섭이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후으으으읍, 후우우우우.”

씁쓸한 표정으로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깊게 내뱉었고, 이성하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차량 전소된 거. 그놈 눈앞에서 폭발한 거야.”

“…….”

“유압 장비로 차체를 절단하는 와중에 터진 거지.”

생각만 해도 엿 같은 상황에 권일섭 역시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이성하는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왜 장건호가 그렇게 볼품없는 모습으로 현장에 있었는지.

왜 이미 사망한 요구조자들을 살려 달라며 오열했는지 이제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권일섭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너도 나중에 겪게 될 거다. 소방관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

“…….”

센터장은 할 말은 다했다며 이성하의 어깨를 툭 치고는 옥상을 내려갔고, 그렇게 남은 이성하는 마음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피할 수 없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미묘한 감정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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