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34화 (34/235)

<강철 소방대 34화>

34화. 생명 (2)

* * *

이성하의 이번 부상은 꽤 심각한 상태였다.

“이거 너무 불편한데요?”

[당연히 불편하지. 괜히 통깁스했겠냐?]

“하…… 그래도 너무 가려운데.”

그전 부상이 미세 골절로 반깁스를 한 정도였다면, 이번엔 오른쪽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상완골이 완전히 골절돼 통깁스로 단단히 고정을 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였다.

일반적으로 골절상을 입게 되면 부러진 뼈를 고정하기 위해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지만, 이성하의 경우엔 수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괜찮네요. 다행히도 크게 위치가 어긋나지 않은, 비전위성 골절이라 수술은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수술을 안 해도 된다고요?”

“네. 이런 경우는 수술보다는 자연스럽게 아물게 두는 게 최선이거든요.”

운이 좋았는지 깔끔하게 부러졌다며, 담당 교수가 자연스럽게 아무는 방향으로 치료를 결정했다.

물론 그렇다고 입원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네? 3주나요?”

“최소한 그 정도는 지켜봐야 합니다. 대부분 유합이 잘되고 기능 회복도 잘되지만 뼈가 어긋나게 붙지 않는지 살펴봐야 되거든요. 물론 상태가 안 좋으면 기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고요.”

의사가 뼈가 붙는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3주의 입원 진단을 내린 상태였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따분했다.

“이쪽 팔로 운동하면 안 되겠죠?”

[너 소방학교에서 수업 받을 때 졸았냐? 왼쪽 팔 근육 움직이면 오른쪽은 가만히 있냐?]

“같이 움직이죠.”

[잘 알면서 뻔한 소리를 하고 있어. 그냥 누워서 TV나 봐, 인마.]

“쩝…….”

골절된 부위가 잘 유합되도록 몸의 움직임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할 수 있는 게 병실에 누워 TV를 보는 일밖에 없었다.

하지만 따분함은 잠시에 불과했다.

이번에 이성하가 버스에서 사람들을 구했던 일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정도로 큰 재난 사고였다.

<양화대교 버스 추락 사고. 다행히 사망자는 없어>

<비번이던 소방관. 아무 장비 없이 추락하는 버스로 뛰어들어 사람들을 구하다>

<추락하는 버스에서 사람들을 구한 새내기 소방관>

사망자가 없어 대서특필되진 않았지만, 버스가 한강 밑으로 추락할 정도로 큰 사건이다 보니 짤막하게나마 뉴스와 신문에 언급이 된 상태였다.

“이성하 소방관님 맞으십니까?”

“네…… 그런데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정현일보의 심형민 기자입니다. 이번 버스 추락 사고에서 사람들을 구하셨다고 해서 취재 나왔습니다.”

“…….”

그 때문에 병실로 기자가 찾아와 취재를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이성하는 때 아닌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이성하, 이 미친 새끼야!”

“하하하…….”

사고가 일어난 날 만났던 도성민이 새빨개진 얼굴로 병실에 찾아왔다.

“이성하, 어디 있어!”

“야, 이 새끼야. 너 아직도 버릇 못 고쳤어?”

“…….”

그간 얼굴을 못 봤던 강동훈과 박민우 역시 나타나 고함을 질렀으며, 그보다 난감했던 건 뒤늦게 사실을 알고 병문안 온 엄마의 조용한 눈물이었다.

“성하야!”

“어, 엄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얼마 안 다쳤다며.”

“……죄송합니다.”

[거봐. 내가 너 걸릴 줄 알았다.]

“끄응…….”

언론에 사건이 보도되며 이성하가 어떤 행동으로 사람들을 구하게 됐는지가 떠들썩하게 알려졌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마음 놓고 쉴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 너 내가 이야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거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들어가?!”

동기와 엄마들을 비롯해, 센터 식구들까지 달려와 이성하에게 야단을 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꽤 친해진 사람이 있었다.

“오늘도 또 혼나셨나 봐요?”

매일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이성하를 찾아오는 김민정이었다.

“네, 동기들인데, 문병 와서 혼만 내고 가네요.”

그런 김민정에게 이성하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김민정은 그 말에 가볍게 웃으며 근처에 앉았다.

“그럼 혼나야죠, 안 혼나요?”

“에이, 선생님까지 이러실 거예요?”

“당연하죠. 추락하는 버스에 그렇게 뛰어 들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갑자기 생각하니까 또 화나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주사 하나 있어요.”

“주, 주사요……?”

“네. 아프지 않게 놓을게요. 얼른 팔 주세요.”

“…….”

사고 이후 주치의와 환자로서 매일같이 얼굴을 보다 보니, 어느덧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분을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퇴원 날짜가 다가왔다.

“X-ray상으로는 깨끗하게 잘 붙었네요.”

“어? 그럼 예정대로 퇴원해도 되는 겁니까?”

“네. 퇴원하고 나서도 어깨 보호대는 착용해야겠지만 예후가 엄청 좋네요. 재활 경과만 좋다면 바로 벗어도 될 거 같아요.”

회복력 덕분인지, 새로 찍은 X-ray 사진을 확인한 담당 교수가 이성하의 퇴원을 흔쾌히 허락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선생님.”

당연히 그 말에 이성하는 함박웃음을 지었고, 그렇게 퇴원을 하자마자 바로 센터로 향했다.

[야, 병가 한 달이나 냈는데 다 채워서 가는 게 낫지 않냐?]

‘에이, 병원에서 내내 쉬었는데 더 쉬어서 뭐 해요? 출근해서 일이나 하는 게 낫죠.’

병원에 매일 누워 TV만 보다 보니 바쁘게 움직이던 센터의 생활이 너무도 그리운 심정이었다.

하지만 출근한 센터의 분위기는 이성하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복귀 신고하겠습니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들려오는 건 환대가 아닌 핀잔이었다.

“이야, 우리 막내 얼굴 혈색이 좋네.”

“그러게요. 막내야, 너 잠 좀 푹 잤나 보다?”

오랜만에 보는 김필주와 허석훈이 다크서클이 짙은 눈빛으로 이성하를 노려봤다.

“드디어 우리 막내가 왔구나. 영광아, 우리는 숙직실 가서 눈 좀 붙이고 올래?”

“그러시죠. 저 너무 졸려서 죽을 거 같아요.”

구급대의 장호철과 김영광은 피곤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본체만체하며 숙직실로 향했고, 사수인 오성수는 이성하에게 살기 어린 눈빛을 던졌다.

“웃어?”

“……네?”

“너 때문에 다들 며칠을 야근했는지 알아? 빨리 자리에 앉지 못해!”

“네, 넵!”

가뜩이나 인원도 부족한 마당에 이성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매일같이 돌아가며 야근을 했던 것이다.

센터장만이 유일하게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막내가 일은 잘하는데 눈치가 없네. 후후.”

이성하의 병가로 인해 업무가 과중된 건 이 자리에 있는 3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으니까.

이성하로서는 억울하지만 감내해야 할 일이었다.

“죄송합…….”

“일이나 해!”

“넵…….”

딱 봐도 피곤해 보이는 동료들의 몰골에 더 이상 아무 말을 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당연히 그날 점심은 이성하의 몫이었다.

“오늘 점심 시켜서 드시죠. 성하가 쏜답니다.”

“막내가?”

“네. 그동안 죄송했다고 자기가 점심 쏜다고 하네요. 그렇지, 성하야?”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오성수가 상의도 없이 이야기를 하고는 이성하의 어깨를 툭 쳤다.

‘쏜다고 이야기 해, 네가 쏘는 거야!’

“네! 제가 사겠습니다!”

마치 안 쏘면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은 살벌한 눈빛에 이성하가 서둘러 대답했고, 그로 인해 그날 길현 센터 3팀의 점심 식사는 꽤 호화로웠다.

“이야, 요즘은 고기도 이렇게 구워서 배달해 주나?”

“네. 저번에 먹어 봤는데 맛있더라고요. 이게 삼겹살이고 이게 소고기예요. 밥도 두 공기씩 시켰으니까 다들 많이 드세요.”

작정을 했는지, 선배인 오성수가 삼겹살부터 소고기까지 점심 식사치고는 꽤 과분한 메뉴들로 주문을 했던 것이다.

물론 금액 역시 과분했다.

“18만 4천 원입니다.”

“어, 얼마요?”

“18만 4천 원이요.”

“…….”

센터장에 3팀의 인원을 다해 7명밖에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2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 나와 버렸다.

그 때문에 카드를 꺼내드는 이성하의 손은 부들부들 떨릴 수밖에 없었다.

[월급의 10분의 1이 한 번에 날아갔네.]

‘끄응…….’

렉스의 말처럼 수당을 다 합쳐야 겨우 150이 넘는 소방공무원의 월급에서 한순간에 10분의 1이 넘게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이내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야, 여기 맛있네.”

“그러게요. 고기 제대로 구웠는데요?”

환하게 웃으며 식사를 하는 동료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휴게실에서 모여 몇 가지 반찬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소방관들에게는 최고의 점심 식사였고, 그 때문에 이성하 역시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찌개도 맛있어요. 이거 드셔 보세요, 선배님.”

“오, 그래? 한번 먹어 볼까?”

“성하야, 너도 얼른 먹어라. 여기 맛있다.”

“네, 선배님.”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동안 자신 때문에 고생한 동료들을 위해, 기분 좋게 식사를 대접한 셈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사실 곧 월급날이 다가와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 달은 월급 얼마 들어오려나?”

“그래도 꽤 들어오지 않을까요? 이번 달도 출동 많았잖아요.”

“그러겠지? 이번에 딸이 고등학생 돼서 컴퓨터 하나 사 주려고 하는데 되려나 모르겠네.”

“뭐? 연희가 벌써 고등학교에 들어가? 이거 선물 하나 사 줘야겠는데?”

“그럼 저야 좋죠, 선배님. 하하하.”

얼마 뒤면 월급이 들어오는 말일이라, 식사를 하던 팀원들은 모두 월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에게 렉스가 비웃음을 던졌다.

[월급? 넌 이번 달 월급 안 들어올걸?]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 이번에 입원한 거 비번일 때 다친 거잖아. 비번일 때 사람 구한 건 인정 안 돼. 그냥 병가 처리지.]

‘뭐, 뭐라고요?’

곧 들어올 월급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던 이성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고, 그런 렉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몰랐냐? 비번일 때 일어난 사고는 공상 처리 안 돼. 그냥 무급 병가지.”

“무, 무급…….”

옆에 앉아 있는 오성수에게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물어봤더니 렉스와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이성하로서는 자연히 얼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말도 안 돼…… 사람을 구하다 다친 건데, 왜 안 돼?!’

공장 화재 때도 공상으로 입원했던 기억 덕분에 이번에도 당연히 공상으로 처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행 공무원법상 근무 중이 아닌 경우엔 소방관이 사람을 구하다 다쳤더라도 공상을 승인하지 않았다.

<공무상 상해의 경우, 업무를 수행 중에 일어난 경우에만 인정한다.>

오로지 출동으로 일어난 부상만 공상으로 인정하는 게 현재의 공상 제도였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다급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너 뭐 하냐…….]

‘뭐 하긴요. 저 당분간 외식 못 해요.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고기인데 많이 먹어야죠.’

한 달 월급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상황이었기에, 눈앞의 고기라도 마음껏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이에에에에엥!

- 교통사고 발생. 갈현동 명신 아파트 앞 4차선 도로에서 7중 추돌 사고 발생. 다시 말한다. 갈현동 명신 아파트 앞 4차선 도로에서 7중 추돌 사고 발생.

순간 벽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긴급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출동이야!”

“젠장, 꼭 밥 먹을 때 이래?”

“뭐 해! 서둘러! 빨리 빨리!”

그 소리에 식사를 즐기던 선배들이 휴게실을 박차고 달려 나갔고, 이성하 역시 울상을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이런 썅!’

이제 막 먹으려던 참인데, 긴급 출동 명령이 울리자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소방차를 올라타자마자 들려오는 CP의 무전에 이성하의 눈빛이 변했다.

- 길현대. 도착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3분 정도 걸릴 거 같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 서둘러야 됩니다. 방금 차량 한 대가 폭발했습니다.

“뭐라고요? 폭발?”

- CCTV상으로 사고 차량 중 한 대에 불이 붙어서 전소 중입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

구조대가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차량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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