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33화>
33화. 생명 (1)
“으으음.”
병실에 누워 있던 이성하가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왼쪽 어깨를 동여맨 붕대가 불편했는지 오른손으로 어깨를 짚어 보는 모습이었고, 그렇게 잠시 뒤척이다 힘겨운 얼굴로 눈을 떴다.
“여, 여기는……?”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새하얀 천장에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젠 익숙하지 않냐?]
‘네?’
[병원이야, 인마. 너 다시 입원했어.]
‘아…….’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온 렉스의 말처럼, 무사히 탈출에 성공해 병원으로 이송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불현듯 든 생각에 렉스에게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버스 기사는 어떻게 됐어요?’
[버스 기사?]
‘네. 그분도 같이 빠져나온 거 맞죠? 무사한 거죠?’
마지막에 자신이 구해 냈던 버스 기사 역시 안전하게 구조됐는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버스 기사의 상태는 괜찮았다.
[무사해.]
‘정말이에요?’
[어, 갈비뼈가 부러지긴 했는데 큰 문제는 없대. 그 외에는 찰과상이 대부분이라 안정만 취하면 된다고 하고.]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었음에도 갈비뼈가 부러진 것 외에는 큰 부상이 없었다.
안전벨트를 착용한 덕분인지 부상 대부분이 단순한 찰과상에 그친 상황이었고, 오히려 부상의 정도가 심한 건 이성하였다.
[그런데 버스 기사보다 네 몸부터 챙기는 게 맞지 않냐?]
‘네?’
[네 몸 말이야, 몸.]
렉스의 말에 이성하가 그제야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
몸 곳곳에 붕대가 감겨 있는 건 물론, 왼쪽 어깨는 아예 밴드로 고정까지 된 모습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자신의 상태에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순간 몸을 엄습하는 통증에 다시 누울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 끄으윽.’
[그냥 누워 있어. 전신 타박상에 왼쪽 어깨는 골절까지 된 상황이라 당분간 못 움직일 거야.]
‘골절이요?’
[기억 안 나냐? 빠져나오면서 버스 좌석이랑 손잡이에 이리저리 부딪혔잖아.]
버스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입은 부상이 심해 제대로 거동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이성하는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
‘헤헤. 그래도 살았네요.’
그 상황이 떠올랐다.
“제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도박의 심정으로 몸을 던졌던 그 순간이.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고함을 질렀다.
[웃음이 나오냐? 죽다 살아난 주제에!]
까딱하면 그대로 버스와 함께 한강에 처박힐 뻔했음에도 웃음을 보이는 모습에 렉스는 머리가 아파 왔다.
원래는 이성하가 깨어나면 칭찬을 해 줄 마음이었다.
[지금!]
타악!
자신이 내렸던 지시에 맞춰 이성하가 허공에 몸을 날렸던 그때.
퍼억. 퍼억.
“끄으으윽.”
말하지 않았음에도 추락하는 버스 구조물에서, 버스 기사를 몸으로 감싸느라 지금과 같은 부상을 입게 된 거였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끌어올려진 이성하의 모습에는 울컥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손이 풀리지가 않아요!”
“뭐라고요?”
“이 소방관. 얼마나 꽉 쥐고 있는지 버스 기사를 잡은 손을 놓질 않아요. 여기 좀 도와주세요.”
[새끼…….]
기절해 의식을 잃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스 기사를 잡은 손을 놓지 않는 모습에, 이성하가 가지고 있는 소방관으로서의 사명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에이. 그래도 살았잖아요. 그것도 무사히.’
[뭐? 무사히? 이놈이 진짜!]
사람을 구한 건 잘했지만, 그만큼 자신의 몸도 아껴야 했다.
동기였던 도성민에게 혼난 게 언제라고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또 이런단 말인가.
웃으며 말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마침 그 화를 대신 질러 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비릿하게 웃었다.
[그럴까? 너 아마 곧 있으면 영혼까지 털릴걸?]
‘영혼이요?’
[어, 아주 무서운 사람이 있거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 말에 이성하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철컥.
병실 문이 열리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누군가 하며 쳐다봤고, 그렇게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세, 센터장님?”
생각지도 못했던 권일섭의 등장에 이성하는 할 말을 잊었다.
그런 이성하의 반응에 렉스는 드디어 만족한 음성을 내뱉었다.
[넌 뒈졌다.]
처음 권일섭 센터장이 병실에 들어왔을 때의 모습을 기억해서였다.
철컥!
“이성하!”
소식을 듣자마자 정신없이 달려왔는지 다급한 모습으로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그였고, 그렇게 보게 된 이성하의 모습에 권일섭은 고함을 질렀다.
“이 씹어 먹을 새끼. 다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렇게 사고를 쳐!”
공장 화재에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 온 게 얼마나 지났다고, 또다시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모습에 분노를 토해 냈던 그였으니까.
하지만 권일섭은 그런 렉스의 기대를 저버렸다.
“일어났냐?”
처음 병실에 방문했을 때와 다르게 담담한 표정으로 이성하의 상태를 물었다.
“네…… 방금 일어났습니다, 센터장님.”
“됐어. 일어나지 마. 몸도 성치 않은 놈이.”
당황해 일어나려 하는 이성하에게 손사래를 치며 만류했고, 잠시 이성하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잘했다.”
“네……?”
“잘했다고, 인마. 사람들 구한 거.”
[뭐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렉스가 그 모습에 당황해 고함을 지를 정도로, 불같은 성격의 권일섭을 생각했을 때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권일섭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이성하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올 때만 해도 반 죽여 놓을 생각이었지만, 그 마음이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7021호 이성하 환자. 주치의 선생님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아, 김 선생님이요. 여기 반대편에 7045호실에 계세요.”
“7045호요? 감사합니다.”
이성하의 정확한 상태를 듣기 위해 주치의를 만나러 다른 병실로 이동했는데, 그 병실 복도에서 자신을 반기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소, 소방관님?”
“맞네. 소방관 재킷이잖아요. 그분 동료분이신가 봐요.”
“소방관님, 그 소방관님 어떻게 됐나요? 괜찮은 거 맞아요?”
온몸에 붕대를 감거나 링거를 달고 있는 환자들이 권일섭을 붙잡고 이성하의 상태를 물었고, 그런 환자들을 통해 권일섭은 오늘 사고 현장에서 이성하가 벌인 행동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혼자 그 위험한 버스에서 저희들을 모두 구해 주셨어요.”
“그분이 아니었으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그분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꼭 구해 준다고 하셨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요. 괜찮나요, 소방관님은?”
각자가 상기된 얼굴로 이성하의 안전을 묻는 모습에.
“정말 그놈이 그랬습니까? 거참.”
너털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나게 된 주치의의 모습에는 아예 할 말을 잊었다.
“기, 김 선생님도 같이 버스에 계셨습니까?”
연성대가 길현 센터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이었던 만큼, 권일섭 또한 김민정과 잘 알고 있었다.
“네, 그렇게 됐네요. 이성하 씨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요.”
그녀 역시 온몸에 붕대를 감은 모습으로 이성하를 언급했다.
그 후 이렇게 이성하의 병실로 들어선 것이다.
“그보다 밖에 사람들이 기다린다. 네 얼굴 봐야만 돌아가겠다고 다들 기다리고 있어.”
“네?”
“네가 구한 사람들 말이야.”
권일섭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 이성하에게 피식 웃고는 다시 병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다들 들어오세요. 괜찮은 거 같네요.”
밖에 누가 있는지 센터장이 말을 건네며 문을 열었다. 그렇게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자신과 마찬가지로 환자복을 걸친 사람들이 병실 앞에 서 있었다.
“소방관님, 저 마지막에 구해 주셨던 버스 기사입니다.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 그 소방관 아저씨 맞아.”
“흐윽. 소방관님, 살려 줘서 너무 고마워요. 소방관님 없었으면 저랑 제 딸은 죽었을 거예요.”
“진짜 감사합니다, 소방관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 은혜 정말 잊지 않을게요. 흐윽.”
추락하는 버스에서 자신이 구한 사람들이 감사를 표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
자신이 구했던 사람들과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상황은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지켜보던 권일섭이 입을 열었다.
“뭐 해? 얼른 감사하다고 말씀드리지 않고.”
이성하 역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라는 말이었다.
일반인이라면 의미를 모를 말이었지만, 이성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저, 저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아 주셔서.”
소방관으로서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요구조자가 살아 있다는 것만큼이나 더 큰 기쁨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행이야. 모두 크게 다친 사람 없이 안전해.’
마지막에 구했던 버스 기사는 물론이고, 버스 안의 승객들이 모두 멀쩡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모습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기쁨은 둘째치고 점차 이 상황이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소방관님.”
“맞아요. 소방관님 아니었으면 저는 오늘 아내 얼굴도 못 봤을 거예요. 너무 감사해요.”
“저도요.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흐윽.”
“아…….”
계속해서 감사를 표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왠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그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 이제 그만들 돌아가세요. 소방관님도 휴식 취하셔야 돼요. 가장 많이 다치셨잖아요.”
지켜보던 김민정이 환자들을 밖으로 이끌었다.
“네? 하지만 아직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드렸는데.”
“안 돼요. 나중에 오세요. 소방관님도 쉬셔야 돼요.”
김민정은 고마움을 표하려는 환자들에게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병실 밖으로 이끌었고, 그렇게 나가면서 이성하에게 고개를 숙였다.
‘쉬세요.’
자신을 구해 준 이성하에게 이렇게라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성하는 순간 김민정이 천사로 보였다.
‘휴. 다행이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민망한 상황을 벗어나게 도와줬으니까.
권일섭으로서는 자연히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왜? 부끄럽냐?”
“조금요……?”
“어이구. 이런 것도 부끄러워하면서 사람들 협박했냐?”
“협박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너 사람들 협박했다며? 버스에서 나가면 다른 사람들 죽을 거라고.”
“드, 들으셨어요?”
“오냐. 요구조자를 협박하는 소방관이 어디 있냐, 이 멍청한 놈아.”
현장에서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에게 협박까지 했다는 놈이, 사람들이 감사를 표하는 모습에 부끄러워하는 게 우스워 보였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로 하고는 이성하를 향해 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무슨 말인지 알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서 사람들을 협박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공무원으로서, 그것도 사람을 구하는 걸 직업으로 삼는 소방공무원으로서 구설수에 오르기 쉬운 일이 요구조자를 협박하는 것이었다. 이성하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
현장에서 요구조자를 응대하는 문제로 주의 처분을 받는 일이 종종 있는 게 소방관의 일이었다.
다행히 그 말을 끝으로 권일섭은 더 이상의 질책은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시간이 없었다.
띠리리리!
“여보세요?”
마침 권일섭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그 전화를 받자마자 권일섭은 다급한 표정을 짓고는 바로 병실 문을 나섰다.
“출동입니까?”
“어, 지원 요청이야. 가 봐야겠다. 몸조리 잘하고 나중에 보자.”
근무 중에 달려왔던 권일섭이었기에, 센터의 호출에 출동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한 게 있었다.
“지원? 큰 사고라도 터진 건가?”
권일섭은 분명히 지원이라고 말했다.
관할 지역 출동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출동을 나가는 지원 요청 상황.
하지만 이성하로서는 더 이상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코오오오…….”
부상 때문에 찾아온 수면욕으로 인해 금세 잠이 들어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