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31화>
31화. 할 수밖에 없잖아 (2)
이성하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파각! 파각! 파각!
반쯤 깨져 있는 버스 창문을 팔꿈치로 깨부숴 위쪽으로 빠져나왔고, 그렇게 밖으로 빠져나와서는 정신없이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그그그극.
[곧 추락하겠다!]
“제기랄!”
언제 난간 아래로 추락할지 모르는 버스의 광경에 조바심이 차올랐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신고를 하는 건 잊지 않았다.
“길현 센터 소방사시보 이성하입니다. 방금 양화대교에서 버스끼리 측면 충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후,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 현재 버스 한 대가 난간에 걸쳐져 추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빨리 인근 구조대와 진압대, 구급대 모두 급파 요청드립니다. 혹시 모르니 구조 보트도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방관들의 빠른 도착이 최선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터였다.
하지만 이성하가 도착해서 확인한 버스 안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우리 애기…… 우리 애기…….”
“허억. 허억. 너무 아파요.”
“살려 줘…… 나 좀 살려 줘요…….”
충돌 과정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지, 버스의 모든 승객들이 피 칠갑을 한 채 신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퍽! 퍽!
그런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밖에서 후면 유리창을 발로 차고 있었지만, 유리창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뭐야! 이거 왜 안 부서져!”
다른 부위보다 더 튼튼하게 제작돼 발로 걷어차는 정도로는 겨우 금이 가는 정도였고, 그 와중 이성하는 다급히 주변 차의 좌석에서 헤드레스트를 분리해 빼냈다.
“비키세요!”
파캉! 와장창창!
소방학교에서 배웠던 방법을 이용해 단번에 유리창의 끝부분을 쳐 깨 버렸다.
쉽게 유리창이 깨지는 광경에 사람들이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나, 나와요!”
“얼른 나오세요!”
그그그극. 그그그극.
다들 버스 밑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부상자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가,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흐윽.”
몇 명이 몸을 일으켜 버스 밖으로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 숫자는 다섯을 넘지 못할 정도였다.
“으으…… 으윽…….”
“허억. 살려 줘요…… 살려 줘…….”
대부분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
하지만 그럼에도 버스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그그그극.
“마, 맙소사.”
“안 돼! 물러나!”
금방이라도 난간 아래로 추락할 것 같은 버스의 상황에, 오히려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기 바빴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그대로 있었다.
‘젠장…….’
이성하였다.
“살려 줘요…….”
“허억. 허억. 우리 애만이라도 살려 줘요.”
피범벅이 된 채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을 바라봤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자신의 다리를 감싸고 있는 반깁스를 풀어 헤쳤다.
[마음먹었구나.]
‘할 수밖에 없잖아요.’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두고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물러났던 사람들이 고함을 지른 건 당연했다.
“하, 학생! 뭐 하는 거야!”
“위험해! 얼른 뒤로 와요!”
“미쳤어요?! 잘못하다간 같이 떨어진다고요!”
의지는 좋았지만, 이성하 혼자 버스 안으로 들어가 봤자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 바뀌었다.
“은평소방서 소방관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늦어요! 시간이 얼마 없어요!”
이성하가 자신의 신분을 밝혀서였다.
“소, 소방관?”
“맙소사. 소방관이었어?”
다들 깜짝 놀란 얼굴로 이성하를 바라봤고, 그 얼굴엔 이내 기대감이 어렸다.
‘소방관이면 할 수 있어.’
‘다행이야. 저 사람들은 살았어.’
‘소방관이었어. 저놈 소방관이었어!’
소방관이라면 어떻게든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만 이성하에게 필요한 건 그런 기대 따위가 아닌, 버스의 균형을 잡는 일이었다.
그그그그극!
[섣불리 움직이지 마! 최대한 조심히 이동해!]
렉스의 고함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버스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스으윽. 스으윽.
버스의 균형을 무너트리지 않게 최대한 발을 끌다시피 하며 천천히 이동했고, 그렇게 뒤쪽에 있는 사람들부터 한 명씩 끌어냈다.
“맙소사. 구하고 있어!”
“나오고 있어. 사람들이 나와!”
사람들의 신뢰 어린 탄성만큼이나, 부상으로 신음하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구조되고 있었다.
하지만 순간 이성하가 고함을 질렀다.
“잠깐만!”
막 세 번째로 옮겨졌던 요구조자가 버스를 빠져나간 직후였다.
그그그그긍!
버스의 심한 요동에 반사적으로 나온 고함이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네 번째로 나가려는 요구조자에게 다급히 고함을 질렀다.
“나가지 마세요!”
“네?”
“나가면 버스 추락해요! 움직이지 마요!”
이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더 빠져나가면 무게 때문에 버스가 추락할 위험이 생겼다.
물론 버스를 빠져나가려던 사람들에게는 미친 소리에 불과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난 나갈 거야!”
“나, 나도 나갈 거예요!”
누가 금방이라도 추락할 위험이 있는 버스에 남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가 도끼눈을 치켜떴다.
“당신들 나가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어요!”
“뭐, 뭐?”
“당신들 나가면 다 죽는다고요. 저 사람들 안 보여요?”
그들과 마찬가지로 부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조금만 기다려 줘요. 금방이면 돼요! 조금만요!”
자신이 기필코 사람들을 구하겠다며 붉어진 눈으로 고함을 지르는 모습에, 사람들은 두려워 하면서도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흐윽. 빨리 해요, 빨리.”
이성하의 말처럼 내버려 두면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이 느껴진 까닭도 있었다.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자신들을 구해 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겁도 없이 버스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이성하였으니까.
하지만 이성하 역시 무서운 건 마찬가지였다.
[조심해. 한 번만 헛디뎌도 바로 끝이야.]
충돌의 충격으로 창문이 모두 깨져 발을 조금만 헛디뎌도 한강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었다.
‘후우. 알아요.’
그럼에도 이성하는 위태롭게 버스 난간들을 잡은 채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사, 살려 줘요…….”
“일어날 수 있어요?”
“끄으윽. 너무 아파요.”
“할 수 있어요. 천천히. 천천히 내 손 잡고 일어나요.”
살려 달라며 구조의 손길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이 이성하를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저 사람이 그때 그 소방관이라고……?’
이성하의 주치의였던 김민정이었다.
그녀 역시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성하를 기억하는 건 마찬가지였고, 공교롭게도 그 기억은 꽤 좋지 못했다.
“저 사람, 소방관 시보인데 현장에서 단독 행동하다 다쳤나 봐요.”
“단독?”
“네, 들어 보니까 파트너 없이 혼자 진입했대요. 그것 때문에 나중에 징계도 받는 모양이고요.”
“정말요? 완전 최악이네.”
“최악이요?”
“응, 한마디로 공명심에 날뛰다 부상을 입었다는 거잖아. 의욕만 넘쳐서 말이야.”
시보인데도 단독 행동을 하다가 부상을 입었다는 말에 공명심에 날뛰는 멍청한 소방관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성하의 모습은 자신이 들었던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일어나서 이거 잡아요.”
“끄으으윽.”
“정신 차려요! 얼른 나가야 돼요.”
언제 버스가 추락할지 모르는데도 혼자 버스 안으로 뛰어들어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밑에 보지 마요!”
“흐윽. 무서워요.”
“다 왔어요, 다 왔어.”
그 또한 부상을 입었는지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악착같이 사람들을 부축해 버스 뒤로 옮기고 있었고, 그런 손길은 김민정에게도 닿았다.
“저 잡으세요.”
“허억. 허억.”
“좋아요. 잘했어요.”
앞쪽에 위치해 자칫하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주저 없이 다가와서 자신을 부축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김민정은 이성하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이게 무슨 공명심에 날뛰는 소방관이야…….’
알지도 못하면서 경솔하게 이성하를 판단했다는 것에 미안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때였다.
콰콱!
순간 버스의 아래에서 불길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그그그그극.
“뭐, 뭐야!”
“으아아아악!”
동시에 버스가 격하게 요동치며 미끄러졌고, 그 요동이 멈춘 뒤의 광경은 최악이었다.
“마, 맙소사.”
“빨리 나와요! 빨리!”
밖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를 정도로 버스의 균형이 대각선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어, 어떻게 해요?!”
“아아아악. 사람 살려!”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처럼 보이는 버스의 상태에 다들 겁에 질리고 말았다.
이성하 역시 다급한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드레일이 완전히 무너졌어. 얼마 못 버틴다.]
렉스의 말대로 지금까지 버스를 지탱하던 가드레일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었다.
‘젠장.’
깨진 창문으로 튀어나온 가드레일이 걸려 간신히 추락만 모면한 상황.
하지만 아직 한 사람을 구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끄으으으…….”
머리를 크게 부딪혔는지 아직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한 버스 기사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부 나가세요!”
“뭐, 뭐라고요?”
“전부 나가라고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탈출시킬 것을.
당연히 사람들은 그런 이성하의 말에 부리나케 버스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 살았다.”
“으허허허헝. 살았어.”
안 그래도 이대로는 죽는다는 생각에 다들 탈출을 결심했던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김민정은 나가지 않았다.
“다, 당신은요?”
이성하가 움직이지 않아서였다.
“미, 미쳤어?! 설마 구하러 가시려는 거예요? 안 돼요. 무리예요! 빨리 나가야 돼요!”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고함을 지르고는 버스 기사가 있는 운전석을 바라보는 이성하의 모습에 김민정은 불길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성하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먼저 나가 계세요. 구해 올 테니까.”
버스 기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물론 대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들어가려면 로프 필요해. 알지?]
렉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을 향해 소리 질렀다.
“혹시 등산용 로프 같은 거 가지고 계신 분 있습니까?”
“로프요?”
“네. 끊어지지 않을 만한 단단한 걸로요!”
소위 말하는 번지를 할 계획이었다.
그거라면 버스가 추락하더라도 어떻게든 목숨은 건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다행히도 한 남성이 그런 이성하의 외침에 화답했다.
“혹시 공사 현장에서 쓰던 안전용 밧줄도 됩니까?”
“네. 그거면 됩니다! 한쪽을 단단한 주변 구조물에 묶고 다른 한쪽은 저한테 던져 주세요!”
운 좋게도 차에 밧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이성하는 그렇게 전해 받은 밧줄을 자신의 허리에 단단하게 묶었다.
“먼저 나가 계세요.”
“그, 그래도!”
“나가세요!”
이성하는 끝까지 불안해하는 김민정을 억지로 부축해 밖으로 내보냈다. 그 이후엔 지체 없이 버스의 운전석 쪽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가죠.’
[그래.]
마지막으로 남은 요구조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구조를 시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