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30화>
30화. 할 수밖에 없잖아 (1)
화창한 햇빛이 내리쬐는 아침.
비번이라 집에서 늦잠을 자도 무방한 하루였지만, 이성하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엄마, 다녀올게요.”
“벌써? 이렇게 빨리 나가?”
“네, 미리 가서 기다리려고요. 다녀올게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환하게 웃으며 집을 나서는 이성하를 보며 렉스가 피식 웃었다.
[동기 만나는 게 그렇게 좋냐?]
‘그럼요. 엄청 오랜만에 보는 건데요.’
[오랜만은 무슨. 끽해 봐야 이제 두 달인데.]
오늘 이성하가 집을 나선 이유는 소방학교 동기 중 한 명인 도성민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발령 뒤에도 동기들과 자주 보자고 약속했지만, 매일같이 바쁜 소방관의 일정상 그 약속을 지키는 건 불가능했다.
말이 12시간이지, 출동이나 기타 업무까지 포함하면 꼬박 하루를 소모하는 게 소방관의 업무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와중에 동기 중 한 명과 비번 날짜가 맞아 만나기로 약속했고, 그게 구로소방서의 신도림 센터에서 근무하는 도성민이었다.
- 이성하, 너 내일 비번이지? 내일 얼굴 좀 보자.
“내일이요?”
- 어. 나 오늘 야근이라 내일 비번이야. 11시에 영등포에서 만나자. 아침 겸 점심이나 먹을까 해서.
갑작스러웠지만 마침 비번 날짜가 겹친 도성민이 점심을 같이 먹자며 전화를 걸어 왔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형은 어떻게 변했으려나?’
발령받은 지 이제야 세 달째밖에 되지 않았지만, 도성민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나게 된 도성민은 이성하를 보자마자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형!”
“너 일로 와.”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든 이성하와 달리 싸늘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렸고, 그렇게 다가온 이성하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쾅!
“아! 왜 때려요?”
“왜 때려? 너 이거 뭐야?”
“네?”
“다리 뭐냐고, 인마!”
도성민이 가리키는 건 아직 반깁스를 하고 있는 이성하의 다리였다.
“아, 이거.”
그에 이성하가 당황해 상황을 얘기하려 했지만, 이미 도성민은 모두 알고 있었다.
“너 미쳤어? 감히 겁도 없이 무너지는 공장에 단독 진입을 해?”
“어? 어떻게 알았어요?
“야, 이 새끼야. 그걸 어떻게 몰라? 시보 한 명이 공명심에 눈 뒤집혀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아주 떠들썩한데.”
센터장이 징계를 받을 정도로 큰 사안이다 보니, 이미 다른 서의 소방관들에게도 소문이 퍼진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정할 건 정정해야 했다.
“형, 그게 좀 오해가 있는데…….”
“뭐? 오해?”
“어. 공명심이 아니라, 2층에 요구조자가 있어서 들어간 거야. 물론 허락 받고.”
자신이 단독 진입을 한 건 맞았지만, 공명심에 뛰어들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도성민으로서는 듣느니만 못한 소리였다.
“하…….”
진심으로 열이 받았는지 두 눈을 질끈 감더니, 이내 단숨에 이성하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
“잠깐만 형, 나 환자인데!”
그 행동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도성민의 팔은 자비가 없었다.
“죽어, 그냥. 내가 지금 죽여 줄게.”
“아! 아파! 형! 진짜 아파!”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이유를 갖다 붙이는 모습에 도성민의 분통이 터져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괴롭힐 순 없었다.
“하…….”
그 말을 듣고 나니, 이성하의 반깁스가 더 눈에 밟기히 시작한 탓이었다.
“콜록. 콜록.”
그에 풀려나온 이성하가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도성민에게 따지려 했지만, 이어지는 도성민의 말에 아무 말도 못 했다.
“내가 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
“동생이란 놈이 그렇게 위험한 행동을 해 놓고도 우리한테 아무 이야기를 안 했어. 내가 네 이야기를 네가 아니라 센터 선배들한테 들어야 되냐?”
“……죄송해요.”
“내가 지금 네 사과 받자고 이야기하는 줄 알아? 분명히 저번 가스 폭발 사고 이후에 약속했잖아.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이게 뭐야?”
도성민이 이성하의 다리를 가리키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이렇게 함부로 몸을 놀리냐고!”
자신들과 약속을 어긴 건 물론, 부상을 입었음에도 아무 말이 없던 이성하의 행동에 서운함이 폭발했던 것이다.
형의 마음을 알기에, 이성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형.”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요구조자는 한 명이 아니다.
위험에 처한 시민을 구하러 들어가는 소방관 역시 요구조자였으며, 그렇게 들어간 자신 또한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수많은 눈물이 흐르게 되고, 그 눈물에는 가족의 눈물도 포함된다.
소방학교에서 훈련하며 수없이 외우고 외웠던 마음가짐 중 하나였고, 이성하 개인으로서도 뼈저리게 가슴에 새긴 사항이었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미안해. 지켜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흐으으윽.”
“제기랄. 이 새끼들아! 니들이 그렇게 가면 안 되잖아. 으허허허헝.”
수천 명의 소방관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오열하던 모습을 기억했다.
“으허허헝. 이성하, 이 X새끼야!”
“기다려야지! 네가 뭐라고! 기다렸어야지!”
자신이 빠져나온 것에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고함을 지르던 동기들과 교관의 모습을 기억했고.
“마, 막내야!”
“구급대! 들것 가져와! 빨리!”
지난번 출동에서는 자신의 탈출에 다급한 표정으로 구급대를 찾던 동료들의 모습도, 기억에 각인돼 있었다.
‘내가 잘못했네요.’
[잘못했지. 소방관이기에, 무엇보다 아무리 네가 나로 인해 다르다고 해도 조심하긴 해야 해.]
소방관 역시 가족과 지인들에게 슬픔을 안겨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항상 알고 있었다.
자신 또한 그 슬픔을 겪은 사람이기에.
그 때문에 이성하는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잔소리가 자신을 걱정해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였고, 도성민 역시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 너 진짜 한 번만 더 이래 봐.”
“알겠어요, 형.”
“에이, 얄미운 새끼.”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이성하의 모습에, 이 정도로 마무리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덕분에 이어지는 식사 분위기는 나름 괜찮았다.
“다리는 어때?”
“아, 이거요? 괜찮아요.”
“정말이야?”
“네. 이거 혹시 몰라서 차고 있는 거예요. 나이롱 환자랄까? 헤헤.”
“새끼.”
실제로도 렉스의 회복력 덕분에 거의 다 회복된 상태였다.
몸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도성민의 웃음과 함께, 대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두 사람은 평소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형, 그런데 형네 센터도 문 따러 출동하고 개 잡으러 출동하고 그래요?”
“너도 그래?”
“와, 형도 그렇구나.”
“야, 우린 그런 것보다 주취자 신고가 더 많아.”
“주취자 신고요?”
“어, 유흥가가 많아서 그런지 하루도 빠짐없이 술 먹고 싸우는 애들이 많아. 그것 때문에 구급대 지원으로 많이 나가거든.”
서로의 센터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는지 음식보다는 이야기에 집중한 상황.
그런데 이어지는 대화에서는 이성하가 고함을 지르는 일이 발생했다.
“네? 소개요?”
“흠흠. 그렇게 됐어. 관내 파출소에서 일하는 여순경인데 센터 선배가 다리를 놔줘서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어.”
“와…… 맨날 카톡으로는 잠잘 시간도 없다고 했으면서 소개팅?”
“야,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하고 사냐? 이렇게 연애도 하고 살아야지.”
“나는요?”
“뭐?”
“나도 해 줘요, 소개팅!”
두 사람 모두 파릇파릇한 20대 남성이라, 여자에 관한 이야기로 웃음꽃이 피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두 사람의 대화는 식사가 끝나고 급하게 마무리됐다.
“야. 뭘 벌써 헤어지냐? 커피라도 마시고 가.”
“에이, 남자끼리 무슨 커피예요? 그리고 형 밤샜잖아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이성하가 야간 근무를 하고 바로 나온 도성민의 등을 떠밀어서였고, 그런 이성하의 완강한 태도에 도성민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다음에는 동훈이 형이랑 민우까지 해서 비번 날 제대로 보자.”
“그래요, 형. 다음에 제대로 봐요.”
안 그래도 피곤한 건 사실이었기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성하 역시 그렇게 도성민을 보내고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왜? 너도 피곤하냐?]
‘네, 조금요.’
이성하 역시 도성민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아침 일찍 나와 살짝 피곤한 상태였다.
더 이상 누굴 만날 사람도 없었기에 집에 가 쉴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탄 버스에서 도성민에게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형, 미안해요. 저 때문에 피곤한데 억지로 나오고. 앞으로 안 그럴게요. 고마워요.]
오늘 도성민이 갑자기 만나자고 했던 이유가 자신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보낸 메시지였다.
물론 답장은 간단했다.
[ㅗ]
“참나.”
단번에 욕으로 자신의 마음을 거절하는 욕 문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버스의 창밖으로, 옆 차선에서 달리는 버스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어? 저분 의사 선생님 아니에요?’
[의사?]
‘네, 저기 버스요.’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자신의 주치의를 맡았던 레지던트 선생이 보였고, 렉스 또한 그 선생을 봤는지 시끄러운 소리를 토해 냈다.
[어? 김민정 선생이다!]
‘뭐야? 그새 이름까지 외웠어요?’
[그럼, 어떻게 안 외우냐? 저 선생이 네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제일 예뻤는데.]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렉스가 병원에서 하루 종일 관심을 가지고 바라봤던 의사가 이성하의 주치의였다.
하지만 이성하는 외모보다 성격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상처 드레싱 할게요.”
“아야!”
“환자분, 가만히 계세요. 남자가 왜 이렇게 엄살을 부려요?”
“……!”
깨어나자마자 남자가 엄살을 부리냐며 야단을 쳐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의사였으니까.
그런데 그때, 의사가 탄 버스가 순간적으로 이상하게 흔들렸다.
끼이이이익!
갑자기 차선 변경을 한 SUV 차량에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이었다.
그 때문에 제동을 잃었는지 순식간에 이성하가 탄 버스를 옆에서 들이박았다.
쾅!
“으아아아악!”
“엄마!”
“꺄아아악!”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를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으며, 그 반동으로 버스가 쓰러져 버렸다.
콰앙! 그그그그극.
도로 한복판에 버스가 뒤집혀 버리는 대형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버스 안은 아비규환에 가까웠다.
“아악! 내 다리!”
“어, 엄마. 괜찮아?”
“흐으윽. 우리 딸, 괜찮아?”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끄으윽.”
그 충격에 일제히 바닥으로 내팽개쳐진 승객들이 고통의 울부짖음을 토해 냈다.
이성하 역시 부상을 입은 건 마찬가지였다.
[괜찮냐!]
‘끄윽. 괜찮아요.’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는지,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에 렉스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금 사고가 벌어진 장소는 한강 위를 가로지르는 양화대교였다.
끼이이이익.
들이박았던 옆 차선의 버스가 가드레일이 있는 곳까지 밀려 나갔다.
콰가가가가각!
그 충격에 버스 기사가 정신을 잃었는지 가드레일에 걸쳐진 채 그대로 질주했고, 이내 그걸 견디지 못한 가드레일의 한 부분이 통째로 무너졌다.
그리고……
파캉!
“마, 맙소사…….”
버스의 반이 허공에 걸쳐져, 금방이라도 한강으로 떨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 이성하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