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9화>
29화. 책임 (3)
이성하로서는 계속되는 황당함의 연속이었다.
‘아, 아버지?’
난데없이 아버지의 인연이 여기서 이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 때문에 렉스에게 다급한 어조로 따졌다.
‘뭐예요? 일부러 비밀로 한 거예요?’
[뭐?]
‘아버지 상사였다고 하잖아요. 그럼 렉스도 알았을 거 아니에요?!’
아버지의 상사라는 말에 렉스가 일부러 비밀로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렉스 또한 고함을 질렀다.
[미친놈아! 내가 이성훈과 함께한 건 사고 전 마지막 3년이라니까. 네 아버지가 구조대 처음 근무할 때 팀장이었다잖아!]
‘처음이요?’
[그래, 인마. 제대로 안 들을래?]
렉스가 아버지와 함께할 때가 아닌, 아버지의 초임 근무 시절 상사였다.
“내 정신 좀 봐. 음식부터 내올게요. 항상 드시던 대로 맵게 하면 되죠?”
“하하하. 제수씨, 천천히 주셔도 돼요.”
심지어 어머니에게 제수씨라고 호칭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관계.
덕분에 이성하는 엉겁결의 센터장의 앞에 앉아 있었다.
“뭐 해? 잔 안 가지고 오고.”
“네, 네!”
센터장의 말에 이성하는 급히 잔을 가지고 와 잔을 내밀었다. 술을 받고 난 뒤에는 이성하 역시 센터장의 잔에 술을 따랐다.
“몸은 어때? 다리에 금 갔다며?”
“괜찮습니다. 처음보다는 나아졌습니다.”
“나아지기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몸 관리 잘해.”
“네?”
“몸 관리 잘하라고. 젊을 때 관리 안 하면 나중에 팍 가는 거 몰라?”
“아, 알겠습니다.”
“그래.”
물론 난데없이 센터장이 아버지의 지인이었다는 말에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급기야 어머니에게 따지듯 물었다.
“엄마, 왜 말 안 해 주셨어요?”
“응?”
“제가 센터장님 성함 말씀드렸잖아요!”
첫 출근을 마치고 난 후, 엄마는 센터 동료들의 이름을 물었었다.
“아들, 센터 사람들 이름이 어떻게 되니?”
“이름이요?”
“응. 내가 아는 사람이 있나 해서.”
“잠깐만요. 비상 연락처 받은 게 있어요. 그거 보여 드릴게요.”
분명 센터 동료들의 이름을 묻는 엄마에게, 동료들의 이름이 적힌 비상 연락처를 건넸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엄마가 아닌 센터장의 입에서 나왔다.
“내가 제수씨한테 부탁했다.”
“네?”
“내가 부탁했다고. 그러니까 제수씨한테 뭐라고 하지 마라.”
비밀의 주체는 엄마가 아니라 센터장이었다.
“호호호. 그럼 전 음식 가져올게요.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엄마가 웃으며 조용히 자리를 피해 줬고, 센터장은 이제야 편하게 말하겠다는 듯 이성하를 향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너 내가 징계받은 걸 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네?”
“왜 쓸데없는 걸 가지고 자책하냐고.”
사실 앞서 했던 말과는 다르게, 센터장은 이성하가 자신 때문에 자책한다는 말을 듣고 가게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 말에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어요?”
“방금 센터 들렀다 왔다.”
“센터요?”
“어, 성수가 그러더라. 그래서 전화할까 했는데 네가 가게 간다고 했다더라고.”
“그래서 오신 겁니까?”
“그래. 제수씨 얼굴도 볼 겸, 겸사겸사해서. 그런데 그런 걸 네가 왜 신경 써?”
질책하는 듯한 센터장의 말에 이성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저 때문인데.”
“그러니까 그게 왜 너 때문인데?”
“제가 의견만 안 냈어도 징계를 받으실 이유가 없었잖아요. 그리고 제 징계까지 떠안느라 감봉까지 받으신 거라고…….”
애초부터 문제의 발단이 자신이었다.
센터장에게 2층에 올라가는 방법을 제시한 것은 물론, 그런 자신을 감싸느라 센터장이 중징계를 받은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센터장은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
“과대평가요?”
“그래. 누가 네 의견을 받아들였대? 너 기억 안 나냐, 내가 처음에 거절하려고 했던 거?”
이성하로서는 당연히 기억하는 상황이었다.
“네, 기억합니다. 성수 선배가 저보고 미쳤다고 고함까지 질렀으니까요.”
사수인 오성수가 고함을 질렀을 정도로, 센터장만이 아닌 동료 모두가 자신의 계획을 무리라고 반대했었다.
그에 센터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네. 그럼 왜 마음을 바꿨는지도 기억하냐?”
“네, 구조대장님 무전 때문에 결정하신 거잖아요.”
“그래. 네가 아니라 그 무전 때문에 결정한 거야. 2층에 요구조자가 있었으니까. 너를 보낸 것도 네가 의견을 내서가 아니라 내가 판단해서 보낸 거고.”
“……네?”
당황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센터장이 피식 웃었다.
“그럼 누굴 보내? 다 늙은 필주나 석훈이를 보내? 아니면 비리비리한 성수를?”
“…….”
“인마, 보낼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보낸 거야.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네가 가장 높다고 생각했으니까.”
애초부터 이성하 개인의 의견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2층 진입의 결정 원인 또한 요구조자 때문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오버하지 마. 내가 이 바닥 경력이 몇 년인데 네 말을 듣고 결정했다는 거야? 생각해 보니 건방지네?”
‘끄응…….’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엄포를 놓는 센터장의 말을 이성하는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그래도 죄송합니다.”
“또 뭐가?”
“저 때문에 감봉까지 받으신 거 아닙니까? 절 감싸다가요.”
센터장의 말이 맞다 해도 자신을 감싼 탓에, 그 징계가 과해진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센터장은 그런 이성하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뭐, 어때? 가족인데.”
“네?”
“가족인데 어떠냐고.”
센터장은 이성하를 향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게 그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마침 엄마가 음식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대장님, 음식 나왔어요.”
“아이쿠. 제수씨, 감사해요.”
“감사는 무슨, 그나저나 우리 성하 좀 그만 괴롭혀요.”
[엄마 앞에서 징계 이야기는 하지 마. 모르시는 거 같으니.]
‘네, 그러려고요.’
안 그래도 자신이 다친 것 때문에 걱정하는 엄마에게 더 이상의 염려를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더 이상 센터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제수씨, 저 이만 갈게요. 다음에 회식하러 또 올게요.”
“호호호. 오랜만에 뵈니까 너무 좋네요. 얼른 들어가세요. 성하야, 뭐 해? 인사드리지 않고.”
“센터장님, 들어가세요.”
“그래. 내일 센터에서 보자.”
센터장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도 그저 인사로 마무리한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의 머리는 복잡했다.
[왜? 신경 쓰이냐?]
‘네, 죄송해서요.’
죄송한 마음을 전하긴 했지만, 오히려 가족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오히려 위로만 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고마운 분이셔, 성하야.”
“네?”
옆에 있던 엄마가 그런 이성하를 보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센터장님 말이야. 네 아빠 돌아가시고 계속 우리 모자를 신경 써 주고 계시거든.”
“센터장님이요?”
“응, 안 그래도 센터장님이 전화하셔서 너랑 같이 근무하게 됐다고 하시기에, 그때 알려 주려고 했는데 말리셨어. 나중에 알려 주라고. 그런데 지금은 말해 줘도 될 거 같아서. 아들, 혹시 아빠 돌아가셨을 때 우리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 계시는 강원도로 가려고 했던 거 기억하니?”
이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마 많이 힘들어하셨잖아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직장 구하셔야 한다고.”
어릴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동안 주부로 사셨던 어머니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외가가 있는 강원도로 내려갈까 한창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 아빠 돌아가시고 엄마가 많이 막막했거든. 너랑 먹고살려면 어떻게든 일을 해야 하는데 엄마를 써 주는 데가 없어서. 그런데 그때 센터장님이 찾아오셨어.”
“센터장님이요?”
“응, 갑자기 찾아오셔서 통장 하나를 건네셨어. 부족하겠지만 동료들끼리 조금씩 모아 봤는데 이걸로 장사 한번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런데 열어 봤더니 금액이 너무 큰 거야.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더니 꼭 받아야 한대. 왜 그러냐고 했더니 네 아빠한테 약속했다는 거야. 한 명이라도 잘못되면 동료들끼리 남은 가족을 꼭 책임지자고 했다고. 우리는 가족이라고.”
“가족…….”
그때의 생각이 났는지 잠깐 피식 웃은 엄마가 이성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엄마는 그때 알았어. 네 아빠가 그리도 자랑스러워하던 소방관이란 직업이 이렇게 대단한 거구나 하고. 그리고 센터장님이랑 아버지 동료분들 모두 그 약속을 지키셨어. 혹시 문제라도 있나 가게에 와서 살펴 주시기도 하고, 회식도 자주 오셨거든. 네 아버지와 동료분들 전부 다. 그러니까 다음에 센터장님께 꼭 감사하다고 이야기드렸으면 좋겠어. 너와 엄마한테는 정말 감사한 분이야.”
엄마의 말에 이성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지금까지 계속…….’
이제야 자신의 유년 시절이 왜 행복했는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물질적으로 그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를.
가게 밖으로 나섰지만 이미 센터장은 보이지 않았다.
[늦었지, 인마. 벌써 택시 타고 갔지.]
이미 식사를 마치고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난 때였으니까.
그 때문에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제대로 속았네.’
은인을 앞에 두고도 그동안 알지 못했다는 머쓱함에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가족.’
센터장이 말한 가족이라는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때문에 이성하는 다음 날, 3팀의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뭐야? 너 왜 이렇게 일찍 왔어?”
“하하하. 그냥 일찍 눈이 뜨였어요.”
모든 팀원들 중 일등으로 출근해 동료들을 반겼으며, 센터장이 들어올 땐 일어나 큰소리로 외쳤다.
“센터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참이나 늦은 인사였지만, 그동안 감사했다고.
물론 이상한 말이었다.
“그동안? 이성하, 저거 뭔 소리야?”
“그러게요. 야, 너 뭔 소리야? 설마 아직까지 신경 쓰고 있냐?”
“막내야, 정말 괜찮다니까. 센터장님 징계 같은 거 별로 신경 안 쓰셔.”
작별 인사처럼 이야기하고는 다시 잘 부탁한다는 말에, 동료들이 아직도 징계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센터장만은 그 의미를 알았는지 웃음을 지었다.
“오냐. 앞으로 열심히 해라, 이성하.”
더 이상 꼬마가 아닌 이름으로 호칭하고는 센터장실로 들어가자, 이성하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넵!”
자신의 마음이 전달됐다는 사실에 기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조금은 더 소방관으로서 한 발 자국 다가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