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8화>
28화. 책임 (2)
* * *
그로부터 세 시간 후.
사고조사위원회에 출석했던 센터장은 퇴근을 하지 않고 길현 센터로 돌아왔다.
“어? 센터장님, 퇴근 안 하시고 여긴 왜 또 오셨어요?”
“왜 오긴? 짐 챙기러 왔지.”
“짐이요?”
“어, 그나저나 애들은 어디 갔어? 출동 나간 거야?”
센터장의 말에 홀로 사무실을 지키던 2팀 소방관 김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캐슬 아파트에 엘리베이터 고장 신고가 들어와서 출동했습니다. 제가 오늘 지원 인력이고요.”
현재 출동 명령이 떨어져 김병호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나저나 센터장님, 사고조사위원회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왜? 궁금하냐?”
“당연히 궁금하죠. 어떻게 되셨어요?”
휘하 소방관으로서는 당연한 물음이었다.
징계위원회보다 한 단계 낮은 성격의 사고조사위원회이긴 했지만, 잘못이 확실시 될 경우 징계를 내리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순간 센터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이이잉.
“잠깐만. 전화 좀 받고. 여보세요.”
누구인지 웃으며 전화를 받는 센터장이었다.
하지만 웃고 있는 센터장과는 달리, 핸드폰 너머의 음성은 스피커폰이 아님에도 김병호에게 다 들릴 정도로 잔뜩 성이 난 목소리였다.
- 아, 진짜. 조금만 참지. 그걸 그렇게 들이받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 그냥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했으면 됐잖아요! 감찰과장이 얼마나 열 받았는지 알아요? 도대체 왜 그럽니까? 사람이!
‘한바탕하셨구먼…….’
보아하니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성격을 죽이지 않아 서에 있는 후배가 전화를 걸어온 듯했다.
뭐,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센터장님이 참을 성격이 아니지.’
그가 아는 센터장은 절대 남에게 굽힐 정도로 유들유들한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들려오는 전화 내용은 그의 표정을 굳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데?”
- 감봉 1개월에 근신 1주입니다. 대신 센터장님 의견대로 시보는 처분이 없는 걸로 결정 났고요.
‘가, 감봉?’
인사고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징계가 감봉이었다.
그러나 센터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뭐, 적당하네. 나 이제 퇴근해야 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광식아.”
- 아, 선배 뭘 나중…….
뚝.
센터장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후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 버렸으니까.
“센터장님. 정말 괜찮으신 거 맞으십니까?”
그런 센터장을 향해 김병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센터장은 피식 웃으며 짐을 챙겼다.
“고작 감봉 1개월인데 뭐. 그나저나 다 들었으니까 설명 안 해도 되지? 나 일주일만 쉬고 온다. 그러려고 짐 챙기러 온 거야.”
걱정하지 말라는 듯 김병호의 어깨를 툭 치고는 센터를 나섰고.
“센터장님, 그래도…….”
끝까지 자신을 걱정하는 김병호의 말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됐다. 팀장들한테는 내가 전화하마. 고생해라.”
현장 지휘와 사고조사위원회로 시달린 덕분에 빨리 돌아가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한 센터장이었다.
* * *
이성하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다시 출근을 시작한 건, 화재 사건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안녕하십니까!”
“어, 막내 왔냐? 다리는 어때?”
“거의 다 나았습니다. 이 주 정도는 차고 있어야 한다는데 통증은 없어요.”
다리뼈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아 반깁스를 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회복력으로 금이 간 뼈가 거의 붙어 웃으며 출근한 상황.
하지만 그 웃음이 날아가 버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가, 감봉이요?”
“응, 사고조사위원회에서 너한테 책임을 물으려고 했나 봐. 그래서 센터장님이 그 책임을 왜 너에게 묻냐고 한바탕하신 거지. 우리 센터장님 성격이 부하를 건드리는 건 못 참으시거든. 그래서 감봉 받으셨어. 1개월 처분.”
사고조사위원회가 열렸던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센터장에 대한 징계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센터장을 만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센터장님 안에 계시죠?”
자신 때문에 애꿎은 센터장님이 징계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센터장을 만나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다음 주부터 출근하실 거야. 일주일 근신도 같이 받으셨어.”
“근신이요?”
“어, 아까 말했잖아. 한바탕하셨다고. 상사에 대한 항명 행위는 기본적으로 근신 처분을 받게 되거든.”
감봉만이 아니라 근신 처분까지 받아 현재 센터에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봤지만, 핸드폰 역시 꺼져 있었다.
“아서라. 며칠 쉬신다고 전화기 꺼 두신대. 여행이라도 가셨나 봐.”
“여행이요?”
“어, 팀장님한테 기왕 이렇게 된 거 친구랑 낚시하러 가신다고 하셨댄다.”
머리를 식히려고 하셨는지 핸드폰까지 꺼 둔 채로 여행을 떠난 듯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네 잘못 없어. 상황이 어쩔 수 없던 거잖아.”
그런 이성하를 향해 오성수가 괜찮다며 웃어 보였지만, 이성하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감봉이면 중징계죠?’
[중징계지.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거든. 그것도 소방경 같은 간부급은 특히 더 그렇고 말이야.]
‘많이 심해요?’
[어, 너희 센터장 소방사 출신이잖아. 사실상 앞으로 승진은 없다고 봐야지. 진급 심사에서 징계 기록은 치명적이니까.]
렉스의 말처럼 이번 징계는 센터장의 앞길에 큰 장애물이 될 터였다.
덕분에 이성하는 하루 종일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 나 때문이네…….’
이 모든 결과가 자신의 설레발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 심경은 퇴근할 때까지 마찬가지였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퇴근 후 집이 아닌 신촌의 대학가로 걸음을 옮겼다.
음식점이 모여 있는 골목이 그 행선지였으며, 그중 이성하가 들어간 곳은 작지만 아담한 분위기의 한 순댓국집이었다.
“어? 아들. 웬일이야?”
“왜긴요? 엄마 보고 싶어서 왔지.”
“왜 이래, 징그럽게.”
“아들한테 징그럽다고 하기 있어요?”
우울한 마음에 엄마와 같이 퇴근하고 싶어,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온 것이다.
배를 채우려는 마음도 있었다.
“밥은?”
“먹긴 했는데 한 그릇 주세요. 배고파요, 엄마.”
엄마가 해 주는 순댓국만큼이나 이성하가 좋아하는 음식은 없었다.
하지만 밥을 먹기엔 힘들 듯 보였다.
“이모, 여기 소주 한 병만요.”
“아줌마, 모둠 순대 하나 추가요.”
늦은 밤이다 보니 술을 마시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이 꽤 많이 있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 역시 앞치마를 둘렀다.
“에이, 다리도 아픈 놈이 무슨. 앉아 있어, 아들. 내가 할게.”
“아니에요, 엄마. 이거 그냥 한 거예요. 제가 할 테니까 주방 보세요. 손님, 소주 뭘로 가져다 드릴까요?”
“처음이요!”
“네,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이성하는 바쁜 엄마를 돕기 위해 홀 서빙을 시작했다.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학교를 다녔던 평일은 몰라도, 주말에는 가게에 나와 엄마의 일을 돕곤 했으니까.
그리고 혼자 일할 엄마를 위해 가게에 온 것도 있었다.
“몇 분이세요?”
“다섯 명이요. 자리 없나요?”
“아니요, 잠깐만 계세요. 금방 치워 드릴게요.”
엄마의 일을 돕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방금까지의 꿀꿀한 기분을 잊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딸랑딸랑.
“어서 오세요, 손님. 몇 분…….”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성하가 서빙을 하다 말고 반갑게 뒤돌아 인사를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손님의 정체에 인사를 마저 하지 못했다.
“뭐야, 꼬마. 일 끝나고 왔냐?”
“세, 센터장님?”
[뭐야? 이 인간이 여길 어떻게 왔어?]
하루 종일 그토록 애타게 찾던 센터장이 가게에 나타난 것이다.
물론 센터장은 이성하를 보기 위해 가게로 온 것은 아니었다.
“세, 센터장님이 여기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 순댓국 먹으러 왔지. 자리 안 줄 거야?”
“아, 아뇨. 자리 드려야죠. 그런데 혼자 오신 거예요?”
“어, 낚시 갔다가 오랜만에 순댓국이 당겨서. 얼큰 순댓국으로 하나 주라. 순대 빼고 고기만 해서 처음 한 병이랑 같이.”
메뉴판도 보지 않은 채 능숙하게 주문을 하며 빈자리에 앉았고, 그에 이성하는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궁금한 건 많았지만, 우선 손님으로 온 이상 식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왕 손님으로 왔기에 잘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엄마, 얼큰 순댓국으로 순대 빼고 고기만 주문 들어왔는데, 고기 좀 많이 넣어 주세요.”
“많이? 왜? 지인이니?”
“네. 제가 근무하는 센터장님이 손님으로 오셨거든요. 참, 포스 안 찍을게요, 엄마.”
자신 때문에 징계를 받게 된 센터장님에게 우선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도 센터장이라는 말에 얼굴에 화색을 띠며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센터장님? 아이쿠, 가서 인사 좀 드려야겠다.”
“에이, 안 그러셔도 돼요. 음식 만들고 하세요.”
“안 그러긴 뭘 안 그래? 우리 아들이 근무하는 곳 센터장님이 오셨는데.”
아들을 책임지고 있는 센터장이 손님으로 왔다는 말에 일단 인사부터 드리겠다며 주방을 나선 상황.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대장님! 너무 오랜만 아니에요?”
“하하하. 죄송해요. 요새 일이 너무 바빠서요. 장사 잘되시죠?”
엄마와 센터장이 보자마자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그럼요. 잘되고말고요. 그런데 낚시 다녀오신 거예요?”
“네. 예전부터 제 취미였잖아요. 안 그래도 많이 잡아서 몇 마리 드릴 겸해서 온 거예요.”
“호호호. 그래요? 감사해서 어떡해요.”
“감사는 무슨. 어차피 제 아들놈은 생선을 별로 안 좋아해서 먹을 사람이 없어요.”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서로 편하게 말을 나누는 모습에, 이성하는 또 한 번 패닉에 빠졌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죠?’
[그러게…… 두 사람 서로 아는 모양인데?]
센터장과 어머니가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것도 서로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꽤 가까운 사이.
하지만 놀라기엔 일렀다.
“어, 어머니가 센터장님을 어떻게 아세요?”
“어머, 대장님. 아직 이야기 안 하셨어요?”
엄마의 말에 센터장이 웃으며 말했다.
“네, 아직 이야기 안 했어요. 오늘 이야기하려고요.”
이성하를 보며 피식 웃으며 하는 센터장의 말에 엄마 또한 웃음을 지었다.
“아, 그럼 말해도 되겠네요. 아들, 대장님은 예전에 아빠가 처음 구조대로 근무할 때 팀장님이었던 분이셔.”
“아버지요?”
“응, 기억 안 나니? 어릴 때 너 과자도 많이 사 주시고 그러셨는데.”
“…….”
센터장이 이성하는 생각지도 못했던 아버지의 옛 상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