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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소방대-27화 (27/235)

<강철 소방대 27화>

27화. 책임 (1)

공장을 빠져나온 즉시 이성하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빨리 병원으로 옮겨. 다리 쪽 부상이 심한 거 같으니까. 최대한 충격 가지 않게 주의하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외상이 심각해 요구조자들과 같이 병원으로 이송됐고, 그렇게 이송된 이성하가 정신을 차린 건 하루가 지난 후였다.

[일어났냐?]

‘병원인가요?’

[그럼 병원이지. 어디겠냐?]

눈을 뜨자마자 들리는 렉스의 목소리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안도감에 웃음을 지었다.

‘꿈이 아니었어.’

탈출하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진 덕분에 이제야 실감이 났던 것이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했다는 사실이.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이상한 게 있었다.

‘그런데 화 안 내십니까?’

[뭐?]

‘화 안 내시냐고요. 저 끝나고 제대로 혼날 줄 알고 있었거든요.’

말 그대로였다.

“저걸 잡고 넘어가겠습니다. 저걸 통해서라면 갈 수 있어요.”

렉스의 허락도 없이 2층에 올라가겠다고 자원을 한 것은 물론.

“이 방법뿐이에요. 안 그러면 우리 죽어요.”

이번에도 렉스가 가장 싫어하는 무모한 구조 방법을 강행했으니까.

하지만 렉스는 화가 아니라 궁금증 때문에 이성하가 깨기를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너 어떻게 알았어?]

‘뭘요?’

[건물 무너지는 거 말이야. 그거 어떻게 알았냐고.]

그때는 상황이 긴박해 물어보지 못했지만, 이성하가 렉스 자신도 알지 못했던 공장의 붕괴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성하의 대답은 렉스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무너지는 건 몰랐어요.’

[뭐?]

‘몰랐다고요, 공장이 무너지는 건.’

[그럼 왜 돌아갔는데?]

‘싫어서요.’

[싫었다고?]

‘네. 뭔가 불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조금이라도 그곳에서 멀어져야 한다고 할까? 안 그러면 죽는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메웠어요.’

[고작 그 이유로 밑에 있는 진압대에게까지 나가라고 경고했다고……?]

단순히 불안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고함까지 지르며 되돌아갔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 느낌은 진짜였다.

콰콰쾅!

“끄으으윽.”

무너지는 잔해에 부상을 입긴 했지만, 그 매몰되는 현장에서 요구조자와 이성하는 살아남았다.

“그나저나 저 녀석 아니었으면 우리도 큰일 났겠네요.”

“그러게. 막내 무전이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죽었을지도 몰라.”

밖으로 빠져나와서 만나게 된 길현 센터의 동료들 역시 그런 이성하의 무전으로 탈출에 성공했다고 말했고, 그 덕분인지 붕괴 사고라면 필히 발생하는 사망자가 이번 출동에서는 없었다.

‘저 근데 렉스, 이거 깁스는 뭐예요? 혹시 부러진 거예요?’

천연덕스럽게 반깁스를 한 자신의 다리를 살펴보는 이성하.

이런 이성하가 가장 심한 부상자였을 정도로 경미한 인명 피해로 끝난 출동이었다.

그러다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럼 너 그때도 그랬던 거야?]

‘언제요?’

[소방학교 때 가스 폭발 사건. 폭발 직전에 잠에서 깬 거 말이야.]

“헉.”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술을 먹었기에 곯아떨어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폭발 전에 가슴을 부여잡으며 잠에서 깼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그때도 갑자기 심장을 옥죄는 기분 때문에 깨어났거든요. 뭔가 불길한 느낌 때문에요.’

그 말에 렉스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말도 안 돼. 그럼 본능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캐치한단 말이야?]

이성하의 말대로라면 불길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스갯소리로 넘길 말은 아니었다.

분명히 이성하가 그런 느낌을 받았을 때마다 폭발이나 붕괴와 같은 위험한 상황이 펼쳐졌으니까.

그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흔히 말하는 식스센스인가?]

소위 말하는 초감각이라는 능력을 이성하가 가지고 있는 걸까.

남들이 들었다면 말도 안 된다 할지 모르겠지만, 렉스로서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그래. 나 같은 존재도 있는데, 초감각을 지닌 인간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

렉스의 스스로의 존재 또한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현대 문물이 판치는 시대에 자신 같은 귀신(?)이 웬 말이란 말인가?

그러다 보니 이성하가 괘씸했다.

[미리 말했어야지, 인마!]

‘네?’

[내가 미리 알고 있었으면 도움이라도 줬을 거 아냐!]

가스 폭발이라면 몰라도 붕괴 사고 같은 경우는 미리 알았다면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성하로서는 억울한 말이었다.

‘나도 이제 알았는데 뭘 어떻게 말해?’

자신 또한 이제 알았는데 뭘 미리 말한단 말인가?

물론 그 속마음을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잘못했습니다.’

[그래. 다음부터 이상한 거 있으면 미리 말해. 알았어?]

‘알겠어요.’

말해 봤자 잔소리만 더 늘어날 거라는 생각에 비위를 맞춰 주곤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현장은 어떻게 됐어요?’

[현장?]

‘네. 진압은 다 됐어요? 사망자는요?’

탈출에 성공한 것까지는 생각났지만, 그 이후로는 기절을 하고 쓰러졌던 통에 현장이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은 따로 있었다.

“여, 막내.”

“어? 선배님!”

“이 새끼 쌩쌩한 거 보니까 생각보다 괜찮나 보네.”

사수인 오성수가 과일 바구니를 들어 보이며 병실로 들어왔다.

“우리 막내 어디 있냐?”

“막내야, 괜찮아?”

김필주 팀장과 허석훈 부장 역시 그 옆에서 웃음을 짓고 있었으며, 그 뒤로 구급대의 장호철과 김영광도 있었다.

“상태 보니까 괜찮네. 안 아프냐?”

“막내야. 나 진짜 너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인마.”

길현 센터의 3팀 동료들이 이성하를 병문안하러 온 것이다.

그런데 이성하가 생각하지 못했던 예상외의 인물들이 그 뒤로 들어왔다.

“어? 건호 형, 현주 누나?”

소방학교 동기였던 장건호와 김현주였다.

“그래, 인마. 괜찮냐?”

“성하야, 다행이야. 너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대.”

두 사람 모두 사복 차림으로 서 있었지만 현장을 다녀왔는지 꾀죄죄한 얼굴로 이성하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이성하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맞다! 두 사람 모두 발령지가 저랑 같은 은평구였죠?”

“뭐야, 까먹고 있었냐?”

“하하하. 까먹었다기보단 생각을 못 했죠.”

장건호와 김현주 모두 발령지가 이성하와 같은 은평구였다.

장건호는 은평소방서의 구조대로 발령받았으며, 김현주는 역촌 센터의 구급대로 발령받았다.

“우리도 어제 가구 공장 화재 현장에 있었어. 어제 봤는데 아는 체를 못 하겠더라고.”

“나도. 막내라 눈치 보여서 나중에 인사하려고 했지. 이렇게 병원에서 인사할 줄은 몰랐지만.”

이성하는 미처 몰랐지만, 두 사람 모두 이성하와 같은 현장에 출동해 있었던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놀라우면서도 반가운 순간이었다.

“에이, 그래도 아는 체하시지 그랬어요?”

소방학교에서 갖은 고생을 함께했던 동기들이 현장에 함께 출동했다는 사실이 사뭇 신기했으니까.

그런 세 사람의 모습에 오성수가 피식 웃었다.

“자, 동기들 대화는 여기까지 하고. 여기 선물.”

“이건 뭐예요?”

“뭐긴 뭐야, 과일 바구니지. 내가 산 건 아니고 팀장님이 사신 거야.”

그 말에 김필주가 웃으며 손을 들었다.

“공짜 아니다. 퇴원하고 담배 한 보루로 갚아라.”

“담배요?”

“어. 그거 이번 달 담배 살 돈으로 산 거야.”

공짜는 없다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김필주에게 이성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꼭 사 드릴게요.”

“이 새끼가 농담에 그런 식으로 답하면 어떡해?”

“에이, 사 드려야죠. 우리 팀장님인데요.”

장난이 오고 가는 대화였지만, 자신을 생각하는 팀장의 마음이 느껴져 이성하는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다른 팀원들 역시 고맙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다들 저 때문에 피곤하셔서 어떡해요? 퇴근하고 바로 오신 거죠?”

팀원들 모두 어제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제 구조대의 진입을 돕기 위해 안에서 진입로를 뚫었던 만큼 다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으며, 모두 입은 옷이 어제의 출근복 그대로였다.

“어쩔 수 없지. 뒤에 야산이 있어서 잔화 정리에 신경 쓰느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렸어.”

“야산이요?”

“어. 하나라도 빼먹었다가는 산불로 번질 위험이 있어서 무너진 공장 잔해를 다 뒤엎어서 불씨를 제거했거든. 끝나고 너무 피곤해서 다들 그대로 숙직실에서 뻗었다가 너 보러 온 거야.”

그 말에 이성하는 찾아와 준 동료들에게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에이, 그럼 그냥 들어가시지 그랬어요. 죄송하게.”

당직에 가까운 시간을 근무했음에도 다들 힘든 몸을 이끌고 병문안을 와 준 것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그러다 문득 이성하는 센터장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센터장님은 들어가셨어요? 어디 다치신 건 아니시죠?”

팀원들은 모두 왔지만, 센터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센터장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안 올 법도 했지만, 기절하기 전에 자신을 향해 애타는 표정을 지었던 센터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 김필주 팀장이 그런 이성하의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말이야. 다친 게 아니라 서로 불려 가셨어.”

“서요?”

“어. 어제 현장대응단장님의 결정을 센터장님이 무시했잖아.”

이성하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설마…… 저 때문에 불려 가신 겁니까?”

자신이 제안한 2층 진입을 센터장이 결정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처음엔 2층 진입을 거부한 센터장이었지만, 내부에 요구조자가 있다는 구조대장의 말에 현장대응단장의 무전을 무시하고 결국 2층 진입을 허가했었다.

“그래. 사고조사위원회에 출석하러 가셨어.”

“사고조사위원회요?”

“어. 어제 명령 체계 문제와 사고 발생 문제로 호출당하셨거든.”

이성하가 단독으로 진입한 문제 때문에 센터장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러 갔던 것이다.

“그, 그건 제가 말씀드린 거잖아요. 그럼 제가 가야죠, 팀장님!”

그 말에 이성하가 당황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김필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결정을 내린 건 센터장님이잖아. 그럼 책임은 센터장님에게 있어. 거기다 넌 시보니까 말이야.”

엄연히 해당 센터의 책임자가 센터장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출동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책임지는 건 오롯이 센터장의 책무에 해당한다.

그리고 김필주의 말처럼 센터장은 현재 은평소방서에 있었다.

“이런 문제로 오기는 싫었는데 말이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은평소방서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센터장 권일섭. 그런 센터장을 맞이한 사람은 은평소방서의 감찰과장이었다.

“들어오시죠, 센터장님.”

센터장과 이성하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고조사위원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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