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5화>
25화. 공장 화재 (3)
“말도 안 됩니다. 무리입니다, 센터장님.”
“맞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시보에게 단독 작전을 지시하는 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센터장의 말에 김필주와 오성수가 다급한 표정으로 반대를 외쳤지만, 센터장의 시선엔 변함이 없었다.
“대답은?”
이성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되물었고, 그에 이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습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눈빛으로 대답하자, 센터장 역시 결정을 내렸다.
“좋아. 허락한다. 오성수, 사다리 가지고 와.”
“센터장님!”
“가지고 와!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알겠습니다.”
센터장은 이성하를 믿고 2층 진입을 허가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다른 소방관들이 알았다면 바로 미친 짓이라고 고함을 질렀을 결정이었다.
- 권일섭 센터장. 2층으로 진입한다고요?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잠시 후, 오성수에게서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밖에서 현장을 지휘하는 현장대응단장의 당황한 목소리가 무전을 울렸다.
하지만 센터장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2층 사무실에 요구조자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쪽 진압대에서 진입하겠습니다.”
- 무리입니다. 트러스를 잡고 이동한다면서요.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단장님, 여기 상황이 좋지 못해서 무전이 힘듭니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끝까지 말리는 현장대응단장을 향해 센터장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단호하게 말할 뿐이었다.
- 이봐요, 센터장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현장대응단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지만, 센터장은 더 이상의 무전을 거부했다.
지지직.
“사다리 전개해!”
시끄럽다는 듯 무전기의 볼륨을 낮추고는 사다리를 들고 온 오성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오성수 역시 이미 결정이 난 상황이었기에 단번에 사다리를 전개시켰다.
촤라라라락!
“정신 똑바로 챙겨라!”
기왕 이렇게 된 거 이성하를 믿어 볼 수밖에 없었다.
이성하 또한 망설이지 않았다.
[이런 썅. 그래. 기왕 결정한 거면 빨리 움직여야 돼. 안에 요구조자가 있는 거라면 급해!]
‘알아요!’
방금 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방금까지만 해도 2층의 불길을 잡아 진입로를 사수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연기에 질식되어 갈지 모르는 요구조자를 1분이라도 빨리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 역시 단숨에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탁! 탁! 탁! 탁!
목표로 했던 천장 트러스를 향해 성큼성큼 올라가서, 목표에 도달한 순간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닿아라!’
벽면에서 살짝 떨어진 트러스를 붙잡기 위해 점프를 한 것이다.
그렇게 트러스를 잡고 공중에 매달린 이성하의 모습에 지켜보던 소방관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됐다!”
“좋았어!”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안정적으로 트러스에 매달린 이성하의 모습에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매달려 있는 이성하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끄으윽. 열기가…….’
높이 때문인지, 2층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화르르르르!
예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1층보다 더한 열기가 직접적으로 느껴져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화재 상황에서 불길의 직접적 온도는 일반적으로 400~700도를 웃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열기를 감싸는 차가운 물줄기가 이성하를 뒤엎었다.
“전진해!”
센터장의 목소리였다.
쏴아아아아!
기다렸다는 듯이 센터장이 이성하의 위쪽으로 주수를 하고 있었으며, 그 물줄기는 점차 하나둘씩 늘어났다.
“앞으로 나가! 나도 지원한다.”
“제가 통로 쪽 주수합니다!”
쏴아아아아!
이성하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해 현장에 있는 진압대 모두가 천장의 화점을 향해 집중 주수를 시작했다.
이성하에게 비로소 길이 열린 순간이었다.
‘이 정도면 할 만해.’
방금까지만 해도 몸을 압박하던 열기가 확연히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너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팀장님. 저 자식, 건너갈 수 있을까요?”
“몰라, 인마. 엄청 무거울 거야.”
오성수와 김필주의 걱정처럼, 이성하는 무려 20kg이 넘는 방화복을 입은 채 손힘만으로 건너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센터장은 그런 두 사람의 불안을 일축했다.
“시끄러워. 할 수 있으니까 시킨 거야.”
자신이 이성하의 단독 진입을 허가한 건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체력 시험에서 1등을 했다고?”
- 네. 3번째 마지막 테스트에서 1등 했습니다. 그것도 6분대요.
이미 이성하의 체력 수준을 전화로 보고받은 적이 있었으며, 그 수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적도 있었다.
“어쭈? 방화복을 입은 채 풀업을 해? 꼬마, 운동 꽤 하는데?”
“하하하. 감사합니다.”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지만, 이성하가 팔 힘을 이용해 건너갈 능력이 된다는 걸 센터장은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성하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터억. 터억.
느리지만 착실하게 앞으로 전진하며 손을 뻗었다.
“어어엇!”
물 때문에 미끄러웠는지 중간에 손을 한 번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긴 했지만 끝까지 트러스에 매달려 다시 손을 뻗었으며, 기어코 목표로 했던 통로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올라갔어!”
“센터장님! 저놈 정말 성공했어요! 진짜 올라갔다고요!”
불가능할 것처럼만 여겨졌던 2층 진입에 결국 성공한 것이다.
이성하 역시 기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허억. 허억. 성공했어요.’
[그래. 잘했다.]
자신의 체력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자원한 일이긴 했지만, 전신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순간 아찔한 감정을 느꼈었으니까.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이성하! 뭐 해! 빨리 진압 실시해!”
센터장의 고함에 이성하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건 2층 전체가 불타고 있는 모습이었다.
‘샌드위치 패널.’
처음 도착했을 당시, 이성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던 거대한 불길이 눈앞에 넘실대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요구조자부터 찾아야 한다.]
저 불길 속에 간절히 구조를 바라는 요구조자가 있으니까.
물론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화아아악!
불길도 불길이지만, 저 시커먼 유독 가스 때문에 사람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소방관이었다.
‘First in last out.’
어느새 좌우명이 돼 버린 소방관의 마음가짐을 조용히 속으로 외우고는, 이내 허리춤에 묶어 둔 관창을 풀고 수관을 한쪽 겨드랑이에 꼈다.
[김경록에게 배운 걸 요긴하게 쓰네.]
‘그러게요.’
소방학교에서 김경록에게 배웠던 한 손으로 수관을 다루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자세를 잡은 순간 관창의 벨브를 끝까지 열었다.
철컥! 쏴아아아아!
[지금이야!]
‘진입!’
물이 분사되는 범위를 최대한 넓히며 불길 속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하지만 의지만큼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쏴아아아아아!
센터장이 보여 줬던 것처럼 수압을 넓게 퍼트려 연기를 밀어내고 있음에도, 도통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이성하가 소방학교에서 가장 열심히 훈련했던 사항이었다.
툭! 툭!
이동하면서 발을 넓게 뻗어 주변에 물체가 있는지 살폈으며, 거기에 끊임없이 고함을 질렀다.
“소방관입니다! 사람 있습니까!”
어딘가에 숨어 있는 요구조자에게 소방관이 왔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한 신호였고, 그런 이성하의 귓가에 희미한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여기요…… 도와주세요. 콜록. 콜록.”
불길 소리에 가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여성의 목소리였다.
[확실해. 나도 들었어. 요구조자야.]
“갑니다!”
그것이 환청이 아니라는 걸 확신시켜 주는 렉스의 말에, 이성하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한 곳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기침을 하는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콜록. 콜록. 사, 살려 주세요.”
정말 구조대가 전해 준 정보처럼, 2층 사무실에 여성 한 명이 고립돼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은 듯 보였다.
“마스크 이거 쓰시면 됩니다.”
“콜록. 콜록. 감사합니다.”
연신 기침을 하고 있었지만, 이성하가 건넨 보조 마스크를 스스로 얼굴에 쓸 정도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전화로 현재의 상황을 밖으로 알릴 수 있었다.
“이성하입니다. 요구조자 확보했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상황을 몰라 애를 태우고 있을 진압대에게 요구조자의 상태를 먼저 보고했다. 그 무전에 악착같이 불길을 잡고 있던 진압대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잘했어!”
“이성하! 잘했다, 이 새끼야!”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요구조자 수색을 성공한 막내의 보고에 기쁨의 고함도 함께였다.
하지만 아직 구조가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화르르르르!
요구조자가 숨어 있던 공간이 그나마 불길에 침식되지 않아 지금까지 버틸 순 있었지만, 패널 안에 존재하는 우레탄폼을 생각한다면 곧 불길로 뒤덮일 공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요구조자와 이곳에 더 있는 건 위험했으며, 최선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안전 지대로 이동하는 거였다.
[우선 통로 쪽으로 가.]
‘통로요?’
[그래. 그쪽이라면 진압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구조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마침 들려오는 렉스의 말에 진입했던 통로 쪽을 바라봤고, 그나마 그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일단 통로 쪽으로 다시 이동하겠습니다. 그쪽 불길 계속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렉스의 말처럼 진압대의 주수 지원이 가능한 2층 통로 쪽이 현실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센터장 역시 그런 이성하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쪽으로 이동해. 아직까지 불길 확실히 잡고 있어.”
외부에서도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걸 감안한다면 눈에 보이는 2층 통로 쪽이 요구조자를 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요구조자를 부축해 빠져나오는 이성하는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뭐, 뭐지?’
[너 뭐야? 왜 그래?]
그런 이성하의 행동에 렉스가 의문을 표했지만, 이성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
그 순간 등줄기로 싸늘한 소름이 솟구쳤으며, 이내 무전으로 고함을 지르고는 왔던 곳을 향해 빠르게 다시 되돌아갔다.
“나가요! 이곳에 있으면 안 돼! 나가!”
심장 깊숙이 치밀어 오는 불길함에 빨리 통로에서 멀어지고 싶었던 것이다.
퇴로를 확보 중이던 센터장으로서는 황당한 말이었다.
“뭐? 너 갑자기 웬 개소리야?”
난데없이 나가라고 고함을 지르는 이성하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끼이익. 끼이익.
안에 있는 모든 소방관들의 심장을 싸늘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
그에 센터장이 다급히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고, 그렇게 해서 볼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 천장을 지탱해 오던 트러스가 실시간으로 구겨지는 모습이었다.
우지끈.
“이런 X발! 나가!”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고함을 지르며 소방관들을 이끌고 입구로 달렸다. 그렇게 소방관들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굉음이 터졌다.
콰콰쾅!
끊임없이 타올랐던 화재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 공장의 입구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