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4화 (24/235)

<강철 소방대 24화>

24화. 공장 화재 (2)

꿈이 아닌가 싶었지만 현실이었다.

와장창창!

가구점 곳곳에서 치솟는 불길의 열기에 유리창들이 연달아 터져 나갔으며.

“끄으으윽. 살려 줘요.”

“구급대! 구급대!”

“갑니다!”

곳곳에서는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현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성하. 정신 차려!]

렉스의 고함에 이성하의 정신이 싸늘하게 돌아왔다.

‘제기랄.’

현장의 참혹함에 놀라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그 시간은 수 초에 불과했다.

“관창!”

“연결했습니다!”

“한 본 더!”

“연결 중입니다!”

센터장의 지시가 이뤄지기도 전에 이미 한 개의 관창을 연결해 넘기고는 또 다른 한 개를 연결하고 있었으며, 그 모습은 사수인 오성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화전 연결했습니다. 관창 받겠습니다.”

“좋아.”

평소와 달리 오성수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펌프차에 소화전을 연결하고는 관창을 잡은 채 지시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성하 역시 오늘은 관창을 잡았다.

“막내, 오늘은 너도 진입한다.”

“저도 말입니까?”

“그럼 누가 하나? 지금 손 하나라도 더 필요한 거 몰라?”

센터장의 날 선 고함에 이성하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라 마지않던 현장의 첫 투입이었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정신 똑바로 챙겨라.]

‘알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정식으로 배치받지 못한 시보를 현장에 투입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다른 서의 센터에서도 지원을 위해 출동을 하는 중이었다.

- 홍은대 출동 중입니다. 도착까지 5분.

- 북가좌대 앞으로 7분 정도 걸릴 듯합니다.

관할 구역이 아닌, 다른 구의 서대문 소방서에서도 출동 중이라는 CP의 무전이 울려 퍼졌다.

그 때문에 길현 센터의 소방관들은 움직임을 서둘렀다.

- 현장 지휘합니다. 녹번대가 왼쪽, 역촌대가 우측에서 진압을 시행하며, 길현대는 은평대와 함께 중앙을 뚫습니다!

“우리는 중앙이다.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때마침 울리는 현장대응단장의 지휘에 따라 길현 센터의 소방관들은 중앙을 향해 이동했고, 그렇게 이동한 중앙에는 임무를 같이 수행할 은평 진압대와 구조대가 있었다.

“선배님, 믿고 뒤를 맡기겠습니다.”

구조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권일섭 센터장을 알아본 듯 말을 걸어왔다.

“걱정 마라. 뒤는 우리가 받친다.”

센터장은 그런 구조대장에게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길현대와 은평대를 믿고 진입한다. 준비해!”

“알겠습니다!”

요구조자를 수색하기 위해 가장 앞에서 길을 열어야 할 구조대와.

“은평 진압대도 제가 지휘합니다. 길현대, 은평대 주수 준비.”

“준비!”

그 뒤를 받치며 불길을 잡을 진압대가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화르르르르!

가구 단지 자체가 가연성 소재로 가득한 만큼, 불의 연소 반응에 따라 가구점 내부로 공기가 엄청난 속도로 빨려 들고 있었다.

화아아악!

천장 위로 치솟아야 할 검은 연기들이 다시 가구점의 내부로 무섭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가구점의 내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그 자체였다.

[괴롭냐?]

‘견딜 만합니다.’

화재 때문에 엄청난 열기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연기가 너무 심해 불길이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상황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지시를 기다렸다.

‘센터장님이 있다.’

자신의 바로 앞에는 센터장이 있었다.

얼핏 보면 한량에 가까워 보여도 현장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능력 있는 소방관이었다. 그리고 센터장은 그런 이성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주수!”

쏴아아아아아!

구조대의 길을 열겠다는 듯, 가장 앞에서 물을 주수하며 시야를 방해하는 연기를 수압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감춰졌던 불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수!”

쏴아아아!

그 모습에 이성하가 기다렸다는 듯이 관창의 밸브를 열었고, 진압대의 다른 소방관들 역시 관창의 밸브를 열며 앞으로 나섰다.

“오른쪽 잡아!”

“전 아래쪽 잡습니다.”

“위쪽 집중 주수해!”

구조대가 진압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 모두가 악착같이 물을 뿜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내부의 풍경이 보였다.

사르르르르.

거짓말같이 중앙의 불길이 잡히며 진입로가 보였고, 그 순간 구조대가 움직였다.

“진입!”

“진입!”

드디어 갇혀 있는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구조대가 불길 속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진입에 성공했을 뿐이지, 상황이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관창 두 개만 빌리겠습니다.”

“가져가!”

구조대가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관창을 넘겨받고 공장 안으로 진입했다면, 남은 진압대의 임무는 자리를 지키는 거였다.

“위치를 사수한다. 은평대는 입구 쪽을, 길현대는 나를 따라 공장으로 이어지는 통로 불길을 잡는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센터장의 지시에 따라 각 대가 지정된 위치에 자리했으며, 그 이후로는 입구부터 통로까지의 천장만을 집중 주수했다.

“다른 곳은 필요 없어! 천장을 향해 주수해!”

“주수 중입니다!”

쏴아아아아!

구조대원들이 요구조자 수색을 마치고 빠져나올 때까지 진입로를 유지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화르르르르!

정상적이었다면 진입로를 만든 시점부터 줄어들었어야 할 불길이 계속해서 거세졌으며.

치익. 치익. 와장창.

심지어 천장에서 불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 자재들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와르르르!

“아아악!”

“호, 호섭아! 괜찮아?”

“야! 김호섭!”

불길에 녹아떨어지는 천장 파편에 은평 진압대의 소방관 한 명이 깔리는 상황이 발생한 발생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듯 보였다.

“괘, 괜찮습니다.”

면체 안으로 머리에 피가 흐르는 게 보이긴 했지만, 금방 일어나 괜찮다고 말하는 걸 보니 심각한 부상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더 이상 진압 활동을 하는 건 무리였다.

“이 팀장, 대원 한 명 동행해서 부상자 내보내고 다시 합류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머리를 다쳤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미는 곳에 더 있게 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를 대신할 보충 요원은 없었다.

화르르르르!

“주수해!”

“어떻게든 진압해! 불이 더 연소되지 못하게 막아!”

밖에 있는 다른 곳의 진압대 역시 미칠 듯이 확대되는 불길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으니까.

당연히 이성하로서는 미칠 지경이었다.

‘X발. 도대체 불길이 왜 안 잡히는 거야!’

안 그래도 벅찬 상황에서 불길을 잡아 줄 관창 하나가 줄어들었다.

불길 또한 그걸 알았는지 다시 통로 쪽을 향해 슬금슬금 전진해 오고 있었으며, 그 전진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2층 전체가 불타고 있는 거야. 샌드위치 패널이니까.]

‘샌드위치 패널이요?’

[그래. 공장 화재의 주범이야. 가볍고 가격이 저렴해 조립식으로 짓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화재에 취약한 자재가 샌드위치 패널이거든. 지금 이 연기가 뭘 의미하는 건지는 알지?]

‘네. 가연성 소재로 인해 유독 가스가 발생하는 거 아닙니까?’

[맞아. 가연성 소재야. 그것도 가장 타기 좋은 소재 중 하나인 우레탄폼. 그게 이 공장을 구성하는 모든 벽면에 포함돼 있어.]

‘그럼…….’

[그래, 이 통로 위 전체가 불타고 있는 거야. 2층 전체가 불타는 중이라 1층에서 아무리 불길을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거고.]

‘2층 전체…….’

화르르르르!

렉스의 말처럼 애초부터 2층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탓에 진압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이다.

센터장 또한 뭐가 문제인지를 아는 모양이었다.

“천장이다! 무조건 천장만 주수해!”

처음부터 악착같이 천장만을 외치며 집중 주수를 명령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렉스의 말대로라면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진입하기 전 확인한 공장의 크기라면 구조대가 아무리 빨라도 수색하는 데 10분은 걸릴 거야. 그럼 지키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10분 넘게 진입로를 유지시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화르르르르!

렉스의 말처럼 천장에서 느껴지는 불길이 더욱 가속화되는 게 느껴졌다. 이럴 때 이성하가 배운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죠.’

[뭐?]

‘화재 진압의 기본은 화점을 제압하는 거잖아요. 그것도 중심이 되는 곳을.’

렉스의 말처럼 1층에서 불길을 잡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 직접적 원인이 되는 2층을 진압해야 한다.

그랬기에 렉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센터장에게 바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센터장님, 제가 2층으로 올라가겠습니다.”

“뭐?”

“제가 2층으로 올라가겠다고요. 2층에서 불길을 잡아야 진입로 유지가 가능한 거 아닙니까?”

자신이 2층으로 올라가 화점이 되는 곳을 직접 주수하겠다고.

하지만 센터장은 그 말에 고함을 질렀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주수에나 집중해라!”

“네?”

“내가 그 생각을 안 해 본 줄 알아? 하지만 불가능하다. 올라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이성하가 말한 내용은 이미 생각한 방법이었다.

2층 벽면에 화재 지점으로 진입이 가능한 통로를 확인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렸던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을 파악하고는 바로 포기해 버렸다.

통로는 보였지만 그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가구점이 아니라 좀 더 들어간 공장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다리를 가져와 통로 쪽에 대는 것도 떠올렸지만, 안타깝게도 그 밑으로는 불이 붙은 판넬 자재들과 녹아내린 천장 파편이 가득했다.

화르르르르!

불도 불이었지만, 듬성듬성 쌓여 있는 자재와 파편들로 인해 사다리를 댈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성하는 아무 생각 없이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통로 쪽이 아니고 입구 쪽에서 들어간다면요?”

“뭐?”

“천장 트러스를 잡고 가는 겁니다. 우리가 들어온 1층 입구 쪽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요.”

이성하가 가리키는 건 천장을 지탱하는 구조 철골이었다.

삼각형을 골격으로 천장을 지탱하는 쇠파이프, 그걸 이용해 입구에서 2층 통로로 넘어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저걸 잡고 넘어가겠습니다. 저걸 통해서라면 갈 수 있어요.”

마치 놀이터의 구름다리를 손으로 잡고 건너는 것처럼, 천장의 철골 트러스를 잡고 2층으로 진입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센터장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거리를?”

2층이라는 높이도 높이였지만, 입구에서 눈에 보이는 통로까지의 거리만 거의 십여 미터에 달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라 할 수 있지만, 그런 거리를 순수한 손힘만을 이용해 건너가는 건 무리였다.

무엇보다 현재 이성하는 맨몸도 아니지 않은가.

“너 미쳤냐? 방화복만 20킬로그램이야. 호스 무게까지 하면 거의 25킬로그램이고. 그 무게를 어떻게 버텨!?”

옆에서 주수를 하던 오성수가 고함을 지를 정도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을 이성하가 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단순히 시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화르르르르!

건너가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이성하의 몸은 부서지고 날카로운 파편들이 가득한 판넬 위로 떨어지게 되니까.

하지만 그 순간 센터장의 등을 떠미는 무전이 울렸다.

- 센터장님, 강천호입니다. 입구 쪽 2층 사무실에 요구조자 한 명 있다고 하는데 확인 가능하십니까?

“뭐라고?”

- 안에서 만난 요구조자 말로는 입구 쪽 2층 사무실에 경리 한 명이 근무 중이라고 합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요구조자 수색을 위해 안으로 진입했던 구조대장의 무전이었고, 그에 센터장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이성하를 바라봤다.

“너 정말 할 수 있겠냐?”

이성은 절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센터장은 도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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