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3화>
23화. 공장 화재 (1)
AM 08:20.
“좋은 아침입니다.”
“오냐. 좋은 아침.”
출근을 하며 동료들에게 인사를 마친 이성하는 휴게실에서 당근복으로 갈아입고는 자리에 앉았다.
“성하야, 이거 점심 전까지 보고 올려야 되니까 정리 좀 해서 올려 주라.”
“네, 부장님.”
허석훈이 내민 서류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 이거…….”
서류 작성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 습관적으로 옆자리의 오성수를 찾았지만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직 안 오셨네…….’
[아침부터 곡소리 한 번 울리겠구먼.]
시계를 보니 곧 인수인계 시간인 8시 30분이었다.
“다들 인수인계하게 이쪽으로 와.”
“네, 알겠습니다.”
“넵.”
센터장의 말에 야간 근무를 했던 1팀과 이제부터 근무할 3팀 멤버들이 회의실로 향했고, 오성수가 도착한 건 인수인계가 모두 끝나고 아침 체조를 할 시간인 8시 50분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
엄청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오며 고개를 숙이는 오성수였지만, 팀장 김필주는 그런 오성수의 귀를 단숨에 잡아당겼다.
“일로 와.”
“아, 아파요, 팀장님.”
“아프라고 잡아당긴 거야, 인마! 너 벌써 몇 번째야? 인수인계 똑바로 참석 안 해?”
오성수는 이번 달만 벌써 두 번째 지각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식 지각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팀장님, 한번만 봐주시죠. 출근 시간 원래 9시잖아요.”
“맞습니다, 팀장님. 요즘 반장님이 일도 일이지만 애 보느라 힘들지 않습니까?”
허석훈 부장과 이성하가 슬쩍 시계를 보고는 옆에서 지원 사격을 해 줬다.
“다시는 지각 안 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오성수 또한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바로 단호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고, 그에 팀장은 옆에서 감싸 준 두 사람을 잠깐 째려보고는 벌을 주는 걸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오늘 지각한 벌로 차고 청소해 놔. 물론 혼자서. 알았지?”
“알겠습니다!”
허석훈과 이성하의 말처럼 정식 출근 시간을 넘긴 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오성수의 모습은 이성하에게 단순히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따 퇴근하면서 알람 시계나 하나 더 사야겠어요.’
[왜? 너도 불안하냐?]
‘네. 요새 계속 늦잠 자서 아침 운동 못 한 지 벌써 2주나 됐잖아요. 이러다 정말 습관되겠어요.’
이성하 역시 지각만 안 했을 뿐이지 평소하던 운동을 못 한 지가 2주가 넘었다.
첫 출근을 하고 나서는 며칠간 꾸준히 운동을 했지만, 이제는 피로가 쌓여 집에만 가면 곯아떨어지는 게 일상이었다.
지지직!
“어?!”
- 뻐꾹. 뻐꾹. 구급대 출동. 구급대 출동.
“아, 구급대구나.”
다행히 이번에는 구급대만 출동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매일같이 출동 벨이 울리는 곳이 길현 센터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출동이 많기에 그러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따져 보면 출동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구급대가 하루에 10번에서 15번 정도 출동한다면, 경방은 화재 진압과 훈련을 포함해 보통 4~5번 정도 출동을 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출동 횟수가 아니었다.
“부장님, 반장님. 다녀오십시오.”
“어. 성하야. 고생해라. 이따 보자.”
“넵.”
방금의 출동 명령에 출동을 나서는 구급대의 인원은 장호철과 김영광 두 사람이었다.
원칙으로는 세 명의 구급대원이 출동해야 하지만 두 명이 출동하고 있었고, 그건 이성하가 속한 화재진압대도 마찬가지였다.
<펌프차 / 소형 펌프차>
길현 센터가 보유하고 있는 펌프차는 두 대지만, 한 팀에 배정된 화재진압대원은 네 명밖에 되지 않았다.
생활 신고가 아닐 경우 같이 출동하는 센터장을 포함한다 해도 다섯밖에 되지 않았고, 그 인원은 현장에서 펌프차 두 대를 가용할 수 있게 하는 최소 인원이었다.
‘전 항상 생각하지만 이런 식으로 운영될 거면 펌프차는 한 대만 있어도 될 거 같아요.’
[그거야 소화전이 있는 시내에서의 이야기고, 소화전이 없는 곳이면 펌프차 두 대는 있어야 돼.]
‘그래서 문제죠. 말 그대로 물탱크 역할로 두 대를 가지고 다닌다는 느낌이잖아요.’
조금 부정적이긴 했지만, 그동안 출동하면서 펌프차 두 대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시민들에게 많은 소방차들이 출동하는 걸 보여 주기 위한 전시 행위 같다는 생각을 해 왔던 것이다.
렉스도 그런 이성하의 말에 딱히 부정을 하진 못했다.
[뭐, 그건 나도 동감. 원래는 이러진 않았는데 말이야.]
지금처럼 한 팀의 인원이 6명으로 구성된 게 몇 년 되지 않아서였다.
원래는 2조 1교대 근무 방식으로 한 팀당 9에서 10명의 인원으로 센터가 운영되었는데, 이걸 소방관들의 근무 처우를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소방청에서 아무 대책 없이 3조 2교대 근무 방식으로 변경해 버렸다.
인원의 확충 없이 근무 방식만 바꾼 거라 인원을 쪼개 세 개의 팀으로 편성한 탁상행정이었다.
그래도 근무 시간이 줄어서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소방관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게요.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성수 선배 말로는 예전이 더 낫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하지. 일은 그대로인데 인원은 줄어서 할 일은 더 많아지고, 현장에서의 위험 부담도 더 커져 버렸잖아.]
생명을 걸고 일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인원의 확충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게 있었다.
길현 센터의 소방관들은 자신들에게 지정된 근무 시간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막내야, 먼저 퇴근해도 돼. 나 어차피 아까 출동 보고서도 정리해야 해서 시간 좀 걸려.”
“아닙니다. 저도 예방과에서 보내온 서류 정리할 게 있습니다. 같이 퇴근하시죠, 선배님.”
덕분에 이성하 역시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보 생활이었지만 본인의 퇴근 시간보다 더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일상이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센터장이 하는 현장 지도까지 종종 따라다닌 탓에 다른 소방관들도 이성하가 현장 지도에 동참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막내야, 우리야 유부남들이라 집에 있으면 갑갑해서 산책 나왔다 치지만, 넌 데이트 같은 거 안 하냐? 여자 친구 없어?”
“그런 거 없습니다. 저도 빨리 선배님들 따라다니면서 일 배워야죠.”
“와, 이거 미친놈이네. 너 너무 일찍부터 고생하면 이 일 오래 못 한다?”
“오래 할 겁니다, 선배님. 흐흐흐.”
길현 센터의 다른 소방관들 역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최선의 대처를 할 수 있게 틈틈이 현장 지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런 현장 지도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큰 사고가 없던 걸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너 지금까지 출동한 건에서 큰 건은 없었지?]
‘네. 지난주 역촌동에서 불났던 게 아마 가장 큰 건이었을걸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좀 한가하네요. 아까 구급 출동 외에는 신고가 없네.’
다행이게도, 아직까지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출동은 없었다.
하지만 소방서에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금지어가 있었다.
‘출동이 없어서 한가하다’, ‘이상하게 요즘 왜 큰 사고가 없지?’라는 평온한 일상을 거부하는 단어.
순간 자신이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깨달은 이성하가 스피커를 바라봤다.
‘설마…….’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길함에 나타난 행동이었고, 그 불길함은 현실이 되었다.
이에에에에엥!
- 화재 출동. 녹번동 228-72번지 가구점에서 화재 사건 발생. 길현대, 녹번대, 역촌대 출동 바람.
[어휴, 멍청한 놈…….]
스피커에서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이성하로서는 황당한 순간이었다.
‘진짜 나 때문이라고……?’
한가하다는 류의 이야기를 하면 정말로 출동 명령이 떨어진다는 미신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실제로 적용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에이씨. 갑자기 뭔 일이야!”
“시끄러워! 빨리 뛰어!”
센터장은 물론이고 3팀의 동료들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고, 이성하도 얼떨결에 따라 나가 그대로 펌프차에 탑승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다 너 때문이잖아, 인마!]
자신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출동 명령이 떨어지긴 했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에이, 그래도 우리 3팀이 출동하는데 큰일이야 있겠어요?’
자신이 속한 3팀을 믿어서였다.
센터 내에서는 언제나 유들유들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어떤 출동이건 간에 사건의 크기 상관없이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하는 이들이 자신의 팀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분위기가 달랐다.
- 현장 상황 다시 설명합니다! 화재 지점, 가구점이 아니라 가구 공장입니다!
“뭐라고요?”
- 화재 발생 지점이 가구점이 아니라 뒤쪽에 위치한 가구 공장이라고 합니다. 선착대(가장 먼저 도착한 진압팀)가 먼저 도착해서 연소 확대 방지에 주력 중이지만 상황 좋지 못합니다. 주변에 연소 확대 우려가 있어요.
CP가 전달하는 현장 상황에 길현 센터 소방관들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센터장님. 72번지 가구 공장이면 바로 뒤에 산 있는 곳 아닙니까?”
“맞아. 뒤에 야산 있어. 이런 썅. 하필 화재가 나도 왜 거기야!”
사고 발생 지점이 대로변에 위치한 가구점이 아니라, 야산 쪽으로 근접한 가구 공장 단지였기 때문이다.
단지 이성하만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많이 안 좋은 거예요?’
[안 좋지. 공장 화재인 것도 문제지만, 화재 지점 근처에 산이 있으면 자칫하다가는 대형 산불로도 번질 수 있거든.]
‘흠…… 산불로 번지기 전에 충분히 진압 가능하지 않을까요?’
렉스의 설명이 이어지긴 했지만 출동 지령을 받자마자 즉시 출동했다는 생각에, 큰 화재가 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공장 화재를 경험해 보지 않은 이의 생각이었다.
“보입니다!”
오성수의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이성하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놀라서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뭐야?’
아직 도착까지 거리가 남았음에도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자욱하게 덮고 있었다.
“차량 통제해!”
“뭐 하고 있어! 두 본 더 꺼내!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센터의 소방관들이 고함을 지르며 수관을 꺼내며 정신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고, 그런 그들의 앞에는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공장 단지가 있었다.
화르르르르!
‘맙소사…… 신고 들어온 지 겨우 7분밖에 안 됐는데…….’
차마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연소가 확대된 화재 현장에 이성하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건물 하나에 국한된 화재가 아니었다.
화재의 발생 지점으로 알려진 가구 공장은 지금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화르르르르!
눈앞에 보이는 건 가구 공장이 아니라 그에 연결된 가구점들이었고, 그렇게 불길에 휩싸인 가구점만 10곳이 넘었다.
‘이게 공장 화재…….’
[그래, 이게 공장 화재다.]
진압할 의욕 자체가 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화재 현장이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