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21화 (21/235)

<강철 소방대 21화>

21화. 센터장 (2)

출동을 마치고 돌아온 이성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도대체 뭐가 본모습일까요?’

[뭐가?]

‘센터장 말이에요. 센터에서는 그렇게 한심했는데 현장 가니까 완전히 바뀌었잖아요.’

그동안 나태하다고만 생각했던 센터장의 새로운 모습.

“그래. 나 낮잠 좀 잘 테니까 전화 안 오게 부탁 좀 하자. 하아암.”

센터에서는 방만한 모습으로 낮잠을 즐기는 전형적인 샐러리맨 소방관의 모습을 보여 줬다면.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센터장님!”

“시끄러워! 너는 남아서 석훈이 도와서 펌프차 보조해. 나머지는 진입한다!”

현장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바짝 날이 선 소방관의 모습을 보여,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렉스는 그에 대해 별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냐? 소방경이니까 당연한 거지.]

‘소방경이요?’

[그래, 인마. 애초에 소방경이 어디 아무나 달 수 있는 계급인 줄 알아? 소방사 출신으로 최소 20년은 근속해야 가능한 계급이야. 그것도 연차만이 아니라 실력과 운도 받쳐 줘야 가능한 계급. 그런데 실력이 없겠냐?]

‘그러니까 실력은 있는데, 은퇴가 슬슬 다가와서 여유를 부리는 거다?’

[당연하지. 왜 보통 드라마 보면 그러잖아? 나이 들면 귀찮아들 하는 거.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안 그래도 할 일도 많은데 그거 알아서 뭐 할래? 알아 봤자 쓸데도 없는 거.]

할 일도 많은데 쓸데없는 곳에다 신경을 쓴다며 타박하는 투로 대답하는 렉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말처럼 소방경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계급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센터장의 직위에 해당하는 계급이 소방위와 소방경인데, 이 중 시험으로 올라갈 수 있는 한계는 소방위까지였다.

규정으로는 소방경보다 위 직급인 소방령까지 시험으로 진급이 가능했지만 시험을 아예 시행하지 않아 소방위가 한계였고, 그 위부터는 심사로만 진급이 가능해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관운도 필요했다.

‘확실히 소방경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죠.’

이성하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고는 달 수 없는 계급이 소방경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넘기기에는 다른 소방관들이 센터장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분명히 다들 엄청 존경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단 말이야.’

단순히 직장 상사를 대하는 태도라고 보기엔 인사를 올리는 태도들이 너무나 경건했단 사실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거?]

‘센터장님 앞에만 불길이 잡히면서 길이 뚫리는 거요. 렉스도 놀랐잖아요? 불이 어떻게 번지는지를 알고 있다고.’

거짓말처럼 센터장이 노린 불길이 사그라드는 모습에, 경악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었다.

렉스도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확실히 그건 인정. 그건 나도 못 해. 네 아버지 이성훈도 마찬가지였고.]

화재 진압의 핵심은 화점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불이 번질 수 있는 위치를 눈으로 파악해, 집중 주수를 통해 화재를 잡는 게 진압 기술의 기본이었으니까.

하지만 센터장이 보여 준 기술은 그 기본을 넘어서 있었다.

쏴아아아아!

첫 번째 화점을 잡자마자 바로 몸을 돌려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천장을 공략했다.

“따라붙어!”

“네! 알겠습니다!”

불길과 연기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거짓말처럼 화점의 위치를 파악해 불길을 잡았고, 그로 인해 나타난 결과가 본부에서 지원을 나오던 구조대의 출동 취소였다.

“상황실. 요구조자 수색 및 구출 완료. 화재 진압만 하면 마무리될 것 같다.”

지지직.

- 알겠습니다. 구조대 복귀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임무인 화재 진압뿐만 아니라 구조대가 해야 할 요구조자 구조까지 모두 해내, 출동을 나오던 구조대가 도중에 복귀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결국 이성하는 옆자리에 앉은 오성수에게 센터장에 대해 물었다.

“선배님, 바쁘세요?”

“왜?”

“센터장님에 대해 궁금해서요. 도대체 어떤 분이에요?”

“센터장님?”

“네, 이번에 보니까 장난 아니시더라고요. 녹번 센터 선배들도 엄청 어려워하고요. 혹시 엄청 대단한 분 아니에요?”

“대단하면 어쩌려고?”

“배우려고요.”

“배워?”

“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려면 배워야죠. 저도 소방관인데. 하하.”

정말 센터장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대단한 인물이 맞다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서라도 옆에서 기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성수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비밀.”

“네?”

“말해 주면 재미없잖아. 직접 알아봐.”

뭐든지 물어보면 대답해 주던 인간이 센터장에 대해서만큼은 직접 알아보라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고,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다른 선배 소방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센터장님? 글쎄? 나도 몇 년을 함께했지만 아직 잘 모르겠는데? 안 그래요, 장 부장님?”

“암~ 도통 파악이 불가능한 인간이지. 그렇고말고.”

허석훈 부장과 장호철 부장 또한 자기들끼리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해 주지 않았으며, 김필주 팀장에게는 오히려 잔소리까지 얻어먹었다.

“막내야. 너 오늘 할 일 많지 않냐?”

“네?”

“오전에 올려야 할 보고서들은 작성 다 했어?”

“아, 아직…….”

“이 새끼가 진짜. 빨리 자리로 가서 안 해?”

“죄송합니다!”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끄응…….’

렉스가 미리 경고했던 것처럼, 할 일을 미뤄 두고 다른 곳에다가 신경을 판다며 야단을 맞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에휴. 그렇게 배우고 싶냐?]

‘그럼 안 배우고 싶겠어요?’

아직까지 센터장이 불을 다루던 그 엄청난 모습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마음을 먹었다.

‘할 수 없네요. 직접 알아봐야지.’

[뭐?]

‘직접 알아본다고요. 선배들도 그러라고 했잖아요.’

어차피 선배들이 직접 알아보라고 했기에 거리끼는 건 없었고, 공교롭게도 내일은 이성하의 비번이었다.

‘따라다녀 볼까.’

아무도 알려 주지 않는다면 미행을 해서라도 센터장이 어떤 인간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 * *

길현 센터 소방관들의 근무 방식은 3조 2교대였다.

주주주주비비.

야비야비야비당.

비야비야비당비.

1주간 주간 근무를 하고 2주간 야간 근무를 하는 패턴으로, 21주기 근무라고도 표현되는 근무 방식.

그리고 이 근무 방식에 센터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센터장의 경우, 센터의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하기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주간 근무를 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이튿날 오후 5시부터 센터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서 대기를 타고 있었다.

‘슬슬 나올 시간이 됐는데.’

평소 30분 정도 일찍 퇴근하는 센터장의 습관을 생각해, 미행의 시작을 아예 퇴근 시간보다 일찍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예상처럼 남들보다 일찍 퇴근해 걸어가는 센터장의 모습에 쾌재를 불렀다.

‘이 방향이면 확실하네요.’

센터장이 걸어가는 방향이 그의 집으로 알려진 구산동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녹번동 쪽이었으니까.

하지만 렉스로서는 그런 이성하가 한심스러웠다.

[너 뭐 하냐…….]

그냥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해서 행방을 물으면 될 걸 진짜로 몰래 뒤를 쫓는 모습이 뭐하나 싶었다.

‘조용히 해 봐요. 집중 중이니까.’

마치 자신이 형사라도 된 것처럼 전봇대와 건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센터장의 뒤를 쫓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은 정체를 숨기긴커녕 오히려 주변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엄마, 저 아저씨 뭐 해?”

“그냥 무시해. 이상한 사람인 가봐.”

[하…….]

주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쳐다보는 모습에 렉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센터장이 도착한 목적지가 낯이 익다는 사실에 렉스도 호기심이 생겼다.

[여기 어제 화재 났던 곳 아냐?]

‘맞아요, 녹번 시장. 여길 왜 왔지?’

센터장이 도착한 곳은 어제 화재 사건으로 이성하가 출동을 했던 녹번 전통 시장이었다.

“노지 감귤이 한 박스에 만 원!”

“아지매, 일로 오이소. 오늘 갈치 싱싱해예.”

초반에 화재를 잡은 덕분인지 군데군데 흔적이 남아 있긴 했지만 빠르게 보수해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중이었고, 센터장은 그런 시장으로 들어가 두리번거리더니 한 음식점으로 들어가 팔을 걷어붙였다.

“아주머니, 난로 주변에 이렇게 쌓아 두면 안 된다니까. 어제 저쪽 상가처럼 불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난로 옆에 쌓여 있는 종이 박스들을 한쪽으로 정리하며 사장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으며, 그런 센터장을 부르는 아주머니의 호칭에 이성하와 렉스는 깜짝 놀랐다.

“권 센터장님은 할 일도 없어? 왜 이렇게 자주 찾아와?”

“아주머니 때문에 옵니다, 아주머니 때문에. 이거 이렇게 쌓아 두지 마요. 진짜 어제처럼 불나면 큰일 나니까.”

“알았어요, 알았어.”

센터장의 호칭을 알고 있는 건 물론, 오늘의 방문이 처음이 아니라 자주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센터장을 아는 건, 음식점 아주머니 한 명만이 아니었다.

“권 센터장, 이거 호떡이나 하나 먹고 가.”

“얼만데요?”

“에이, 어제 우리 시장을 구해 줬는데 무슨 돈이야? 그냥 먹어.”

“이 아주머니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여기 천 원. 남는 건 나중에 와서 먹을게요.”

“에이, 고집하고는.”

바로 옆에 있는 호떡집 가게 아주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더니 천 원 한 장을 꺼내 놓고는 다른 가게로 향했고, 그 뒤로 보인 광경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 이거 멀티탭 단단히 고정해 놓으라니까. 이러다 합선 사고 납니다.”

“알았다 마, 깜빡했다.”

수산물을 진열해 놓은 가판대 옆으로 멀티탭이 위험하게 놓여 있는 것에 바로 지적했으며.

“아줌마, 소화기 새로 주문 안 했어요?”

“니 또 왔나? 금방 살 테니까 그만 보채라.”

“이렇게 안 하면 안 사잖아. 시장이라도 가스 사용하는 가게는 소화기 필수적으로 구비해야 돼요. 이건 유통 기한도 지났지만 가압식이라서 잘못 사용하다가는 폭발한다니까요.”

또 한 가게에서도 유통 기한이 지난 소화기를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

‘화재 예방 지도…….’

[그래. 일찍 퇴근해서 뭐 하나 했더니 혼자서 현장 지도를 하고 있었네.]

일반적으로 소방서에서 연휴에만 진행하는 화재 예방 지도를, 센터장이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본 이성하는 감동이 치솟는 걸 느꼈다.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었어.’

어떤 소방관이 퇴근을 하고 난 이후에 이렇게 돌아다니며 현장 지도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때였다.

“어? 연기다!”

“뭐야? 설마 또 불이 난 거야?”

시장 너머로 주택가 쪽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 게 보였다.

“뭐요? 불?”

그 소리에 시장의 가게 안으로 들어갔던 센터장이 다급히 뛰어나와 연기가 치솟는 방향을 바라봤고,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바로 뒤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꼬마야, 불났다.”

“……!”

이성하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건물 뒤로 숨었지만, 센터장이 말하는 상대는 분명 이성하였다.

“빨리 나와, 인마.”

[거봐. 내가 너 걸릴 줄 알았다.]

“…….”

센터장은 이미 이성하가 미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사실 모르면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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