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0화>
20화. 센터장 (1)
* * *
쌀쌀한 찬바람이 도는 아침이었다.
겨울이다 보니 곳곳에 눈이 쌓여 있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출근하자마자 빗자루를 잡았다.
“어우, 추워. 이놈의 눈 좀 그만 내렸으면 좋겠다.”
촤악! 촤악! 촤악!
언제 출동할지 모르는 게 소방관의 업무다 보니, 시시때때 차고지 앞에 눈이 쌓이지 않도록 제설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치울 눈이 많은 건 아니었다.
[야! 나 추운 건 싫다니까. 난 왜 데리고 나왔어?!]
‘에이, 명진 선배가 이미 치운 상태라 별로 치울 것도 없어요. 금방 끝나요!’
이미 앞 팀의 막내인 천명진 소방사가 눈을 한 번 치운 상태였다.
하지만 눈을 다 치웠음에도 센터 안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하, 오늘은 좀 빼 주면 안 되나?’
눈을 다 치우고 난 뒤에 하는 일은 앞 팀과 근무 교대를 위한 인수인계를 해야 했는데, 이성하는 이 인수인계 시간을 너무나 싫어했다.
“성하야, 눈 다 치웠으면 들어와라. 선배님들 다 출근하셨어.”
“하…… 네, 갑니다!”
창문으로 외치는 사수 오성수의 외침에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 인수인계 시간이 싫은 이유는 다름 아닌 타 팀과 3팀 선배들의 놀림 때문이었다.
“야, 3팀 울보. 오늘은 울지 말고 근무해라이.”
“저 울보 아닙니다, 선배님.”
“울보가 아니야? 김 팀장님, 막내가 자기 울보 아니라는데요?”
“야, 막내 좀 그만 놀려라. 진짜 그러다가 막내 삐져서 일 그만두면 어떻게 할래?”
“에이, 설마요? 남자가 이런 거 가지고 삐지면 고추 떼야죠. 안 그러냐, 막내야?”
“끄응…….”
“푸하하하하.”
일주일 전, 지원을 나갔던 구급 출동에서 눈물을 터트린 사실이 소문이 났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인수인계가 끝나자마자 옆 테이블에 따로 앉은 김영광을 향해 매서운 눈초리를 보냈다.
“진짜 영광 선배 때문에…….”
소문의 출처가 그 당시 구급대로 같이 출동했던 김영광이었으니까.
“야, 진짜 실수였다니까. 밥 먹다가 나도 모르게 그런 거라고.”
그런 눈초리에 김영광이 바로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성하는 전혀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다.
“우~~ 실수는 무슨? 자타가 공인하는 입 가벼운 남자면서.”
“야, 오성수, 너 입 안 닥치냐?”
“닥치긴 뭘 닥치냐? 성수가 틀린 말도 안 했구먼. 김영광 너 별명 촉새잖아. 안 그러냐, 석훈아?”
“그럼요.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뜰 새끼죠.”
“아, 진짜!”
3팀 동료들이 그에 바로 면박을 줬을 정도로, 길현 센터에서 입이 가볍기로 유명한 사람이 김영광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성하는 그냥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포기해라. 원래 저런 성격이라잖아.]
‘끄응…….’
선배라 원망 섞인 말을 할 수도 없지만, 원래 저런 성격이라는데 말을 더해서 뭘 한단 말인가?
하지만 김영광 때문에 좋은 점도 있었다.
“막내야, 오늘 열심히 해라.”
“네, 부장님. 들어가십쇼.”
“어휴, 귀여운 자식.”
김영광이 소문을 낸 덕분에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던 타 팀과의 사람들과 빨리 친해져 버렸다.
교대 시간에만 얼굴을 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먼저 인사를 건넬 정도로 친해진 상태였고, 매일같이 얼굴을 부대끼는 3팀의 경우에는 더했다.
“성하야, 그나저나 오늘 일 끝나고 한잔 어때?”
“술이요?”
“어. 이 앞에 이자카야 괜찮은데 생겼거든.”
“저야 좋죠.”
“부장님, 성하 괜찮답니다.”
“오케이! 오늘 일잔 고!”
“고우!”
일 끝나고 개인적으로 술 약속을 잡을 정도로 꽤 친해졌다.
하지만 그런 선배들과 달리 아직 친해지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야, 서에서 비품 신청 보고서 아직 안 올라왔다는데 이거 왜 안올렸냐?”
“비품이요?”
“그래. 이거 누가 하기로 했는데?”
통화를 하던 중이었는지 권일섭 센터장이 수화기를 들어 보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 다들 어색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봤고, 상황을 파악한 권일섭이 머리를 긁적였다.
“꼬마, 너야?”
“죄송합니다. 바로 체크해서 올리겠습니다.”
“아니야. 신입인데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다음부터 이러지 마라. 내가 서에서 전화 오는 걸 별로 안 좋아해. 알았지?”
“아, 알겠습니다.”
“그래. 나 낮잠 좀 잘 테니까 전화 안 오게 부탁 좀 하자. 하아암.”
귀찮음이 가득 묻어난 어조로 눈치를 줬고, 그에 이성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불평을 토해 냈다.
‘진짜 존경할 구석이 하나도 없어.’
[뭐, 나도 처음 보는 스타일이긴 하다.]
한 달 동안 길현 센터에서 지내면서 본 모습이라곤 지금처럼 나태함으로 가득하기만 했다.
단순히 서에서 오는 전화를 귀찮아하거나 업무 시간에 낮잠 자는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성수야, 오늘 신문들 어디 있냐?”
“신문이요? 아까 회의실에 있던데 가져다드릴까요?”
“어. 가져다주라. 어제 축구 결과 좀 보게.”
“알겠습니다, 센터장님.”
지금처럼 근무 중에 일이 아니라 신문을 보는 등의 딴짓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그것도 모자라 퇴근도 앞당겨서 빨리하는 경우가 있었다.
“참, 형님. 오늘도 거기 가세요?”
“왜? 일 있어?”
“아니요. 일찍 나가실 거면 서류 사인 미리 받아 놓으려고요. 이거 오늘 안으로 서로 넘어가야 되는 문서라서요.”
팀장인 김필주가 미리 퇴근 시간을 물어볼 정도로 근무 시간을 제대로 안 지키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때문에 한쪽에 있는 구급대의 장호철 부장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쳇, 난 또 괜히 감동했네. 뭐가 다른 의미가 있었다는 거야? 그냥 귀찮아서 한 말 같은데.’
구급대로 지원을 나갔을 당시, 장호철이 설명해 준 센터장의 말뜻을 듣고는 ‘역시 센터장은 다르구나’라는 기대감을 품었었다.
하지만 헛된 기대감이었다.
[저 인간 벌써 잠들었네.]
“코오오오.”
지난밤에 뭘 했는지 코까지 골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또 주무시는 겁니까?”
“신경 꺼라. 센터장님이시잖아.”
“…….”
센터장이라는 직급에 맞는 이상을 가진 소방관이 아니라, 직급이 높다는 사실에 나태해진 소방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 한심했다.
‘아니, 소방경이 뭐 저래요?’
권일섭의 직급은 일반적인 소방공무원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계급이다.
소방공무원의 경우 소방사시보-소방사-소방교-소방장-소방위-소방경과 같은 직급 체계를 거치는데, 대부분의 소방공무원들이 소방경 직급에서 퇴직을 하곤 했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더 이상 센터장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뭐 어때? 어차피 센터장이라서 같이 출동할 일도 별로 없잖아.]
‘네. 그래서 신경 끄려고요.’
렉스의 말처럼 화재나 교통사고 같은 사건이 아닌, 지금 같은 생활 안전 신고가 주를 이루는 상황에선 같이 출동할 일이 없는 직급이 센터장이었다.
그 순간 출동 벨이 울렸다.
이에에에에에엥!
화재진압대와 구급대 모두의 출동을 지시하는 긴급 비상벨이었고, 그 뒤로 울려 퍼지는 출동 명령에 이성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화재 출동! 녹번동 전통 시장 화재 발생. 길현대, 녹번대 출동 바란다.
‘저 양반이랑?’
말이 씨가 된다고, 센터장까지 출동해야 하는 화재 출동 명령이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이성하! 뭐 하고 있어!”
“네! 갑니다!”
사수인 오성수의 고함에 정신을 차리고 펌프차로 뛰었다.
이에에에엥!
길현 센터에서 보유하고 있는 두 대의 펌프차 모두가 출동을 했고, 공교롭게도 이성하의 옆자리에는 그렇게나 피하고 싶던 권일섭 센터장이 앉아 있었다.
“꼬마. 너 나랑 출동하는 거 처음이지?”
“네, 그렇습니다.”
“현장 가서 넋 빼고 있지 말고, 울지도 마라. 알았어?”
“네…….”
옆에 앉은 이성하를 향해 피식 웃으며 어깨를 두드리는 센터장.
그에 이성하는 이곳에 없는 누군가를 욕했다.
‘하…… 영광 선배. 진짜.’
나태한 센터장에게까지 놀림받는 상황을 만든 김영광이 정말이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꿔 먹었다.
‘두고 보자.’
[어쭈? 오늘 의욕이 넘치는데?]
‘넘쳐야죠. 내가 단순한 신입이 아니라는 걸 오늘 똑똑히 보여 줄 거예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센터장은 물론이고, 자신을 울보라고 놀리는 선배들에게까지 본때를 보여 줄 마음을 먹은 순간이었다.
실제로 자신도 있었다.
‘그때보다 심하진 않겠죠?’
[그때?]
‘외박 때요. 그때보다는 심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소방학교 때 이미 화재 사건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오늘 내가 다른 신입과는 다르다는 걸 확실히 보여 주겠어.’
이미 뉴스에 나올 정도로 규모가 컸던 화재 사건을 경험했던 덕분에, 오늘만큼은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자신이 있었다.
그 때문에 현장에 도착해서도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화르르르르!
“젠장, 불길이 너무 커!”
“어디까지 번진 거야?”
“관창 빨리 연결해!”
불에 탈 것이 많은 시장이라는 취약점 때문에 불길이 심해 선배들의 고함이 울려 퍼졌지만.
“연결 완료했습니다!”
“좋아! 막내.”
당황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움직여 관창을 연결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꼬마는 남아!”
“네?”
“너 남으라고!”
팀장을 대신해 지휘권을 잡은 센터장 권일섭이 이성하의 화재 진압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다.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센터장님!”
“시끄러워! 너는 남아서 석훈이 도와서 펌프차 보조해. 나머지는 진입한다!”
“아니, 그…….”
“진입!”
쏴아아아아!
센터장은 망연자실한 이성하를 내버려 둔 채 팀원들을 이끌고 불길 속으로 들어갔고, 그에 이성하는 부장인 허석훈의 곁에서 분통을 터트렸다.
“젠장!”
자신도 잘할 수 있는데 기회를 주지 않는 센터장의 야속한 처사에 짜증이 치솟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짜증을 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막내야. 짜증 낼 때가 아니야. 잘 보고 기억해 둬라.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네?”
“저거 말이야. 보고 배우라고. 언젠가는 너도 저렇게 할 수 있어야 돼.”
곁에 있던 허석훈 부장의 말이었다.
이성하가 그 말에 앞을 바라봤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두 눈을 부릅떴다.
쏴아아아아아!
“부, 불이…….”
센터장 권일섭의 앞에만 거짓말처럼 불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따라붙어!”
“네!”
“알겠습니다!”
그런 센터장의 옆으로 같이 출동을 나온 녹번 센터 소방관들, 3팀의 팀장 김필주와 사수 오성수가 보조하며 따라붙었고, 잠시 후 이성하는 요구조자를 부축한 채 연기 속에서 빠져나오는 소방관들을 볼 수 있었다.
“구급대!”
“갑니다!”
‘5, 5분?’
[아니, 그보다도 더 짧았어. 그런데 저놈 뭐야? 불이 어떻게 번지는지를 알고 있었어.]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단숨에 요구조자를 찾아서 빠져나오는 소방관들의 모습에 이성하는 기함할 듯 놀랐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어? 그놈 아직 안 나왔다.]
‘네?’
[센터장 말이야. 권일섭.]
아직 센터장이 나오지 않았다.
“티, 팀장님. 센터장님은요?”
다가오는 김필주에게 놀라 센터장의 행방을 물었지만, 김필주는 웃으며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뒤에.”
그 말에 반사적으로 연기가 자욱한 시장 입구를 쳐다봤고, 그곳에서 걸어 나오는 센터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급대!”
“콜록. 콜록.”
센터장은 마지막으로 보이는 요구조자 한 명을 부축한 채 걸어 나왔으며, 이내 헬멧을 벗고는 상황 종료를 알렸다.
“마지막 요구조자야. 더 이상은 없어. 석훈이 너는 안에 수색 끝났으니까 구조대 올 필요 없다고 무전 치고.”
“알겠습니다!”
혹시 모를 요구조자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뒤에 남아서 마지막 수색을 마치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권일섭을 향해 현장의 소방관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센터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센터장님.”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 권일섭에게 다들 경외의 시선을 보내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센터장……?’
센터에서 보던 인물과는 다른 인물이 눈앞에 있는 것에 이성하는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