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9화 (19/235)

<강철 소방대 19화>

19화. 열심히 하지 마라 (3)

이성하로서는 식겁할 순간이었다.

“어어엇!”

끼이이이익!

안 그래도 빨리 달리던 구급 차량이 무서운 속도로 발진한 덕분에 차가 미끄러지는 상황이 발생했던 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초응급 상황이다.]

‘초응급이요?’

[어. 호흡이 멈췄다면 제시간에 도착해서 응급조치를 해도, 제시간에 병원으로 이송해서 임무를 마쳤다 해도 사망까지 이를 수 있어. SIDS(영아돌연사증후군)일 확률이 높거든.]

‘……SIDS요?’

렉스가 말하는 대로 영아의 증상이 SIDS가 맞다면 사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90%가 넘는 초응급 상황이었다.

SIDS는 한 살 이하의 건강한 영아가 뚜렷한 이유 없이 호흡이 멈추는 증상이었다.

평소의 건강 상태나 병력으로는 언제 겪게 될지 예측할 수 없으며, 사후 조사에서도 원인을 확인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증상.

물론 직접 보지 않아 속단할 순 없었지만, 렉스의 판단은 틀린 게 아니었다.

“지휘소. 신고자가 전화를 안 받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 이쪽에서 전화로 의료 지도 중이에요. 지금 보호자가 CPR 시행 중입니다.

“젠장!”

이미 신고 접수를 받았던 지휘소에서도 SIDS로 판명해 의료 지도를 시행하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의 마음가짐도 잔뜩 긴장된 상태로 변한 상황이었다.

‘이런 썅. 왜 하필 SIDS야!’

SIDS는 전 세계 영아 사망 원인의 1위로 꼽히는 질병이었다.

“SIDS로 짐작되는 영아가 있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얼마나 빨리 응급조치를 시행하느냐. 그리고 얼마나 빨리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느냐. 알겠나?”

“알겠습니다!”

소방학교에서 받았던 구급 수업에서도 교수들이 그 어떤 수업보다 강조한 게 영아에게 발생하는 SIDS 응급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도로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길 좀 비켜요!”

빵빵!

“제발! 길 좀 비키라고!”

눈이 오는 추운 겨울이다 보니 교통 체증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SIDS는 무조건 시간이 관건인 증상이었다.

“영광아, 중앙선 넘자.”

“알겠습니다.”

장호철이 결심을 한 듯 비상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를 최고로 키웠고, 그 즉시 지시를 받은 김영광은 핸들을 꺾어 중앙선을 넘었다.

“앞에 전부 비켜!”

빵빵!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야만 영아의 목숨을 살릴 확률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이성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서, 선배님. 저는 뭐 챙길까요?”

“저쪽에 있는 AED(자동심장충격기) 세트랑 응급 박스 챙겨라.”

“알겠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분초를 다투는 일인지를 직감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런 마음 덕분인지 구급차가 목적했던 아파트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6분이었다.

“장비 다 챙겼어?”

“챙겼습니다!”

“그럼 빨리 뛰어!”

구급차가 정차함과 동시에 장비를 챙긴 채 아파트 입구로 뛰어들었고.

“엘리베이터가 14층입니다.”

“그럼 계단으로!”

“알겠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는 층수를 확인하자마자 비상문을 열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빨리빨리!”

탁! 탁! 탁! 탁!

영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더 빨리!”

“알겠습니다! 허억. 허억.”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해 응급처치를 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세 사람 중에서 목적지인 11층에 가장 먼저 도달한 건 이성하였다.

“1103호, 1103호.”

[오른쪽에 있어. 오른쪽.]

“네!”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젊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소방학교의 체력 시험에서 1등을 기록했을 정도로 체력만큼은 확실하게 길러 둔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집에서 이성하는 바싹 얼어 버렸다.

“아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영아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제발! 제발! 숨 좀 쉬어!”

터억! 터억! 터억!

영아를 뒤로 돌려 머리를 아래로 한 채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자신이 감히 이어받지 못할 정도로 영아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팔뚝만 한 작은 크기에, 창백한 영아의 모습에 당황해 이성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제 딸 좀 어떻게 좀 해 주세요! 흐윽.”

[미친놈아, 너 뭐 해!]

뒤늦게 자신을 본 어머니의 울부짖음과 렉스의 고함이 귓가를 울렸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C, CPR부터 해야 되는 거죠?’

그저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도착하면 뭐부터 해야 할지 생각을 하지 않았던 탓에 머리가 새하얘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비켜!”

뒤늦게 도착한 장호철이 이성하를 밀치고는 영아를 받아 들었다.

“부장님, 인공호흡기요.”

김영광이 그 옆에서 응급 박스에서 꺼낸 인공호흡기를 영아의 얼굴에 가져다 댔고, 장호철은 그대로 영아에 대한 CPR에 들어갔다.

영아의 어머니가 머리를 아래로 한 채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응급조치를 취했다면, 장호철은 머리를 아래로 한 건 같았지만 얼굴을 앞으로 돌린 채 중지와 약지 두 손가락으로 가슴을 압박했다.

“숨 쉬어. 제발 쉬어.”

툭! 툭! 툭! 툭!

멈춰 버린 호흡을 돌리기 위한 정식 CPR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면서 이성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성하! 엘리베이터 잡아! 빨리!”

비로소 이성하의 새하얘진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네!”

이성하는 장호철 부장의 말에 바로 달려 나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그러고는 영아의 엄마를 구급차에 태우고 문을 닫았다.

더 이상 넋이 나간 모습은 없었다.

“이성하, 네가 CPR 해. 알았지?”

“알겠습니다.”

제세동기 연결을 위해 잠시 손을 떼는 장호철을 대신해 영아의 가슴에 손을 올렸고, 그 이후로는 전력을 다해 배운 대로 영아의 가슴을 압박했다.

‘미안하다, 아기야. 제발 살아만 다오. 제발.’

툭! 툭! 툭! 툭!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깨닫고 나니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흐윽. 아가. 안 돼, 내 아가.”

옆에서 흐느끼는 아기 엄마의 울음소리가 이성하의 심장을 찔렀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못했다.

“젠장. 반응이 없어.”

제세동기를 연결한 후 엠부(수동식 인공호흡기)를 짜던 장호철이 불안한 음성을 내뱉었다.

삐이이이이.

열심히 엠부를 짜고 있지만 반응이 없는 제세동기 화면에 애가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성하에게는 그런 장호철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야. 아직 아니야.’

영아의 몸이 움직이는 게 느껴져서였다.

툭! 툭! 툭! 툭!

미약하지만 자신이 주는 압박에 맞추어 영아의 몸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손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숨 쉬어. 제발 숨 쉬어!”

잠시라도 압박을 멈추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CPR을 중지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응급실에 도착했다.

벌컥!

“이쪽으로 주세요!”

미리 전달받았는지 응급실 의료진이 구급차 문을 열고는 영아를 전해 받았다.

툭! 툭! 툭! 툭!

의료진들은 그대로 영아를 베드에 올리고는 CPR을 이어 가며 응급실로 들어갔다.

이성하를 비롯한 구급대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고생했다.”

“네, 부장님도요.”

이제 영아의 목숨을 살리는 일은 눈앞에서 전력으로 달려가는 의료진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성하는 못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괜찮을까요?”

“왜? 걱정되냐?”

“네. 만약 아기가 죽으면 어떡해요? 그럼 저 때문이잖아요.”

“너 때문이라고?”

“네. 제가 조금만 더 침착했어도…… 제가 응급조치를 조금만 더 빨리 했으면 호흡이 돌아왔을 수도 있었던 거잖아요. 흐윽.”

자신이 망설였던 몇 초의 시간.

만약 영아가 죽는다면 그 몇 초의 시간으로 발생된 일이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장호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새끼야. 너한테는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어.”

“네?”

“착각하지 말라고. 너 오늘 원래 출동 나올 거였냐?”

“아닙니다…….”

“그래, 인마. 오늘 구급 출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 네가 망설였던 몇 초의 시간은 없는 거나 다름없거든. 예정대로 나와 영광이가 도착한 시간에 응급조치가 이뤄졌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네가 현장에서 넋 빠져 있던 거? 훗.”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장호철이 말을 이었다.

“이미 도착 전부터 그럴 줄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다고요?”

“그래, 인마. 너 출근 첫날 센터장님이 말한 거 기억하냐? 열심히 하지 마라. 열심히 하면 많이 다치고 아프다. 그러니 당분간 뒤에서 구경해라.”

물론 기억하는 말이었다.

“네…… 기억납니다.”

출근 첫날 의욕을 꺾어 버리는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더랬다.

하지만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 그게 무슨 뜻인 거 같냐?”

“뜻이요?”

“그래, 뜻. 설마 센터장님이 의미 없이 말했겠냐?”

“…….”

의미를 묻는 장호철의 물음에 대답을 못 했고, 그런 이성하를 보며 장호철이 웃으며 말했다.

“신입들은 항상 의욕이 넘쳐서 문제거든. 이제 소방관이 되었다는 생각에 사람을 구하겠다는 의욕 말이야. 하지만 의욕만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냐? 오늘 너처럼 돼.”

“저처럼요?”

“그래. 아마 너는 최대한 빨리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을 거야. 내 말이 맞지?”

이성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장호철 부장의 말처럼 SIDS 환자라는 말에 시간이 급하다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 이성하의 대답에 장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야.”

“네?”

“그게 문제라고. 센터장님이 열심히 하지 말고 뒤에서 지켜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구경을 하라는 뜻이 아니야. 한 발짝 물러나서 상황을 파악하란 말이지.”

“……상황이요?”

“그래. 오늘 내가 출동하는 사고는 어떤 사고인지. 도착해서는 내가 뭘 해야 할지. 그리고 만약 요구조자의 목숨이 위험하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해야 할지. 그런데 네가 오늘 한 건 여기서 사고의 종류를 파악한 것밖에 없어. 또 다른 것도 있나?”

그 말에 이성하가 고개를 떨구었다.

“없습니다…….”

“그래, 없어. 그저 의욕만 가득 차서 날뛰었지. 그런데 만약 네가 행동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도착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거야. 아무리 처음 접하는 상황이더라도, 최소한 인공호흡기만이라도 꺼내 뒀겠지. 내 말이 틀리냐?”

“아닙니다…… 틀리지 않았습니다.”

틀리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처음 보는 영아의 모습에 겁이 나서 그동안 배운 걸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생각보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영아의 모습에 바싹 얼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생겨났다.

‘제기랄…….’

현장에서 꼴불견을 보여서?

아니었다.

‘내가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장호철의 말처럼 한 발짝 물러나서 상황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자신이 제대로 된 소방관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장호철의 말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야. 뒤에 한 대처는 좋았어.”

“네?”

“뒤에 한 대처는 좋았다고. 처음 해 보는 영아 CPR을 완벽하게 해 낸 거랑 그렇게 흔들리는 차 안에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CPR을 계속한 거. 그게 쉬운 게 아니거든. 안 그러냐, 영광아?”

“그럼요. 거기다 신입이 하기는 더 힘들죠. 저도 처음에 두 번은 겁먹어서 아무것도 못 했으니까요.”

김영광의 너스레에 장호철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들었지?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라. 오늘 너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했어. 짐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제대로 된 모습도 보여 줬단 말이지. 그거 때문에 아기도 산 거 같고 말이야.”

“네……? 아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황한 이성하의 표정에 장호철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응급실 레지던트가 괜찮댄다. 워낙 자주 봐서 친한 사이거든.”

방금 이송한 영아의 이야기였다.

[장 소방관님. 영아 호흡 돌아왔습니다. 지켜봐야겠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이송할 때만 해도 숨이 돌아오지 않았던 영아가 괜찮아졌다는 문자의 내용이 보였고, 그 문자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듯 응급실의 문이 열렸다.

“소, 소방관님!”

구급차를 타고 같이 왔던 영아의 어머니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한쪽에서 잠시 쉬고 있던 구급대를 발견하고는 정신없이 달려오더니, 이성하의 소매를 붙잡은 채 눈물을 터트렸다.

“고마워요. 흐윽. 소방관님이 없었다면 우리 성미…… 우리 성미는 죽었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으허허허헝.”

아기 엄마는 소중한 자신의 아기를 살려 줘서 고맙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어머니, 괜찮아요. 안 이러셔도 됩니다.”

김영광이 그런 어머니를 말리며 괜찮다고 웃어 보였지만, 어머니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흐윽.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오며 봤던 이성하의 모습을 기억해서였다.

“숨 쉬어! 제발 숨 쉬어!”

어머니인 자신만큼이나 딸이 살기를 바랐던 이성하의 절박했던 모습을 기억한 까닭이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도 따라 울고 말았다.

“흐윽. 감사합니다…… 살아서 너무 다행이에요…….”

자신 때문에 잘못될 뻔했던 아기가 살았다는 안도감에 뒤늦게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이다.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장호철과 김영광이 씨익 웃었다.

“으허허허헝.”

“신고식은 제대로 치렀네.”

“네, 그것도 해피엔딩으로요.”

눈물바다가 되긴 했지만, 무사히 마무리된 상황에 흡족한 웃음을 지었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 길현 구급대. 길현동 372-12번지 연립주택에서 화재 발생. 화재진압대 출동했고, 구급대도 출동 바랍니다.

구급차에 설치된 무전 설비에서 구급대의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화재 신고다.”

“젠장. 쉴 틈을 안 주네요.”

장호철과 김영광이 순식간에 구급차로 올라타며 네비를 찍었고, 이성하 또한 빠른 속도로 뒷좌석에 올라타며 출동 준비를 마쳤다.

“가시죠.”

[눈물이나 닦고 말해.]

“…….”

이에에에에엥!

또 다른 사고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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