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8화>
18화. 열심히 하지 마라 (2)
* * *
이성하의 첫 출동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났다.
“성하 씨, 수고했어요!”
“네! 감사합니다!”
[수고는 무슨 수고냐? 이미 상황 다 끝나 있었구먼.]
‘에이, 그래도 첫 출동이잖아요.’
렉스의 말처럼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이 모두 끝나 있었다.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네. 다행히 근처에 계신 분들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어요.”
출동 명령처럼 차량이 전복된 건 맞았지만 운전자는 이미 밖으로 탈출해 소방관들이 할 일은 없었고, 그 덕분에 길현 센터의 소방관들은 출동한 지 30분도 안 돼 다시 센터로 복귀했다.
“호철아, 너는 운전자분 병원으로 이송하고, 석훈이 너는 CP(지휘소)에다 화재 위험 없다고 보고해. 견인 불러서 후속 처리도 해 달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팀장님.”
“알겠습니다!”
요구조자의 구출은 물론, 사고 차량 또한 화재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어 단순한 후속 처리만이 할 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소득이 없었던 출동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성하는 못 다했던 팀원들의 환영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참, 그러고 보니까 소개도 제대로 못 했네. 김필주라고 해요. 앞으로 팀장님이라고 부르면 돼요.”
“허석훈입니다. 이 팀 부장이고, 앞으로 잘 부탁합니데이.”
“오성수예요. 원래 반장이라고 호칭해야 하는데 나한테는 그냥 선배라고 호칭하면 됩니다. 제가 사수거든요. 흐흐흐.”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인원을 채워 줄 막내가 들어왔다는 사실에 다들 기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길현 센터에 근무하는 소방관의 숫자는 19명이었다.
원래는 18명이었지만 이성하가 들어오며 19명으로 늘어났고, 그 구성은 화재진압대(경방)와 구급대로 이뤄졌다.
펌프차를 타고 다니며 관창을 이용해 불을 끄는 화재진압대와, 구급차를 타고 다니며 부상자를 응급처치 하고 병원으로 이송하는 구급대.
이 중에서 이성하가 배정받은 보직은 화재진압대였다.
보편적으로 소방학교를 졸업하고 교육생들이 가장 많이 배정받는 보직이었고, 현 대한민국의 소방체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보직이기도 했다.
“막내 들어왔으니까 앞으로 근무표 짜기도 편해지겠는데?”
“그럼요. 솔직히 우리 팀만 한 명 적었잖아요. 구급대 선배들도 좋아해요. 드디어 예비 인원 한 명 생겼다고. 흐흐.”
화재진압대로 명명되긴 하지만, 그날 근무 상황에 따라 구급대로도 차출이 가능한 전천후 보직이 경방이었다.
물론 구조대라는 보직이 하나 더 있긴 했지만, 그건 센터에는 없는 보직이었다.
‘그러고 보니 건호 형도 발령지가 은평구였으니까 지금 은평소방서에 있겠네요?’
[그러겠지. 일반적으로 서에서 근무하는 게 구조대니까 말이야.]
구조대는 재난 현장에 출동해 요구조자들을 구조하는 걸 임무로 삼는 보직이라, 서에서 근무하며 센터로 지원 나가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그 때문에 길현 센터에는 화재진압대와 구급대만 있었다.
4명의 화재진압대원과 2명의 구급대원이 한 개의 팀을 이루는 방식으로 총 세 개의 팀이 있었고, 이성하는 오늘 출동을 같이 나갔던 인원이 속한 길현 센터의 3팀이었다.
그렇게 센터에 도착하고.
“성하 씨. 마침 출동도 없을 시간이니까 제가 센터 구경 시켜 줄까요? 그리고 괜찮으시면 말 놔도 될까요?”
“그럼요, 선배님. 저도 그게 편합니다. 말 놓으십쇼.”
“오케이, 그럼 말 놓는 걸로. 하하하.”
후배가 생긴 게 기뻤는지 이성하의 옆에서 싱글거리는 말끔한 외모의 오성수 소방교와.
“성수야, 이따 밥 시킬 때 공깃밥 하나 더 시키는 거 잊지 마래이.”
“에이, 당연히 알죠.”
그런 오성수에게 구수한 사투리를 쓰며 엄지를 치켜드는 곱슬머리의 허석훈 소방장이 있었고.
“하하하. 성수 신났나 보네, 막내 들어왔다고.”
길가에서 마주치면 동네 아저씨처럼 순해 보이는 마른 체구의 김필주 소방위가 있었다.
“이야, 잘생겼네. 성하 씨, 앞으로 장호철 부장이라고 부르면 돼요.”
“김영광이에요. 저도 오늘만 존댓말 하고 내일부터는 말 놓겠습니다. 하하하.”
거기다 환자를 이송하느라 자리에는 없었지만, 현장에서 인사를 나눴던 구급대의 장호철 소방장과 김영광 소방교까지.
[그래도 팀원들이 다 싹싹해서 좋네.]
‘네. 센터장님이 좀 그렇긴 했는데 다른 분들은 다 괜찮네요.’
초면에 까칠했던 센터장과 달리 보기만 해도 유쾌해지는 사람들이 길현 센터의 3팀이었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팀원들의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성수야, 오늘 점심 뭐 먹을까?”
“뜨끈하게 내장탕 어떠십니까? 날씨도 추운데.”
“내장탕 좋지. 혹시 막내 니 내장탕 먹을 줄 아나?”
“네, 잘 먹습니다.”
“딱이네. 팀장님도 내장탕 괜찮으시죠?”
“나야 좋지. 원래 거기에 소주까지 딱 곁들이면 금상첨화인데 말이야.”
“에이, 소주는 이따 퇴근하고 저랑 한잔하면 되잖아요. 그럼 오케이?”
“오케이.”
생각보다 분위기가 너무 가벼워 보여서였다.
‘괜찮으려나…….’
항상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할 소방관치고는 너무나 풀어져 보이는 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성격은 독특할지언정 3팀 소방관들은 길현 센터에서 모두 실력을 인정받는 소방관들이었다.
“허 부장님. 이번 주 토요일 근무 때 한 시간 일찍 나올 테니까 시간 괜찮으시면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이동식 조명등 세팅 방법 가르쳐 주시면 안 됩니까?”
“주말? 좋아. 그 대신 출근하면서 빵이나 사 와.”
“알겠습니다.”
며칠 지나면서 알게 된 1, 2팀 소방관들이 배움을 청할 정도로 베테랑들이었고, 그건 며칠간 출동하며 보여 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출동이다. 뛰어!”
“달려! 빨리 달려!”
“여기는 길현대. 오더 받고 출동 중입니다. 현장 상황 설명 부탁드립니다.”
언제 풀어졌냐는 듯 출동 벨만 울리면 순식간에 달려 나가 소방차를 타고 출동하는 게 3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스피드와 상관없이 3팀의 출동은 이성하의 입장에서는 보람이 없었다.
“성하야, 신고 들어왔다. 출동하자.”
“신고요? 어디요?”
“응암동. 4층 건물인데 옥상 안테나에 벌집이 생겼나 봐. 제거해 달라고 신고 들어왔어.”
“벌집이요?”
“어. 그러니까 빨리 준비하고 따라와.”
“아, 네…….”
들어오는 신고의 대부분이 벌집 제거와 같은 생활 안전 신고였다.
“야, 저기로 도망간다. 빨리 쫓아가서 잡아.”
“네? 개가 뛰는 걸 우리가 어떻게 잡습니까, 선배님?”
“시끄럽고 빨리 쫓아가!”
“아, 알겠습니다.”
때로는 야생 들개를 포획하기 위해 포획망을 든 채 도로를 달리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가관이었던 건 한 시민의 허위 신고로 잠긴 문을 열기 위해 출동한 경우였다.
“아니, 신고자분, 집안에 할머니가 쓰러진 거 같다면서요?”
“하하하…… 미안합니다. 사실 열쇠를 잃어버려서 신고했어요.”
“뭐라고요?”
“아, 어떡해요. 날씨는 추운데 들어갈 방법은 없고. 아무튼 문 열어 주셔서 고마워요, 소방관님들.”
“…….”
집 안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허위 신고로 출동해 문까지 열어 주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짜증이 솟구칠 수밖에 없었다.
[왜? 열 받아 죽겠냐?]
‘그럼. 열이 안 받겠어요? 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소방관이 된 거라고요. 아버지처럼.’
자신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이 된 거지, 고작 잠긴 문을 열어 주기 위해 소방관이 된 건 아니었다.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오성수가 피식 웃었다.
“성하야, 지금이 좋은 거야. 나중에 다 알게 된다.”
“네?”
“너 지금 출동이 시시해서 불만 있는 거잖아. 안 그래?”
“아닌데요.”
이성하의 뾰로통한 반문에 오성수가 장난스레 때리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새끼가 누굴 속이려고 그래? 난 안 그랬는 줄 아냐? 나도 처음엔 그랬어, 인마. 부푼 마음을 안고 소방관이 됐는데 맨날 동물이나 포획하고 그래서 망연자실했거든.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좋은 거야.”
“좋다고요?”
“어. 큰 출동 없이 자잘한 출동만 있는 거. 이거만큼 좋은 게 없어. 안 그래요, 허 부장님?”
“그럼~ 항상 이렇게만 조용했으면 좋겠다야.”
허석훈 또한 그런 오성수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선배들의 말에 이성하는 더 이상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틀린 말 아니다. 소방관으로서 사고가 없는 것만큼 좋은 게 없거든.]
‘끙…….’
이성하 또한 사고가 발생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출동을 한번 해 보고는 싶었다.
‘그때처럼 멋있게 사람을 구해 보고 싶다.’
소방학교 시절 사람을 구하고 김경록에게 인정을 받았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 때문에 순간 켜지는 스피커 소리에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지지직.
‘출동이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출동일까 하는 마음에 기대감을 품었지만, 울리는 출동 벨은 화재진압대의 출동 벨이 아니었다.
뻐꾹. 뻐꾹.
소방서의 출동 벨은 출동하는 팀에 따라 소리가 달랐는데, 첫 출동이었던 자동차나 화재 사고가 비상을 뜻하는 사이렌 소리라면, 뻐꾸기 소리는 구급대의 출동 벨이었다.
“영광아, 준비해라. 가자.”
“네, 선배님.”
구급대의 출동 명령에 3팀 구급대가 일어나 짐을 챙겼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뻘쭘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막내야. 좀 가만히 있어라.”
“그렇게 근질거리냐?”
“죄송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허석훈과 오성수의 핀잔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호철아, 잠깐만.”
소개도 듣지 못해 나중에 이름도 따로 들었던 센터장 권일섭이 출동을 나가는 장호철 소방장을 불렀다.
“왜요, 센터장님?”
“미리 가르칠 겸해서 꼬마 좀 데리고 나가라고.”
“막내요?”
“어. 어차피 구급대는 3인 1조가 원칙이잖아. 어차피 언제 지원으로 붙어야 될지도 모르고 현장 분위기도 익힐 겸해서 말이야.”
이성하를 가리키며 출동에 데리고 가라고 이야기했고, 그에 장호철은 고민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막내야, 가자.”
“저, 저요?”
“그래, 인마. 빨리 나와!”
출동이 급한 것도 있었지만, 막내에게 경험을 쌓아 주라는 권일섭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로서는 지금의 출동이 너무 귀찮았다.
‘하…… 구급대라…….’
아직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첫 출동 때를 떠올려 보면 다친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다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올라탄 구급차 안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 불광동 402-11번지 금강 아파트 105동 1103호, 3개월 된 영아가 호흡이 없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호흡이요?”
- 네. 빨리 서둘러야 해요.
CP의 다급한 음성이 무전을 울리자, 장호철과 김영광의 눈빛이 변했다.
“이성하. 꽉 잡아라.”
“네?”
“꽉 잡으라고!”
부르릉!
사람. 그것도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안 된 영아가 죽음에 처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