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7화 (17/235)

<강철 소방대 17화>

17화. 열심히 하지 마라 (1)

* * *

따르르르릉.

“하아아암…….”

딸칵.

정신없이 울리는 시계의 알람에 이성하가 하품을 하며 눈을 떴다.

“벌써 아침이에요?”

[그래, 6시야. 얼른 일어나서 씻어.]

“음…… 알겠어요.”

렉스의 말에 화장실로 가서 졸린 눈을 비비며 칫솔을 들던 중,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훗, 나 일반인 다 됐네요?”

[그래. 신기해 죽겠다. 졸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게을러지냐?]

소방학교에 있을 때와 달리 후줄근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있는 자신이 보였기 때문이다.

떡진 머리에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바보처럼 웃는 자신이.

물론 이유는 있었다.

86기 교육생들은 졸업식 이후, 첫 출근까지 일주일의 발령 대기 기간을 받았다.

“임용장, 이성하, 지방 소방사시보에 임명해 지방 소방서 근무를 명함. 2013년 12월 23일 서울 시장 강호선.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애초부터 파견 교육으로 중앙소방학교에 갔기에 서울에서 정식 소방관으로서 임용식을 거쳤고, 그 이후부터는 동기들과 못 다한 아쉬움을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야, 진짜 우리 발령받고 나서도 종종 연락하며 얼굴 보는 거다.”

“알았어요, 형. 도대체 몇 번째 말해요?”

“에이씨, 아쉬워서 그러지. 나 진짜 바쁘다고 빼는 새끼 있으면 죽일 거야.”

“하하하. 알았어요. 여기 술 받아요, 술.”

“그래, 술이나 먹자. 건배.”

“건배!”

다들 현장으로 흩어져 얼굴을 보기 힘들다는 사실에,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남을 가졌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렉스의 말처럼 게을러진 건 아니었다.

집이다 보니 좀 편하게 지내긴 하지만 여전히 체력 단련은 빼놓지 않고 하는 중이었고, 그 증거가 지금 일어난 시간이었다.

[야, 심심하니까 나도 데리고 가.]

‘알았어요.’

장갑을 보조 가방에 넣고는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오늘은 어디까지 달릴 거야?]

‘성산대교요? 뭐, 가볍게 10킬로미터만 뛰죠.’

그렇게 나가서 집 근처의 한강공원을 달렸다.

탁! 탁! 탁! 탁!

꾸준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졸업 이후에도 계속해서 단련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말한 것처럼 가벼운 수준은 아니었다.

한강공원에 들어서기까지는 조깅에 가까웠지만, 들어선 이후부터는 속도가 달랐다.

“허억. 허억.”

가쁘게 숨을 몰아쉴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렸고, 그 속도는 주변에서 뛰던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바라볼 정도였다.

“뭐지? 마라톤 선수인가?”

“그런가 본데? 엄청 빠르네. 저 속도로 끝까지 갈 거 같은데?”

순식간에 자신들을 제치고 저만치 앞서 나가는 이성하의 모습에 다들 감탄사를 흘렸다.

하지만 지금의 속도는 이성하에게 그렇게 벅찬 속도는 아니었다.

[할 만하냐?]

‘허억. 허억. 그럼요.’

가쁘게 숨을 내쉬면서도 여전히 그 속도에는 변함이 없었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우쭐거렸다.

[다 내 덕인 거 알지?]

지금의 체력 성장이 렉스로 인해 발생되는 회복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회복력은 이성하가 소방학교에서 지치지 않고 훈련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아무리 지치고 괴로워도 남들보다 빨리 회복해 또다시 훈련할 수 있게 만들어 줬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의 신체는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변모했다.

이성하가 처음 입교했을 당시의 체력 수준을 50이라고 친다면, 지금의 체력 수준은 90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교육생 중에서 중위권에 속하던 체력이 두 달 만에 상위권을 따라잡았고, 졸업 당시에는 상위권에 속하는 정도가 아니라 독보적인 선두 그 자체였다.

“허억. 허억. 성하야, 너 혹시 보약 같은 거 먹냐?”

“네? 보약이요?”

“그래.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따라가느라 죽겠다야.”

특채생인 장건호가 체력 단련이 끝날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었다.

이성하 또한 자신의 변화를 알고 있었다.

‘확실히 몸이 달라지긴 했지.’

뛰다가 문득 든 생각에 러닝을 멈췄다.

[뭐 하게?]

‘잠깐 테스트 좀 해 보게요.’

잠깐 숨을 고르고는 산책로 한편에 있는 철봉으로 다가가 자세를 잡았고, 이내 자신의 몸을 공중으로 끌어올렸다.

끼이익. 끼이익.

무반동의 정자세로 철봉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 개수가 서서히 올라가자,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홀린 듯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쳐다봤다.

“서른셋, 서른넷, 서른다서엇! 후우.”

“…….”

10개만 해도 많이 했다고 할 수 있는 풀업을 무반동으로 30개나 넘게 하는 광경에, 다들 질린 기색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성하로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제가 원래 몇 개 했었죠?’

[입교할 때는 아홉 개였어. 너 정말 늘기는 많이 늘었구나.]

예전의 성적을 떠올려 본다면 몸의 힘이 달라졌다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렉스의 회복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 진짜 열심히 했네요.’

[에이, 내 덕이라니까.]

‘제가 열심히 해서 그런 것도 있죠. 렉스도 저 보고 대단하다면서요.’

엄밀히 말해 회복력에 이성하의 의지가 더해져서 나온 결과였다.

소방학교에서도 훈련광인 장건호가 호감을 가지고 다가왔을 정도로 매일 훈련에 열중했던 이성하였고, 그에 따른 고통을 감수한 것도 이성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렉스 덕분에 발생하는 회복력은 말 그대로 회복만 빠르게 하지, 체력의 한계와 근육통을 없애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렉스도 부정은 안 했다.

[흠…… 그렇긴 하지. 솔직히 나도 놀랐을 정도니까.]

그 또한 이성하가 지금 정도의 체력을 갖추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했던 참이었다.

[내가 원래 예상한 건 1년이란 말이지.]

아무리 회복력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사람의 성장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성하가 중간에 그 예상을 깨 버렸다.

[뭐? 아침과 야간 훈련 시간을 더 늘린다고?]

‘네, 어차피 회복력 있으니까 금방 회복될 거 아니에요?’

아버지의 영상을 보고 힘이 났는지 안 그래도 많던 훈련량을 더 늘려 버렸다.

덜컥.

“아…… 누구야……?”

“이성하잖아…… 얼른 더 자라.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았어.”

“아우, 미친 새끼. 진짜!”

매일 아침, 방 동기들이 진절머리를 칠 정도로 기상 시간보다 빠르게 방을 나섰던 이성하였고, 그 결과가 졸업 전에 있었던 마지막 체력 측정 평가였다.

첫째, 소방 호스의 관창을 잡은 채 목적지까지 달려가 빠르게 잡아당겨 회수.

둘째, 양손에 15kg씩 총 30kg의 케틀벨을 든 채 50m 질주.

셋째, 빠른 사다리 전개.

넷째, 해머로 물체 파괴하기.

다섯째, 농연 훈련을 대비한 밀실의 ㄷ자 관문 통과하기.

여섯째, 70kg 마네킹 끌어서 30m 이동하기.

일곱째, 천장 파괴하기.

여덟째, 중간에 소방 호스 끌어올리며 11층 감시탑 오르기.

당연히 20kg이 넘는 방화복과 장비를 착용한 채 진행되는 평가였으며, 그 마지막 평가에서 이성하는 모든 교관들과 교육생들이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6분 15초. 이성하 1등…….”

“뭐? 6분 15초?”

“네. 이놈 진짜 많이 늘었는데요. 6분 초반대면 김상교 교관님이랑 비슷한 타임입니다.”

첫 체력 평가에서 7등의 성적을 기록했는데, 마지막에는 교육생들 중에서 가장 빠른 타임을 기록해 1등으로 체력 평가를 마쳤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요새 부쩍 운동에 재미를 느끼는 상태였다.

‘몸도 가뿐한데 오늘은 좀 더 멀리 가 볼까요?’

사람에게 있어 안 되는 게 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재미를 잠시 접어 둬야 했다.

[미쳤냐? 첫날인데 딱 맞춰서 가려고? 신입은 항상 일찍 가야 하는 거 몰라?]

‘아, 맞다. 한 30분은 빨리 가야겠죠?’

오늘이 이성하가 발령받은 센터로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앞으로 함께 근무하게 될 동료들과 첫인사를 나누는 날이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운동을 마무리하고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쏴아아아!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돌진해 샤워를 했고.

“어? 아들, 벌써 나가려고?”

“응, 엄마. 오늘 첫 출근이라서 일찍 가려고.”

“밥은 먹고 나가야지.”

“괜찮아. 아침 먹으면 체해.”

이제 막 일어난 엄마와 포옹을 하고는 집을 나섰다.

[어쭈? 아예 처음부터 점수를 제대로 따겠다?]

‘그럼요. 막내는 그래야 이쁨 받잖아요. 흐흐.’

기왕 이렇게 된 거 30분이 아니라, 아예 일찍부터 출근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거리가 멀지 않아 부담이 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성하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마포구의 상수동이었는데, 발령을 받은 센터는 은평소방서에 속한 길현 센터였다.

소방학교 재학 중에 이성하가 1지망으로 적어 낸 발령지가 은평구였고,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은평소방서의 예전 이름이 아버지 이성훈이 근무했던 서부소방서였다.

[기어코 왔구나.]

‘네, 운이 좋았어요.’

워낙 아버지를 존경해, 아버지가 근무했던 은평구에서 첫 근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소방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던 덕분인지 안전하게 1지망 발령지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이성하는 은평소방서에 속한 길현 센터로 들어서자마자 힘찬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근무하게 될 소방사시보 이성하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있었던 근무 지역인 만큼, 시작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다행히 안에 있던 소방관들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라, 신입? 출근보다 빠른 시간인데? 일부러 일찍 온 거예요?”

“네, 일찍 왔습니다. 뭐든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야, 요즘 애들은 역시 다르네.”

“당연히 다르죠. 우리 때랑은 생각이 다르다니까요. 하하하.”

시작부터 싹싹한 막내의 모습은 어딜 가든 이쁨을 받는 법.

하지만 그때였다.

“신입이라…….”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덩치 좋은 중년의 소방관이 있었다.

“패기는 좋은데 열심히는 하지 마라.”

“네?”

“열심히 하면 많이 다치고 아파. 그러니까 당분간 뒤에서 구경이나 해. 알았지?”

씨익 웃으면서 이성하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안으로 들어서는 중년의 소방관. 그런 소방관의 모습에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진짜.’

앞으로 소방관으로서 열심히 하겠다고 의욕을 불태우는 와중에 물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중년 소방관의 어깨에 붙어 있는 계급장은 소방경이었다.

“센터장님, 오셨어요?”

“어. 결재 서류 올라온 거 있냐?”

“네, 자리에 올려놨습니다.”

“오케이.”

인사를 하는 다른 소방관의 호칭처럼 앞으로 이성하가 모셔야 할 이 길현 센터의 센터장이었기에, 이성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직 정식 소방사도 되지 못한 소방사시보 따위가 반문할 직위가 아닌 것이다.

[그렇지. 이게 막내지.]

‘시끄러워요.’

렉스의 말처럼 오늘부터 자신은 이 길현 센터의 막내였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 그에 대한 불만을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이에에에에엥!

요란한 벨 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서 긴박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 긴급 출동. 길현동 사거리에서 차량 전복 사고 발생. 길현동 사거리에서 차량 전복 사고 발생.

교통사고 발생을 알리는 출동 명령이 떨어졌고, 그 즉시 이성하는 잽싸게 달려 나가야 했다.

“막내! 뭐 하고 있어! 빨리 따라와!”

“가, 갑니다!”

근무 첫날부터 길현 센터의 출동 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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