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6화>
16화. 졸업
* * *
수업이 모두 끝났다.
“교육 끝! 안전 구호 준비!”
“악!”
“안전은 나의 생명!”
“안전! 안전! 안전! 수고하셨습니다!”
학생장의 호령에 대강당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모두 김경록을 향해 인사했다.
“수고했다.”
김경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대강당을 나갔고, 그에 이성하 또한 빠르게 김경록을 뒤따라 나갔다.
“형들, 먼저 가세요. 저 일 좀 보고 갈게요.”
“뭐야? 쟤 왜 저래요? 뭔 일 있어요?”
그 모습에 장건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강동훈을 비롯한 방 동기 세 사람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알지 못했던 한 소방관의 모습에 피가 끓어올랐다고 할까?”
“그럼요. 저라도 끓어올랐을 거 같은데요?”
“하하하. 저도요.”
다른 이들은 몰라도 항상 이성하와 함께했던 그들이었기에, 이성훈이란 소방관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말처럼 이성하는 흥분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왜 이야기 안 해 주셨어요?’
[그냥. 네가 안 물어봤으니까.]
‘아, 진짜!’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건 알았어도,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동료들을 보호하다 돌아가셨단 이야기는 이성하 역시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영상을 보며 누구보다 울컥했던 교육생이 이성하였다.
어머니에게도, 렉스에게도 듣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봤기에 감정이 솟구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알려 준 사람이 눈앞에 보였다.
“뭐야? 무슨 용건이야?”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긴 했지만 입가에 살짝 웃음이 어려 있었다.
‘역시 맞았어.’
[그러네. 이 새끼 알고 있었네.]
자신이 이성훈의 아들이라는 걸 알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김경록의 모습에, 이성하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뭘?”
“전부요. 절 신경 써서 가르쳐 주신 것들, 그리고 이번에 절 감싸 주신 것, 오늘 아버지의 영상을 보여 주신 것도요.”
그동안은 몰랐지만, 그간 김경록이 보여 왔던 행동들이 자신에 대한 배려라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경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선배 영상을 보여 준 건 널 위해서가 맞는데, 그 전 것들은 아니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실 난 네가 퇴교하길 바랐거든. 네 아버지랑 자식 낳으면 절대 소방관 시키지 말자고 약속했으니까 말이야.”
“……아버지가요?”
“뭐야? 설마 처음 듣는 이야긴가?”
“네, 처음 듣는데요…….”
이성하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아버지가 그랬다고?’
소방관이 되지 말라는 말은커녕, 오히려 남을 돕는 따뜻한 사람이 되라고 말했던 아버지였다.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김경록이 피식 웃었다.
“참 나, 나한테는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지 자식새끼한테는 말하지도 않았구먼.”
김경록은 아버지를 떠올렸는지 그리움이 깃든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더니, 이내 엄한 표정으로 이성하에게 말을 이었다.
“이성하.”
“네, 교관님.”
“영상을 보여 준 건 네가 보여 준 용기에 대한 칭찬의 의미도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남겨진 자의 슬픔을 깨달으라는 의미에서 보여 준 거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혹시나 이성하가 사람을 구했다는 사실에 자만할까 걱정이 되어 꺼낸 말이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구해야 할 요구조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소방학교에서 수없이 배운 내용이었다.
요구조자는 한 명이 아니다.
위험에 처한 시민을 구하러 들어가는 소방관 역시 요구조자였으며, 그렇게 들어간 자신 또한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못 한다면 수많은 눈물이 흐르게 되고, 그 눈물에는 가족의 눈물이 포함된다.
이미 아버지를 잃어 본 경험이 있는 이성하였기에 누구보다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자 김경록이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것만 잊지 마라. 그게 가장 중요한 거니까.”
다소 무모한 감은 있지만, 선배를 떠올리게 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흐뭇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따스한 분위기는 거기까지였다.
“그나저나 자네,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있나?”
“네?”
“내가 알기로는 오늘부터 교관실과 체육관 청소를 해야 할 텐데 말이야. 시간이 많이 남나 보지?”
그 말에 이성하가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그게…….”
“빨리 가서 석식 마치고 청소를 하는 게 좋을 거야. 만약 오늘 점호 시간까지 청소를 마치지 못할 경우, B반은 오늘 새벽 특별히 불시 출동 훈련을 하겠다. 알았나?”
대답을 들으려는 말이 아니었다.
점호 시간까지 청소를 마치지 못하면 연대책임을 묻겠다는 통보였다.
그에 이성하는 다급히 대답하고는 식당을 향해 달렸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김경록의 말이 장난이 아님을 느낀 것이다.
[진짜 불시 출동하게 되면 너 반 애들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을걸.]
‘저도 알거든요!’
렉스의 말처럼 자신 때문에 불시 출동 훈련이 벌어졌다가는 동기들에게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다.
김경록으로서는 재밌으면서도 아쉬운 모습이었다.
‘진작 아는 체할 걸 그랬나?’
이제 86기 교육생들의 훈련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열심히 해라, 이성하.’
이제는 더 이상 방해가 아닌, 응원을 할 마음이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멀리서 소리를 지르는 저 풋내기가 소방관으로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가 기대가 되었으니까.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현장 실습 주간이 지나고 86기 교육생들이 받게 된 수업은 학과 교육과 구급 수업이었다.
“이거 언제 다 외우죠?”
“그냥 외워, 멍청아. 이거 무조건 따야 돼. 안 그러면 소방관 못 돼.”
“하…… 미치겠네.”
소방관으로서 필수적으로 따야 할 자격증을 위한 공부와.
“영아를 누가 그렇게 다루나!”
“죄송합니다.”
“하임리히법과 CPR의 세기는 달라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위급 상황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응급 구조 기술을 익히는 수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행된 게 관서 실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중앙소방학교 86기, 이성하입니다!”
“오, 예비? 반갑다. 당분간이지만 열심히 해라.”
“감사합니다!”
교육생 전원이 소방학교 근처에 있는 센터로 일주일간 파견을 나갔고, 그 파견은 소방학교 생활의 마지막을 알리는 수업이었다.
“어쭈? 제법인데?”
“하하하. 정말인가요?”
“그래. 이 정도면 바로 발령받아도 쓸 만하겠어.”
발령 전, 소방학교 근처의 센터로 출근해 소방서의 분위기를 미리 체험해 보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모든 교육이 끝이 났다.
“어때? 괜찮은 거 같냐?”
강동훈이 검정 제복을 입은 모습으로 거울 앞에서 폼을 잡았다.
“민우야, 이거 넥타이 좀 제대로 매 줄래?”
“형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까지 넥타이도 제대로 못 매?”
“아, 좀 봐 줘. 나도 봐 줄 테니까.”
도성민과 박민우가 옥신각신하면서도 서로의 넥타이를 봐 줬고.
[야, 너 잘 어울린다야.]
‘그럼요. 어제 하루 종일 다림질했는데요, 뭐.’
이성하 역시 렉스와 대화를 하며 복장을 점검했다.
- 교육생들에게 알립니다. 잠시 후, 오후 두 시부터 86기 교육생들의 졸업식이 거행될 예정이니 모두 대강당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교관의 말처럼, 소방학교 생활의 끝을 알리는 졸업식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성하가 느끼는 감정은 기쁨보다 아쉬움이 더욱 컸다.
‘뭔가 시원섭섭하네요.’
[그렇지? 사실 나도 아직까지 기억나는 게 소방학교 졸업식이거든.]
이제 졸업하면 6개월간 함께했던 동기들과 떨어져야 하는 상황이라, 아쉬워하는 건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도성민 쟤는 얼굴 부어서 어떡하냐?]
‘어제 많이 울었잖아요.’
오늘은 말끔해 보이지만, 지난밤 졸업을 한다고 도성민이 하루 종일 울었다.
“야, 이씨, 갑자기 왜 그래?”
“몰라요. 갑자기 눈물 나요…… 흐윽.”
“형, 저도요. 왜 이러지…… 히잉.”
그 덕분에 강동훈과 박민우도 따라 울었고, 이성하 역시 그 모습에 울컥해 눈물을 흘렸다.
“아, 진짜 왜 울어요! 나까지 울컥하게…… 흐어엉.”
지난 6개월간의 추억이 떠올라 서로들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것이다.
“이성하, 너 똑바로 안 해?”
“아, 열심히 하고 있다니까요!”
“열심히 말고 잘하라고! 새끼야!”
때로는 싸울 때도 있었지만.
“형! 우리가 1등이에요!”
“하하하.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우리가 최고라니까!”
“내가 잘해서 그런 거야!”
“무슨 소리야! 내가 다 했지!”
그보다 웃는 날이 많았던 동기들과의 추억이.
하지만 우는 건 어제까지여야만 했다.
“슬슬 가시죠?”
이성하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가자. 부모님들 기다리시겠다.”
“그래요, 이러다 늦겠어요.”
동기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네 명 모두 당당한 표정으로 졸업식이 열릴 대강당에 들어섰다.
<제86기 신규 임용자 과정 졸업식>
오늘은 더 이상 예비가 아닌 진짜 소방관으로서 계급을 수여받는 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졸업식을 겪어 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모든 소방학교에서는 교육생들이 동아리라는 명목으로 특별활동을 하게 돼 있는데, 그중에 UCC동아리라는 게 있었다.
교육생들이 6개월간 함께했던 과정을 촬영, 편집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었으며, 그렇게 완성된 영상은 졸업식 날 다 같이 보게 돼 있었다.
“졸업식을 거행하기에 앞서 86기 교육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오게 됐는지를 다 같이 보시겠습니다.”
평소와 달리 깔끔한 제복 복장을 갖춘 김경록이 마이크를 잡았고, 그 즉시 대강당에는 86기 교육생들의 졸업 영상이 플레이됐다.
- 86기 교육생으로 입교하게 된 기분이 어때요?
- 엄청 흥분됩니다!
입교 초기 뭘 몰라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는 여자 교육생의 음성을 시작으로.
- 똑바로 합니다. 이것밖에 안 됩니까!
- 아닙니다!
- 그럼 똑바로 하란 말이야!
그들이 지난 6개월간 거쳐 왔던 훈련을 받는 모습들이.
영상의 시작은 유쾌했다.
- 교, 교관님. 잠시만요.
- 빨리 안 올라오면 줄 풉니다.
- 안 됩니다, 교관님. 그러시면 저 진짜 죽어요!
“하하하하. 명규네.”
“맞아. 저 새끼 로프 등반 더럽게 못했지. 큭큭큭.”
교육생들이 직접 찍은 영상이었기에, 중간중간 익살스러운 장면들이 나와 다들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하지만 중간부터 영상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 교관님, 마지막 구보 소감이 어떠십니까?
- 하하하. 더 하고 싶어.
- 아우, 저도 더 하고 싶습니다, 교관님.
교관과 교육생이 함께 뛰며 아쉬움을 표현하는 장면이 나왔다.
- 교관님들 잊지 못할 거예요.
- 야, 이게 뭐야?
- 아쉬워서 준비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교관님들.
- 맞아요. 너무 감사했어요!
교육생들이 그간의 감사함을 담아 케이크를 준비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나왔으며, 그 뒤로 이어지는 건 86기 교육생들의 인터뷰였다.
- 우리 동기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 모두 너무 고생한 거 같아요. 다들 모두 멋진 소방관이 되셨으면 합니다.
- 끝까지 마무리 잘하고 다들 현장에서 몸 건강히 보자. 아무도 다치면 안 된다!
헤어질 동기들의 안녕을 비는 동기가 있었고.
- 여보, 나 이제 끝났어. 6개월 동안 아이 보느라 고생했고, 가서 내가 더욱 잘할게. 사랑해.
- 날 위해 항상 기도해 주시는 엄마,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효도 열심히 할게요.
- 아빠, 저 이제 곧 집에 갑니다. 사랑합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에게 사랑한다 말하는 동기도 있었다.
- 고생했다.
- 엄마, 사랑해.
- 86기, 파이팅!
- 현지야, 나 이제 졸업해. 믿고 기다려 줘서 고마워!
각자가 소방관이 되면서 품었던 마음과 감사함을 표현하는 자리가 소방학교의 졸업식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성하의 영상도 있었다.
- 아버지, 곧 저 소방관 됩니다. 아버지처럼 멋있는 소방관이 되겠습니다. 안! 전!
당근복을 입은 모습으로 멋지게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결국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에이씨. 이건 반칙이잖아.”
6개월간 소방학교에서 보고 들으며 배웠던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귀하는 소방공무원 교육 훈련 규정 제5조에 의거, 중앙소방학교 제86기 신임 교육과정반 교육 훈련을 마쳤으므로 이 증서를 드립니다. 2013년 12월 20일 중앙소방학교장 이경민. 축하합니다.”
“안! 전!”
짝짝짝짝!
학생장이 대표로 졸업증을 수여받는 모습에 모든 교육생들이 박수를 쳤고, 잠시 후 행사가 끝나고 모든 교육생들은 어깨에 소방사시보가 됐음을 알리는 계급장을 달았다.
[축하한다, 이성하.]
‘감사합니다.’
이성하가 드디어 정식 소방관으로서 첫 걸음을 내딛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