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5화 (15/235)

<강철 소방대 15화>

15화. First in Last out (2)

* * *

2001년 3월 4일 새벽 3시 48분.

서대문구 길현동의 2층 다가구 주택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작은 불로 시작됐지만 무개념 시민들의 불법주차로 인해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였고, 그런 불길 속으로 요구조자 수색을 위해 진입했던 소방관 9명이 매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콰콰콰쾅!

불길에 휩싸인 건물 자체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며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아아악!”

“젠장! 한정호!”

“끌어내! 김형수 끌어내!”

건물이 무너지며 튕겨 나온 잔해에, 바깥에서 지원하던 소방관들까지 부상을 입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안 돼…….”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한 소방관이 그 광경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툭.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떨어트리며 잔뜩 충혈된 눈으로 손을 뻗었고, 그 이후엔 무너진 건물로 달려가 미친 듯이 건물의 잔해를 파헤쳤다.

“안 돼! 안 된다고, 이 X끼들아! 으허허헝!”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동료들이 무너진 건물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나가 버린 건 다른 소방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석아! 제발! 현석아!”

“뭐 하고 있어! 삽이랑 굴삭기랑 다 들고 뛰어오란 말이야!”

그들 또한 무너진 잔해들을 맨손으로 정신없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다른 현장을 마무리하고 지원을 오던 길현 1소대에게 전달됐다.

“뭐, 뭐라고……?”

- 무너졌어요…… 빨리 와 주세요…… 제발 빨리 와 줘요, 선배. 센터장님, 김 팀장님, 성훈 선배 모두 건물 안에 매몰됐어요…… 지원이 필요해요…… 지원이 필요하다고요. 으허허허헝!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며 지원을 가던 와중에 동료들이 깔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무전이 전해졌다.

그들 또한 당연히 이성을 잃었다.

“밟아!”

“하지만 앞에 차가…….”

“밟아, 새끼야! 다른 차를 박든 뭐든 상관없으니까 빨리 밟으란 말이야!”

목숨 같은 동료들이 위험하다는 말에 눈이 뒤집히지 않을 소방관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소방관들의 광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매몰된 소방관들을 구해 냈다면 모두가 살 수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대, 대장님. 불법 주차들 때문에 중장비 차량이 들어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밀어 버리고 들어오라 그래! 그냥 다 밀어 버리고 들어오라고 하란 말이야!”

소방차들의 진입을 막는 불법 주차 차량이 여전히 존재해, 잔해들을 파헤칠 중장비 차량 또한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이 닥쳤다.

그 상황에 소방관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필사적으로 잔해를 파헤치는 것뿐이었다.

“성훈아! 어디 있어! 너 어디 있냐고!”

“제발 응답해! 응답하란 말이야! 이 새끼들아!”

팍! 팍! 팍! 팍!

뒤늦게 도착한 1소대가 삽과 해머를 들고 구조에 참가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고, 그런 상황은 소식을 들은 서부소방서 내의 모든 센터들이 지원을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쾅! 쾅! 쾅! 쾅!

제발 살아 달라며.

“어디 있냐고. 이 새끼들아. 제발 응답해! 으허허허헝.”

쾅! 쾅! 쾅! 쾅!

손이 찢어지건 말건 도끼와 해머를 이용해 콘크리트들을 일일이 깨부숴 나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문에 소방관들이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난 아침 7시였다.

공기 잔량이 다 되어 답답했는지 면체를 벗은 모습으로 차가운 시신이 되어서 돌아온 그들.

그 모습에 소방관들 모두가 울부짖었다.

“성훈아……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새끼야!”

“김경수! 안 돼! 너 쌍둥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잖아…… 이렇게 가면 애들은 어쩌란 말이야…… 크흐윽.”

“반장님…… 반장님, 일어나요. 제발요. 으허허허헝!”

목숨보다 소중한 동료들을 지켜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사무치는 서러움을 토해 냈다.

하지만 동료들 중 일어서는 이는 없었다.

“아, 아직 안 죽었어.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해…….”

“길 비켜! 흐으윽. 빨리 길 비키란 말이야!”

아직 포기하지 못한 소방관들의 서러움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여전히 동료들은 말이 없었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구급차에 실려 현장을 떠났고, 소방관들은 그런 현실을 부정했다.

“이런 게 어디 있어! 이런 게 어디 있냐고!”

“으아아아!”

출동 전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지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며칠 후, 그런 소방관들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서울 시청 앞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수천 명의 소방관들이 목숨을 잃은 동료들을 추모하기 위해 영결식장을 찾았으며,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 새끼 이렇게 못 보내. 내 새끼 못 보낸다고. 흐어어어엉.”

“오빠, 이건 아니잖아…… 위험한 데 안 가겠다고 나랑 약속했잖아…… 위험한 곳 절대 안 간다고 약속했잖아. 흐윽.”

“엄마, 아빠 어디 있어? 나 아빠 보고 싶어.”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을 마주하며.

“흐으윽. 혀어엉…… 형 동기잖아…… 다른 사람들만 살리지 말고 형 동기도 좀 살려 내 봐. 제발 좀…… 성훈이 형 살려 내 달라고. 제발! 흐윽.”

“미안하다. 내가 너무 미안해. 지켜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흐으으윽.”

“제기랄. 이 새끼들아! 니들이 그렇게 가면 안 되잖아. 으허허허헝.”

그들 또한 목숨보다 소중한 동료들의 죽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 * *

대강당에 침묵이 맴돌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눈물의 묵음이었다.

“끄으윽.”

“흐윽.”

소리만 크게 내지 않았을 뿐 모든 예비 소방공무원들이 눈시울을 붉혔고, 그중 이성하는 주체 못 할 감정에 그대로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아빠…….’

[그래. 맞아. 저때였지…….]

씁쓸해하는 렉스의 말처럼.

“성훈아! 어디 있어! 너 어디 있냐고!”

“흐으윽. 혀어엉…… 형 동기잖아…… 다른 사람들만 살리지 말고 형 동기도 좀 살려 내 봐. 제발 좀…… 성훈이 형 살려 내 달라고. 제발! 흐윽.”

영상 속 소방관들이 몇 번이나 언급한 이름이 자신의 아버지 이성훈이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상 속에서 그렇게나 울부짖었던 사람이 김경록이었다.

“모두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길현동 화재 참사. 내 소중한 동료들을 빼앗아 갔던 사고가 지금 교육생들이 본 영상입니다.”

영상에 나왔던 모습보다 조금 더 나이 든 모습으로 김경록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이성하를 비롯한 모든 교육생들이 붉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길현동 화재 참사.

대한민국에서 소방관이 되는 길을 선택한 이라면 무조건 알아야 할 사건이 지금 영상으로 본 길현동 화재 참사였다.

하지만 기사로 읽는 것과 생생한 영상으로 보는 것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었다.

현장에 있는 소방관 중 한 명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사고 현장을 녹화하게 돼 있는데, 지금 본 영상이 그때의 영상을 다큐로 만든 자료였다.

그전에도 뉴스로 짤막하게 보도된 적이 있긴 하지만 풀 버전을 보는 건 예비 소방공무원들로서는 처음이었고, 그건 이성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빠…….’

이야기로만 듣던 아버지의 마지막 현장을 생생하게 처음으로 직면하니 자연스레 눈물이 흘러나왔다.

김경록 또한 영상을 보며 감정이 흔들렸는지 눈시울이 약간은 붉어진 상태였다.

‘형 아들이 있어서 그런가? 나도 늙었나 봐, 성훈이 형.’

수십 번도 더 봤던 영상이지만, 젊은 이성훈을 쏙 빼닮은 이성하가 눈앞에 보이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이 영상을 교육생들에게 보여 주는 건 자신의 감성팔이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모든 중앙소방학교의 교육생들은 매년 이 영상을 보며 현장의 무서움을 몸에 익힙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현장의 위험함과 소중한 동료들을 잃었을 때의 감정,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무서운 여파까지.”

원래 교육생들이 소방관이 되어 겪어야 할 여러 감정을 미리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기 위한 수업 과정 중 하나가 지금의 시청각교육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미공개 영상도 하나 더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음은 길현동 화재 사건 당시 내부를 찍었던 캠코더 영상입니다.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현장에서 목숨을 걸었던 고 이성훈 소방관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 행동을 본받으라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만큼은 교육생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오늘 특별히 공개하겠습니다.”

이성하를 또렷이 보며 하는 이야기였고, 그렇게 암전이 된 후에는 뒤돌아 눈물을 삼켰다.

‘진짜 형을 똑 닮았더라. 그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 구하겠다며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게 말이야.’

이성하의 말을 듣고 자신이 잊고 있었던 현장의 마음가짐을 다시 깨닫게 된 김경록이었다.

“선배, 무리예요. 도대체 어디까지 들어가려고 해요?!”

“무리가 어디 있어, 이 새끼야.”

“네?”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그게 소방관이다.”

씨익.

자신이 왜 선배인 이성훈을 가장 존경했었는지를.

‘X발. 부자가 똑같아 가지고 말이야. 하하하.’

이성하의 말을 듣고 다시 떠올려 버린 그 추억에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었다.

그리고 영상이 시작됐다.

화르르르르!

“1층 아무도 없습니다!”

“이쪽도 없습니다!”

“창가도 오케이! 사람 출입 흔적 없습니다.”

싸구려 방화복이 눌어붙어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불길 속에서 요구조자를 수색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2층으로 진입할 테니까 성훈이랑 관철이, 명호는 1층 한 번 더 확인해라.”

“네, 대장.”

“네!”

“알겠습니다!”

1, 2층으로 나뉘어 혹시라도 사람이 있는지 수색하는 모습.

그런데 잠시 후, 캠코더를 들고 있는 듯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던 소방관이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붕괴!”

“뭐?”

“무너진다고 새끼야!”

반문했던 소방관 또한 상황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대장님, 나가야 합니다! 붕괴 현상입니다.”

캠코더를 든 소방관의 고함에 곧바로 무전기를 잡고 고함을 질러 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전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지지직. 지지직.

가끔 현장에서 일어난다는 무전기의 먹통이 그때 발생한 듯 보였고, 그에 화면은 바닥을 비춘 채 정신없이 흔들렸다.

창문을 뛰어넘으며 2층의 계단을 올라가는 듯했다.

“니들도 빨리 나가!”

급박한 순간인 듯 동료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목소리였고, 그에 욕설도 들려왔다.

“야, X발!”

2층으로 올라간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단독으로 2층을 향해 뛰어 올라갔던 것이다.

하지만 소방관은 동료들을 구하지는 못한 듯했다.

“붕괴입니다! 당장 나가야 돼요!”

동료들을 만난 듯 다급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긴 했지만, 그 즉시 폭음과 함께 화면이 꺼져 버렸다.

콰콰콰쾅!

처음 봤던 영상의 내용처럼 불길에 휩싸인 건물 자체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영상이 끝난 건 아니었다.

“여기야! 여기 있어!”

밖에 있는 카메라로 찍었는지 매몰된 소방관들을 발견해 구조를 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제발! 제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다급하게 돌무더기를 치우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나왔으며, 그곳에서 발견된 건 총 네 명의 소방관이었다.

그중 한 명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세 명의 동료를 보호하겠다는 듯 자신의 몸으로 세 명의 소방관을 덮은 모습이었으며, 그 소방관의 몸에는 부서진 캠코더가 달려 있었다.

“이성훈…….”

“이성훈, 이 새끼야! 으허허헝.”

매몰된 이후에도 한 명의 동료라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영상이 종료됐다.

이번에도 대강당에는 침묵이 돌았지만 전의 침묵과는 그 결이 달랐다.

“하…….”

처음의 침묵이 안타까운 사망에 대한 침묵이었다면, 이번의 침묵은 동료들을 구하려 했던 한 소방관에 대한 경외에서 나오는 침묵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김경록이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영상은 길현동 화재 참사 당시 내부 상황을 찍은 영상입니다. 나에게는 선배가 되는 고 이성훈 소방관이 동료들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2층으로 단독 진입했고, 아쉽게도 그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망자를 한 명 더 늘리는 상황이 발생한 거죠. 하지만 그의 진입은 잘못된 게 아니었습니다…….”

김경록이 그때가 생각났는지 잠깐 눈을 감았다 말을 이었다.

“그는 옳았지만 우리가 실패했습니다. 어떻게든 우리가 시간 내에 구해 줄 것이라고 믿었는지 세 명의 동료들을 자신의 몸으로 덮은 상태였으며, 그 덕분에 밑에 깔려 있는 동료들의 사망 원인은 질식사였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김경록이 이어 말했다.

“시간 내에 구조를 못 한 우리의 잘못이었고, 그 때문에 우리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빨랐다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나 하고. 이 영상을 보여 드리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항상 저는 여러분들에게 냉철한 판단을 유지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게 현장에서 사람을 구해야 하는 소방관의 필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떤 상황에서라도 요구조자가 있다면 움직여야 한다는 마음 또한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게 없다면 사람을 살리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이상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외면해 왔던 소방관의 마음가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First in Last out.

훈련 탑에 적혀 있어 매일같이 바라보면서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그 마음가짐을 전하기 위해서였고, 그 상대는 당연히 이성하였다.

‘잘했다, 이성하.’

아직 햇병아리긴 하지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이성하에게 칭찬을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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