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4화 (14/235)

<강철 소방대 14화>

14화. First in Last out (1)

* * *

‘흠…… 여기가 어디지?’

이성하가 힘겹게 눈을 뜨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김 간호사, 여기 이 환자 CT 좀 찍어 줘요.”

“환자분, 처치실로 옮길 거예요. 잠시만 계세요.”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의사들과 간호사의 모습으로 봐서는 병원인 듯 보였고, 이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빨간 불덩이에 피식 웃고 말았다.

[야, 이 새끼야. 너 제정신이야?!]

‘화 많이 났어요?’

[그럼 안 나냐? 어느 일선 소방관이 인위적으로 백드래프트를 만들어? 네 아버지도 그런 적은 없었어, 이 자식아!]

자신이 깨어났다는 걸 알아챈 렉스가 바로 잔소리를 퍼부어 댔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것밖에 없었잖아요.’

[뭐?]

‘그거 아니었으면 다 죽었을 거예요. 저도, 그리고 그 남편분도.’

그때의 비정상적인 연소 확대를 생각한다면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밖으로 나와서도 아직까지 진입로를 뚫지 못한 소방관들의 모습에 ‘내가 옳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렉스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그래. 그게 최선이긴 했지.]

자신은 떠올리지 못했지만, 이성하가 떠올린 방법이 최선이었다.

요구조자는 물론, 이성하 또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하지만 그렇다고 그 방법이 옳다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네 꼴을 봐. 그게 할 말이야?]

재생력 때문에 조금은 나아졌지만, 온몸 곳곳에 화상 자국이 있었다.

끄으으으.

그 당시 맹렬한 불길에 신음을 흘리던 이성하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그에 렉스가 다시 한번 잔소리를 내뱉었다.

[인마, 난 네 보호자야. 널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이성훈에게 날 창피하게 만들려고 작정했냐!]

이번에야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었지, 폭발의 세기가 조금만 강했어도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너 어쩌면 퇴교당할지도 몰라.]

‘네?’

[네가 오늘 룰을 몇 개나 어겼는지 아냐? 너 소방학교에서 퇴교당할지도 모른다고.]

오늘 이성하가 벌인 행동은 소방관, 특히 예비 소방관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장의 위험을 알고 있는 소방관이 아무 장비 없이 불길이 이는 건물로 진입했다. 그것도 팀원과 함께한 것도 아닌 단독으로.

하지만 이성하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이, 설마요.’

[설마?]

‘네, 그래도 사람을 구했잖아요. 인명 피해도 없었고요.’

천진난만한 이성하의 말에 렉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넌 소방관이 사람만 구한다고 다 끝나는 줄 아냐?]

‘네?’

[에휴, 마침 나오네. 네 왼쪽이나 보고 이야기해.]

신경질적인 렉스의 말에 이성하가 옆을 바라봤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TV가 보였고, 그 TV에서 나오는 내용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왜? 이제 이해가 가냐?]

‘저, 저게 왜 뉴스에 나와요?’

[가스 폭발인데 그럼 안 나오겠냐? 멍청한 놈아!]

뉴스에서 자신의 탈출 장면이 영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콰콰콰쾅!

- 잠깐만요! 저기!

- 어? 진짜다. 사람이야!

- 이, 이성하?

자신이 봐도 위태로워 보이는 탈출 장면이 영상으로 나오자, 이성하는 슬쩍 고개를 돌려 현실을 외면했다.

- 다행히 해당 소방관과 건물에 있던 40대 남성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금은 무모한 구조 방법에 더 나은 방법은 없었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KBC 뉴스 박대기입니다.

‘X됐네…….’

이성하는 렉스의 말처럼 가볍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 * *

이성하가 병원에 입원한 시간은 이틀이었다.

화상 부위는 회복력 덕분에 심하진 않았지만 이송 당시의 일산화탄소 중독 증상으로 안전을 고려해 이뤄진 조치였고, 그렇게 퇴원한 이후엔 소방학교로 바로 복귀했다.

즐거운 복귀 과정은 아니었다.

‘가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떡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지.]

‘정말 퇴교 처분까지 내리진 않겠죠?’

[글쎄다. 뉴스가 너무 시끄러워서. 나도 솔직히 이건 잘 모르겠어.]

‘…….’

하도 뉴스에서 연일 이번 가스 폭발 사건에 대해 보도하다 보니, 정말 소방학교에서 그냥 넘어갈 거 같지 않아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이성하 교육생. 이쪽으로 따라오도록.”

“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교장실로 간다.”

“교, 교장실이요?”

“그래, 인마. 학교장님이 너 오면 데려오라고 하셨어.”

“…….”

뉴스로 보도된 덕분인지 도착하자마자 교장실로 불려 가는 상황에 두 눈을 질끈 감긴 했지만, 그렇게 만나게 된 학교장은 크게 문책하지 않았다.

“이성하 교육생, 몸은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래요. 그나저나 이번에 일 한번 제대로 치렀다고요?”

“아, 그게…….”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일단 인명 피해는 막았으니까요.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벌로 한 달간 교관실과 체육관 청소를 시키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나가 보세요. 나중에 만나면 꼭 고맙다고 이야기하고요.”

교장은 벌을 주기는 했지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이성하는 밖으로 나와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고 이야기하라고?’

[그러게……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마지막 말도 그랬지만, 단순히 청소를 하는 걸로 상황이 마무리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사고는 모든 뉴스에서 다뤄질 정도로 중요한 사항이었다.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 재난에 가까운 화재 사건은 더욱 그랬고, 그런 재난 상황 중에서도 고위험에 속하는 가스 폭발은 관내의 해당 공무원들이 모두 문책받을 정도로 중요한 사고였다.

<가스 폭발. 무엇이 원인이었나?>

<길가에 무방비하게 방치된 LPG 가스통들.>

<화마(火魔) 위험에 노출된 천안 시내.>

뉴스에서 수없이 언급했던 것처럼 잘못된 행정 처리로 발생하는 사고가 바로 가스 폭발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소방학교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교육직이라고는 하나 그들 또한 소방관인 건 틀림없었고, 소방학교의 교육생이 이번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이 된 상태이니 말이다.

결과는 좋았지만 뉴스에서 부정적으로 언급해 필수적으로 문책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건.

하지만 소방학교에서는 정말로 그 이상의 책임을 이성하에게 묻진 않았다.

“뭐야? 이성하? 몸은 다 나았어?”

“네, 교관님. 이상 없습니다.”

“운도 좋은 새끼. 그래, 들어가 봐. 혹시 모르니까 무리는 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생활관에 도착해서 만나게 된 교관 또한 별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성하에게 난리를 치는 건 방 동기인 강동훈, 도성민, 박민우 세 사람이었다.

“너 이리 와, 이 새끼야.”

“하하하…… 형, 그게…….”

“웃어? 성민아, 저 새끼 잡아.”

“혀, 형. 나 방금 퇴원.”

퍽!

“아! 아파요!”

“아프라고 던진 거야, 인마!”

“퇴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다시 입원하게 해 줄까?”

가차 없이 베개를 던진 것도 모자라 세 사람 모두 잔뜩 화난 얼굴로 으르렁거렸고, 이성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나 같아도 화나겠다, 인마.]

잊고 있었지만, 그 당시 건물로 뛰어드는 자신에게 불같이 화를 내던 동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이성하로서도 혼자 들어가고 싶어 들어간 게 아니었다.

‘같이 들어갔으면 누구 하나 크게 다칠 상황이라 그런 건데 진짜 너무하네.’

렉스의 보호를 받는 자신과 달리, 동료들은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혼자 들어간 것이었지만, 그걸 말할 순 없었다.

[그럼 애들한테 이야기하든가. 퍽이나 믿어 주겠다. 큭큭큭.]

‘끄응…….’

렉스의 비웃음처럼 말해 봤자 오히려 그 화만 돋울 게 뻔했다.

난 정령의 보호를 받아서 괜찮다고, 다쳐도 남들보다 회복이 빠를 거라는 말을 누가 믿는단 말인가.

그 때문에 이성하는 한참을 동기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형, 음료수 사 왔는데, 드실래요?”

“안 먹어, 새끼야.”

“넵!”

[거참, 쌤통이네.]

‘젠장…….’

동기들의 쌓인 화를 풀기 위해 자연스럽게 구박데기 노릇을 하게 된 상황.

그런데 그때였다.

- 86기 교육생들에게 알립니다. 오늘 오후에 있을 실습 훈련을 취소하고 대강당에서 시청각 수업을 할 예정이니, 교육생들은 두 시까지 대강당으로 집합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오후에 있을 훈련 내용을 변경하는 교관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갑자기 웬 학과 수업? 너희들, 뭐 들은 거 있냐?”

“아니요. 아까 현주도 별말 없었는데.”

“저도 못 들었어요. 실습을 취소할 인간들이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갑작스러운 수업 변동에 다들 의아한 표정들을 지었지만, 이성하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뭐 어때요? 안 그래도 운동장도 젖었던데 실습보다는 학과 수업이 낫잖아요. 어서 나가시죠, 형들.”

“이거 안 놔? 우리 화 안 풀렸거든.”

“알았어요. 형, 일단 나가요. 두 시까지 시간 얼마 안 남았다니까요.”

[운도 좋은 새끼.]

‘흐흐흐흐.’

지금처럼 방에 있는 것보다는 밖으로 나가서 수업이라도 같이 듣는 게 동기들과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좋다고 생각한 이성하였다.

그런데 대강당 앞에서 지금으로선 가장 피해야 할 김경록을 마주치고 말았다.

[야, 김경록이다.]

‘이런 썅…….’

“이성하?”

이성하를 보자마자 이름을 말하며 성큼성큼 다가왔고, 그에 이성하는 저도 모르게 바짝 얼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게 왜 그렇게 건방진 말을 지껄였냐?]

‘아니, 그때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니까요.’

First in Last out.

병원으로 이송 당시 자신이 내뱉은 그 말에 김경록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경록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상태는 괜찮나 보군. 들어가서 얼른 앉아라.”

그저 이성하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대강당으로 먼저 들어갔고, 이성하 또한 대강당으로 들어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고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안 때리지?]

‘그러게요. 저도 뺨 한 대는 맞을 줄 알았는데…….’

평상시 김경록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바로 뺨을 날려도 시원치 않을 게 자신의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강동훈이 피식 웃었다.

“맞다. 넌 모르겠구나. 김경록이 너 감싸 준 거.”

“교관님이 저를요?”

“어. 너 다시 이야기하지만, 그때 네가 벌인 행동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는 알지?”

“알죠…… 안 그래도 병원에 있는 동안 뉴스에 나오는 내용 보고 식겁했으니까요.”

머쓱해하는 이성하의 말에 강동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 때문에 소방학교도 꽤 시끄러웠어. 위에서 높은 분이 오셔서 학교가 발칵 뒤집혔었거든.”

“노, 높은 분이요?”

“어. 본부에서 직접 나오셨댄다. 경기소방재난 본부장님.”

그 말에 이성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기재난 본부장님이요?”

중앙소방학교의 소재지가 충남에 속해 있어 담당 본부장이 따로 있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재난 상황을 책임지는 4명의 소방정감 중 한 명이 경기소방재난 본부장이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래, 재난 본부장님. 그런데 그 재난 본부장님을 상대로 김경록 교관님이 한바탕했단다.”

“에엑?”

“뉴스에서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 댄 것 때문에 너에 대한 문제도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더라고. 그것도 퇴교에 관련된 건으로. 그런데 그걸 막은 사람이 김경록이래.”

“진짜예요? 교관님이 진짜 그랬다고요?”

“어, 방법은 과격했지만 자신이었어도 그 방법밖에 없었을 거라고, 상을 못 줄지언정 벌은 주면 안 된다고 하셨대. 그 말이 받아들여져서 네 문제는 그냥 넘어간 거고 말이야.”

이성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지, 진짜일까요…….’

[이 새끼 뻥카 아냐? 그 김경록이 그랬다고?]

아무리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한들 김경록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쌀쌀맞은 건 여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맞아. 나도 완전 깜짝 놀랐지. 설마 그 김경록 교관님이 그랬을 줄 누가 알았겠어?”

“어? 건호 형?”

“그래. 몸은 괜찮냐?”

뒤늦게 나타난 다른 조의 장건호 또한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그러다 보니 이제야 이해가 가는 게 있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뭘?]

‘학교장님이 그랬잖아요. 나중에 만나면 고맙다고 말하라고.’

처음 복귀했을 때 꼭 고맙다고 말하라며 웃는 학교장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에 미치는 생각은 하나였다.

‘설마 알아챈 거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런 거 같은데?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질 않잖아.]

김경록이 자신이 이성훈 소방관의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자, 주목. 오늘 학과 수업은 제가 진행합니다. 갑작스럽게 변동된 수업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교과 과정 중 하나이니 꼭 집중하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넵!”

수업 시간이 되자, 김경록이 수업의 시작을 알리고는 한쪽으로 물러났다.

시청각 수업이라고 미리 공지한 것처럼 스크린이 내려오며 대강당의 조명이 꺼졌고, 그렇게 흘러나오는 영상에 이성하가 당황해 김경록을 쳐다봤다.

‘설마…….’

[맞아. 길현동 화재 사건이야.]

영상은 12년 전 이성하가 아버지를 잃었던,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 참사로 불리는 길현동 화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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