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3화 (13/235)

<강철 소방대 13화>

13화. 외박 (3)

* * *

한 무리의 소방차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이에에에엥!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로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리는 상태였지만, 안에 타고 있던 소방관들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무전에만 귀를 집중했다.

“상황실 서. 여기 두정 센터입니다. 가스 폭발 현장 도착까지 3분 남았습니다. 변동 사항 있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삐빅.

출동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다.

다행히도 CP(지휘소)가 알려 준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 건물 안 사람들은 모두 대피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모두요?”

- 네. 첫 신고자였던 예비 교육생이 다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부상자는 있어도 사망자는 없는 상태고,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확인해서 대피시켰다고요.

“후, 다행이다.”

“그러게요. 확인은 해 봐야겠지만 보고대로라면 더 이상 인명 피해는 없을 거 같습니다.”

사망자는 물론 추가 피해도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는 옆에 앉은 소방관에게 감사를 표했다.

“선배님, 이거 저희가 오늘 제대로 신세졌는데요?”

“신세는 무슨. 병아리들이 그냥 운 좋게 배운 대로 한 거지.”

“하하하. 이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 전 출동도 선배님 덕분에 부상자를 빨리 구한 거 아니겠습니까?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소방관은 다름 아닌 중앙소방학교의 교관 팀장 김경록이었다.

“시답잖은 소리. 너희들이 잘한 거지, 내가 한 게 뭐가 있어?”

자신은 한 게 없다며 일축했지만, 김경록의 공을 이 차에 탄 소방관들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에이, 선배님 아니었으면 그 사고 차량 운전자 죽었을 겁니다.”

“맞습니다. 선배님이 운전자 꺼내자마자 차량이 바로 폭발했잖아요. 저 그때 정말 식겁했다니까요.”

예비 소방관들의 대처를 떠나, 이전 출동 장소인 교통사고 현장에서 누구보다 빨리 움직여 사람을 구한 소방관이 바로 김경록이었다.

원래 김경록은 현장에 출동할 일이 없는 소방관이었다.

예전엔 구조대로 현장에 있긴 했지만, 현재는 후학 양성을 위해 중앙소방학교에 교육직으로 근무하는 상태였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중앙소방학교가 교육생들에 대한 교육만 전담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 또한 소방관이었기에 소방학교 근처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지원을 나가는 경우가 있었고, 이번이 그 경우에 속했다.

“광식아, 이번 보고서에 중앙소방학교 도움이 컸다고 적어서 올려라.”

“알겠습니다, 대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방금 전 발생했던 교통사고는 두정 119센터와 중앙소방학교의 합동 출동으로 해결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중앙소방학교 소방차를 타고 돌아갔어야 할 김경록이 두정 센터 소방차에 탄 채로 다음 사고 현장인 가스 폭발 상가로 가고 있었다는 것.

“김 팀장님, 저희 쪽 다음 출동 신고자가 소방학교 교육생이라는데요?”

“뭐?”

“두정동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했는데 신고자가 소방학교 교육생이랍니다. 이름은 도성민이고요.”

“도성민? 이봐, 김 대장. 나도 같이 갈 수 있겠나?”

“네? 현장을요?”

“그래. 우리 애들이잖아. 걱정돼서 말이야.”

교통사고 현장을 마무리하고 들려온 신고 접수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정 센터에 동행을 요청했던 거였고, 그 이유는 당연히 도성민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이성하 이놈이 혹시 사고라도 치는 건 아니겠지?’

그가 알고 있는 도성민이라는 이름이, 그가 그토록 걱정하는 이성하의 동기 중 한 명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듯했다.

‘도성민이라는 말에 따라오긴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나.’

CP의 무전대로라면 더 이상 인명 피해 없이 해결될 상황처럼 보였으니까.

그런데 도착한 현장에서 이성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뚫어야 해. 물 더 뿌려!”

단순히 화재 진압을 위해서라 보기엔 입구 쪽만을 악착같이 진압하는 교육생 셋의 모습에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에게 듣게 된 현장 상황에 김경록은 굳은 얼굴로 장비를 챙겼다.

“선배님, 뭐 하시려는 겁니까?”

“나도 들어간다.”

“네?”

“저 안에 교육생이 있어! 교육생이 있다고!”

화르르르르!

저 맹렬한 불길 속에 선배의 아들이 있었다.

* * *

한편, 아무 보호 장비 없이 뛰어들었던 이성하는 간신히 6층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촤아아아악!

소방 호스는 올라오는 도중에 던져 버렸는지 소화기를 분사하며 전진하고 있었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안타까운 음성을 흘렸다.

[안 아프냐…….]

촤악! 촤아아아악!

[안 아프냐고 묻고 있잖아!]

듬성듬성 녹아 버린 판초의 사이로 이성하의 몸 곳곳이 화상으로 엉망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렉스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파요. 그런데 어차피 낫는다면서요.”

[뭐?]

“죽지만 않으면 낫는다면서요. 그러면 가야죠. 제가 아니면 누가 갑니까.”

이성하의 각오가 느껴져서였다.

“소방관입니다! 응답하세요! 아저씨! 응답하세요!”

혹시나 근처에 요구조자가 있을까 싶어 소리치는 모습엔 어떻게든 사람을 구하겠다는 각오가 어려 있었고, 그 모습은 렉스가 익히 알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과 같았다.

[이성훈…….]

자신과 수년을 함께했던 옛 동료가 그 자리에 있는 듯했다.

그랬기에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하…… 아버지나 아들이나 똑같구먼.]

이성하에게서 이성훈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에 허탈한 웃음을 흘렸고, 이어지는 건 그 각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였다.

[오른쪽 위에 불길만 잡아!]

‘네?’

[저 지점만 잡으면 돌파구가 열린다. 망설이지 말고 빨리 움직여!]

렉스 역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도움을 줄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성하로서도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네!’

이제야 오롯이 의견이 하나로 일치된 순간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불길을 뚫고 나가는 이성하의 전진에 속도가 붙었다.

[여긴 돌아서 가자. 이 너머는 죄다 불길이야. 못 들어간다.]

‘네!’

렉스의 조언 덕에 가장 효율적인 진입로를 찾아 길을 뚫었고, 그렇게 창고에 도착해서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아저씨!”

아주머니가 이야기했던 남편이 정말로 창고에 고립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발견한 남편의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허억. 허억.”

고통스러운 숨소리를 흘리는 모습이었다.

‘다리가…….’

[부러졌네. 아마도 폭발 당시 선반이 무너지면서 깔린 거겠지. 그 때문에 탈출도 못한 거고 말이야.]

거기다 의식 또한 또렷하지 못했다.

‘일산화탄소 중독 현상도 있는 거 같네요.’

[당연한 결과야. 의식을 잃은 상태였잖아. 무방비하게 연기를 들이마신 거겠지.]

물에 적신 수건으로 최대한 연기의 흡입을 자제한 자신과 다르게, 과도한 일산화탄소 중독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주방의 수건에 물을 묻혀 남편의 얼굴을 감싸고는 몸을 일으켜 부축했다.

“끄으으으…….”

“아저씨, 나가야 돼요. 빨리 안 나가면 죽을지도 몰라요.”

조금만 지체되어도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게 일산화탄소 중독 현상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못했다.

화르르르르!

방금 지나왔던 진입로가 완전히 불길에 휩싸여 버린 것이다.

반대편을 쳐다봐도 마찬가지인 상황에, 이성하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욕설이 흘러나왔다.

[다 타기 좋은 것밖에 없구먼.]

“X발.”

가벽으로 방을 나누는 고시원의 특수성 때문에 화재의 연소 확대가 엄청난 속도로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화르르르르!

지금 상태로 봐서는 가만히 있다가는 타 죽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결심했다.

“창문을 깨서 탈출하죠.”

[뭐?]

“저 창문이요.”

정면에 보이는 창문을 깨어 자력으로 탈출할 것을.

렉스 입장에선 당연히 기겁할 소리였다.

[미쳤어? 너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지금처럼 불길이 심한 상황에서 창문을 깼다가는, 갑작스러운 공기 유입으로 불꽃이 역류해 폭발하는 백드래프트 현상이 발생할 테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지금으로선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요. 이것밖에 없어요.”

괜한 오기로 말하는 게 아니었다.

백드래프트 현상은 소방학교에서 교육생들에게 화재의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게 하는 훈련 과정 중 하나였다.

당연히 그 무서움은 익히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원리 또한 잘 알았다.

‘백드래프트는 바로 터지는 게 아니야.’

백드래프트는 폭발이 일어나기 전 공기가 유입되는 데 몇 초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 특성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한 일이었고, 마침 창고로 사용하던 곳이라 그런지 탈출에 사용하기 좋은 밧줄도 있었다.

“아저씨, 잠깐만 있어요.”

이성하는 정신을 잃은 남자를 다시 창고로 밀어 넣고는 문을 닫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쇠파이프 하나를 집어 두꺼운 창문 앞에 자리했다.

“렉스? 갑니다.”

[이런, 썅!]

결단을 내린 이상 주저할 것 없다며 그대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와장창창!

그리고 창문이 깨진 순간 전력을 다해 한쪽에 봐 두었던 두꺼운 기둥 뒤로 몸을 날렸다.

[달려!]

“끄아아아아!”

공기의 유입이 아무리 길어 봐야 몇 초에 불과할 테니까.

그리고 동시에 요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콰쾅!

6층 전체를 찢어발기는 듯한 폭발이 터져 나왔고, 그 폭발에 밖에서 진입로를 뚫던 소방관들이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X발!”

“맙소사…….”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불길에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직감한 것이다.

멀리서 지켜보던 이성하의 동기들도 망연자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하야…….”

“이성하!”

폭발의 기세만 봐도 6층 전체가 휩쓸려 나갔을 게 뻔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잠깐만요! 저기!”

한 소방관의 외침이었다.

창문 밖으로 뿜어지는 연기 사이로 밧줄이 하나 떨어졌고, 그 밧줄을 통해 사람의 형체로 보이는 실루엣이 천천히 내려왔다.

“나 좀 살려 줘요…….”

“이, 이성하?”

“으허허헝. 이성하, 이 X새끼야!”

그들이 그토록 찾던 이성하였다.

온몸이 긁혀 피범벅이 된 모습이었지만 확실히 그들이 알고 있는 이성하였고, 그 등에 묶여 있는 한 사람의 모습에 아이를 안고 있던 아주머니가 정신없이 달려갔다.

“여보! 여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남편이 살아 돌아온 사실에 이성을 잃은 것이다.

지켜보던 사람들 또한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맙소사, 진짜 구해 온 거야?”

“진짜로 저 친구가 사람을 구해 왔어.”

혼자서 사람을 구하려고 불길 속으로 들어간 이성하의 얼굴을 모두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걱정의 말을 쏟기 시작했다.

“괘, 괜찮은 걸까?”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 같은데?”

하늘에서 내려온 이성하는 그대로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축 늘어졌다.

“구급대! 구급대!”

“네! 갑니다!”

소방관들이 그런 이성하와 구해진 남성을 끌어안은 채 다급하게 구급대를 외쳐 댔고, 그런 처참한 모습에 김경록이 고함을 질렀다.

“기다려야지! 네가 뭐라고! 기다렸어야지!”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소방관을 기다리지 않고 무모하게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간 이성하가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김경록을 향해 웃음을 보였다.

“콜록콜록. 우리는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잖아요.”

“뭐?”

“First in Last out. 우리는 소방관이니까요.”

만족하는 웃음이었다.

“콜록콜록.”

“팀장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고통 때문에 신음을 토해 내면서도 사람을 구했다는 것에 만족하는 이성하의 웃음을 보자, 김경록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First in Last out.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X발…….’

지금 이성하가 한 말이 소방관으로서 가장 먼저 익혀야 할 마음가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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