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2화>
12화. 외박 (2)
동기들 또한 그 충격에 잠이 깬 것은 당연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아무리 술에 취해 잠이 들었을지언정, 건물이 통째로 흔들리는 느낌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
하지만 이성하는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드르르륵!
다급히 창문을 열어 폭발음이 들린 방향을 확인했고,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입술을 깨물었다.
[가스 폭발이야. 장소는 오늘 네가 먹었던 고깃집인데?]
“제기랄!”
흡사 폭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아수라장이 된 거리의 모습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폭발의 여파에 근처 상가의 모든 유리가 깨져 나간 것은 물론, 곳곳에서 피범벅이 된 채 부상으로 신음하는 시민들까지.
이성하는 벗어 두었던 옷을 급히 챙겨 입고는 모텔 밖으로 뛰쳐나갔다.
“형들, 빨리 나와! 가스 폭발이야!”
동기들에게 고함을 지르고는 먼저 현장으로 뛰어갔고, 도착해서는 곧장 건물 안에서 부상에 신음하는 사람들부터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빨리 사람부터 끄집어내!]
“끄으으으. 사, 살려 주세요.”
“일어나세요. 일단 여기서 멀어져야 해요.”
혹시 모를 2차 폭발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가스 폭발에 있어 가장 위험한 상황이 충격으로 인해 건물이 붕괴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붕괴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듯싶었다.
[외곽에서 터진 건가?]
‘네. 파편 방향을 보니 골목에서 터졌어요. 천만다행이죠.’
폭발이 이루어진 곳이 건물 내부가 아닌 외부였다.
그것도 좁은 골목에서 이뤄진 폭발이었고, 그 덕분인지 목숨을 잃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이쪽은 괜찮아. 찰과상이야.”
“이쪽도. 부상이 좀 심하긴 하지만 생명이 위중할 정도는 아니야.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도 충분해.”
뒤늦게 나온 동기들이 부상자들의 상태를 체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화르르르르!
폭발로 인해 현재 건물에는 불길이 이는 상태였다.
아직까지 1, 2층에 한정되긴 했지만 언제 불길이 위층으로 번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문제는 스프링클러와 비상벨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형, 비상벨은요?”
“먹통이야. 고장 난 거 같아.”
“이런, 썅!”
비상벨을 누르기 위해 계단으로 이동했던 강동훈이 난처한 표정으로 나타나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폭발이 일어난 건물은 6층 건물이었다.
1, 2층의 고깃집뿐 아니라 다른 층도 가게로 빽빽이 채워져 있었고, 꼭대기의 6층에는 사람들이 주거하는 고시원이 있었다.
[확인해야 된다. 분명히 아직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알아요. 자칫하면 대형 참사죠.’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탈출했지만, 혹시 모르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인 건 그렇게 생각한 게 이성하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올라갈 거지?”
박민우가 어디서 구해 왔는지 소화기 하나를 들고 이성하의 옆에 섰다.
“같이 가자. 밑에 있는 건 성민이 혼자로도 충분할 거야.”
강동훈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이성하의 옆에 서자, 이성하 또한 평상시처럼 역할을 배분했다.
“6층은 나랑 동훈이 형이. 민우 형은 3층부터 수색하며 올라가는 걸로 하죠.”
“오케이.”
“알았어.”
서로 눈빛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렉스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돌입!
촤아아아악!
그동안 소방학교에서 배운 게 헛된 게 아니라는 듯, 이성하와 룸메이트들이 소화기를 분사하며 불길이 이는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헤어졌다.
“먼저 올라가!”
“알겠어요!”
박민우는 3층으로 진입했다.
이성하와 강동훈은 계속해서 계단을 뛰어 올라갔고, 6층에 도착하자마자 고함을 지르며 방문들을 열어젖혔다.
“모두 나와요! 화재입니다! 나오셔야 해요!”
“여기 한 명 있어! 선생님, 일어나세요! 일어나셔야 돼요!”
머뭇거림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긴 없어. 클리어!”
방 하나를 확인하면 바로 다음 방으로 이동했으며, 문이 잠겨 있는 경우엔 과감하게 부수는 걸 선택했다.
“부숩니다!”
[부숴! 가장 중요한 게 사람 목숨이야!]
팍! 팍! 파각!
“오케이, 클리어!”
소방학교에서 배운 대로 요구조자의 수색보다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색은 금세 끝낼 수 있었다.
“형, 그쪽 끝났어?”
“오케이. 이쪽도 이제 없어.”
“그럼 가자.”
이제는 닫힌 방문이 보이지 않았기에 강동훈과 서둘러 6층을 나섰다.
“형, 3, 4, 5층 전부 확인했지?”
“전부 확인했어. 6층은?”
“우리도 확인 완료.”
중간에 박민우를 만나 다시 세 사람이 함께했으며, 그렇게 건물을 나섬과 동시에 환호성을 터트렸다.
“좋았어!”
“끝내주는데?”
“역시 1등 조 아닙니까!”
아무런 사고 없이 안에 있는 사람을 모두 구해 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때였다.
“우, 우리 남편이 아직 안 나왔어요.”
한 여성이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우리 남편이 고시원 사장인데 아직 안 나왔어요. 안에 있을 거예요. 우리 남편도 구해 주세요. 으허허허헝.”
한 여성이 남편이 안에 있을 거라며 구해 달라고 울부짖었고, 그에 이성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형, 우리 다 체크한 거 아니었어요?”
“체크했지. 마지막으로 나올 때도 확인했잖아.”
“그렇죠? 잠긴 문까지 다 부숴 가며 확인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확인을 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렉스가 욕설을 내뱉었다.
[제기랄. 구조 변경!]
‘구조 변경이요?’
[불법으로 공간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 있는 거야. 거기에 그 사장이란 놈이 있는 거겠지.]
그 말에 이성하 또한 침음을 흘렸다.
“아…….”
화재 진압 실습 때 배웠던 사항이었다.
“가끔 자택이나 상가의 경우 주인이 불법적으로 공간을 늘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임의로 만드는 공간이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 그러니 요구조자를 수색할 때는 이 점 또한 유의해야 한다. 알겠나?”
팀장인 김경록이 했던 말을 떠올린 이성하가 아주머니를 붙잡고 다급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주머니, 구조 변경한 곳 있으시죠?”
“구, 구조 변경이요?”
“임의로 벽 허물어서 창고 같은 거 만든 거 말이에요. 있어요, 없어요?”
정말 구조 변경이 있었다면 자신이 수색하지 못한 곳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짐작은 사실이었다.
“이, 있어요. 주방.”
“주방?”
“네. 그쪽에 냉장고 옆으로 문이 하나 있어요. 식자재를 보관하는 곳이에요.”
여성의 말에 이성하는 자신이 봤던 주방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냉장고 옆…….’
[그래, 확인하지 못한 곳이다.]
입구에서 보이는 구조다 보니 들어가지 않고 고함만 질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늦지는 않았다.
“동훈이 형, 얼른 다녀오죠.”
“그래, 빨리 가서 구해 오자.”
위치를 안 이상 구해 오는 건 순식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이런 썅. 못 들어간다, 성하야.”
현장을 살피던 박민우가 욕설을 내뱉었다.
화르르르르!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1, 2층에만 일던 불길이 어느새 5층까지 번졌다.
상태를 봐서는 6층도 금세 불길에 휩싸일 듯 보였고, 이미 계단 또한 불길이 침범해 통로마저 막혀 버렸다.
“뭐야? 이렇게 빨리?”
옮겨 붙는 불의 연소 확대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것이다.
혹시나 해서 반대편 입구로 이동해 봤지만 그곳 또한 불길에 휩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제기랄. 이쪽도 마찬가지야.”
한마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진입로가 모두 막힌 것이었다.
그 원인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 그, 그게…….”
머리에 붕대를 감은 고깃집 사장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거봐요. 제가 열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사장 옆에서 사색이 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는 직원의 모습도 보였다.
이성하는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방화문 다시 연 겁니까?”
“…….”
“방화문 다시 열었냐고요?!”
“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정말 몰랐다고요!”
“이런 X발!”
지금의 비정상적인 연소 확대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았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무리야. 너 지금 방화복도 없어. 그 상태로 저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야.]
렉스의 말처럼 현재의 자신은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장비가 아무것도 없는 일반인과 다름없었다.
“젠장…….”
들어가면 금방이라도 자신을 휘감을 것 같은 맹렬한 불길에 걸음을 뗄 수 없었고, 이내 치솟는 불길에 기겁해 엉덩방아를 찍었다.
화르르르르!
“아…….”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불길의 흉험함에 공포심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이건 무리야. 소방관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
“맞아. 성하야. 이건 안 돼…… 무리야.”
곁에 있던 박민우와 강동훈마저 얼굴에 사색을 띠며 물러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도 포기할 마음을 먹었다.
[무리하지 마라.]
‘그래도…….’
[네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어! 지금으로선 소방관들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야!]
‘아, 알겠어요.’
렉스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자신처럼 풋내기가 아닌, 제대로 된 소방관에게 맡기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건 몸이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 금방 올 거야. 벌써 신고한 지 10분이 다 돼 가잖아.’
방금 전 자신을 위협했던 불길의 흉험함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등을 떠미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잉. 엄마. 아빠 어디 있어?”
아빠를 찾는 남자아이의 울음소리였다.
“흐윽. 금방 나올 거야. 저 아저씨들이 구해 주신대.”
그런 아이를 남편이 안에 있다고 울부짖던 여성이 부둥켜안는 모습을 보자, 이성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X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고 살아왔던 그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너 설마……?]
‘어쩔 수 없잖아요.’
[야 이 미친놈아! 이건 아니야!]
렉스의 고함이 귓가를 울렸지만 상관하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저거다.’
한쪽에 보이는 철물점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달려가 판초우의와 안전모 하나, 물에 적신 수건을 입에 둘러 최소한의 준비를 마쳤고.
“소화전 어디 있죠?”
“바, 반대편 입구에 있어요.”
“감사합니다.”
고깃집 사장에게 소화전의 위치를 물어 그곳에서 소방 호스를 꺼내 들었다.
쏴아아아아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렉스, 이번 기회에 화염 보호 능력이나 확인해 보죠.’
[이 미친 새끼야!]
‘하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이 아니라면 아무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목숨을 걸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물론 그 각오는 미친 짓이었다.
“이성하, 뭐 해?”
“미쳤어?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상황을 짐작한 강동훈과 도성민이 그 어느 때보다 무서운 얼굴로 고함을 지르며 다가왔지만, 이성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근처라면 들려야 할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는 아직까지 들리지 않았다.
분명 도착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쏴아아아아!
소방학교에서 배운 대로 호스를 넓게 열어 물이 뿌려지는 범위를 넓혔으며, 그 안으로 자신의 몸을 얹으며 건물로 진입했다.
‘갑니다.’
[이런 X발!]
치이이익.
판초우의에 불이 옮겨 붙는 게 보였지만, 더 이상 두려움에 몸이 굳는 현상은 없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하지 않아.’
이성하는 아버지 없이 보냈던, 자신의 쓸쓸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불길 속으로 지체 없이 뛰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