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1화>
11화. 외박 (1)
* * *
종합 훈련 평가가 끝났음에도 이성하의 소방학교 생활은 크게 바뀐 게 없었다.
언제나처럼 기상나팔에 일어나 태조산을 달리거나, 또다시 새로운 훈련 실습들이 이어지는 건 마찬가지인 상황.
하지만 확실히 바뀐 게 하나 있었다.
“로프 등반 준비.”
“악!”
“올라가.”
팀장인 김경록의 태도가 바뀌었다.
“114번. 무릎을 굽히고 팔로 당겨서는 절대 못 올라간다.”
“알겠습니다!”
“좋아.”
평상시였다면 실수에 고함부터 질렀을 그가 이성하의 훈련 자세를 보며 어드바이스를 던져 줬고, 그에 렉스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저번 종합 평가가 인상적이긴 했나 보네.]
‘그러게요. 다행인 거 같아요.’
여전히 싸늘한 표정이긴 했지만 확실히 그 행동에 온기가 어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덕분일까? 한 고비 넘겼다는 생각에, 이성하는 이번 주 훈련이 끝나고 방 동기들과 함께 외박을 나갈 예정이었다.
교육생들에게는 매주 금요일 밤에 나가 월요일까지 복귀가 가능한 조건으로 외박이 허용됐는데, 마침 오늘이 그 금요일이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미귀가자(외박을 나가지 않고 머무는 교육생)들은 남아서 명단을 작성하고, 외박을 나갈 교육생들은 생활관으로 가서 준비를 합니다. 알겠습니까?”
“넵!”
외박이 가능한 날이라 담당 교관이 훈련을 일찍 마무리해 주었다.
이성하의 조는 그 어떤 동기들보다 설레어하는 상태였다.
“흐흐흐. 이게 얼마 만의 외박이야?”
“두 달은 넘었지? 종합 평가 끝난 뒤에도 구급 시험 준비하느라 못 나갔잖아.”
“크으으. 드디어 봉인해 뒀던 나의 금주를 푸는 날이구나. 자유다, 자유!”
다른 동기들과 달리, 매주 자율 훈련을 진행하던 이성하 조에게는 오랜만의 외박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번 외박은 조원들끼리 함께 지내기로 했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
[그럼 나가서 하루 종일 노는 거야?]
‘그럼요. 일단은 축하 파티 겸 해서 나가는 거니까요. 첫날은 술을 마시고, 둘째 날은 영화 보러 가기로 했어요. 물론 게임방도 가고요.’
종합 평가가 이뤄진 지 2주가 지났기에 늦은 감이 있긴 했지만, 평가 1등을 기념하는 축하 파티를 벌이기로 했다.
그 때문에 이성하의 조는 그 어떤 교육생들보다 빨리 소방학교를 나섰다.
“야. 형은 차에 아무나 안 태우는 거 알지?”
“에이, 겨우 소나타 가지고 무슨 유세입니까?”
“맞아요, 형. 남자라면 못해도 BMW는 타야죠.”
“퍽이나 타겠다. 차도 없는 새끼들이 어따 대고 투정이야? 빨리 타기나 해.”
가장 나이가 많은 강동훈의 차를 타고 천안 시내로 나갔고, 도착하자마자 모텔 방을 잡고는 근처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종합 평가에서 1등을 한 우리를!”
“위하여!”
“하하하. 다들 고생했다.”
“형도요!”
짠!
그동안 소방학교 생활의 힘든 기억들을 털어 내며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는 것이다.
당연히 빼는 인원은 없었다.
“마셔! 오늘 다 쓰러질 때까지 마시는 거 알지?”
“당연하죠. 밑잔 까는 거 없습니다.”
“콜!”
말이 외박이었지, 사실상 휴가나 다름없어 고주망태가 되어도 상관없는 자리가 지금이었다.
이성하로서도 오랜만에 제대로 웃을 수 있는 자리였다.
[좋냐?]
‘그럼요. 얼마나 좋아요?’
어떤 훈련이 펼쳐질지에 걱정을 하기보다는, 술잔이 비거나 고기가 떨어지는 것에만 신경을 쓰면 되는 자리.
그런데 우습게도 다른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고깃집은 1층과 2층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이성하와 동기들이 있는 곳은 그중 2층이었고, 2층인데도 불구하고 방화문으로 보이는 문이 열려 있었다.
아예 고정을 해 둘 셈이었는지 밑에 나뭇조각까지 덧대 둔 모습이었으며, 다중이용업소(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영업장)라면 상시 갖춰 둬야 할 소화기 또한 보이지 않았다.
‘소방법 위반이네요.’
소방학교에서 관련 항목들을 매일 외우다 시피해서 그런지, 소방법에 저촉되는 사항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완전히 소방관 다 됐구나.]
‘그러게요. 원래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예전이었다면 무심코 지나갔을 사항들이 이제는 눈에 뚜렷이 보였다.
그 때문에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여기 사장님 계신가요?”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죠?”
“아직 임시긴 하지만 소방공무원입니다. 지금 보니까 소방법에 어긋난 사항들이 많이 보여서요.”
문제가 되는 사항을 발견한 이상 소방공무원으로서 알려 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다행히 나타난 사장도 이성하의 말에 알려 준 사항들을 바로 수정했다.
“죄송합니다.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방화문은 닫았는데 소화기는 내일 안으로 꼭 구해서 배치해 놓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봐주십쇼. 사실 유통기한이 지나서 주문한다는 걸 깜빡한 거거든요.”
혹시나 벌금이라도 매겨질까 두려웠는지 소화기에 대한 양해까지 구해 왔고, 그 모습에 도성민과 박민우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와, 이 새끼 언제 봤냐?”
“그러게요. 내가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누가 봐도 소방관 같은 모습으로 시민을 계도하는 이성하의 모습이 그들에게도 멋져 보였다.
하지만 강동훈은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기특하면서도 씁쓸함을 느꼈다.
“성하야, 후회하지는 않냐?”
“후회요?”
“어. 너 아직 22살이잖아. 저런 거 보면 안 부럽냐?”
강동훈이 가리키는 건 창문 밖으로 보이는 대학생들과 커플들이었다.
“원래 네 나이 때는 저렇게 한창 즐길 나이잖아. 연애도 하고 친구들이랑 놀러도 다니고 말이야.”
지금까지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새삼 거리의 사람들을 보고 나니 성하의 나이가 얼마나 어린지 실감이 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강동훈의 말에 이성하가 피식 웃었다.
“부럽긴 해요. 사실 저 아직 연애 한 번 못 해 봤거든요. 군대도 바로 입대하느라 대학도 못 갔고. 그런데 후회는 안 해요.”
“후회는 안 해?”
이성하가 앞에 있는 소주잔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도 아시다시피 제가 오랫동안 꿈꿔 온 일이잖아요. 처음엔 아버지를 존경해서 그런 것도 있었는데, 이게 하면 할수록 제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부럽긴 하지만 후회는 안 해요. 반대로 저 친구들이 절 부러워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남들보다 빨리 제 길을 찾은 거니까요.”
빈말이 아니었다.
정말 후회는 없었다.
아버지를 존경해 선택한 길이었지만 이제는 오롯이 자신의 꿈이 된 길이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에 선택한 길이었고, 그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실감한 게 입교 첫날 벌어졌던 교통사고 때였다.
“이 환자 살아나면 당신들에게 고마워해야겠네요.”
이송한 환자의 상태를 보고 자신에게 미소를 보였던 병원 의료진의 말에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벅찬 감동을 느꼈었다.
그래서 단언할 수 있었다.
“그래서 후회는 안 한다?”
“네. 사람을 살렸다는 그때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거든요.”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흥. 잘난 척하기는. 그게 너 때문인 거 같냐? 나 없었으면 못 살렸지.]
분위기를 깨는 렉스의 말이 이어지긴 했지만 확실했다.
이 길을 선택했기에 이 시끄러운 렉스는 물론, 눈앞의 형들도 만날 수 있었으니까.
이성하가 소주병을 들었다.
“그러니까 동훈이 형.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성민이 형이랑 민우 형도요.”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며 웃으며 잔들을 따랐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강동훈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게 너지. 미안하다. 형이 깜빡했다.”
수없이 봐 왔지만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이성하의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모, 여기 소주 한 병만 더요!”
“에이, 인원이 몇인데 한 병이에요? 이모 여기 세 병 주세요, 세 병. 찌개도 리필 한 번 해 주고요.”
오랜만에 외박이라 흥이 돋았는지 도성민과 박민우가 달리기 시작했다.
“좋아! 오늘 내가 쏜다. 마셔!”
강동훈 또한 고함까지 질러 대며 그에 호응했다.
이제 이후로 벌어지는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건 막내인 이성하였다.
[고생 좀 하겠네.]
‘하…… 세 명 다 뻗어 버리면 어쩌라는 거야!’
이내 이성하를 뺀 세 명 모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버린 상황이 벌어졌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동료들을 만나 좋았다고 생각한 걸 바로 후회했다.
“허억. 허억. 죄송합니다, 사장님. 금방 옮길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가게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며 세 명 모두를 혼자서 모텔로 옮긴 건 물론.
[옷 갈아입혀. 민우 저 새끼 아까 올 때 토하던 거 옷에 묻었더라.]
“네…….”
생전 처음으로 남자의 옷까지 갈아입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으니까.
그 사이.
“다 갔냐?”
“네. 갔습니다, 사장님.”
“어휴, 시끄러운 새끼들. 다시는 오지 마라.”
방금까지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고깃집 사장이, 자신이 사라지자마자 나와서 소금을 뿌렸다는 것을.
“상중아, 넌 빨리 올라가서 2층 방화문 열어라.”
“방화문이요? 그거 소방관들이 열어 두면 안 된다고 한 거 아니었어요?”
“이 새끼야, 그거 안 열어 두면 연기 잘 안 빠지는 거 몰라? 시끄러우니까 빨리 올라가서 열어!”
그러고는 직원을 독촉해 2층의 방화문을 다시 열게 만들었으며, 그렇게 열린 방화문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야 좀 연기가 빠지네. 얼마나 좋냐, 응?”
이성하에게 몰라서 실수했다고 이야기했던 것과 다르게, 이미 알고 있음에도 지킬 마음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이성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 이제 저도 자야겠네요.’
[그래. 좀 쉬어라. 오늘 고생했다.]
‘네, 렉스. 먼저 잘게요.’
그 또한 술기운이 올라 잠이 오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그로부터 4시간이 흘렀다.
12시가 넘은 새벽 3시.
평일이었다면 대부분 집으로 귀가해 거리가 한적했을 시간이었지만, 주말이다 보니 여전히 거리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야…… 어디 갈래? 파전? 아니면 이자카야?”
“웬 파전이야? 이자카야 가자. 사케나 먹자고.”
“그럴까? 가자 그럼. 마시러 가자~”
그것도 멀쩡한 사람들이 아닌, 이미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이들 중 한 명이 고깃집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야, 어디 가?”
“가고 있어. 나 쉬 좀 싸고 갈게.”
“알았어. 빨리 와.”
“어어~.”
쏴아아아아.
입에 담배를 문 채 시원하게 오줌을 휘갈기고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벽에다 던지고는 동료들을 따라갔다.
“야, 같이 가!”
“얼른 와!”
주말이라면 흔히 벌어지는 광경 중 하나였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꽁초를 대충 버리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특별한 게 있었다.
방금 담배꽁초를 버린 곳은 실제 벽이 아니라 듬성듬성 구멍이 뚫린, 가벽으로 감싸진 곳이었다.
그 구멍으로 담배꽁초가 들어갔고, 그 안에는 빨간색 글자가 적혀 있는 원형 통들이 잔뜩 있었다.
[LPG]
치이이익.
그 옆으로 떨어진 담배꽁초가 불이 꺼지지 않은 채 연기를 피워 내는 순간, 이성하가 번쩍 눈을 떴다.
“헉.”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일어나자마자 가슴을 부여잡는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당혹스러운 음성을 내뱉었지만, 대답할 시간은 없었다.
콰아아아앙!
“크으윽!”
“……!”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을 정도로, 마치 지진과도 같은 충격파가 이성하가 있는 모텔을 직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