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0화 (10/235)

<강철 소방대 10화>

10화. 소방관 (3)

팀 배정이 모두 끝난 뒤에는 순번 추첨이 이뤄졌다.

“각 조 대표는 앞으로 나와서 공을 하나씩 뽑도록.”

각 조에서 한 명씩 나와 교관이 들고 있는 상자에서 공을 뽑았고, 이성하의 조가 뽑은 공은 22번이었다.

‘나쁘지 않네요.’

[좋은 거지. 뒷 순번이니까.]

총 31개 조에서 후순위에 속하는 22번.

우승 후보로 여겨지는 장건호의 조 역시 괜찮은 번호를 뽑았다.

“17번! 좋았으!”

“그러게요. 기선 제압하기 좋은 순번인데요?”

중간에 해당하면서도 이성하의 조보다 앞선 번호였다.

순번이 모두 정해진 후에는 김경록이 앞으로 나와 종합 훈련의 평가 방식을 설명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화재 진압 기술을 평가받을 겁니다. 방식은 타임어택으로 진행할 것이며 평가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얼마나 빠르게 훈련을 마무리하는가, 훈련을 하면서 실수가 있었는가. 오늘 평가에서는 이 두 가지 사항만을 볼 것이며, 최하위에 속하는 10개 조는 재시험을 치르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까?”

어떤 기준으로 교육생들을 평가할지를 설명했으며, 그 뒤에는 교육생들이 애타게 기다려 왔던 5개의 훈련 항목을 공개했다.

첫째, 다섯 명이 나란히 선 채 방화복과 개인 장비를 얼마나 빨리 착용하는지.

둘째, 두 개의 사다리를 전개해 감시탑의 3층을 얼마나 빨리 찍고 내려오는지.

셋째, 세 개의 수관을 연결해 50m 밖의 목표물을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맞히는지.

넷째, 감시탑의 층마다 수관을 끌어올리면서 6층까지 얼마나 빨리 도착하는지.

다섯째,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는 6층에서 50kg의 무게가 나가는 마네킹 세 구를 찾아 얼마나 안전하고 빠르게 밖으로 구조하는지.

설명만 들었을 때는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이는 훈련들이었다.

“네 번째랑 다섯 번째 외에는 할 만한 거 아냐?”

“그러게. 앞에 세 개는 가뿐한데?”

공개된 평가 항목들에 몇몇 교육생들이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보기와 다르게 쉬운 훈련들은 아니었다.

[말만 들어서는 모르지.]

태평한 교육생들의 모습에 렉스가 혀를 찼으며.

‘그러게요. 타임어택인데요.’

이성하 또한 쓴웃음을 지었다.

말이 좋아 5개 항목이지,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는 과정 또한 전력으로 달려 이동해야 하는 게 타임어택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전에 했던 체력 점검을 조별 훈련으로 대체하는 꼴이었다.

훈련 도중 몇몇이 나가떨어지는 광경이 흔히 벌어지는 게 타임어택 훈련이었고, 그 광경은 시작된 평가에서도 어김없이 벌어졌다.

“주, 죽을 거 같아요…….”

“심호흡 크게 해. 코로 숨 크게 들이쉬고, 입으로 하~ 깊게 해라. 깊게.”

“허억. 허억.”

가뜩이나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움직이다 보니 평가 도중 리타이어(포기)를 하는 교육생들이 나올 정도였다.

그 때문에 앞 조에서 보여 주는 성적은 교관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허억. 허억. 죽을 거 같아.”

“젠장…… 이게 갑자기 왜 안 돼!”

“하, 마네킹 부서졌다.”

리타이어는 물론, 시간 내에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실수를 연발하는 조들 또한 생겨났다.

하지만 장건호 조가 준비를 하는 모습엔, 모든 교관들이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엘리트 조네.”

“그러게요. 이정은까지 끼는 덕분에 특채생만 네 명이에요. 사실상 1등이죠.”

조원 5명 중 4명이 특채생인 건 물론, 나머지 한 명도 상위권의 교육생에 속해 사실상의 우승 후보였다.

말 그대로 엘리트 팀이었다.

교육생들 중 상위권에 속한 이들만 모인 팀이 장건호의 조였고, 그런 교관들의 기대를 장건호 조는 저버리지 않았다.

“방화복 완료. 1분 32초입니다.”

“1분?”

“네. 정확히 2분 안으로 끊었습니다.”

첫 번째 훈련인 방화복을 입은 시간대가 1분대였다.

촤라라라락!

“올라가! 올라가!”

“작업 자세!”

사다리를 전개해 3층을 찍고 내려온 것 또한 4분을 넘지 않았으며.

“경묵아, 연결!”

“연결 완료!”

“방수!”

철컥!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수관을 연결해 목표물을 명중시킨 것 또한 6분대를 끊었다.

“달려! 빨리 달려!”

그 모두가 앞선 조들보다 훨씬 빠른 스피드로 전개되는 기술이었고, 그 속도는 마지막까지 계속 지속됐다.

탁! 탁! 탁! 탁!

조원 모두가 엄청난 속도로 계단을 뛰어오르며, 밧줄에 연결된 수관을 끌어올렸으며.

“이송 완료했습니다! 허억. 허억.”

연기 속에서 목표로 한 마네킹을 찾아 1층까지 이송한 시간이 13분대였다.

“최종…… 13분 26초입니다.”

“뭐?”

“13분 26초요. 저번 기수 최고 기록보다 30초나 빠릅니다. 이놈들 굉장한데요?”

타임을 재던 교관이 깜짝 놀라 탄성을 질렀을 정도로 엄청난 기록이었다.

사실상의 1등이었다.

“13분대라고?”

“미친…… 저걸 어떻게 이겨? 14분대도 그나마 한 조밖에 없었는데…….”

교육생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장건호 조를 바라봤을 정도로, 격이 다른 실력을 보여 준 게 장건호의 조였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장건호 조의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부 따로 노네요.’

[어쭈? 이제는 그렇게 생각할 정도야?]

‘그럼요. 제가 혼났던 게 저거잖아요. 한 명이 아무리 빨라 봐야 의미가 없어요. 모든 고생을 같이 나눠야 의미가 있는 거죠.’

그들의 모습에서 처음 자신이 투영되어 보였다.

“괜찮아?”

“허억. 허억.”

평가가 끝나고 각자 피로도가 다른 모습을 보일 정도로, 모두 팀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만을 중시했던 모습이었다.

반면 자신의 조는 달랐다.

“관창 조작을 현주에게 맡기고, 1번 수관을 내가 맡을게.”

“무슨 소리예요? 달리기는 형이 저보다 더 빠르잖아요. 형이 2번으로 가세요. 제가 1번으로 갈 테니까.”

장건호 조의 활약에도 개의치 않고 전략을 짜기에 바빴다.

“이성하, 뭐 해? 네가 보조수로 들어가야 된다고!”

평가를 보고 있는 자신을 향해 도성민이 윽박질렀으며.

“이 새끼 멍 때리는 거 봐라. 빨리 앉아. 시간 없으니까.”

박민우는 아예 팔뚝을 잡아끌어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방화복 순서는 어떻게 할래?”

“성하가 가운데 서고 내가 그다음으로 서는 게 낫지 않을까?”

까칠하긴 하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고, 그에 이성하가 피식 웃었다.

‘이게 맞는 거죠?’

[글쎄. 하지만 틀린 길은 아니지.]

‘그럼 됐어요. 저도 이게 맞더라고요, 함께하는 게.’

억만금을 주더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조원들이 눈앞의 동기들이었다.

그렇게 드디어 이성하 조의 차례가 다가왔다.

“반장네 조다.”

“김현주, 열심히 해라. 도성민 너도!”

앞에서 이미 압도적인 기록이 나오다 보니 다들 흥미가 떨어진 모습이었지만, 이성하는 상관하지 않았다.

[연습한 대로만 해라.]

“열심히 하자.”

“가즈아!”

“죽기 살기로 합시다.”

“나도 열심히 할게.”

“하하하. 다들 파이팅해요.”

점수보다 중요한 게 눈앞의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자신도 있었다.

[할 수 있겠냐?]

‘그럼요. 깜짝 놀라게 해 줘야죠.’

지켜보는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할 자신이.

‘형.’

‘알아.’

이내 동기 중 한 명인 박민우와 눈을 마주치고는 두 번째와 네 번째에 섰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던 김경록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22조에서 방화복 착용 시간이 제일 빨랐던 교육생이 이성하와 박민우 맞나?”

“맞습니다. 둘 다 2분 안으로 끊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이성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시작됐다.

삐이익!

휘슬이 울림과 동시에 이성하와 박민우가 엄청난 스피드로 방화복을 입기 시작했다.

“와! 빠르다.”

“대박! 쟤들도 만만치 않은데?”

장건호 조가 보여 준 속도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였고, 그 이후 보여 주는 광경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나, 팔부터 먼저 넣어요.”

“그다음 여기 헬멧.”

이성하와 박민우가 거의 동시에 방화복 착용을 마치고는 김현주의 착용을 도와준 것이다.

가장 빠른 두 사람의 조원이 가장 느린 조원을 도와주는 협력 자세.

하지만 아쉽게도 타임은 장건호의 조보다 느렸다.

“2분 4초입니다.”

“그래도 빠르긴 하네.”

교관들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빠른 타임이긴 했지만, 장건호의 조와는 시작부터 시간이 벌어져 버렸다.

하지만 지금부터였다.

[우측이다!]

‘압니다!’

이성하가 자신이 잡기로 한 사다리를 들고 감시탑으로 달렸다.

타다다닥.

그 옆에서 도성민 또한 사다리를 든 채 달렸으며, 두 사람은 감시탑에 도착과 동시에 사다리를 위로 치켜들며 뒤로 돌았다.

“사다리 지지!”

사다리를 눕히고 올리는 동작을 생략한 자세였다.

트르르륵!

“전개 완료!”

바로 뒤따라온 강동훈과 박민우가 전개 줄을 잡아당겨 사다리 전개를 완료했고, 그에 교관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이거 반칙 아닙니까?”

“반칙은 아니죠. 시범으로 한번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이성하 조가 보여 준 방식은 현장에서 쓰는 사다리 전개 방식이었다.

물론 문제는 없었다.

교관들의 대화처럼 한 번에 불과하긴 하지만 확실히 시범을 보였던 기술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게 고작 이틀 전에 가르쳐 준 기술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저거 가르쳐 준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언제 저렇게 연습했지?”

아직 숙달이 안 됐을 기술을 교관들이 감탄할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한 것이다.

그 때문에 두 번째 훈련에서는 더 이상 격차가 벌어지지 않았다.

“4분 10초!”

“장건호 조와는 30초 차이는 그대로인가.”

좁히지는 못했지만 반대로 늘어나지도 않은 상황.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네가 조율해야 돼.]

‘알아요!’

렉스와 이성하가 승부수라고 판단한 건 세 번째 훈련부터였다.

수관 전개를 통한 주수부터, 6층에 올라 수관을 끌어올리는 것과 농연 훈련을 대비한 그 모든 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한 게 이성하의 조였고, 그 덕에 이성하가 김현주의 부족함을 커버할 수 있는 훈련이었다.

“1번 완료!”

“2번 완료!”

“방수!

조원들이 딱딱 맞는 움직임으로 수관을 연결시켜 방수(소방차에서 물을 트는 작업)를 전개했다면.

[전진시켜!]

“누나, 2보 전진!”

“2보 전진!”

이성하가 관창 보조수로, 관창수 역할을 맡은 김현주의 부족함을 커버했고.

이어지는 감시탑 오르기에서는 김현주의 뒤에서 공기통을 받치면서 함께했다.

[이러다 정들겠다.]

“허억. 허억. 허억.”

부족한 김현주의 체력을 여유가 있는 자신의 체력으로 대체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차이는 거의 줄지 않았다.

“몇 분이지?”

“9분 15초입니다. 장건호 조는 4번째까지가 8분 47초였고요.”

기대를 가졌던 교관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두 조의 시간 차이는 거의 그대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 22조 요구조자 1명 탐색 완료!

6층의 상황을 체크하던 교관의 경악한 목소리가 무전을 울렸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당황한 교관들이 깜짝 놀라 재보고를 요구했지만, 무전의 답은 변하지 않았다.

- 진입하자마자 단번에 한 구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다음 방으로 진입합니다.

이성하 조가 진입한 지 30초도 안 돼 마네킹 한 구를 찾아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건 6층을 담당하는 교관이었다.

‘이 새끼들 도대체 얼마나 연습한 거야?’

들어오자마자 순식간에 장애물을 확인하며 거침없이 전진하는 이성하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성하에게 있어 이 정도의 움직임은 당연했다.

[움직여! 쉬지 말고 움직여!]

“허억. 허억. 앞에 장애물 있습니다. 타고 넘어갑니다.”

“확인!”

수십 번을 연습한 농연 훈련이었다.

[요구조자가 어디로 대피했을지를 상상해!]

“옷장, 요구조자 발견. 동훈이 형이 두 번째 요구조자 이끌고 밖으로.”

“오케이.”

실제 사람을 구한다고 생각하며 모든 훈련을 실전처럼 연습했으며, 그러다 보니 자신이 소방관이 된 진짜 이유를 기억해 냈다.

“아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힘 센 사람?”

“하하하. 물론 힘이 센 사람도 강하긴 하지. 그런데 힘보다 마음이 강한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야.”

“마음?”

“응. 힘만 센 사람은 보통 자신보다 강한 힘에 쉽게 무릎을 꿇거든. 하지만 마음이 강한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 닥쳐도 그걸 극복하기 위해 나아가.”

“에이, 그건 아빠 이야기잖아.”

“하하하하. 맞아. 이 아빠의 이야기지. 하지만 나는 우리 아들도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딱히 소방관이 아니더라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따뜻한 사람. 그런 강한 사람이 돼야 해. 알겠지, 성하야?”

힘보다 마음이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아빠, 또 다쳤어?”

“조금. 그런데 금방 나을 거야. 사실 별로 안 아픈데 쉬려고 꾀부리는 거거든. 하하하.”

언제나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모든 걸 걸었던 아버지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리가 지금이었다.

[마지막이다.]

“요구조자 3명 전원 구조 완료!”

“버, 벌써?”

“허억. 허억.”

교관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을 정도로 마지막 요구조자까지 순식간에 찾아내 버렸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허억. 허억. 몇 분 걸렸습니까?”

숨을 헐떡이면서도 교관에게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물었다.

“3분!”

“젠장!”

3분이 걸렸다는 말에 입술을 깨물고는 마지막 마네킹을 둘러업은 채 전력을 다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탁! 탁! 탁! 탁!

1등을 하고 싶어서?

아니.

팀장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아니.

[더 빨리 뛰어!]

‘뛰고 있어요!’

소방관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이 요구조자를 최대한 빨리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착했다.

“허억. 허억. 모든 요구조자 구조 완료했습니다.”

지상에 마지막 마네킹을 내려놓고는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보고를 마쳤다.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타임워치를 보고 있는 교관을 바라봤고, 그 입에서 나온 말에 모두가 할 말을 잊었다.

“12분 57초입니다…….”

“뭐?”

“12분 57초요. 장건호 조보다 30초나 빠릅니다. 이놈들이 1등이에요.”

“…….”

이미 우승을 확정지었다고 생각했던 장건호의 조를, 이성하의 조가 역전해 버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놀랄 사항이 더 있었다.

짝! 짝! 짝! 짝!

“팀장님?”

한쪽에 서 있던 김경록이 이성하에게 박수를 보냈다.

“괜찮네.”

처음으로 감점이 아닌, 훈련에 대한 칭찬이 흘러나왔고, 그에 이성하는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재주꾼이 아닌 소방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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