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9화>
9화. 소방관 (2)
* * *
교육생들이 화재 진압 실습에 들어간 지 벌써 6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가혹한 체력 단련과 실습이 진행되는 건 여전했지만, 이성하의 얼굴은 밝기만 할 뿐이었다.
“B반이 제일 빨리 집합했나?”
“악!”
재밌다는 교관의 표정에 B반 교육생들은 함께 짧게 고함을 질렀고, 그와 동시에 옆에 집결한 A반 교육생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A반 팔굽혀펴기 준비!”
“악!”
“20회. 몇 회?”
“20회!”
“시작!”
집합이 늦은 것에 대한 기합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밌는 게 있는 게 있었다.
“하나, 둘, 셋! 열둘!”
“하나, 둘, 셋! 열셋!”
다소 벅찰 수 있는 횟수에도 한 명의 낙오 없이 팔굽혀펴기를 진행하는 A반 교육생들이었다.
“후우. 후우.”
20회를 마치자마자 호흡을 정돈하며 교관의 다음 구령을 기다렸고, 그에 교관이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훌륭하다. 전방을 향해 함성 3번.”
“악! 악! 악!”
이제 이 정도 훈련 가지고는 다들 지치지 않을 정도의 체력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더불어 몸이 달라진 것도 있었다.
처음 입교할 때만 해도 약간은 컸던 당근복이 근육 덕분에 다들 딱 맞는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미소를 지었던 교관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오후에 어떤 훈련을 하는지 아는 교육생 있습니까?”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교육생들에게 되짚었고, 그에 학생장이 입술을 깨물며 손을 들었다.
“종합 훈련이 있는 날입니다!”
오늘은 지난 6주간의 화재 진압 훈련 기술을 평가하는 종합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종합 훈련은 총 5가지의 기술을 평가하는 숙달 훈련이었다.
교육생들이 지금까지 배웠던 화재 진압 기술을 연이어서 시연하는 훈련이었고, 그 평가는 개인이 아니라 조별로 이뤄졌다.
어떤 조가 가장 빠른 시간 내로 기술을 보여 줄 수 있는지가 평가 기준.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조의 구성이 달랐다.
지금까지의 훈련이 2인 1조나 4인 1조로 진행됐다면, 이 종합 훈련은 5인 1조로 조가 구성됐다.
방 동기 4명을 제외하고 한 명이 더 붙어야 했으며, 그 한 명은 지금까지 훈련은 함께했지만 따로 조를 이뤘던 여자 동기 중에서 정해지게 돼 있었다.
[누가 됐으면 좋겠냐?]
‘글쎄요. 가능하면 정은 누나가 됐으면 좋겠지만 힘들겠죠?’
이성하가 한쪽에 있는 이정은을 슬쩍 쳐다보며 렉스에게 말했다.
154명의 86기 교육생 중에서 여자 교육생은 총 28명이었다.
그중 이정은은 학생장과 같은 특수부대 출신으로 여자 동기 중에서 체력이 가장 좋기로 유명했고, 그 때문에 어제부터 이정은에게 말을 거는 교육생들이 굉장히 많았다.
“정은아, 밥 맛있게 먹어라.”
“누나, 이따 우리 같은 팀 되면 알죠?”
현실적으로 이정은이 참여한 조가 이번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 이정은과 유독 친한 교육생이 있었다.
“정은아, 이따 보자.”
“네, 선배.”
한 교육생이 이정은의 어깨를 툭 치고는 이성하의 조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자 도성민과 박민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저놈 또 오네…….”
“그러게요. 어떡하죠?”
그 교육생의 목적이 자신들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형들, 안녕하세요. 성하야, 뭐 하고 있냐?”
동기들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이성하의 옆에 앉아 활짝 웃음을 짓는 교육생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렉스조차 짜증을 내뱉었다.
[아이씨, 얘는 왜 또 여기 온 거야?]
지금처럼 밑도 끝도 없이 다가와서 이성하의 조에 끼어 앉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교육생의 이름은 장건호였다.
특수부대 출신인 이정은이 선배라고 호칭한 것처럼 구조대 특채로 들어온 교육생이었고, 현재 교육생 중에서 이성하가 가장 어려워하는 동기였다.
‘어떻게 하겠어요? 날 좋게 봐서 그런다는데.’
[좋게 봐? 야, 인마. 좋게 봐도 적당히 해야지. 남들이 보면 게이인 줄 알아!]
‘…….’
렉스의 말처럼 이성하를 좋아하는 정도가 지나쳐 주변에 오해를 사게 만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관계는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형.”
27살로 나이가 다른 건 물론, 반조차 달라 인사만 나누던 동기가 장건호였으니까.
하지만 그 관계가 달라진 게 체력 평가부터였다.
소방학교에서는 교육 기간 중 총 3번의 체력 평가를 진행했는데, 그중 1차 평가가 3주 전에 진행됐었다.
“허억. 허억.”
“대박. 성하야. 너 5등이야!”
“이야. 이제 특채생 못지않은데? 장건호가 6등이래. 하하하.”
그간의 훈련이 헛되지 않았는지 체력 평가에서 이성하가 특채생인 장건호보다 높은 성적을 받은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게 지금의 관계였다.
[그때 체력 시험에서 져 줬어야 했어.]
‘에이, 그래도 어떻게 일부러 져요?’
[야, 인마. 그거 때문에 너랑 친해지고 싶다고 한 거라며. 저놈 진짜 변태 아니냐? 자기한테 이겼다고 호감이 왜 생겨? 무슨 소년 만화냐?]
장건호가 체력 시험에서 자신을 이긴 이성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성하 역시 그런 호감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하야, 이번 주말에 훈련 같이하지 않을래?”
“주말이요?”
“응. 너 아직 레펠은 익숙지 않다며? 내가 도와줄게. 개인 장비로 여분이 몇 개 있거든.”
다른 조인데도 불구하고 훈련을 같이하자고 할 정도로 호감의 표시가 지나친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다가오지 말라며 거리를 둘 상황은 아니었다.
“너 진짜 마음에 든다.”
“네?”
“열심히 하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거든.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훈련도 같이하고 말이야.”
“아, 네…….”
그 당시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장건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게 이성하 본인이었다.
당시는 단순히 지금의 관계가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었다.
[하지 마라.]
“개인 장비가 있다고요? 저 할래요.”
[아, 하지 말라니까!]
“역시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이번 주에 같이 훈련하자. 하하하.”
렉스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발전하고 싶은 이성하에게 있어 특수부대 출신인 장건호는 도움이 되다 못해 넘치는 존재였다.
하지만 훈련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모두 집합!”
“집합!”
교관의 고함에 대기하던 교육생들이 모두 바쁘게 일어났고, 그 앞으로 팀장인 김경록이 나섰다.
“다들 준비는 됐나?”
“넵!”
드디어 지난 6주간의 화재 진압 훈련 기술을 평가하는 종합 훈련이 시작되었다.
원래 이 훈련은 화재 진압 담당인 정인호가 나와야 했지만, 요즘은 김경록이 아예 전담으로 나서고 있었다.
“이제부터 종합 훈련 조를 발표하겠다. 32번 김현지 교육생.”
“넵!”
“넌 1조.”
“알겠습니다!”
그 칼 같은 성격답게 여자 교육생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교육생들이 그토록 궁금해했던 조별 배정을 했고, 그에 한 팀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싸! 우리가 1등이다!”
“조용히 안 해?”
“죄송합니다!”
방금까지 이성하와 함께 있던 장건호의 조였다.
“정은아, 잘 왔어.”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그래. 하하하.”
공교롭게도 한 부대에서 근무했던 선후배가 같은 조로 함께하게 되었다.
반면 이성하의 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14번 김현주 교육생.”
“넵!”
“넌 11조.”
“알겠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구의 교육생이 이성하의 조로 뽑혔고, 그에 도성민과 박민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야, 어떡하냐?”
“현주면 좀 힘들 거 같은데요…….”
이성하의 조로 배정된 교육생이 여자 동기 중에서도 체력이 가장 약하다고 소문난 김현주였기 때문이다.
김현주는 이성하와 안면이 있는 교육생이었다.
아니, 안면 정도가 아니라 방 동기 다음으로 친한 교육생이었다.
“성하야, 같은 조네.”
“네, 누나. 잘 부탁드려요.”
김현주가 이성하에게 다가와 반가운 투로 인사하자, 다른 교육생들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와, 어떻게 이렇게 되냐? 반장끼리 같은 반이네.”
“그러게. 오늘 에이스 되는 거 아니냐, 에이스?”
공교롭게도 두 명의 반장이 같은 조에 속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원래는 안 될 일이었다.
종합 평가는 같이 받아도 A반과 B반의 훈련은 따로 진행됐었으니까.
하지만 놀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성하가 슬쩍 팀장인 김경록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담담한 그의 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김경록이구나.]
‘뭐, 예상했잖아요.’
언제나 그랬듯, 이성하가 있는 조에 김경록 패널티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별다를 건 없었다.
이번 종합 평가는 배점이 높아 중요하긴 했지만, 이성하에게 이제 점수는 그리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형들, 잘해 보죠.”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고. 1등은 못 해도 만점만 받으면 되는 거 아냐?”
“하하하. 그럼요. 누나도 잘 부탁해요.”
“나도 잘 부탁해. 열심히 해 볼게.”
“네.”
소방관으로서 우선시해야 할 게 무엇인지를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한편 그런 이성하를 보며 씨익 웃는 사람이 있었다.
“정은아, 믿는다. 전력으로 해라.”
“그럼요, 선배. 저 몰라요? 전력으로 할게요.”
조에 합류한 이정은에게 당부를 하고는 이성하를 쳐다보는 장건호.
그 모습에 같은 조원들이 머리 아픈 표정을 지었다.
“쟤는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몰라. 잘 대해 주다가도 이럴 때는 승부욕 불태우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평상시에는 이성하를 친동생처럼 챙기면서도 평가 때만 되면 승부욕을 불태우는 장건호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건호의 처음 모습을 기억해서 더 그런 것도 있었다.
“쟤들 진짜 열심히 하네.”
“누군데요?”
“있잖아. 첫날에 팀장에게 까인 애들. 그 뒤로 일주일째 저렇게 훈련하고 있어.”
“일주일이요? 열심히 하네요. 저 잠깐 구보 좀 하고 올게요.”
이성하의 조가 밤늦게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게 그들이 기억하는 장건호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장건호가 이성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소방학교에서는 완전 무장을 하고 구보를 할 때 자율 경쟁으로 달렸는데, 그 경우 선두 조는 항상 특채생들의 자리였다.
“선두조. 뒤쪽이 너무 처진다. 페이스 조절해.”
“알겠습니다!”
교관들이 다른 교육생들을 위해 속도를 늦추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체력에서만큼은 압도적이었던 특채생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 선두조의 후미에 한 명이 더 붙었다.
“허억. 허억.”
“……?”
뒤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에 장건호가 뒤를 돌아봤다. 매번 뒤따라 붙은 교육생은 이름만 알고 기억에는 담아 두지 않았던 남자애였다.
“이성하?”
“허억. 허억.”
체력에서 괴물이라고 평가받는 특채생들을 일반 공채생인 이성하가 따라잡은 것이다.
장건호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벌써 이 정도까지 늘었다고?’
아무리 자신들이 페이스 조절을 했다 하더라도 일반 공채 출신이 따라올 정도로 느긋한 스피드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호기심이 들었다.
이성하가 어떻게 훈련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리고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을 먹었다.
탁! 탁! 탁! 탁!
이성하는 하루 세 번 이뤄지는 구보 외에도 야간에 또다시 태조산을 올랐다.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 후…….”
매일같이 식사 후에도 체력 단련실에서 운동을 하는 건 기본이었으며.
“이성하? 걔 아직까지 한 번도 외박 안 나갔잖아.”
“한 번도요?”
“어. 걔 엄청 독해. 듣기로는 주말에 체력 단련실에서 산다고 하더라고. 구보는 기본이고 말이야.”
“…….”
심지어 외박까지도 포기한 채 훈련에 몰두했다.
‘이렇게까지 한다고……?’
노력만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장건호가 할 말을 잊었을 정도로, 이성하는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 후, 그 노력이 헛된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줬다.
‘하하하하. 내가 졌다고?’
처음으로 진행된 체력 점검 시험에서 특채생인 자신이 지는 일이 발생했으니까.
그래서 다가갔다.
“너 진짜 마음에 든다.”
“네?”
“열심히 하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거든.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훈련도 같이하고 말이야.”
이놈은 진짜라는 생각에 나이와 상관없이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차적인 이유가 있다면 경쟁심이었다.
“끄아아아악!”
“좋아, 장건호. 오늘 힘이 넘치는데?”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에 자신도 불타올라 훈련에 더 매진했고, 그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가 오늘이었다.
‘성하야, 노력이라면 나도 지지 않아. 오늘 종합 평가에서 한번 보자.’
군인을 그만두고 소방관의 길을 선택했던 장건호의 마음에 이성하의 열정이 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