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8화 (8/235)

<강철 소방대 8화>

8화. 소방관 (1)

* * *

쏴아아아아!

해가 진 늦은 저녁, 정해진 하루 일과를 마치자마자 샤워실로 직행했던 이성하가 약간은 피곤한 얼굴로 몸을 닦고 있었다.

“야, 성하. 너 몸 많이 좋아졌다?”

“그래요?”

“그래, 인마. 너 지금 복근 장난 아닌데? 너 이러다 몸짱 되는 거 아니야?”

“하하하. 형도 만만치 않은데요? 저 먼저 가 볼게요.”

옆에서 자신의 몸을 칭찬하는 동기의 말이 들려왔지만, 이성하는 형식적인 웃음으로 대답하고는 샤워실을 빠져나갔다.

밝기는 했지만 잔뜩 피곤함이 어린 웃음에, 남은 동기들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놈 진짜 힘들겠다.”

“그러게. 쟤 진짜 어떡하냐? 도베르만한테 완전히 찍혀서.”

현재 이성하는 도베르만이라는 별명을 가진 교관에게 완전히 찍힌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중앙소방학교에는 총 11명의 현장 교관이 있었다.

교육생들이 머무는 생활관 지도부터 시작해 체력 단련과 화재 진압에 대한 현장 실습을 담당했고, 그중 교육생들이 도베르만이라고 지칭하는 이는 교관들의 우두머리에 해당되는 팀장이었다.

휘익!

파캉!

“봤나?”

“봤습니다…….”

첫 대면에서부터 파격적인 시범으로 교육생들을 정적에 휩싸이게 했던 교관 팀장.

그리고 그 팀장은 그날 이후로 이성하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114번. 열외.”

“악!”

“똑바로 안 해?”

매회 이어지는 실습마다 이성하를 지목해 얼차려를 시켰고, 그 지목은 방금 마쳤던 태조산 구보에서도 동일했다.

“호흡 조절해.”

“허억! 허억!”

“조절해! 이 정도 뛰는 걸로 헉헉대서 소방관이라고 할 수 있겠어?!”

누가 봐도 찍혔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집요하게 이성하만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서 별명이 도베르만인 것도 있었다.

“똑바로 해!”

“알겠습니다!”

성질이 사나운 것도 있었지만,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그 특성을 그대로 보여 줬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팀장의 괴롭힘에도 불만 한 번 내뱉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어떤 얼차려도 일체의 반문 없이 악착같이 응했으며.

“쉬면서 해도 좋다, 교육생. 천천히 해라.”

“허억. 허억.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걸 안타깝게 여긴 다른 교관의 선의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정받고 싶은 거냐?]

‘네, 무슨 일이 있어도요.’

자신을 보고 재주꾼이라고 이야기했던 팀장에게 소방관으로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첫날 태조산 구보를 마치고 방에 돌아왔던 이성하는 렉스를 보고는 문득 놓치고 있던 점을 떠올렸다.

‘렉스, 그런데 팀장 이름을 렉스가 어떻게 알아요?’

[뭐?]

‘분명히 그러셨잖아요. 김경록은 진짜 한다면 하는 놈이라고. 명찰도 안 달았었는데 그 이름을 어떻게 아셨던 거예요?’

렉스가 팀장을 보자마자 이름과 성격을 말한 걸 떠올리고 물은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된 사실은 이성하를 충격에 빠트렸다.

[당연히 알지. 그놈, 네 아버지랑 같이 근무했던 놈이야.]

‘아버지랑요?’

[그래, 서부 소방서에서 같이 근무했지. 네 아버지 영결식에도 왔었고 말이야. 기억 안 나냐? 영결식에서 네 아버지 애도사 읽었던 소방관. 그게 김경록이잖아.]

‘아…….’

자신에게 소방관의 자격이 없다고 일갈한 팀장이 아버지의 동료 중 한 명이었다.

알아보지 못한 자신이 한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으허허헝. 미안해, 형. 지켜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세월이 흘러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분명 아버지의 영전에서 오열하던 그 얼굴이 맞았다.

그래서 매몰찬 팀장의 태도에도 열심히 훈련에 임한 거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가 아니라, 잘해야 한다.”

“그럼 잘하겠습니다!”

“……!”

팀장은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아들로서 당당하게 자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쉬운 나날은 아니었다.

“포기인가?”

“아닙니다!”

“그럼 뭐 하고 있어! 일어서지 않고!”

“허억. 허억.”

그런 이성하의 열정에도 팀장의 괴롭힘은 여전했지만, 이성하는 그런 괴로운 나날에도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친 와중에도 동기들에게 웃음을 보일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었고, 그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같은 방 동기들이었다.

[애들 이미 나갔다.]

‘벌써요?’

[벌써는 뭐가 벌써야? 너 샤워를 도대체 몇 분이나 하냐?]

‘아, 사람이 많았어요.’

방에 도착하자마자 들리는 렉스의 말에 다급히 방화복을 챙겼다.

[야, 이 새끼야. 나도 데려가야지!]

‘아, 맞다.’

나가려다 다시 들어와 장갑을 챙기고는 밖으로 뛰어나갔고, 그렇게 밖으로 나가서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야, 빨리 좀 가라.”

“안 보여서 그래요. 선두가 제일 힘든 거 아시잖아요.”

이미 먼저 나간 동료들이 훈련장 한쪽에서 소란을 떨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소방학교 교육생이라면 특별한 광경은 아니었다.

“허억. 허억.”

그들 외에도 구보를 하거나 수관 전개를 연습하는 교육생이 있는 것처럼, 일과 이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연습하는 교육생들은 많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들의 훈련은 다른 동기들과는 종류가 달랐다.

다른 동기들이 가벼운 추리닝 차림으로 개인 훈련을 한다면 이들은 단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방화복을 착용했으며, 어두운 밤인데도 그들의 눈은 안대로 가려진 상태였다.

툭! 툭! 툭!

선두에 있는 박민우가 기는 동작으로 주변을 확인하며 바닥에 늘어진 수관을 따라갔고.

“야, 갑자기 왜 이렇게 빨라?”

“도성민, 네가 느린 거야. 빨리 안 가?”

도성민과 강동훈이 소란을 떨며 그 뒤를 따랐다.

짙은 연기 속에서 수관 전개 방향을 통한 공간 탈출 훈련.

한 사람의 능력 상승을 위한 게 아니라, 팀으로서의 능력 상승을 위해 단체 훈련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 사람의 행동이 일순 멈췄다.

“아, 뭐야? 박민우 왜 안 가?”

선두에 있던 박민우가 이동을 멈춘 상태였다.

“앞에 뭐가 있는데요?”

“저예요, 저.”

그 앞을 이성하가 가로막아 갈 데가 없어서 멈춘 것이었다.

그에 안대를 벗은 동기들이 짜증을 토해 냈다.

“아, 진짜!”

“잘하고 있었는데 왜 방해해, 인마?!”

늦게 나온 주제에 잘되던 훈련까지 방해한 것에 짜증이 일었던 것이다.

하지만 짜증은 짜증이고 훈련은 훈련이었다.

“제가 선두로 갈까요?”

“늦게 왔으면 제일 뒤로 가, 새끼야.”

“넵!”

티격태격하는 중에 다시 훈련이 진행됐고, 그 모습에 렉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풋내기들이 커 가는 걸 보는 것도 재밌긴 하네.]

아옹다옹하면서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교육생들의 모습에 렉스는 절로 흐뭇한 감정이 들었다.

* * *

한편, 중앙소방학교 훈련 교관실.

교육생들에게 악명이 높은 김경록이 창가에 서서 훈련장을 보고 있었다.

“재밌네.”

“재미요?”

“어, 저놈들 말이야.”

단체 훈련을 하는 네 명의 교육생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며칠로 끝날 거라 생각했던 자율 훈련이 벌써 2주나 지속된 참이었고, 그러다 보니 교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놈들이었다.

“이성하네 조네요.”

“맞아. 내가 갈구는 놈들.”

안 그래도 팀장이 갈구다 보니 모를 수가 없는 교육생들이었다.

물론 다른 의미로도 유명했다.

“내가 진짜 이번에도 혼나면 도베르만 들이박는다, 들이박아.”

“야, 이 멍청한 새끼야. 목소리 좀 낮춰!”

마침 교육생들의 목소리가 교관들의 귓가를 울렸고, 그에 교관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냥 두실 겁니까?”

“팀장님, 저놈들 일부러 저러는 거 확실한 거 같은데요? 큭큭큭.”

교관들도 무서워하는 김경록을 들이박겠다고 하는 교육생들이 저 네 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김경록에게는 별 감흥이 없는 소리였다.

“뭐, 예전에는 없었나?”

“그렇죠. 매 기수마다 있는 일이죠.”

높은 훈련 강도로 매번 교육생들의 원망을 받는 존재가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게 있었다.

“그런데 팀장님, 이번엔 너무 빡센 거 아닙니까?”

“빡세?”

“네,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안 하셨잖아요.”

이번 기수에게 훈련하는 강도가 예전보다 높았다.

매번 교육생들에게 악명이 높긴 했지만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기에, 한 교관이 조심히 물었다.

“이성하 때문입니까?”

“…….”

“야, 분위기 빠지게 그 이야기를 왜 해?”

“아니, 그냥 궁금해서 말입니다.”

이성하는 몰랐겠지만, 이미 그의 아버지가 소방관으로 근무했던 사실은 널리 퍼진 상태였다.

김경록도 그 말에 부인하지 않았다.

“맞아. 내 선배의 아들이야. 이성훈. 나랑 같이 근무했지.”

“그런데 왜 그렇게 괴롭히시는 겁니까? 팀장님 선배님 아들이라면서요?”

“선배의 아들이라서 그럴까?”

“아들이라서요?”

후배의 반문에 김경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교야, 넌 네 친구 아들이 소방관이 된다면 어떨 거 같냐?”

“글쎄요, 일단 축하해 주지 않을까요?”

“하하하. 요즘 애들은 그런가? 우리 때는 반대했는데.”

“반대요?”

“응, 보람 있는 일이긴 하지만 난 이걸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거든. 흘리는 땀만큼이나 눈물도 많이 흘려야 하는 직업이니까. 그런데 저놈은…….”

이성하를 잠시 쳐다보던 김경록이 말을 이었다.

“내 선배의 아들이야. 내가 선배랑 항상 나누던 말이 있었어. 우리는 자식 낳으면 절대 소방관 시키지 말자고. 그런데 저놈이 결국 이 길을 택했더라고. 어릴 때부터 소방관이 될 거라 노래를 불렀던 건 이미 알았지만 말이야.”

“…….”

“그래서 갈구는 거야. 저놈이 선배를 똑 닮았어. 들어 보니 입교 첫날부터 사고를 쳤다지?”

“팀장님, 그건…….”

김경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잘못한 건 잘못한 거야. 의욕만 가득 차서 보고도 없이 움직인 건 소방관으로서 실격 아닌가? 그래서 그걸 들었을 때 결심했어. 저놈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가 없어. 저놈까지 목숨을 잃으면 내가 선배를 볼 낯이 없잖아?”

이성하를 바라보는 김경록의 얼굴은 뭔가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뭔가 빚을 진 남자처럼 회한이 가득한 얼굴.

그에 교관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저희가 괜히 여쭤본 거 같습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팀장님.”

“그래, 먼저 들어가.”

그들 또한 동료를 잃고 눈물을 흘린 경험들이 있기에 이해가 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교관들 중에 김상교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팀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저놈 쉽게 포기할 거 같지 않습니다.”

“그래?”

“네. 제가 봤을 땐 저놈이 교육생들 중에 제일 독하거든요. 옛날 팀장님 같다고 할까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쉬십쇼.”

이성하를 슬쩍 보고는 웃으며 하는 말이었고, 그에 김경록 또한 피식 웃었다.

돌아서는 그의 뒤로 이성하네 모습이 들어왔다.

“한 타임 더 할래요?”

“야, 못 해!”

“에이. 한 타임만 더해요, 형.”

김상교의 말처럼 땀범벅이 됐으면서도 활짝 웃는 교육생이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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