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7화 (7/235)

<강철 소방대 7화>

7화. 중앙소방학교 (3)

언제부터 있었는지 처음 보는 교관이 싸늘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어? 팀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지원 교육 모두 끝나신 겁니까? 전화 주시지 그랬어요?”

교관들의 상급자였는지 기존 교관들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지만, 그의 싸늘한 표정은 여전했다.

“지금 뭐야?”

“네?”

“방금 교육생들이 보여 준 거 뭐냐고?”

“아, 오늘 첫 실습이라서 수관 전개랑…….”

“정 교관, 내가 지금 그걸 묻는 거 같나?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가르쳤지?”

지목당한 교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하지만…… 교육생치고는.”

“교육생? 우리가 지금 교육생 키우려고 이걸 하나?”

“…….”

“우리가 교육생 키우려고 이걸 하냐고 묻고 있다. 정 소방관!”

주변이 싸늘해졌다.

“아닙니다!”

기존의 교관들이 동시에 부동자세를 취하며 그 교관의 말에 답했고, 그에 교육생들 또한 바싹 얼은 채 서로를 곁눈질했다.

“뭐, 뭐야?”

“조용해. 숨도 쉬지 마.”

교관들조차 부동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새로운 교관의 등장에 바짝 긴장한 것이다.

렉스의 당황한 목소리가 이성하의 귀를 울렸다.

[X됐다.]

‘네?’

[너 X됐다고, 인마.]

이성하가 그 이유를 물으려 할 때, 새 교관이 이성하를 향해 다가왔다.

“이름.”

“네?”

“이름!”

“114번 교육생 이성하입니다!”

“112번 교육생 도성민입니다!”

두 사람의 대답에 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114번 교육생은 벌점 2점. 112번 교육생은 벌점 1점 부과하겠다.”

품에서 메모장을 꺼내 교육생들의 이름을 적자, 이성하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야! 안 돼! 하지 마!]

그런 이성하의 마음을 짐작한 렉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이성하는 기어코 그 억울함을 입 밖으로 토해 냈다.

“교관님, 저희가 왜 벌점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해?”

“네. 말씀하신 시간 내로 목표물을 다 맞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벌점이라니요? 이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습을 완벽하게 마쳤음에도 칭찬은커녕 벌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 난 모르겠다.]

렉스의 탄식이 들려왔지만 이성하의 눈빛은 굳건했다.

자신이 벌점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교관이 피식 웃었다.

“이성하라고 했나?”

“네!”

“넌 벌점 1점을 더 추가한다.”

“네?”

“다시 말해 줘야 하나? 114번 교육생 이성하 총 3점 감점.”

“교관님!”

당황한 이성하가 고함을 지르듯 대답했지만 교관의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감점이 아니라 퇴교를 원하나 보지?”

“아닙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단번에 이성하의 입을 다물게 했고, 그 뒤에는 이야기한 것처럼 메모장에 이성하의 이름을 추가했다.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진짜로 감점을 부과한 것이다.

교육생들이 수군대는 건 당연했다.

“대박…… 진짜로 감점 준 거야?”

“저 교관 뭐야?”

지금까지 그 어떤 교관도 한 번에 3점이나 감점을 부여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성하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더 이상 나서지 마. 김경록은 진짜 한다면 하는 놈이야. 너 진짜 그러다 쫓겨난다.]

렉스의 말처럼 더 이상 반문했다가는 정말로 퇴교를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억울한 건 당연했다.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한 결과가 이유 없는 감점뿐이라니!’

그런 이성하의 기색을 읽었는지 교관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도 모르나 보군, 이성하 교육생.”

“네!”

“진심으로 묻지.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나?”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알려 주신 대로 말씀하신 목표물을 맞혔습니다. 그것도 시간 내로요.”

이성하의 대답에 교관이 비릿한 표정을 지었다.

“알려 준 대로 했다고? 누가 너한테 그렇게 알려 줬지?”

“……네?”

“누가 너한테 그렇게 알려 줬냔 말이야, 이성하 교육생. 자네와 한 조를 이루었던 파트너의 모습을 보겠나?”

이성하가 옆에 서 있는 도성민을 바라봤다.

“너와 비교해서 어떻지?”

그 말에 이성하가 도성민을 자세히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더럽다?’

말끔한 자신과 다르게 방화복이 지저분했다.

정확히 말하면 하체의 무릎 부분과 장갑과 신발에 흙이 묻어 지저분했다.

그 모습을 보며 고민에 빠진 사이, 교관이 말을 이었다.

“진압팀은 항상 2인 1조로 움직인다. 관창을 잡는 관창수와 그를 보조하는 관창 보조수. 하지만 분명히 배웠을 거다. 두 사람이 한 팀으로 움직이기에 서로가 복명복창하며 움직여야 한다고. 이성하 교육생, 자네는 복명복창하며 움직였나?”

“안 했습니다…….”

“맞다. 멀리서 봤는데 엉망이더군. 관창수는 시간 내에만 완료하겠다는 생각에 알려 주지도 않은 주수 방법을 시행하며 날뛰었고, 관창 보조수는 어떻게든 그걸 따라가기 위해 바닥을 기다시피하며 움직였다. 다시 한번 묻지. 이성하 교육생, 자네는 소방관인가, 아니면 과녁 맞히기 대회에 출전한 재주꾼인가?”

교관의 말이 이성하의 심장을 후벼 팠다.

[미안하다.]

렉스의 사과가 이어졌으며, 이성하 또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소방관입니다.”

드디어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정에도 교관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너는 재주꾼이다. 불을 끄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랑을 하기 위해 움직였어. 내가 이만큼 공부했다! 내가 이만큼 뛰어나다! 그 알량한 실력을 보이려고 날뛰었지. 너의 행동이 현장에서 어떤 사태를 초래하게 되는지 알려 줄까? 김상교 교관.”

“넵!”

교관의 말에 이름을 호명당한 한 명의 교관이 앞으로 나섰다.

“풋내기들에게 제대로 시범을 보여 준다. 보조해.”

“알겠습니다!”

보조를 위해 나선 교관과 함께 관창과 수관을 붙잡으며, 두 명의 교관은 이성하의 조가 보여 준 장면을 똑같이 재연했다.

“주수 개시!”

쏴아아아!

목표물은 없었지만, 순식간에 뛰듯이 움직이며 이성하의 조가 보여 준 것 같이 다섯 곳의 방향을 향해 물을 주수하는 모습을.

하지만 다른 게 있었다.

“어? 반복한다.”

단발적인 주수가 아닌, 끝없이 반복되는 주수였다.

“허억. 허억.”

보조를 선 교관은 입에서 단내를 풍길 정도로 가혹한 움직임이 계속됐고, 결국 5분 후 보조를 맡았던 교관이 수관을 놓쳤다.

“허억. 못 따라갑니다!”

앞서 교관이 말한 것처럼 보조수가 지치는 상황이 나온 것이다.

물론 이 점은 관창을 쥔 교관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더 격렬한 탓도 있었다.

거의 80kg의 무게를 지닌 수관을 들고 보조하는 게 관창 보조수이기에, 그 움직임의 과부하를 온전히 받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교육생들은 잘 보도록!”

이성하를 혼냈던 교관 홀로 관창을 잡은 채 주수를 계속했다.

쏴아아아!

[저게 혼자서 주수하는 방법이다.]

어떻게든 주수를 유지하려는지 무릎까지 꿇은 채 관창을 붙잡았으며, 잠시 후에는 힘이 빠졌는지 관창을 그 자세로 떨쳐 버렸다.

휘익!

파캉!

“어엇!”

물줄기를 뿜어 내며 튕겨 나간 관창이 바닥을 직격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시범을 보인 교관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쳐다봤다.

“봤나?”

“봤습니다…….”

“뭐가 느껴졌지?”

“신뢰입니다…….”

“신뢰?”

“네, 동료를 믿지 못했습니다. 혼자 하겠다는 생각에 빠져서 혼자 날뛰었습니다. 동료와 저 모두를 위태롭게 했습니다…….”

소방강령의 제2조 소방정신의 2항 신뢰였다.

소방공무원은 동료들과 협동하며 조직의 규율을 지킨다. 모두가 각 분야의 책임자라는 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모범이 되도록 한다.

이성하는 물론이고 모든 교육생들이 수없이 외고 외웠던 소방강령 중 하나.

하지만 교관은 그런 이성하의 말에 피식 웃음을 보였다.

“이 새끼 진짜 재주꾼이었구먼.”

“네?”

“신뢰? 맞는 말이다. 신뢰 중요하지. 하지만 넌 그것밖에 보이지 않나?”

“…….”

“이 새끼야! 몇 시간이고 주수를 해야 불이 꺼지는데 네놈의 알량한 행동 때문에 주수를 20분도 못 했어. 너는 열 받지 않나? 불도 다 못 껐는데 체력이 다해서 주수를 못 하는 상황이란 말이야!”

말을 하다 북받쳤는지 교관은 고함을 지르며 사나운 눈빛을 보냈고, 그에 이성하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

동료를 신뢰하는 문제를 떠나 소방관으로서의 마음가짐까지 이야기하는 모습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관이 그런 이성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들이 너처럼 의욕만 불타는 놈들이다. 의욕만 불타서 동료를 위험에 빠트리고는 자신의 본분을 잊는 놈들. 넌 방금의 상황이 벌점으로 끝난 걸 다행으로 여기도록 해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목소리 봐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이성하와 도성민이 전력을 다해 대답했다.

더 이상 실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거였지만 교관에게는 별 감흥이 없는 모양이었다.

“정 교관.”

“네!”

“너 이따위로 할 거야?”

“죄송합니다, 팀장님.”

“잘하자. 무슨 말인지 알지?”

“잘하겠습니다.”

두 교육생을 무시한 채 담당 교관에게 주의를 줬고, 그 이후엔 관심이 없다는 듯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따 보자.”

“이따 뵙겠습니다.”

이성하는 완전히 찍혀 버린 상황이 되었다.

* * *

실습은 계속됐다.

5조부터 마지막 조까지 모든 조의 평가가 연이어 시행됐고, 그 실습은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모두 끝났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학생장.”

“전체 차렷!”

“수고하신 교관님께 경례!”

“안! 전!”

“안전!”

수업을 해 준 교관들을 향해 교육생들이 전력으로 고함을 질렀으며, 그렇게 교관들이 사라진 후에는 모두가 무너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와, X발. 나 심장 떨려서 죽는 줄 알았네.”

“나도. 도대체 걘 누구야?”

“교관 팀장이래. 앞으로 우리 어떡하냐? 오늘 보니까 장난 아닌 거 같은데. 우리 앞으로 다 죽어 나가는 거 아냐?”

중간에 나타났던 교관 덕분인지 그 이후로 이뤄진 실습 평가가 굉장히 하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런 교육생들과 다른 의미로 지쳐 있는 교육생이 있었다.

“저 먼저 가서 쉬고 있을게요.”

오늘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이성하가 먼저 일어섰다.

“어? 성하야, 너 저녁 안 먹게?”

“네, 오늘은 생각이 없네요.”

“야, 그래도 밥은…….”

그런 이성하를 같은 방 동기인 박민우가 붙잡으려 했지만, 이성하와 함께 혼이 났던 도성민이 말렸다.

“야, 그냥 두자.”

“네?”

“저놈 심란할 거야. 나야 곁가지였지만 저놈은 된통 당했잖아.”

옆에서 봤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렇겠죠?”

“그래요. 성하 혼자 방에서 생각 좀 할 수 있게 놔두죠.”

다른 동기들 또한 그에 바로 수긍했을 만큼, 오늘 교관이 보여 줬던 행동은 모두가 기겁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성하의 기분은 동기들이 생각한 것과는 종류가 달랐다.

심란하다기보다는 분노에 가까웠으며, 그 분노는 교관을 향한 게 아니라 자신을 향한 거였다.

[어디 가게?]

‘잠시 나갔다 올게요.’

동기들이 방에서 생각에 잠길 거라 여긴 것과 달리, 이성하는 추리닝으로 갈아입고는 밖으로 나갔고.

“허억. 허억.”

그 이후에는 전력을 다해 태조산을 올랐다.

‘다시 반복하지 않아.’

소방관으로서의 본분.

“절대 반복하지 않아!”

잠시나마 자만에 빠져 본분을 잃은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그렇게, 중앙소방학교에서의 하루가 또다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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