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6화 (6/235)

<강철 소방대 6화>

6화. 중앙소방학교 (2)

* * *

소방학교의 아침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교관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 잠시 후, 6시부터 아침 인원 점검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야, 일어나. 아침이야.”

“아…… 알겠어요.”

귓가에 꽂혀 드는 기상나팔에 모두가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이불을 정리하고, 그 이후엔 잠을 확 달아나게 할 체력 단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똑바로 뜁니다! 잠 덜 깼습니까?”

“아닙니다!”

“목소리 봐라.”

“아닙니다!”

중앙소방학교의 명물로 불리는 태조산 산책로를 달렸으며.

“PT 두 번. 팔굽혀펴기 준비.”

“악!”

“30회! 실시!”

“끄으윽!”

군대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보다 더 힘든 12개 동작의 소방 PT를.

물론 이 체력 단련은 단순히 하루만 지정해서 하는 게 아닌 매일의 일과였다.

“어려울 때, 힘들 때,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소방관이라고 머릿속에 기억합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체력 단련할 때 대답은 ‘악’으로 통일합니다. 알겠습니까?”

“악!”

교관이 교육생들을 악착같이 몰아치는 것처럼, 그들이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소방관으로서의 기본 일과인 것이다.

그런 체력 단련 과정이 시작된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틈틈이 학과 교육이 배치돼 장비를 교육받거나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생활의 대부분은 얼차려에 가까운 체력 단련이었다.

그것도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구보가 있을 정도로 가혹했고, 그 때문에 교육생들은 매일같이 느껴지는 근육통에 비명을 질러야 했다.

“야…… 뒈질 거 같아…….”

“형, 저도요. 다리가 안 움직여요. 군대가 차라리 더 편할 거 같아요.”

하루 종일 뛰고 달리며 힘을 쓰는 동작을 취했던 탓에, 온몸이 남아나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멀쩡한 사람이 있었다.

“야, 이성하. 넌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냐?”

“네?”

“너 말이야, 너. 지금 너 혼자만 말짱하게 걸어 다니는 거 안 보이냐?”

마침 이성하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들어왔다.

아침 구보가 끝나자마자 생활관에 누워 헐떡이는 동기들과 다르게 샤워실에서 몸까지 씻고 온 모습이었고, 그에 렉스의 핀잔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너 내가 너무 티 내지 말라고 했지?]

‘쩝…… 난 그냥 땀 때문에 씻고 온 건데요.’

지쳐 있는 동기들과 다르게 이성하 혼자만 쌩쌩한 모습이 너무나 이질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하가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그 또한 훈련을 받으며 고통에 신음했던 건 다른 교육생들과 마찬가지였다.

“허억. 허억.”

“지금 대충대충합니까? 다시 가겠습니다. 서른한 번째부터 선착순 스무 명. 뛰어, 가!”

“끄아아아아!”

너무나 고통스러운 과정에 훈련 도중 소리를 질렀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할 때만 해도 죽을 것만 같던 통증이 생활관에 들어오면서부터 점차 나아졌다.

빠르지는 않지만 뭉쳤던 근육들이 서서히 풀려 갔고, 그 원인은 방에 두고 나갔던 장갑이었다.

‘그나저나 또 배고파지네요…….’

[내가 말했잖아. 그건 감수해야 한다고.]

장갑만 곁에 있다면 렉스가 말했던 회복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실을 동기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말해 봤자 미친놈 소리나 들을 게 뻔했고, 어차피 방금 동기들의 질문은 추궁이 아니라 장난에 가까웠다.

“형들, 나이 들어서 그래요.”

“뭐?”

“성민이 형이랑 민우 형, 두 분 다 20대 후반이시잖아요. 심지어 동훈이 형은 30대 중반이고요.”

“그래서 넌 어려서 그렇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 어려서 좋겠다. 이 썩을 놈아.”

“하하하하.”

어떻게 보면 무례한 이성하의 대답에도 다들 웃음을 터트릴 정도로 서로가 친해진 상태였다.

중앙소방학교에서는 4명이 한 방을 썼다.

같은 나이가 아닌, 나이순으로 섞어서 균등하게 배정했기에 이 방에는 동갑내기가 없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34살의 강동훈부터, 29살의 도성민과 28살의 박민우, 그리고 가장 어린 22살의 이성하까지.

하지만 그런 나이 차이에도 이들은 스스럼없이 지냈다.

“성하야, 너 이거 발라라.”

“뭐예요, 형?”

“선크림인데 여자 친구가 너무 많이 보내서.”

가뜩이나 순한 얼굴이지만 안경까지 써서 더 순해 보이는 강동훈이 이성하에게 썬크림을 던졌고.

“형, 전 안 주고요?”

“넌 발라도 별로 의미가 없을 거 같은데…….”

“아, 형!”

험상궂은 얼굴과는 달리 장난기 넘치는 행동으로 방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도성민이 과도한 리액션을 펼쳤으며.

“아, 몰라. 다 시끄러워. 성하야, 나 물 좀 주라.”

“따뜻한 물로 드릴까요?”

“……죽고 싶냐?”

왜소한 체구 때문에 가장 힘들어하던 박민우가 이성하의 장난에 도끼눈을 치켜떴다.

“큭큭큭큭. 알았어요.”

“성하야, 나도.”

“난 따뜻한 물.”

“아, 진짜. 너무하네.”

각자가 그 장난에 한 숟가락들을 걸칠 정도로 이미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교육생들의 수다는 순식간에 끊어졌다.

- 제86기 신규 임용자 과정 교육생들에게 알립니다. 오전 현장 실습을 위해 9시 30분까지 방화복을 착용하고 제1생활관 앞에 집합하여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오늘 수업하게 될 현장 실습을 위해 집합하라는 안내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고, 그에 방금까지 지쳐 있던 교육생들의 눈에 활기가 돌았다.

“아싸!”

“야, 빨리 준비해. 드디어 현장 실습이야!”

그들이 한 달간 그토록 고대하던 현장 실습이었다.

그런데 교육생들보다 더 기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야, 뭐 해? 빨리 방화복 안 입고.]

‘네?’

[빨리 입으라고! 다들 기다리잖아!]

렉스의 들뜬 목소리로 이성하를 재촉했다.

마치 생일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흥분한 기색에, 이성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하하하. 알았어요. 지금 입고 있어요.’

교육생들보다 더 신나 하는 렉스의 목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 심정이 이해가 가긴 했다.

[웃냐? 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면서 그러냐?]

그의 말처럼 이론 수업이면 몰라도 몸을 움직여야 하는 체력 단련에서는 장갑을 가지고 다닐 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방화복을 챙겨 입고 나오라는 말처럼 현장 실습은 장갑 착용이 필수였고, 그에 이성하도 기대 어린 음성을 내뱉었다.

‘저도 좋아서 그래요. 드디어 현장 실습이잖아요.’

자신 역시 처음으로 접할 현장 실습에 두근대기는 마찬가지였다.

* * *

방화복을 입은 교육생들이 향한 곳은 화재 진압 훈련장이었다.

현장 실습을 위한 훈련 장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5분쯤 기다리자 선글라스를 낀 교관들이 나타났다.

“86기입니까?”

“네!”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화재 진압 훈련을 담당하게 될 훈련 교관 김정호입니다. 정신 못 차리는 교육생은 바로 열외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체력 단련을 지도하는 교관들보다 더 싸늘한 말투였다.

아무래도 첫 현장 실습인 만큼, 교육생들의 기선을 잡기 위한 모양.

하지만 그런 말투와 상관없이 교육생들은 목청껏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현장 실습에 대한 설렘에 다들 바싹 긴장한 상태였다.

만족한 교관이 앞으로 나섰다.

“오늘 하게 될 훈련은 수관(호스) 전개와 관창 조작입니다. 관창이 뭔지 아는 교육생?”

“수관에 연결해 물을 주수하는 손잡이입니다!”

“맞습니다. 화재 진압을 위해 하게 될 경우, 수관에 연결하는 손잡이를 관창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지금 들고 있는 게 65밀리미터. 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사이즈입니다.”

이론 수업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첫 실습이라 그런지 기본부터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진압팀(경방)은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관창수와 관창 보조수로 합을 맞춰 움직입니다.”

설명에 맞추어 두 명의 교관이 시범을 보이기 위해 한쪽에 배치된 관창과 수관을 잡았다.

그런 교관들의 시범에 교육생들은 바로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쏴아아아!

철컥! 철컥! 철컥!

“오오오.”

“멋있다.”

“대박. 완전 깔끔하네.”

두 명의 교관이 단번에 물을 주수해 늘어선 표적판들을 모두 쓰러트렸기 때문이다.

두 명이 조를 이뤄 주수를 하는 이유 역시 교관들은 시범으로 간단하게 보여 줬다.

쏴아아아!

이번엔 두 명이 아니라 한 명의 교관이 물을 주수했고, 그와 동시에 교관의 몸이 심하게 요동쳤다.

“어어!”

지켜보던 교육생들이 놀란 반응을 보일 정도로 관창을 연결한 수관이 심하게 출렁거린 것이다.

교관이 그런 교육생들을 보며 설명했다.

“오늘 여러분들이 훈련하게 될 관창은 65밀리미터입니다. 약 80킬로그램 정도 되는 압을 견디면서 물을 주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항상 2인 1조로 움직입니다. 아무리 건장한 소방관이라도 저 압력을 단독으로 유지하는 건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놓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는 따로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보여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상상이 되는 장면이었고, 이성하도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대형 사고겠네요.’

[당연하지. 그야말로 제어할 수 없는 쇳덩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 되니까.]

렉스의 말처럼 어느 방향으로 튕겨 날지 모르는 쇳덩이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잠시 후 이뤄진 연습에서 이성하는 더욱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형, 괜찮아요?”

“와, 이거 장난 아닌데. 넌 괜찮아?”

“저도 힘드네요. 방심했다가는 큰일 나겠어요.”

상상한 것보다 더한 압력에 파트너가 된 동기와 함께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물을 주수하는 건 처음이지만, 이미 장비 교육을 통해 관창에 대해서는 빠삭히 알고 있었다.

[너 내가 그렇게 알려 줬는데 자신 없는 건 아니지?]

‘에이, 설마요. 제가 그동안 관창을 얼마나 많이 만졌는데요.’

렉스의 말처럼 단순히 만져 보는 수준이 아닌 어드바이스까지 들으며 연습했고, 그 결과를 보여 주는 게 오늘이었다.

“모두 한 번씩들 해 봤으니 지금부터 실습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자세가 완벽할 경우 1점. 3분 내에 완료했을 경우 추가 1점을 더 드립니다. 알겠습니까?”

“네!”

오후 훈련부터는 86기 교육생들의 첫 실습 평가가 시작되었다.

실습 방식은 훈련장의 각 방향에 위치한 표적 5개를 물을 주수해 쓰러트리는 거였다.

50미터를 달려 수관을 전개하고, 앞으로 이동해서 미리 연결된 관창으로 표적을 맞히는 과정까지.

이성하의 순번은 4번째였다.

“잘해 봐요, 형.”

“그래, 잘해 보자.”

같은 방 동기인 도성민과 파이팅을 외치며 출발 지점으로 이동했고, 교관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마자 표적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으아아아!”

두 사람 모두 처음으로 이뤄지는 실습 평가에서 1위를 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시작 부분은 앞서 실습한 조들과 별다를 게 없었다.

방화복을 입고 뛰거나 수관을 전개하는 건 장비 교육을 통해 모두가 능숙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나 수관이 연결된 관창을 잡은 뒤부터는 달랐다.

“주수 개시!”

철컥!

시작과 동시에 관창을 당겨 가장 우측의 첫 번째 목표물을 맞혔으며, 그 이후엔 보여 주는 솜씨 또한 신속 정확했다.

[정면 두 개는 펜슬링으로 처리해!]

‘알아요!’

철컥! 철컥!

끊어서 물을 분사시키는 펜슬링 기법으로 목표물 2개를 처리했고.

[이건.]

‘압니다! 원형 주수가 빠르다는 거.’

철컥! 철컥!

나머지 2개의 목표물 또한 렉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원형을 그리는 주수 방식으로 단번에 처리했다.

“대박!”

“와, 4조 뭐냐? 언제 이렇게 연습한 거야?”

지켜보던 동기들이 일제히 감탄사를 터트렸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보여 주었다.

교관들 또한 놀란 반응을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몇 분이야?”

“2분 40초입니다.”

“괜찮은데?”

“괜찮죠! 이 정도면 현역들도 작정하고 해야 나오는 타임인데.”

솜씨도 솜씨였지만, 평가 기준으로 세웠던 시간보다 훨씬 빠른 기록을 이성하가 속한 4조가 보여 준 것이다.

“교관들이 알려 준 건 이게 아닐 텐데. 누가 이렇게 하라고 알려 줬지?”

그때 낮은 음성이 현장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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