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5화 (5/235)

<강철 소방대 5화>

5화. 중앙소방학교 (1)

* * *

대강당에는 이미 당근복을 입은 교육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들 친해졌는지 서로 웃음을 띠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런 교육생들 사이로 이성하가 뻘쭘한 표정으로 빈자리를 찾았다.

“어? 왔나 본데요?”

“그러게요. 저 친구들인가 봐요.”

지각생들에 대한 소문이 퍼졌는지, 먼저 와 있던 교육생들이 다들 관심 어린 향하고 있었다.

뭐, 사실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교관이 불같이 화를 냈던 것처럼, 9명이나 되는 단체 지각을 다른 교육생들이 모를 수는 없었으니까.

물론 나쁜 시선은 아니었다.

“혹시 소문의 지각생?”

한 교육생이 이성하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기 들었는데 사람 구하다 늦었다면서요? 아까 교관님이 칭찬하시더라고요.”

교관에게 들었다며 엄지를 치켜들었고, 그 말에 이성하의 얼굴이 밝아졌다.

“교관님이요?”

“네, 첫날부터 싹수가 있는 놈들이 들어왔다고요. 첫날부터 대단한데요?”

“하, 다행이네요. 사실 안 그래도 오자마자 혼나서 찍혔나 싶었거든요.”

벌점은 받지 않았지만 불같이 화를 내던 교관의 얼굴을 봤기에, 소방학교의 생활이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찍힌 거 맞을걸.]

렉스의 핀잔이 들려왔지만 이성하는 무시한 채 교육생과 대화를 이어 갔다.

“그런데 저희 오기 전까지는 뭐 했었어요?”

“네?”

“아시다시피 지각을 하느라 아무것도 듣지 못해서요.”

지각한 만큼 자신이 오기 전에 어떤 교육들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다른 교육생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다.

“흠…… 별다른 건 없었어요. 소방학교 시설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아, 대형운전면허 있는 교육생들이랑 사이버 교육 미수자들 조사했어요.”

“대형운전면허랑 사이버 교육이요?”

“네. 대형운전면허는 언제라도 도움 되니 꼭 따라고 이야기하셨고, 사이버 교육은 졸업 전에 안 들으면 입교불가 처리 되니 주말 이용해서 꼭 완료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외에도 입교 전 배부 받은 주의 사항을 더 들을 수 있었다. 이성하가 몇 가지를 더 물으려 했지만 대화는 중단됐다.

“자, 주목!”

처음 자신에게 화를 냈던 교관의 목소리가 대강당에 울려 퍼졌다.

“흠, 흠.”

방금 전 봤던 소방학교 교장이 단상으로 올라섰고, 교육생들이 그동안 걸어온 노고를 축하하는 말이 이어졌다.

“늠름한 얼굴들이네요. 소방관이 되기 위해 많이 고생하셨을 텐데 다들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교육생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입교 환영식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교장의 환영사에도 교육생들은 웃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러분들이 모두 소방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구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다소 차가워진 교장의 말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요구조자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소방관은 요구조자만이 아닌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까지 구조해야 합니다. 언제나 냉철한 판단 능력과 준비 태세를 갖춰서 움직여야 하고. 그래야만 요구조자는 물론 자신까지 살아서 나올 수 있습니다.”

처음 축하의 말과는 다르게 담담한 표정으로 소방관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이야기했고, 그 뒤로는 소방관들의 열악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런 말이 있더군요. 한국인이 존경하고 신뢰하는 직업 1위가 소방관이라고요. 하지만 현실은 직업 만족도 최하위의 아픔을 가진 직업입니다. 1명의 소방관이 무려 1,319명의 시민을 담당해야 하고, 빠듯한 교대조로 밤낮 가릴 것 없이 출동에 임해야 합니다. 말만 공무원이지 높은 위험성으로 기피되는 직업군이며, 실제로 임용 내 이직률이 20퍼센트에 육박하는 게 우리 소방관입니다.”

그들이 걷게 될 소방관이란 길이 절대 영광스러운 길이 아니라는 사실과.

“혹시 아십니까? 매년 300명 이상의 소방관들이 부상을 입거나 순직으로 현장을 떠난다는 것을. 우리는 매년 그렇게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냅니다.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죄하면서요.”

그들이 앞으로 겪게 될 암울한 현실들을.

그랬기에 교육생들이 진중한 표정으로 교장의 얼굴을 응시했다.

현실로 다가오는 소방관이라는 직함의 무게를 느끼는 모습이었고, 그에 교장이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교관들은 여러분들을 온화하게 대하지 않을 겁니다. 어떤 현장에 나가더라도 목숨을 잃지 않도록 엄하게 대할 것이며, 여러분들은 그런 교관들의 말에 전적으로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을 오래 보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소방관으로서, 여러분들이 오래 현장에 남아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이 되셨으면 합니다. 이상입니다.”

교장이 아니라 선배로서의 말이었다.

오래 살아남으라고.

요구조자의 목숨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라고.

그런 교장의 말에 교육생들이 침묵에 휩싸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앞으로 그들이 걷게 될 소방관의 길을 직접적으로 듣게 된 셈이었으니까.

물론 좌절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짝짝짝!

교육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고, 그 무리 중에는 이성하도 있었다.

[네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말이겠네.]

‘네, 그렇게 아버지를 잃었으니까요.’

소방관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 누구보다 남은 자들의 무게를 절실하게 느껴 왔기 때문이다.

교장의 진중한 당부 뒤로 이어지는 건 교육생들의 학생장 선출이었다.

“자신이 86기 교육생들을 대표해서 봉사할 마음이 있다, 그런 교육생이 있으면 앞으로 나옵니다.”

교관이 단상으로 올라와 교육생들을 대표하는 학생장의 지원자들을 받았고, 이성하는 그에 당연히 손을 들었다.

[나가려고?]

‘네.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 보고 싶었거든요.’

혹시나 교관에게 찍혔나 하는 마음에 그 점수를 만회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성하는 선택되지 않았다.

학생장은 교육생들을 대표하는 자리인 만큼 많은 이들이 노리는 자리였다.

딱 봐도 쟁쟁해 보이는 교육생이 교관의 눈에 들었고, 이성하는 아쉽지만 반장의 자리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특채인가?”

“네! 특전사로 전역했습니다.”

“그래? 마음에 드네. 열심히 해.”

교관의 눈에 든 교육생이 특수부대 출신만 지원할 수 있는 구조 특채생이었기 때문이다.

소방학교에 입교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2가지로 구분됐다.

특수부대나 응급구조사로 근무했던 경력을 인정받아 특채로 입교하는 경우와, 일반 필기시험과 실기 시험을 통과해 입교하는 일반 공채의 경우.

물론 그 둘에 차이가 있는 건 아니었다.

특채생이 일반 공채생과 다른 건 경력을 인정받아 채용돼 어떤 부서에 배치될지 미리 정해진 상태라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경력을 무시할 순 없었다.

예를 들자면 구조 특채는 특수부대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자만이 지원이 가능했다.

종목은 달라도 그 체력만큼은 오히려 소방관을 능가할 이들이 특수부대 출신들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자신이 학생장에서 떨어진 것을 군말 없이 수긍했다.

[넌 언제 저런 몸 만들래?]

‘쳇.’

렉스의 말처럼, 한눈에 봐도 학생장으로 선출된 이의 체력은 독보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이성하가 맡게 된 반장은 학생장을 보좌하는 자리였다.

86기 교육생은 총 154명으로 2개의 반으로 나눠졌는데, 통솔의 용이함을 위해 각 반의 반장을 뽑아 학생장을 보좌하게 했다.

일명 부회장과 같은 자리였고, 이성하는 그중 B반의 반장으로 임명됐다.

“이성하 교육생. 오늘 사람을 살렸다지?”

“넵!”

“좋아. 네가 B반 반장이다. 열심히 해라.”

지각을 하긴 했지만 사람을 살리다 늦었다는 점을 교관이 좋게 봤던 것이다.

심지어 A반의 반장 또한 공교롭게도 같이 지각을 했던 동기 중 하나였다.

“또 보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처음에는 구조를 만류했지만 마지막엔 도움을 줬던 여성 동기가 손을 내밀자, 렉스가 이죽거렸다.

[꽤 이쁘지 않냐?]

‘시끄러워요.’

사고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지만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이성하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 손을 잡았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렉스의 말을 일축한 것처럼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연애가 아니라 소방관이 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렇게 입교식이 모두 끝났다.

“교육생들은 오늘 전달한 사항들을 모두 유념하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교관이 입교 전에 마쳐야 할 사항들을 마지막으로 당부하며 교육생들을 해산시켰고, 그렇게 해산된 교육생들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식당이었다.

어떻게 보면 교육생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맛있을까요?’

[그러지 않겠냐? 그래도 교육생들에게 먹이는 밥인데.]

6개월을 이곳에서 지내야 하는 만큼, 밥맛이 없다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이성하의 그런 걱정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대박!”

소방학교의 밥은 너무도 훌륭했다.

제육볶음, 호박전과 같은 반찬에 국도 고기가 듬뿍 들어간 설렁탕이었고,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자율 배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이었다.

“어머니, 혹시 이거 다 먹고 또 먹어도 됩니까?”

“그럼요. 다 드시고 부족하시면 더 드셔도 돼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다 먹고도 양이 부족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뷔페식이었다.

[맛있냐?]

‘네, 진짜 맛있어요. 최고예요!’

음식의 푸짐함은 물론 그 맛까지 훌륭해서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상했다.

‘뭐지? 왜 배가 안 차지?’

이미 거의 식판을 비워 가고 있음에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아침부터 힘을 쓴 참이었기에 밥을 듬뿍 떠 왔음에도 배가 차지 않았고, 그건 한 번 더 식판을 비운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렉스, 설마 이거…….’

[이제 눈치챘냐? 아까 이야기했잖아. 부작용이 있다고. 네 상처들이 빨리 나은 만큼 몸이 영양소를 원하는 거야.]

렉스의 말처럼 그가 방에서 이야기했던 회복력에 대한 부작용이 발생 중인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손에 쥔 숟가락을 놓고는 자신의 상처 부위를 만졌다.

‘진짜로 다 나았네…….’

새삼 자신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겪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미세하게나마 남아 있던 상처의 흔적까지 사라져 있었다. 이 정도라면 식욕에 대한 부작용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좋냐?]

‘네, 엄청요. 하하하.’

원체 먹는 걸 좋아하다 보니 이 정도는 전혀 부작용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식사를 하는 내내 이성하는 앞으로의 소방학교 생활이 너무나 기대됐다.

이 정도의 밥맛이라면 앞으로 훈련이 얼마나 힘들든 즐겁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몰랐다.

“선배님, 분위기가 너무 가벼운 거 같은데 자제시킬까요?”

“아니야, 놔둬. 첫날이잖아. 앞으로 제대로 못 잘 텐데 오늘만큼이라도 푹 자게 해 주자고.”

이튿날부터 시작될 지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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