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4화>
4화. 꿈을 위해 (3)
이성하를 비롯한 예비 소방공무원들이 중앙소방학교에 도착한 건 예정된 입교식에서 두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고의 처치는 물론,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느라 시간에 지체된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현장 교관에게 욕부터 먹어야 했다.
“지금이 몇 시입니까?”
“…….”
“한두 명도 아니고 아홉 명이 단체로 연락도 없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려 9명의 인원이 입교식에 나타나지 않아 소방학교가 한 차례 뒤집힌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예비 소방공무원들은 사람을 구했음에도 부동자세를 취한 채 식은땀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성을 내는 교관의 말처럼 연락도 없이 입교식에 늦은 건 분명 자신들의 잘못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이 지각한 이유가 정상 참작이 될 여지는 충분했다는 점이었다.
“그만하지, 성 교관. 방금 관할 소방서에서 전화 왔어. 이 친구들 덕분에 사람들 목숨을 구했다고. 그러니까 거기까지만 하자고.”
“알겠습니다, 교장님.”
소방교장으로 보이는 이가 화를 내는 교관을 만류한 덕분에 이성하를 비롯한 9명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사람을 구했다니까 벌점은 안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연락 없이 입교식에 늦었기에 훈련장 다섯 바퀴를 뛰는 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작습니다! 훈련장 일곱 바퀴!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일곱 바퀴! 뛰어!”
타다다다닥!
다행히 내심 걱정하던 벌점이 아닌, 훈련장을 뛰는 걸로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소방학교에는 학생을 평가하는 점수 사항 중 생활 평가라는 항목이 있었다.
전체 평가 1,000점 중 100점이 이 생활 평가였고, 이 항목은 훈련생들의 생활 태도와 훈련에 참여하는 의지를 교관들이 감점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채점했다.
100점을 먼저 부여해서 벌점을 감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으며, 누적 감점이 50점 이상이거나 만점의 5할 미만이 되는 교육생은 소방학교에서 퇴교 조치를 받았다.
예비 소방관들이 소방관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당락이 벌점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예비 소방관들은 훈련장을 뛰고는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다.
“다행이에요. 벌점은 없었네요.”
“그러게요. 저도 교관이 성질내는 거 보고 첫날부터 벌점 먹는 줄 알았잖아요.”
입교 첫날부터 벌점을 받는 것만큼 예비 소방관들에게 끔찍한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만큼은 웃지 않았다.
“나중에 봐요.”
“네.”
다소 지친 표정으로 동기들과 헤어졌고, 자신에게 배정받은 생활실로 와서는 털썩 주저앉았다.
[왜? 힘든가 보지?]
“그럼 당연히 힘들지, 안 힘들겠어요?”
병원에서부터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까지 장갑과 대화하느라 진이 빠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알게 된 건 많았다.
12년 전 건물의 화재 속에서 사람을 구하다 순직한 아버지가 착용했던 장갑이었고, 그 장갑에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귀신이 깃든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소방관님이시다?”
[그래, 한때 미국에서 잘나가는 소방관이었지. 렉스라고 말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그것도 한국인도 아닌, 아무 연고 없는 미국의 소방관 귀신이 깃들어 있었다.
왜 장갑에 깃들어 있는지는 귀신 본인도 모르고 있었다.
[글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눈떠 보니 네 아버지가 보였어. 난 장갑에 있었고, 그 이후로 네 아버지와는 대충 삼 년을 함께했지.]
그저 눈을 뜨니 앞에 있어 함께하게 됐다는 이유밖에는.
하지만 단순한 귀신은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기억으로만 잔류하는 사념에 가까웠어. 그냥 볼 수는 있지만, 말은 못 걸고 지켜만 봤던 존재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마지막 네 아버지의 염원으로 인해 사고를 하고 말을 할 수 있게 됐어.]
“염원이요?”
[그래, 네 아버지가 죽는 순간 너의 행복을 간절하게 빌었거든. 그때 비로소 존재하게 됐다고 해야 할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장갑의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작은 불덩이가 보였다.
‘불?’
희미하긴 하지만 분명히 타오르는 불의 모습 그대로였고, 그 생각이 맞는다는 듯 불덩이가 살짝 일렁이며 빛을 발했다.
[그래. 불의 기운이 모이면서 형체를 갖추게 됐거든. 이를테면 성스러운 불이라고 할까?]
아버지가 평생을 함께했던, 마지막에 떠날 때도 곁에 있던 불의 기운이 깃든 것이다.
하지만 설명과 다르게 그리 거창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방은 왜 이렇게 추운 거야?]
“네?”
[방이 왜 이렇게 춥냐고. 보일러 없어? 그 있잖아, 바닥을 따뜻하게 만드는 거.]
처음만 해도 근엄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던 존재가 지금은 다소 경박하게 느껴졌다.
말투가 마치 세상에 불만이 많은 중2병처럼 느껴졌고, 그 마음을 느낀 건지 또다시 불만스러운 말투가 귓가로 꽂혀 들어왔다.
[그래서 불만이야?]
“아닙니다…….”
[똑바로 해라. 난 네 아버지의 친구니까.]
이성하의 생각을 읽는지 렉스가 바로 경고성 메시지를 던졌다.
짐작은 했지만…….
‘역시 생각까지 읽을 수 있는 건가?’
병원에서 학교로 오는 도중,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눌 때부터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다.
렉스는 장갑을 끼지 않아도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며, 보이진 않았지만 장갑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옆에 염체로 존재하는 듯했다.
한마디로 이성하가 장갑을 끼든 안 끼든 장갑을 근처에 두고 있으면, 렉스는 대화는 물론 이성하의 생각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반경은 생각보다 넓었다.
[너 뭐 하냐?]
“……이 거리에 있어도 소통이 가능한 겁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갑을 방 밖에 두고 문을 닫았음에도 렉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보니 짜증이 울컥 솟구쳤다.
“이거 반칙 아닙니까?”
[반칙?]
“네, 반칙이요. 왜 저만 생각을 읽혀야 하는데요? 저도 읽을 수 있어야죠. 그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자신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불쾌한 동거인이 생겨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분하게도 장갑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날 버리려고?]
“젠장.”
[하하하하.]
애초에 장갑은, 아버지가 남겨 준 유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성하가 귀여웠는지 렉스가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네가 원하지 않는 한 난 네 마음을 읽을 수 없으니까.]
“원하지 않으면요?”
[그래. 사람들은 이런 걸 계약이라고 한다지? 좀 거슬리긴 하지만 넌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은 상태야. 네 아버지가 바란 건 너의 행복이었고, 그 때문에 난 네가 원하지 않는 건 할 수가 없지. 지금까지야 말이 없어서 내 마음대로 했지만 네가 정하는 순간 난 그걸 들어줄 의무가 있어. 그러니 그건 걱정하지 마라.]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한마디로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렉스가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뜻.
그에 이성하는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좋아요. 그럼 제 마음속을 읽는 건 그만해 주세요.”
[이렇게 빨리?]
“동등하다면서요.”
[쳇, 그렇게 하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렉스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 이성하의 요구가 불만이었는지 렉스가 투덜거렸다.
[그래도 처음부터 너무 야박한 거 아니냐? 나 덕분에 앞으로 네가 할 수 있는 게 많아질 텐데.]
“할 수 있는 거요?”
[오늘 봤잖아. 이래 봬도 내가 살던 곳에서 렉스 하면 모르는 소방관이 없었어. 거기다 삼 년이긴 하지만 네 아버지의 경험까지도 기억하고 있지. 미약하지만 너에게 초인적인 능력도 부여할 수 있고.]
“초인이요?”
[거울로 한번 걸어가 봐.]
이성하가 거울을 향해 다가갔다.
[오늘 네가 부상자를 구하면서 다친 상처. 그거 어딨어?]
렉스의 말에 부상자를 구하다 긁혔던 상처를 살폈고, 상처가 났던 부위를 확인하자마자 두 눈을 부릅떴다.
“상처가…….”
[그래. 거의 다 나았지.]
핏기가 역력했던 상처가 어느새 딱지가 떨어져 갈 만큼 회복된 상태였다.
렉스의 말은 계속됐다.
[그것만이 아니야. 긴 시간은 아니지만 불길 속에서 조금은 널 보호할 수 있을 거야.]
“불길이요?”
[그래. 장갑에 깃들어 있긴 하지만 내 힘의 원천은 불이야. 그렇기에 미약하지만 불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거고, 그로 인해 네 회복력도 좋아진 거야. 예를 들자면 불의 힘으로 너의 세포 활동을 촉진시키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았다.
렉스는 불의 기운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근본적으로 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이용할 수 있는 듯 보였고, 그로 인해 지금 눈에 보이는 회복력과 불에 대한 내성을 부여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어때? 이제 좀 존경스럽나?]
“네! 감탄 중입니다!”
방금까지도 건방지다고 느껴졌던 렉스가 순간 멋있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능력이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능력은 아니었다.
[좋아하긴 아직 일러. 이 능력은 완벽한 게 아니니까. 불에 대한 보호는 시간이 굉장히 짧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리 길지는 않을 거다. 거기다 불의 온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면 더 짧아져.]
불길 속에서 잠시간의 보호만 가능하고, 앞서 말한 회복력도 절대적인 건 아닌 듯 보였다.
“그럼 이 상처도?”
[그래. 방금 말했다시피 일반인보다 회복력이 올라간 것뿐이야. 삼 일이 걸릴 부상이라면 하루면 낫고 하루가 걸릴 부상도 비슷한 수준으로 낫게 되지만, 목숨을 잃을 만한 중병이나 중상에는 방법이 없어. 한마디로 회복력을 올릴 뿐, 절대적인 능력은 아니라는 거지. 거기다 배고픔이라는 소소한 부작용까지 있다고 할까?]
상처가 다 낫지는 않고 흔적이 남아 있는 것처럼, 절대적인 회복이 아니라 신체의 회복력을 올리는 능력이기에 배고픔이라는 리바운드 현상까지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도 대단한데요?”
[대단?]
“네. 소방관으로서 꼭 필요한 능력들이잖아요.”
소방관의 아들로서 소방관들이 얼마나 많은 부상을 몸에 달고 사는지 알고 있는 이성하였다.
아빠는 매번 출동을 나가면 상처를 달고 오는 건 기본이었고, 어떤 때는 심한 부상을 입어 병원 생활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빠, 또 다쳤어?”
“조금. 그런데 금방 나을 거야. 사실 별로 안 아픈데 쉬려고 꾀부리는 거거든. 하하하.”
어릴 적 툭하면 병원 신세를 지던 아버지에게 문병을 가곤 했었다.
그걸 말하니 렉스가 피식 웃었다.
[기억나네.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아빠!’ 하고 울었지.]
“콧물 안 흘렸거든요!”
[부정하지 마라. 그렇게 자신의 기억을 미화하는 건 좋지 않은 일이야. 큭큭큭큭.]
비웃음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릴 적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말이었다.
분명 자신은 어릴 적 그렇게 울면서 아버지를 부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훈련복이지만 아버지가 입었던 주황 색깔의 당근복(기동복)을 부여받았으며,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훈련을 받았다는 중앙소방학교에 똑같이 입교했다.
가장 존경했던 아버지의 뒤를 그대로 따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말했다.
“부탁드려도 됩니까?”
[뭘?]
“제가 좋은 소방관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자신이 훌륭한 소방관이 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지만 그 부탁에 렉스는 까칠했다.
[그러고 싶으면 보일러부터 틀어야 되지 않나?]
들어오자마자 이야기했던 보일러 타령을 다시금 시작했고, 그에 이성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했다.
‘믿어도 되는 거야?’
방금까지 대단하게 보였던 렉스가 다시 철부지처럼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 제86기 신규 임용자 과정 교육생에게 알립니다. 교육생들은 지금부터 오리엔테이션을 위하여 11시 30분까지 대강당으로 집합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제86기 신규 임용자 과정…….
생활실 내의 스피커에서 교육생들의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이성하는 지급받은 당근복으로 갈아입고는 곧장 생활실을 뛰쳐나갔다.
중앙소방학교 제86기 교육생 이성하.
그가 드디어 소방학교 교육생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