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3화 (3/235)

<강철 소방대 3화>

3화. 꿈을 위해 (2)

이성하는 당황한 나머지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미쳤나?’

현실적으로 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걸 의학에서는 정신증의 일종인 환청이라고 칭했으니까.

하지만 환청은 아니었다.

[너, 사람 안 구할 거냐?]

장갑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렸고, 이성하는 저도 모르게 그에 크게 대답하고 말았다.

“뭐, 뭐야?”

장갑이 말을 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놀란 것이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갑자기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당장이라도 사람을 구해야 한다며 나섰던 이성하가 당혹스러운 음성을 내뱉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니까.

하지만 이성하에겐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었지만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5분이야.]

“뭐?”

[5분이라고. 다른 두 명은 괜찮겠지만 머리를 다친 운전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아니, 뒷좌석의 사람도 상태가 안 좋은 건 마찬가지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아무래도 부정맥 같다.]

“부정맥?”

[그래. 무슨 말인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자칫하면 심정지가 올 수 있다. 그런데도 넌, 나랑 대화나 나눌 생각이냐?]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현장을 직시했고,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를 다시 깨달았다.

“허억…… 허억…….”

“사, 살려 주세요…….”

“젠장.”

바보같이 장갑이 말을 한다는 사실에 눈이 팔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소홀했다.

이성하는 장갑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뒤로 미뤄 두기로 했다.

“칼! 여기 칼 가지고 있는 사람 없습니까?”

“여, 여기 있어요!”

“감사합니다.”

먼저 칼을 구해 풀리지 않는 안전벨트부터 끊었고, 그다음 무엇을 할지를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되지?”

처음 뛰어들었을 때와 같은 사람을 구하겠다는 눈빛이었다.

생명이 위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눈앞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눈빛이었고, 장갑은 그런 이성하의 모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래, 그 눈빛이지.]

하지만 이성하가 원한 건 그런 칭찬 따위가 아니었다.

“빨리!”

부상자들의 상태를 주시하며 장갑을 향해 재촉하자, 그에 장갑이 대답했다.

[가장 위중한 운전자부터 꺼내.]

“그러니까 어떻게?!”

[너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두부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절대 옮기지 않아. 하지만 옮겨야 하는 상황엔 어떻게 해야 하지?]

“들것!”

[그래. 하지만 지금은 들것이 없지. 그렇다면 무엇으로 대체해야 할까?]

이성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주변을 둘러봤다.

부상자를 옮길 때 기본적인 방법이 들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들것이 없다면 그것을 대체할 것을 찾아야 한다.

이성하가 떠올린 것은 버스 기사였다.

‘담요!’

하루 종일 운전을 하는 버스 기사라면 휴식 때 쓸 담요를 분명 가지고 있을 터.

다행히 그 생각은 적중했다.

“아저씨, 혹시 담요 있으세요?”

“버스에 있어요.”

“그게 필요해요. 담요 좀 가져다주세요.”

“아, 알겠어요. 잠시만 있어요.”

버스 기사가 서둘러 담요를 가지러 버스로 달려갔다.

[똑똑하네.]

장갑의 칭찬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이거면 될까요?”

“네, 될 거 같아요.”

버스 기사가 가져온 담요를 펼쳐서 당겨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동기들에게 담요를 건넸다.

“제가 조심히 들어서 눕힐게요. 그러니까 탄탄하게 잘 잡으셔야 돼요.”

“우리가요?”

“그럼 누가 해요? 부상자 꺼내서 맨바닥에 그냥 눕힐까요?”

동기들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자식 뭐야?’

방금까지 이상한 행동을 보이던 동기가 갑자기 번개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지시까지 내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부할 사안은 아니었다.

“선생님, 제가 지금 끌어낼 거예요. 통증이 있으셔도 참으셔야 해요.”

이미 이성하는 부상자를 다독이고 있었고, 동기들 또한 서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바쁘게 움직였다.

“생수 가지고 있는 분 계세요?”

“혹시 수건 가지고 있으신 분? 손수건도 괜찮습니다. 부상자 꺼내면 지혈해야 돼요.”

그들 역시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에 소방관의 길을 선택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하에게 그런 동기들의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부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야. 오른손으로 목을 받치고 왼손으로 겨드랑이를 잡고 꺼내. 최대한 머리 쪽에 2차 충격이 가해지지 않게 해야 해.]

이미 장갑의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중이었다.

‘목을 받치고 겨드랑이를 잡아서 조심스럽게.’

장갑의 지시에 맞춰 부상자가 2차 충격을 입지 않도록 천천히 끌어냈고.

[버스 안으로 옮겨. 직사광선은 환자에게 좋지 않아. 그리고 당연히 기도를 확보하는 건 필수야.]

“버스 안으로 옮겨 주세요. 숨 제대로 쉴 수 있도록 기도 확보해 주셔야 해요.”

장갑에게 들은 후속 조치를 동기들에게 설명하고는 바로 다른 부상자에게 집중했다.

“선생님, 꺼낼 겁니다. 아파도 참으세요.”

“으으…… 미현이부터 구해 주세요.”

조수석에서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남성을 끌어냈으며.

“팔 잡으세요. 이제 나갈 거예요.”

“허억. 허억.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리가 부러져 뒷좌석에서 신음하던 여성까지 차 안에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맙소사. 다 구해 냈어?”

“대박!”

“이 친구들. 정말 멋있는 친구들이구먼.”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호를 내질렀을 정도로 완벽한 구조였다.

하지만 긴장을 놓기엔 일렀다.

“심정지야! 숨을 안 쉬어!”

버스 안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젠장!”

그 고함에 이성하가 다급한 표정으로 버스로 뛰어 들어갔고, 동시에 귓가에 못마땅한 음성이 울렸다.

[역시 부정맥이었나.]

“허억. 숨을 안 쉬어. 이거 어떻게 해!”

이미 부상자들을 돌보던 동기가 다급한 표정으로 CPR(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부정맥은 심박동 수가 정상 박동보다 빠르거나 느리게 뛰면서 심장에 장애를 일으키는 증상을 말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게 되면 혈액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게 심해지면 심장이 멈추는 경우가 있었다.

흔히 드라마에서 말하는 어레스트(심정지).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증상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이성하는 급히 버스의 뒤쪽으로 달려갔다.

소방차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제발.’

부정맥으로 인한 심정지.

그것은 의사가 아니고서야 해결할 수 없는 중상에 해당했으니까.

하지만 소방차는 보이지 않았다.

소방차는커녕 빼곡히 늘어선 차만 보였고, 그에 이성하는 분통을 터트렸다.

“젠장!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한참이 지나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소방관들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었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심정지는 나도 어쩔 수 없다. 그저 CPR을 계속하는 것밖에.]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소방관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안 돼.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그냥 두고 볼 순 없어.’

방금까지만 해도 의식이 있던 사람이었다.

“으으…… 미현이부터 구해 주세요.”

자신의 부상이 더 심각한 와중에도 다른 사람부터 구해 달라며 신음을 내뱉던 사람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결심했다.

“병원으로 직접 가시죠.”

“우리가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요. 이 상태로 두면 이분 죽을 거예요.”

소방관이 오지 못한다면 자신이 직접 병원으로 이송할 마음을 품은 이성하였다.

하지만 동기 몇 명이 그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전 반대입니다. 만약 그랬다가 이분이 사망하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집니까?”

“저도요. 그냥 소방관들을 기다리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만약 환자가 사망하기라도 했다가는 정말 일이 커질 거예요.”

환자가 사망했을 시의 책임 때문이었다.

의료진이 아님에도 섣불리 판단해 사람이 죽는 상황이 나올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걸 말하는 것이다.

그때 장갑의 비웃음소리가 이성하의 귓가를 울렸다.

[너도 동의하나?]

책임이 두려워 사람이 목숨을 잃는 걸 좌시하려는 이들의 모습에 불쾌한 감정을 내보인 말투였다.

그때였다.

“근처에 병원이 하나 있어요.”

처음 사람들을 구하려 할 때 이성하를 말렸던 여성 동기가 손을 들었다.

“5킬로미터. 앞으로는 차가 없으니까 10분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정도라면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그녀가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이성하의 의견에 한 표를 던졌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거리를 언급하며 동기들을 쳐다보자, 고민을 하던 동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죠. 골든타임은 지키지 못하겠지만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그래요, 가요. 우리는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이잖아요. 아직 예비에 불과하지만.”

그들 또한 그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 반대를 했던 동기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려 했지만 옆에서 듣던 버스 기사가 끼어들었다.

“10분! 무조건 10분 안에 도착하도록 해 볼게요.”

그 또한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러자 장갑이 흐뭇한 목소리를 토해 냈다.

[그래. 그래야지.]

아무 상관이 없는 일반인조차 나서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듯했다.

이성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사람을 구하고 싶은 건 예비 소방관들과 자신만이 아니었다.

“꽉 잡아요!”

“네!”

혼자가 아닌 여럿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함께하고 있으니, 이성하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움직였다.

“교대해요. 이제 제가 할게요.”

“허억. 허억. 고마워요.”

툭! 툭! 툭!

힘이 빠진 동기와 번갈아 가며 전력으로 환자의 가슴을 압박했고, 그 모습은 버스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환자의 목숨이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며 온 힘을 다해 CPR을 했다.

그 간절함은 버스가 병원에 도착한 것도 몰랐을 정도였다.

“비키세요!”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비키시라고요!”

턱!

버스에 올라탄 의료진이 CPR에 몰입한 이성하의 팔을 억지로 떼어 내서야 환자를 인계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었다.

“이 환자, 살아나면 당신들에게 고마워해야겠네요.”

환자를 데리고 가던 의료진 중 한 명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CPR 도중이긴 하지만 맥을 짚어 봤는지 희미한 미소를 띠면서 한 말이었다.

그제야 환자를 인계한 예비 소방공무원들이 서로를 바라보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젠장. 다시는 못 해.”

“저도요. 죽을 거 같아요.”

자신들이 한 고생이 헛수고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성하도 그중 하나였다.

‘살린 건가?’

오랜 시간 CPR을 하느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감동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너 뭐야?”

이제는 미뤄 뒀던 의문을 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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