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2화>
2화. 꿈을 위해 (1)
늦잠을 잤던 청년은 간신히 원하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저씨! 잠시만요!”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겨우 불러 세운 그는,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좌석에 털썩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식겁했네.”
자칫하면 소방관이 되기 위한 첫 단계부터 탈락의 고비를 마실 뻔했기 때문이다.
청년의 이름은 이성하였다.
올해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소방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합격 통지서를 받은 22살의 젊은 인재.
일반적으로 신규 소방공무원들의 나이가 20대 후반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굉장히 어린 나이였다.
이성하의 꿈은 어릴 때부터 소방관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입대했고, 그곳에서 틈틈이 공부한 실력으로 소방공무원 시험에 단박에 합격했다.
“나 오늘부터 소방학교에 들어가. 잘하고 올게, 아빠.”
아버지의 사진에 소방학교의 입교를 고했던 것처럼,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따라 일찌감치 소방관으로 자신의 진로를 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첫 단추였다.
소방관이 되기 위해선 소방학교에 입교해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성하가 입교할 곳은 천안에 위치한 중앙소방학교였다.
원래는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소방학교로 입교해야 되지만, 최근 많은 재난 사건으로 소방공무원들의 임용이 확대되며 많은 학교들이 소방청 직속의 중앙소방학교에 교육을 위탁하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이번 소방 시험에 합격한 이성하는 서울소방학교가 아닌, 중앙소방학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갈아탄 버스 안에서 몇몇이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눴다.
“이번에 입교하시죠?”
“혹시 그쪽도?”
“맞아요. 이번에 입교하는 86기입니다. 반가워요.”
“와, 반갑습니다. 동기군요.”
앞으로의 소방학교 생활의 기대감에 빨갛게 상기된 얼굴들을 알아봤던 모양.
물론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건 오늘 누구보다 요란스럽게 하루를 시작한 이성하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86기?”
“네, 86기입니다. 반가워요.”
이름 모를 동기와 웃으며 인사를 나눴고, 이야기를 나눈 뒤엔 옆 좌석에 놔뒀던 가방을 쓰다듬으며 설렌 표정을 지었다.
‘아빠, 나 잘할 수 있겠지?’
생전 존경해 마지않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소방관이 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때였다.
“어엇?”
갑자기 버스 기사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급하게 핸들을 돌렸다.
끼이이익!
바퀴가 밀리는 소리와 함께 버스가 일순 흔들렸고, 그에 좌석에 앉아 있던 승객들이 버스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꺄아아아!”
콰당탕!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아!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다들 금세 일어나 갑작스러운 버스의 제동에 불만을 토해 냈다.
하지만 그 불만은 순식간에 경악으로 바뀌었다.
“마, 맙소사.”
“사고예요!”
“젠장!”
이른 아침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중 추돌 사고였다.
버스의 앞쪽에서 세 대의 차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도, 도와주세요!”
“흐아아아앙!”
사고 차량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오며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에, 방금까지 인사를 나눴던 예비 소방공무원들이 움직였다.
[소방강령 제2조 소방정신의 3항 헌신.]
소방공무원은 위기에 처한 국민의 요청에 주저하지 않고 대응하며, 현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구호의 손길을 내민다.
“도와줘야 돼요!”
“젠장!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야!”
“신고는 제가 할게요!”
그들이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매일같이 외우고 읊었던 소방강령 중 하나가 시민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하도 그중 하나였다.
‘도와야 해.’
사고를 인지하자마자 누구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간 게 그였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젠장. 문이 안 열려요!”
다른 차는 괜찮았지만 중간에 낀 차의 문이 찌그러져 열리지 않았다.
앞뒤로 충돌의 충격을 흡수하느라 차체가 심하게 찌그러졌고, 그 안에서 세 사람이 신음을 내뱉으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 사람 다리가 부러졌어요.”
“이분도 그래요! 아저씨, 제 목소리 들리세요?”
“끄으으으…….”
“젠장.”
의식은 있어도 다들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상황.
하지만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차 보닛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봐서는 어떻게든 문을 열어 사람들을 구해야 했고, 그에 이성하가 다시 버스로 뛰어갔다.
“어디 가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성하는 그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저기 있다.’
버스에 올라 바닥에 나뒹구는 자신의 가방을 집어 들었고, 그곳에서 한 켤레의 소방 장갑을 꺼내 착용했다.
‘이거라면 할 수 있어.’
집에서 나오기 전 챙겨 왔던 소방 장갑이었다.
약간은 그슬리고, 약간은 해졌지만, 돌아가신 아빠의 유품이었다.
항상 보물처럼 간직했던 물건인 만큼, 오늘도 챙긴 것이다.
“비켜 주세요! 제가 할게요!”
끼이이이익!
현장으로 돌아가 유리창이 깨진 차 창문을 붙잡았고, 이내 온 힘을 다해 찌그러진 차 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열렸다!”
“열렸어요!”
마침내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구할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건드리면 안 돼요!”
“뭐라고요?”
“잊었어요? 두부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절대 움직이면 안 돼요. 자칫하다 신경이라도 손상됐다가는 더 큰 부상이 된다고요!”
버스에서 인사를 나눴던 동기들 중 한 여성 동기가 만류했다.
교통사고 응급조치의 주의 사항을 이야기하자, 모두가 당황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어떡하죠?”
“맞는 말이에요. 혹여나 잘못 조치했다가는 신경이 손상될 수도 있다고 했어요. 신고했으니까 지금은 소방관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녀의 말처럼 부상자를 함부로 움직이는 건 교통사고 상황에서 절대로 금지해야 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 부상자를 이동시키고 응급조치를 해야 하는지는 다들 너무 잘 알았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소방관이 되기 위해 몇 년을 공부해 온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실전 경험이 없으니 지금은 소방관들을 기다리는 게 맞았다.
“기다려요. 우리는 아직 소방관이 아니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한 동기의 말처럼 그들은 아직 정식 소방관이 아닌, 예비 소방관에 불과하다.
이성하도 그에 납득했다.
‘그렇지. 내가 하다가 실수라도 했다가는 큰일 날 수 있어.’
이론과 실전이 다르다는 건 군대에서부터 이미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뭐라고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버스에서 내리면서 신고를 하겠다던 동기가 핸드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지금 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부상자들 상황도 굉장히 심각하다고요!”
한참을 심각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고, 잠시 후 전화를 끊고는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어떡하죠. 도착하려면 앞으로 10분은 더 걸린다는데요?”
“10분이요? 우리 신고한 지 이미 10분은 지났잖아요.”
“도로 상황이 안 좋대요. 차들이 양보는 하는데 그래도 10분은 더 걸릴 거 같대요.”
신고를 접수받았던 119 쪽에서 소방관들의 도착이 늦어질 거 같다는 연락이었다.
그 말에 이성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현재 사고가 난 지점은 서울과 천안 사이에 위치한 경부고속도로였다.
눈앞의 사고로 인해 고속도로가 꽉 막힌 상태였고, 그들이 위치한 곳은 고속도로에서도 진입로를 한참 지난 지점이었다.
빵! 빵!
뒤쪽에서 상황을 모르는 차들의 클랙슨 소리가 들려왔다. 소방관들이 출동하기 안 좋은 상황.
다른 동기들도 무슨 상황인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해요? 그래도 기다려야죠.”
“기다려요? 지금 저 사람들 조금이라도 빨리 병원에 가야 해요. 상황이 좋지 못하다고요.”
조금 전, 소방관들을 기다리자고 의견을 모은 이들이었지만,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더 이상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다.
‘늦어.’
말이 10분이지, 도로의 상황을 본다면 소방관들의 도착은 더 지연될 수 있었다.
“으으…….”
“허억. 허억.”
부상자들의 상태를 보건대 그렇게 된다면 더 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에 이성하가 걸음을 옮겼다.
“뭐 하시려고요?”
“구해야죠.”
“구해요?”
“네. 그럼 그냥 두고 볼 겁니까? 이대로 두면 죽어요. 사람이 죽는다고요!”
소방공무원.
아직은 첫발도 떼지 못한 예비에 불과했지만, 그 길을 걷기 시작한 이상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성하는 이내 그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보다 부상자들의 상태가 심각해서였다.
“으으…….”
운전석에 앉은 남성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신음을 내뱉었고.
“허억…… 배가 너무 아파요.”
“다리요…… 다리…….”
조수석의 남성과 뒷좌석의 여성은 각기 복부와 다리의 통증을 호소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젠장!”
기세 좋게 나서기는 했지만, 막상 상태를 보니 훈련도 받지 않은 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칼로 안전벨트부터 끊어.]
귓가로 묘한 목소리가 들렸다.
“응?”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런 이성하에게 다시 들려온 건 호통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정신 안 차려? 칼부터 구해! 빨리 안전벨트부터 끊으란 말이야!]
들려오는 목소리의 방향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내렸고, 그곳에서 이성하는 볼 수 있었다.
[사람 안 구할 거냐?]
바로 소방 장갑.
손에 끼고 있던 아빠의 유품이 말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