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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90/90)

 Epilogue

에반스가 그의 영지로 돌아간 지 10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그동안 트렌시아 제국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북부와 동서의 대영지에서 그 변화가 컸다. 바로 에반스의 영지들이었다. 그곳에서 일어난 개혁의 바람이 제국에 거세게 불면서 지금 제국은 새롭게 거듭나고 있었다.

그 개혁은 백성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굶주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어났다. 때문에 백성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제국은 겉보기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백성들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면서 10년 사이 야만족과의 전란으로 줄어들었던 인구가 10년 전에 비해 더 늘어나 있었다.

제국의 황제 레온 2세도 유능한 재상과 신하들을 등용해서 제국을 잘 이끌었고 제국 영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친왕 에반스와 중요한 일을 상의해서 결정하면서 백성들로부터 성황제란 호칭을 들었다.

그런 평화로운 제국에 갑자기 어둠이 드리웠다. 야만족이 다시 준동한 것이다. 10년 전 에반스가 살려 보낸 누르마치가 야만족 30만 대군을 이끌고 파르미르 고원을 넘어 그 아래 평원을 점령했다.

그리고 트렌시아 제국의 국경지대에 야만족 대병력을 주둔시켰다. 그 일로 트렌시아 제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황제인 레온 2세와 중앙 정계의 귀족들은 모두 친왕 에반스만 쳐다보았다. 제국은 10년 동안 내실을 다져 왔지만 그 재력을 거의 백성들에게 쏟아부었기 때문에 군대에는 많은 투자를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친왕 에반스는 달랐다. 그는 자기 휘하 다섯 대영지에 5만의 정규군을 양성해서 그들을 꾸준히 강군으로 훈련시켜 왔다. 그러니 그 휘하 병력만 25만이나 되는 셈이었다. 야만족과 능히 싸워 볼 만한 병력이었다.

호들갑을 떠는 황제와 중앙 정계의 귀족들을 에반스가 진정시켰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에반스는 각 대영지의 정규군들을 그 영지의 국경지대에 전진 배치시켰다. 야만족을 제국의 영토로 끌어들여 싸우면 백성들에게 피해가 클 테니 아예 전선을 국경지대로 정한 것이다.

그렇게 야만족과 친왕 에반스가 이끄는 다섯 대영지의 연합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하지만 야만족은 결국은 연합군이 만들어 놓은 전선을 뚫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오늘을 위해 10년을 준비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제국을 점령하고 말 것이다.”

야만족 총사령관인 누루마치는 야만족들을 독려하며 직접 전선에서 야만족을 이끌었다. 하지만 연합군의 전선은 철벽처럼 야만족을 막아 냈다.

결국 전선이 고착 상태에 빠지자 야만족의 여황제가 직접 파르미르 고원을 넘어 전선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황은 어떤가요?”

30대의 완숙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야만족의 지배자가 누루마치에게 물었다.

“좋지 않습니다. 이대로라면 한 달을 더 버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누루마치의 그 말에 여황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야만족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인 아무르 제국을 세운 꼬레크 대제의 황후였다.

놀랍게 랄트족의 대족장인 우툴라의 자식들 중 유일하게 정상이 아닌 꼬레크가 야만족을 일통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꼬레크 대제는 야만족을 통일한 후 급작스럽게 죽었다. 그리고 아무르 제국을 단숨에 장악한 존재가 바로 고란족의 대족장인 수아레스의 여식이자, 꼬레크 대제의 황후였던 브리테였다.

그녀는 아무르 제국의 이름하에 야만족을 하나로 뭉치게 했으며 대륙의 나라들과 교역하며 발전을 시켰다.

그렇게 몇 년 사이 아무르 제국은 완전히 그 기틀을 잡았다. 그때 그녀는 전쟁을 준비했다. 척박한 야만족의 영토만으로 아무르 제국이 더 이상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물론 죽은 선대 대족장들과 야만족 병사들에 대한 복수의 의미도 컸다. 그녀의 징병에 야만족들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렇게 1년여 간의 전쟁 준비 끝에 브리테는 30만 야만족 병력을 제국의 땅으로 보냈다. 하지만 트렌시아 제국에는 강철 영주로 불리는 친왕 에반스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강철 영주의 병사들은 그 영주처럼 강철같이 강했다.

여황제가 오자 야만족의 기세가 고무되었다. 하지만 그때 연합군의 전선에 강철 영주 에반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수하들과 제자들이 전선에 나서자 야만족은 패배만 거듭했다.

다행이라면 연합군은 그들이 구축한 전선만 지킬 뿐 야만족을 향해 공격해 오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한쪽은 죽어라 싸우자고 덤비는데 한쪽은 무덤덤하니 막기만 하는 식이었다. 그렇다 보니 전선은 계속 고착 상태에 빠졌고, 전투 열기도 식어 갔다. 그것은 곧 야만족 병사들의 사기 저하로 나타났다.

누루마치의 예상대로 야만족은 결국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북방에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파르미르 고원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견뎌 가며 싸울 여력이 야만족 병사들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여황제 브리테는 야만족에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떠나기 전날 밤 여황제 브리테가 보낸 전령이 연합군 진영을 향해 달려갔다.

“나를 보고 싶다고?”

야만족의 나라, 아무르 제국의 여황제 브리테는 떠나기 전 꼭 에반스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두 군영 사이 중립지대에서 트렌시아 제국 다섯 대영지 연합군의 우두머리 에반스와 야만족이 세운 아무르 제국의 지배자 여황제 브리테가 만났다.

“다, 당신은…….”

브리테는 한눈에 에반스를 알아보았다.

“…….”

에반스는 침묵했다.

“그랬군요.”

브리테가 한결 편안해진 상태에서 에반스를 쳐다보았다. 브리테는 이미 1년 전 에반스를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아무르 제국의 황궁에서 말이다.

그때 에반스는 야만족 주술사들의 신이나 다름없는 윈스트런의 후계자로, 또한 야만족 주술사들의 대표로 그녀 앞에 섰었다.

꾸준히 파르미르 고원에 들러 어둠의 주술사들에게 윈스트런의 주술을 전수하던 에반스는 윈스트런의 주술을 어둠의 주술사들 이외에 다른 야만족 주술사들에게도 알려 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매년 시간이 날 때마다 야만족의 땅으로 가서 주술사들을 불러 놓고 그들에게 대주술사 윈스트런의 가르침을 전했다.

그렇게 윈스트런의 모든 것을 야만족 주술사들에게 전수한 에반스는 마지막으로 윈스트런의 뜻을 기리는 비를 야만족 곳곳에 세웠다.

그 비를 세우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운 것이 바로 야만족이 세운 나라, 아무르 제국의 여황제 브리테였던 것이다.

그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에반스는 아무르 제국의 황궁을 찾았고 여황제를 만났던 것이다.

당시 브리테는 그를 포섭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주술사들의 우두머리인 그만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면 트렌시아 제국을 점령하는 데 큰 힘이 될 터였다.

하지만 에반스는 그녀의 청을 완곡히 거절했다. 그리고 주술사들이 야만족 병사들과 같이 전쟁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을 그녀에게 명백히 알렸다.

그래서 트렌시아 제국을 침공한 야만족의 군대에는 야만족 주술사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신이 강철 영주였군요.”

“이렇게 뵙게 되어 유감입니다.”

“아니요. 짐과 우리 아무르 제국의 입장에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에요. 만약 당신이 강철 영주인지 몰랐다면 돌아가서 또다시 침공 준비를 했을 테니 말이에요.”

“그 말씀은…….”

“당신이 있는 한 우리 아무르 제국이 트렌시아 제국을 침공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고마운 말씀이십니다.”

“고마울 것까지는 없어요. 어차피 실패할 짓은 하고 싶지 않아서이니까.”

사람은 바뀐다고 하지만 브리테는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러니 야만족들을 통치하는 최고 지배자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둘의 대화는 곧 끝이 났다.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요?”

“그렇겠지요.”

에반스도 작년에 윈스트런이 남긴 주술을 야만족의 주술사들에게 전부 전수한 터였다. 더 이상 에반스가 야만족의 땅에 갈 일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도 될까요?”

에반스와 헤어지기 전 브리테가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사람들이 왜 그리 맹목적으로 당신을 따르는 거죠?”

브리테의 물음에 에반스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나는 단지 영주로서 내 백성들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에반스의 대답에 브리테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강철 영주다운 대답이로군요.”

그 말 후 브리테는 야만족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여황제 브리테와 함께 야만족 병력이 파르미르 고원으로 움직였다.

“야만족들이 파르미르 고원을 넘어갔습니다.”

며칠 후 척후병으로부터 야만족의 동태를 보고 받고 나서 에반스는 다섯 대영지의 연합군에 철수를 명했다.

이후 야만족이 세운 아무르 제국은 에반스와의 약속대로 50여 년간 트렌시아 제국을 침공하지 않았다.

강철 영주 에반스는 독신으로 살며 오로지 영지를 위해 헌신하다 80살을 며칠 앞두고 가족처럼 소중히 여기던 그의 수하들과 제자들의 품에서 운명했다. 그는 황제와의 약속대로 다섯 대영지 중 네 곳을 제국에 환원했다.

남은 옛 압실론 후작령은 그의 뜻에 따라 유능한 영주들이 통치하게 되었다.

강철 영주 에반스의 사후 아무르 제국은 다시금 풍요로운 땅을 가진 트렌시아 제국을 노리고 대대적으로 침공해 왔다.

그러나 그때는 강철 영주 에반스의 개혁이 완성 단계에 있었던 트렌시아 제국이었다.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군사에 있어서도 트렌시아 제국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뒤였다.

야만족에 대한 대비를 이미 완벽히 갖추고 있던 트렌시아 제국군은 아무르 제국군을 맞아 싸웠고 승리했다. 그리고 승리의 전승비를 강철 영주 에반스의 동상 옆에 세웠다.

트렌시아 제국민들에게 에반스는 강철 영주요, 또한 진정한 영주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넘는 참배객들이 에반스의 동상과 전승비를 찾아 그를 그리워했다.

(강철영주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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