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5 콘라드 후작성의 음모 (75/90)

 Chapter 5   콘라드 후작성의 음모

에반스를 만나고 돌아가던 페드로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역시 애송이로군.”

그러자 그 옆의 제이슨 백작도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며칠 더 지켜보다가 계획대로 처리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하지. 계획에 차질이 없게 잘 처리해야 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저희에게는 그들이 있지 않습니까?”

“뭐 그렇기는 하지만…… 놈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어차피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 내가 먹히지 않으려면 상대를 잡아먹어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제이슨 백작이 언급한 그 계획은 다름 아닌 지원군인 압실론 후작군을 콘라드 후작군이 장악하는 것을 말했다. 완전히 배은망덕한 행위였지만 콘라드 후작을 비롯한 후작성의 최고 귀족들 모두 그 계획에 전원 동의한 상태였다.

그들은 애당초 에반스가 겁도 없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콘라드 후작성에 온 것 자체가 잘못이라 말하며 그들의 행위를 당연한 일이라 정당화했다.

사람의 마음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는데 바로 콘라드 후작이 그런 경우였다.

에반스가 지원군을 이끌고 나타났을 때만해도 당장이라도 간 쓸개를 다 빼 줄 것처럼 굴던 콘라드 후작이 하룻밤 사이 딴마음을 먹은 것이다. 밤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건 그에게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이게 다 압실론 후작이 그의 눈앞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콘라드 후작은 압실론 후작을 사로잡고 그 휘하 1만 병력을 흡수한 뒤, 바로 압실론 후작성으로 가서 그곳에 남은 병력까지 장악해 버릴 심산이었다.

그렇게 되면 콘라드 후작은 기존의 콘라드 후작령 이외에 압실론 후작령까지 수중에 넣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야만족의 문제가 있었지만 이미 여러 차례 야만족을 물리친 압실론 후작군을 휘하에 두게 되면 더 이상 야만족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야만족의 침공으로 제국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콘라드 후작은 자신의 영화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콘라드 후작을 곁에서 부채질한 자들이 바로 콘라드 후작성의 귀족들이었다.

콘라드 후작군의 총사령관인 제이슨 백작은 어떤 식으로 에반스를 제거하고 또 압실론 후작군을 장악할지 모든 계획을 다 세워 두고 있었다.

이런 사정도 모른 채 에반스는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야만족을 공격할 계획을 생각 중이었다. 에반스는 야만족의 의도대로 끌려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콘라드 후작성을 포위하고 있는 야만족을 물리치고 그들의 계획을 무산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 밖의 야만족을 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성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성문을 열고 나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무엇보다 그럴 경우 야만족들이 성문 주위를 막고 버틴다면 그것을 뚫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물론 에반스와 그 일행들이 설친다면 뚫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2만 5천여 야만족을 압실론 후작군 1만이 상대해야 했다.

압실론 후작군만이 야만족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경우 100퍼센트 압실론 후작군의 패배였다. 야만족의 전투력은 압실론 후작군보다 월등했다. 그런데 병력에서도 야만족이 2배 넘게 많았다.

제아무리 에반스가 이끄는 압실론 후작군이라도 전면전을 벌여서는 승산이 없었다. 그렇다면 전면전을 피하고 다른 방법으로 야만족을 상대해야 하는데, 성안에 갇힌 압실론 후작군으로서는 그 대응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에반스가 그 문제로 콘라드 후작성과 그 인근 지도를 펼쳐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하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쓴 소피아가 비밀리에 에반스를 찾아왔다.

“안 그래도 오늘 저녁에 콘라드 후작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소. 그때 그에게 당신과 아이의 문제를 얘기할 생각이었소.”

에반스의 말에 소피아가 고개를 숙였다.

“저와 아이를 압실론 후작가에 받아 주시겠다니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를 찾아온 거요?”

복장을 보아하니 은밀히 에반스를 만나러 온 모양이었다.

“실은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어요.”

“뭡니까?”

“아버님과 오라버님, 그리고 이곳 성의 귀족들이 후작님을 해치려 하고 있어요.”

“뭐라고요?”

소피아가 콘라드 후작과 콘라드 후작성의 귀족들의 몰염치한 음모를 에반스에게 얘기했다. 그 얘기를 듣고 에반스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허어. 나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이곳까지 달려왔거늘 정작 그들은 내 모든 것을 뺏으려 하고 있었다니.”

에반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소피아가 에반스를 향해 조언을 했다.

“후작님. 난세에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설사 가족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소피아의 말에 에반스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알겠소. 하지만 다른 자는 몰라도 가족까지 믿지 못한다면 세상이 너무 삭막하지 않겠소?”

에반스는 이제 가족이 될 소피아를 신뢰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때 소피아가 에반스의 부담스런 눈빛을 피하다가 책상에 펼쳐져 있던 지도를 보았다.

“콘라드 후작성의 지도로군요. 그런데 지도는 왜?”

콘라드 후작성을 지켜야 하는 압실론 후작군이었다. 수성에 지도가 필요할 리 없었다. 영특한 소피아가 지도를 펼쳐 놓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 물었다.

보통 이런 경우 다른 남자들은 여자인 소피아를 무시하고 별일 아니라고 얼버무렸을 터였다. 하지만 에반스는 달랐다. 그에게는 적어도 여자에 대한 편견 따위는 없었다.

“성 밖으로 나가야 할 일이 있는데 알다시피 성 주위를 야만족이 에워싸고 있으니…….”

에반스의 말에 소피아가 말했다.

“성 밖으로 나가는 것이 꼭 성문을 통과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네?”

“콘라드 후작성은 하수구가 지하로 이어져 있어요. 그 하수구의 끝은 성에서 꽤 떨어져 있는 수로와 연결되어 있고요.”

한마디로 콘라드 후작성에 밖으로 나가는 다른 통로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 통로가 어디요?”

에반스의 물음에 소피아가 하수구로 들어가는 지점과 그 하수구가 끝나는 지점을 에반스에게 상세히 알려 주었다.

“고맙소. 내게 필요한 정보였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참. 아버님의 암살 조직을 조심하세요. 그자들은 무서운 자들이에요.”

소피아의 말에 에반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에반스에게 콘라드 후작이 자랑하는 암살 조직은 더 이상 에반스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알겠소. 조심하리다.”

에반스는 소피아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 들키지 않게 뒷문을 통해 안전하게 그녀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들이 감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배은망덕한 콘라드 후작과 귀족들에 대해 에반스는 가만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철퇴를 가하기로 했다.

그때 에반스가 불현듯 생각했다. 콘라드 후작과 후작성의 귀족들의 행태를 보아하니 콘라드 후작령에 미래가 암울했다.

“이럴 바에야 콘라드 후작령도 내가…….”

압실론 후작령에 대한 개혁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콘라드 후작령의 상황이 너무 안 좋다보니 에반스는 몇 년 더 걸리더라도 콘라드 후작령도 같이 개혁하는 쪽으로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역으로 에반스가 콘라드 후작령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콘라드 후작은 에반스가 방심하도록 그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굴었다. 하지만 뒤로는 에반스를 사로잡고 압실론 후작군을 자신이 차지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콘라드 후작은 자신의 비밀 세력인 암살 조직원들을 그의 후작가 지하실에 모두 불러 모았다. 콘라드 후작의 암살 조직은 인근 대영주들도 두려워할 정도로 대단했다.

검은 위장복에 복면을 한 100여 명의 암살자들이 콘라드 후작 앞에 모였다. 그때 콘라드 후작의 옆에는 그의 아들인 페드로와 제이슨 백작이 서 있었다.

“너희들은 당분간 여기 있는 제이슨 백작의 명령대로 움직여라. 알겠느냐?”

“…….”

콘라드 후작의 명에 암살자들이 대답 대신 묵묵히 머리를 숙였다.

“자.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너희 둘의 몫이다. 잘 해내리라 믿겠다.”

콘라드 후작의 말에 페드로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버님. 걱정 마십시오. 그런 애송이를 속이는 건 일도 아닙니다.”

“알았다. 나는 이만 가 봐야겠다. 오늘 그 녀석과 저녁 약속이 있어서 말이다.”

콘라드 후작이 먼저 떠나고 나자 페드로가 제이슨 백작을 보고 말했다.

“어떻게 할지 계획은 다 수립되어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즉시 녀석부터 생포하고 나머지 압실론 후작군의 지휘관들은 저들이 다 제거해 버릴 것입니다.”

제이슨 백작이 100여 명의 암살 조직원들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남는 것은 압실론 후작군인데 머리가 없는 그들을 우리 콘라드 후작군에 흡수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좋아. 언제 계획을 시행할지는 좀 더 두고 보고 나서 아버님과 내가 정할 것이다. 그러니 백작은 항시 준비하고 있으라.”

“네. 모든 준비를 다 갖추고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백작만 믿겠다.”

페드로는 제이슨 백작만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제이슨 백작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후후후. 정말 웃기지도 않는군. 마치 너희들이 아직까지 자기들의 수하라도 되는 양 말이야. 그렇지 않나. 주페로?”

제이슨 백작의 말에 암살 조직의 우두머리인 주페로가 나서서 제이슨 백작에게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어리석은 부자지간이지요.”

보아하니 주페로를 비롯한 콘라드 후작의 암살 조직원들이 제이슨 백작과 손을 잡은 듯 보였다.

“뭐 모르면 우리야 좋지. 일단 압실론 후작군부터 장악하고 보자. 그 두 부자는 추후 제거해도 되니까. 압실론 후작군의 지휘관들은 파악하고 있나?”

“네. 적어도 내일까지는 모두 파악될 것으로 보입니다.”

콘라드 후작과 페드로가 압실론 후작군을 장악하기 위한 결심을 하고 명령을 내리는 데까지는 적어도 며칠의 시간은 필요할 터였다. 그러니 아직 시간은 많았다.

“조직원들을 쉬게 해. 하지만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대비는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제이슨 백작이 주페로를 보고 명했다.

“당연하지요. 그럼 저희는 이만…….”

곧 주페로가 암살 조직원들이 데리고 지하실에 나 있는 다른 통로를 통해 조용히 사라졌다. 그들이 빠져나가자 혼자 지하실에 남은 제이슨 백작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비록 거금이 들어갔지만 저들을 내 편으로 만들었으니 이제 콘라드 후작의 자리는 내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지. 콘라드 후작령뿐 아니라 압실론 후작령까지 내 것이 되는 것인가? 하하하.”

제이슨 백작은 압실론 후작군을 흡수한 뒤 콘라드 후작과 그 후계자인 페드로를 제거하고 자신이 콘라드 후작성을 장악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뒤 제이슨 백작은 압실론 후작을 데리고 압실론 후작성으로 가서 그곳까지 수중에 넣은 후, 남은 압실론 후작마저 제거하고 트렌시아 제국에서 가장 큰 영지를 지닌 대영주에 오를 야심에 부풀어 있었다.

콘라드 후작성의 모든 음모를 알게 된 에반스는 전혀 티 나지 않게 평소대로 행동했다. 그는 해가 지자 약속대로 콘라드 후작의 초대를 받고 저녁 식사를 위해 후작가를 방문했다.

콘라드 후작과 식사 도중 에반스는 콘라드 후작에게 소피아와 그녀가 낳은 테오르의 아들을 압실론 후작성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하하하. 그렇게 하시오.”

콘라드 후작은 기분 좋게 에반스의 요청을 수락했다. 어차피 며칠 후 에반스가 인질로 잡히면 그런 약속 따윈 지킬 필요도 없었다. 에반스가 뭘 요구하고 부탁하든 입으로야 뭐든 다 들어줄 수 있는 콘라드 후작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에반스는 콘라드 후작이 같이 술 한잔을 하자고 하자 이를 정중히 사양했다.

“오늘 저녁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죄송합니다. 대신 내일은 같이 한잔 마시도록 하지요.”

“뭐 할 일이 있다니 어쩔 수 없구려.”

콘라드 후작은 약간 불쾌한 얼굴로 에반스를 배웅했다. 에반스는 곧장 자신의 숙소로 가서 라르손을 불렀다.

“어떤가?”

에반스의 물음에 라르손이 바로 대답했다.

“말씀하신 곳에 가 보니 지하로 이어진 하수구의 입구가 맞았습니다. 제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 본 결과 성 밖 야만족이 포위한 곳에서 꽤 떨어진 거리의 수로에 하수구가 이어져 있었습니다.”

에반스는 콘라드 후작을 만나러 가면서 라르손에게 소피아가 말한 하수구를 살펴보게 했다. 그런데 소피아가 말한 것처럼 콘라드 후작성의 하수구가 성 밖으로 꽤 떨어진 수로와 이어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자정이 되면 병사들을 그쪽으로 이동시켜라.”

“네. 그럼 오늘 밤에 놈들의 배후를 치는 것입니까?”

“그렇다. 놈들이 시간을 끌려 하니 우린 놈들에게 시간을 줘선 안 되겠지.”

에반스는 압실론 후작군 병력을 은밀히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1만이나 되는 병력이 움직이는 것이 콘라드 후작군의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압실론 후작군의 움직임에 놀란 콘라드 후작군의 총사령관 제이슨 백작이 황급히 에반스를 찾아왔다.

“후작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늦은 밤에 갑작스럽게 압실론 후작군이 움직이자 제이슨 백작은 꽤나 놀란 얼굴이었다.

“미안하오. 안 그래도 출정 전에 통보하려 했는데 잘 됐소.”

“출정이라고요?”

에반스의 말에 제이슨 백작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에반스는 그런 제이슨 백작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말을 다 했다.

“야만족의 배후를 치는 기습 작전이라 사전에 말할 수 없었소. 이해해 주기 바라오.”

“어찌 이럴 수가. 그런 일이라면 사전에 저희 측에 알려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이슨 백작이 강경하게 항의하듯 에반스에게 말했다. 그러자 에반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좀 전에 기습 작전이라 말한 것 같은데. 그리고 양해도 구하지 않았소? 백작. 내가 누군지 망각한 모양이로군. 압실론 후작군을 어떻게 지휘하던 그건 내 맘이요. 설마 내 지휘에 불만이라도 있다는 거요?”

에반스가 불쾌함이 역력한 얼굴로 제이슨 백작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꽤나 당혹한 제이슨 백작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럴 리가요. 저는 단지 후작님께서 저희 후작님의 얼굴을 봐서 사전에 어떤 식으로든 통보해 주셨으면 하는 의도로…….”

제이슨 백작이 꼬리를 내리자 에반스가 바로 말했다.

“이번 일은 은밀히 진행해야 했소. 그래서 좀 전까지 우리 압실론 후작군의 지휘관들도 이 사실을 몰랐소. 이 점을 백작이 콘라드 후작께 잘 말해 주시오. 내 이번 출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때 전후 사정을 후작께 잘 말할 것이요.”

그렇게 말하고 에반스는 서둘러 출정을 준비했다. 제이슨 백작은 황급히 이 사실을 알리려 후작가로 달려갔다.

자정이 되자 하수구에 대기 중이던 압실론 후작군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하수구 밖까지는 한 시간 정도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1만의 병력이 하수구를 통과해서 수로를 통해 밖으로 빠져 나오는 데는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비 되었다.

다행히 3시간이 지나는 동안 압실론 후작군은 야만족에게 들키지 않았다. 에반스는 궁수부대를 앞세우고 야만족의 배후를 쳤다.

슈슈슈슝!

어둠을 가르고 화살비가 야만족의 숙영지에 쏟아졌다.

“크아아악!”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압실론 후작군이 불화살을 쏘아 대자 숙영지의 막사가 불길에 휩싸였다.

완벽한 기습이었고 적이 배후에 나타날 거라 예상치 못한 야만족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압실론 후작군은 최대한 원거리 무기인 화살을 이용해서 야만족에게 피해를 입힌 뒤 병사들을 투입시켰다. 압실론 후작군은 창병을 내세워서 야만족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푸푸푸푹!

전투 대형조차 갖추지 못한 야만족들은 속수무책 압실론 후작군의 창에 찔려 쓰러졌다. 전투는 일방적이었고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것은 야만족들뿐이었다.

“후퇴하라.”

경황 중 야만족 부장들이 내릴 수 있는 명령은 하나뿐이었다.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피해 야만족은 본능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 야만족을 압실론 후작군이 더욱더 압박해 들어갔다.

야만족은 즉시 포위망을 풀고 콘라드 후작성에서 멀찌감치 물러났다. 갑작스런 기습에 꽤나 놀란 야만족들은 다시 전열을 정비했다.

그때 으스름히 날이 밝아 왔다.

야만족의 포위를 푸는데 성공한 에반스는 야만족과 대치했다. 야만족들도 서서히 날이 밝아 오면서 놀란 가슴을 어느 정도 진정시킨 듯 보였다. 전투 준비를 시작하는 야만족을 보고 에반스가 라르손에게 물었다.

“기병은?”

“준비가 끝났습니다.”

날이 밝아 오고 야만족의 진영이 전투 준비로 부산할 무렵 에반스는 1천 기의 기병을 투입시켰다. 이는 야만족에게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두두두두!

압실론 후작군의 기병들이 야만족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날이 밝자마자 바로 기병이 돌진해 오자 야만족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거리라도 멀다면 어떻게 대처가 가능하겠지만 압실론 후작군과 야만족의 대치 거리는 불과 100여 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기병의 돌격 소리가 들렸을 때 이미 압실론 후작군의 기병들은 야만족 진영의 측면으로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야만족 진영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사람을 태운 말이 빠르게 돌진하면 그 위력은 엄청났다.

콰콰콰쾅!

“크아아악!”

둔중한 충돌음을 시발점으로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낭자하게 번져 나갔다. 말들과 충돌한 야만족들이 핏줄기를 내뿜으며 시체로 변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이어 야만족의 갑옷 조각과 무기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지며 주위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참상이 되었다.

그때 기마 위의 압실론 후작군 기병들이 무기를 휘둘러 대자 주위가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랴.”

단숨에 야만족 진영 측면의 야만족을 괴멸시킨 기병들은 말 머리를 돌리지 않고 벌 떼처럼 모여 있는 야만족의 중앙 본진을 향해 돌진했다. 충돌 시 위력을 배가하기 위해서 기병들은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마, 막아라!”

시퍼렇게 질린 야만족들이 어떻게든 기병을 막아 보려 방어진을 짜려 했지만 야만족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야만족들은 진형을 형성했지만 나머지는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두두두두!

전력으로 달려오는 기병의 돌격이 주는 위압감은 무시무시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에 야만족이 떨고 있을 때 기병들이 야만족을 덮쳤다.

퍼퍼퍽!

선두의 야만족들이 맹렬히 뒤로 튕겨 나갔다. 한참을 날아가 볼썽사납게 널브러진 야만족들의 시체는 처참할 정도로 으스러져 있었다. 이어서 기마들의 무자비한 말발굽이 야만족을 짓이겼다.

“크아아악!”

말발굽에 짓밟힌 야만족이 단말마의 비명 소리를 토해 냈다. 야만족 진형을 무참히 유린하며 압실론 후작군 기병들이 야만족의 중앙을 꿰뚫었다.

기병의 돌격에 겁을 먹은 야만족들이 그들에게 길을 내어 주면서 기병들은 적진을 반으로 갈랐다.

“됐다.”

기병들의 활약으로 야만족의 진영이 양단되자 에반스가 쾌재를 외치며 대기 중이던 압실론 후작군에 명했다.

“공격하라.”

“와아아아!”

압실론 후작군이 일제히 야만족을 향해 돌격했다. 그러자 기병에 의해 병력이 둘로 갈린 야만족들도 압실론 후작군을 향해 돌진했다. 이때 야만족을 양단한 기병들이 곧장 돌진하는 야만족을 향해 짓쳐 들었다.

두두두두!

밀집된 채 돌격하던 야만족들의 얼굴이 이내 사색으로 변했다.

“으으으…….”

기병의 위력을 몸소 실감해 본 야만족들은 더 이상 돌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그들의 뒤로는 철저히 짓이겨지고 으스러진 시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사지가 뒤틀린 처참한 시체들이 말이다.

야만족은 어떻게든 기병을 피하려 발버둥을 쳤지만 워낙 뭉쳐 있다 보니 액운을 면치 못했다.

퍼퍼퍼퍽!

“아아아악!”

피와 뇌수가 뿜어지고 부서진 갑옷 조각과 야만족의 무기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참상이 또다시 벌어졌다. 압실론 후작군의 기병들이 돌진해 오던 야만족들을 무참하게 짓밟고 지나가고 나자 돌격해 온 압실론 후작군이 남은 야만족들을 도륙했다.

“퇴각하라.”

기세에서 완전히 압도당한 야만족은 다시 후퇴했다. 야습에 이어 날이 밝자마자 벌어진 전투에서도 야만족은 대패했고 콘라드 후작성에서 더 멀리 물러났다.

기병을 활용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압실론 후작군은 더 이상 야만족에 신경 쓰지 않고 콘라드 후작성으로 입성했다.

“와아아아!”

야만족에 포위된 채 앞날을 걱정하고 있던 콘라드 후작성의 영지민들은 아침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 기적을 일궈 낸 압실론 후작군을 열렬히 환영했다.

에반스와 압실론 후작군의 돌발적인 군사 행동에 콘라드 후작과 그 후계자 페드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성 밖으로 나간 압실론 후작군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다.

그것을 성곽의 지휘 망루에서 지켜보던 콘라드 후작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히 압실론 후작군의 기병들은 정말 강했다.

“하하하. 저들을 내가 차지할 수 있단 말이지?”

콘라드 후작은 포위했던 야만족을 가볍게 격퇴시키고 개선해서 입성하고 있는 압실론 후작군을 보고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결심한 듯 페드로에게 말했다.

“저들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겠구나. 계획을 좀 더 앞당길 필요가 있겠다.”

압실론 후작군을 빨리 손에 넣고 싶다는 뜻이었다. 콘라드 후작의 말에 페드로가 바로 대답했다.

“네. 바로 시행토록 하겠습니다.”

페드로는 즉시 제이슨 백작을 찾았다.

에반스와 압실론 후작군의 경이로운 전투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던 제이슨 백작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당당히 개선해서 콘라드 후작성으로 입성하는 그들을 맞으며 희열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 병사들이 이제 내 병사가 된단 말이지…….”

그때 그의 부관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말했다.

“페드로 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나를? 으음. 알았다.”

제이슨 백작은 콘라드 후작과 페드로도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페드로가 그에게 말했다.

“계획을 앞당겨서 즉시 시행토록 하게.”

“지금 바로 말입니까?”

제이슨 백작이 예상치 못했다는 듯 당혹해 하며 묻자 페드로가 싱긋 웃었다.

“하하하. 아버님께서 급하신 모양이야.”

“후작님의 명령이시라니 지금 즉시 계획을 시행하겠습니다.”

제이슨 백작이 바로 움직였다. 그런 제이슨 백작을 보면서 페드로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냥개로 쓰기에 적당한 녀석이야.”

하지만 페드로는 몰랐다. 그 사냥개가 자신의 목을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제이슨 백작은 콘라드 후작의 암살 조직원들을 즉시 불렀다. 암살 조직의 우두머리인 주페로가 제이슨 백작에게 물었다.

“설마 벌써 시작하라는 겁니까?”

“그래.”

“하지만 어제 압실론 후작군이 움직이는 통에 저들 지휘관들을 다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파악됐지?”

“절반 정도입니다.”

“별수 없다. 내가 압실론 후작을 사로잡을 동안 너희는 그 절반의 지휘관들을 제거해라. 내가 나머지 지휘관들은 압실론 후작을 통해 알아볼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요.”

주페로가 100여 명에 달하는 암살 조직원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그러자 제이슨 백작도 즉시 휘하 기사들을 소집시켰다.

콘라드 후작에게는 50명의 기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사들의 우두머리가 제이슨 백작이었다.

콘라드 후작군의 총사령관이기도 했던 제이슨 백작은 50명의 기사들을 이끌고 압실론 후작을 찾아 나섰다.

기습의 성공으로 야만족 병력을 절반 넘게 줄여 놓은 에반스가 콘라드 후작성에 들어서자 성내 영지민들이 그와 승리한 압실론 후작군을 열렬히 환영했다.

에반스는 병사들에서 서둘러 아침을 먹게 하고 자신도 휴식을 취했다.

그때 루크가 에반스를 찾아와서 말했다.

“놈들이 움직였습니다.”

소피아의 당부도 있었고 에반스도 암살 조직이란 것이 께름칙해서 콘라드 후작의 암살 조직을 루크로 하여금 감시하게 했다. 암살 조직을 몰래 살피던 루크가 어이없는 소식을 에반스에게 전했다.

콘라드 후작이 암살 조직으로 하여금 압실론 후작군의 지휘관들을 제거하려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암살 조직이 콘라드 후작을 배신하고 제이슨 백작에게 붙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 암살 조직이 아침부터 움직였다는 것은 콘라드 후작이 바로 마각을 드러냈다는 소리였다.

에반스는 즉시 자신의 일행들을 불러 모았다.

“콘라드 후작의 암살 조직이 움직였다. 그들의 목표는 아군의 지휘관들이다. 너희들이 그들을 지켜 주어야겠다.”

에반스의 말에 일행 중 라일라가 말했다.

“걱정 마세요. 그런 놈들은 우리 전문이니까.”

특급 어쌔신 라일라는 누구보다 암살자들에 대해 잘 알았다. 그리고 라르손과 시스턴, 루미나 모두 에반스로부터 검술을 전수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실력은 누구보다 에반스가 잘 알았다.

암살자 따위는 그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일행에는 마도사의 경지를 눈앞에 둔 루크가 있었다.

“그럼 부탁하겠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어쩌실 거예요?”

그때 루미나가 물었다.

“나? 글쎄. 연기를 좀 해야겠지.”

에반스가 이미 생각해 둔 것이 있는 듯 말하자 일행은 루크와 같이 콘라드 후작의 암살 조직으로부터 압실론 후작군 지휘관들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일행이 떠나고 나서 얼마 뒤 콘라드 후작군의 총사령관인 제이슨 백작이 에반스를 찾아왔다. 에반스는 태연하게 그를 만났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제이슨 백작의 말에 에반스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승리는 무슨, 아직 야만족을 완전히 무찌른 것도 아닌데요.”

“하하하. 정말 대단하더군요. 하긴 그렇게 강하니 야만족으로부터 압실론 후작령을 지킬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여긴 어떻게?”

에반스가 바로 용건을 묻자 제이슨 백작의 웃고 있던 얼굴이 돌연 싸늘하게 변했다.

“콘라드 후작님께서 너를 데려 오라고 하셨다.”

“너, 너라니. 제이슨 백작!”

에반스가 버럭 호통을 치자 제이슨 백작의 몸이 움직였다.

스르르!

잔상을 남기고 사라진 제이슨 백작이 에반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퍽!

“컥!”

그리고 그의 주먹이 에반스의 복부를 파고들었고 에반스의 몸이 직각으로 꺾이면서 절로 입에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에반스의 몸이 맥없이 허물어졌다. 제이슨 백작 앞에 무릎을 꿇은 에반스는 연방 토악질을 해 댔다.

“우욱!”

“흐흐흐. 주먹에 마나가 실렸으니 장기들이 좀 놀랐을 거다.”

제이슨 백작이 비릿하게 웃으며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에반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뭣들 하느냐? 끌고 가자.”

제이슨 백작이 그의 뒤에 서 있던 기사들에게 명했다. 그러자 기사 두 명이 나서서 양쪽에서 에반스를 부축했다.

“크으윽. 이, 이 무슨 짓인가? 이러고도 네놈들이 무사할 성싶었더냐?”

에반스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가까스로 제이슨 백작에게 말했다. 그 말에 제이슨 백작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이제 다 끝났다. 멍청한 위인 같으니라고.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들어와? 그냥 압실론 후작성에 가만히 있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뭐 나야 고마운 일이지만. 끌고 가자.”

제이슨 백작은 에반스를 잡아서 곧바로 콘라드 후작에게 끌고 갔다.

기사들에 잡혀 끌려 온 에반스를 보고 페드로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애송이가 드디어 잡혀 왔군.”

“이것이 도와주러 온 사람에 대한 예의인가?”

에반스가 분노 어린 얼굴로 페드로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페드로의 입가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이놈이 아직 제 처지를 모르는 모양이군.”

페드로가 눈짓을 보내자 에반스의 양옆에 있던 기사들이 무자비하게 에반스를 구타했다.

퍼퍼퍼퍽!

“멈춰라.”

그때 콘라드 후작이 총관을 대동해서 나타나며 외쳤다. 그러자 기사들이 물러났다.

“이 무슨 짓이냐? 그래도 한때는 제국의 대영주였던 자다.”

콘라드 후작이 짐짓 에반스를 구타한 기사들을 나무랐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수고들 했다.”

콘라드 후작이 페드로와 제이슨 백작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이어 콘라드 후작이 바로 제이슨 백작에게 물었다.

“압실론 후작군은 어떻게 됐나?”

“그 지휘관들이 모두 제거되면 바로 장악할 수 있을 겁니다.”

“으음. 서둘러라.”

“네. 그런데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

콘라드 후작이 의아한 눈으로 제이슨 백작을 쳐다보았다. 그때 제이슨 백작의 손이 검자루를 쥐었다. 그리고 옆으로 움직였다.

스팟!

이어 하얀 섬광이 일었다.

“컥!”

비명 소리가 울렸다.

“페드로!”

콘라드 후작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목이 절반가량 잘려 나간 페드로가 비틀거렸다.

피슈우!

그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내뿜어졌다. 그리고 그의 몸이 맥없이 허물어졌다.

“네, 이놈!”

격노한 콘라드 후작이 소리치자 제이슨 백작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왜? 자식이 죽는 것을 직접 보니 가슴이 아픈가?”

“뭣들 하느냐? 어서 저놈을 잡아라.”

콘라드 후작이 기사들을 보고 소리쳤다. 하지만 콘라드 후작의 명령에 움직이는 기사는 한 명도 없었다. 더불어 총관도 슬그머니 그의 곁을 떠나고 없었다. 그제야 낌새가 이상하다고 여긴 콘라드 후작이 뒤로 도망을 치려 했다.

턱!

하지만 옆에서 콘라드 후작을 근접 경호하던 호위 기사 둘이 콘라드 후작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콘라드 후작이 소리쳤지만 두 기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콘라드 후작은 필사적으로 두 기사들 사이를 파고들며 도망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두 기사가 콘라드 후작을 잡아 앞쪽으로 내쳤다.

“아이고.”

쓰러진 콘라드 후작이 몸을 일으키자 그의 목으로 피 묻은 검이 와 닿았다.

“헉!”

제이슨 백작의 검이었다. 그 검에 묻은 피는 콘라드 후작의 아들인 페드로의 것이었다.

“무, 무슨 짓이냐? 어서 검을 거두지 못할까?”

“싫은데?”

“네 이놈. 내 암살 조직이 너를 그냥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콘라드 후작이 큰소리를 쳤다. 아직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콘라드 후작에게는 암살 조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말에 제이슨 백작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기사들도 모두 포섭한 나다. 암살 조직도 그냥 뒀을 거 같나?”

“뭐, 뭐라고?”

비릿하게 웃고 있는 제이슨 백작을 보고 콘라드 후작은 하늘이 노래졌다. 그가 자랑하던 암살 조직마저 제이슨 백작에게 넘어간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끝이었다.

“사, 살려다오.”

콘라드 후작이 제이슨 백작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그때였다.

“커억!”

에반스 옆의 두 기사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맥없이 꼬꾸라졌다.

털썩!

그리고 에반스가 쓰러진 기사가 떨어트린 검을 챙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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