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트족의 영토에서 고란족의 영토로 들어가는 동안 브리테는 태어나서 가장 행복했다. 자신이 그토록 배우고 싶어 했던 주술도 마음껏 배우고 또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브리테는 매일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무정하게 흘렀고 목적지인 고란족의 중심지도 불과 이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브리테는 에반스에게 첫눈에 반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가 윈스트런의 후계자란 사실 때문에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브리테가 에반스에게 반하게 된 것은 바로 에반스의 주술 강의 후, 그의 교훈적인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에반스의 이야기는 인간 냄새가 났다. 향기가 있었다. 그것도 너무도 따스하고 향긋하면서도 사람을 웃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풍기는 그런 냄새가 있었다.
오늘도 브리테는 그 냄새를 더 가까이서 맡으려고 에반스의 강의 때 맨 앞자리에 앉았다. 주술 강의가 끝나고 나서 에반스가 질문을 모두 받은 뒤였다.
“오늘은 딱히 떠오르는 이야기가 없어서 내 얘기를 할까 합니다.”
에반스가 얘기를 시작하려 하자 어둠의 주술사들이 모여들었다. 어둠의 주술사들은 강의 주제에 따라 자신에게 필요 없는 강의는 듣지 않았다.
하지만 강의가 끝나고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들 주술사들도 일부러 모여들었다.
에반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일부러 모여드는 어둠의 주술사들을 둘러보고 가볍게 웃으며 계속 얘기했다.
“한참 수련으로 어느 정도 주술에 자신이 붙었을 때였습니다. 누가 나타나도 주술로 싸우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지요.”
에반스는 자신의 교훈적인 얘기 시간에 유독 어둠의 주술사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비교적 좋게 보았다. 에반스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모여드는 어둠의 주술사들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에반스는 일부러 잠시 템포를 조절하며 그들이 모두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주위가 정리되자 이야기를 계속했다.
“생필품을 살 게 있어 근처 마을로 가게 된 나는 잡화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물품들을 찾아 챙기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가게 문이 열리고 술 취한 사람이 고함을 치며 들어오지 뭡니까? 그 사람은 가게 안의 손님들 중 아무나 시비를 걸며 가게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
“하지만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어떤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그 아주머니 옆에 있던 아이를 쥐어박지 뭐겠습니까? 그때 정의의 사도인 내가 나섰지요.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건 옳지 않습니다.’라고 소리치면서 말이지요. 그러자 그 취한 사람이 나를 돌아보며 소리쳤습니다. ‘한번 붙어 보자는 거냐?’ 하고 사나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지요.”
“…….”
“나는 그 술 취한 남자에게 본때를 보여 주려고 주술의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나이 많은 가게 주인이 나섰습니다. ‘자네! 나하고 얘기 좀 하지. 술 마셨나?’ ‘네. 맥주 몇 잔 마셨습니다.’ ‘나도 가끔 집사람과 맥주를 마신다네. 가족은 있나?’ ‘아내가 얼마 전 죽고, 아이들은 친척 집에 맡겼습니다.’ ‘저런, 사는 게 힘들겠구먼. 언제 우리 집에 한번 오게나. 같이 술이나 한잔하세.’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가게 주인의 어깨에 기대서 엉엉 울었습니다.”
“…….”
“그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정의의 사도는 힘으로 제압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와 부드러운 말로 아픔을 감싸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 오늘 제 얘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에반스의 얘기가 끝나자 어둠의 주술사들이 박수를 쳤다. 그때 브리테가 누구보다 더 열심히 박수를 쳤다. 그리고 에반스에게서 눈이 떨어질 줄 몰랐다.
누가 봐도 브리테가 에반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에반스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에반스가 브리테에게 무신경한 것은 그녀의 어미인 리오나의 영향이 컸다.
어쨌든 리오나는 에반스를 유혹하려 했고 에반스가 거부했다. 그런 리오나의 여식인 브리테가 에반스는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았다. 그냥 잘 아는 여자의 딸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이틀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에반스와 그 일행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에반스는 곧장 고란족 대족장인 수아레스의 궁으로 향했다.
“하하하. 어서 오시오.”
수아레스는 에반스가 약속대로 브리테를 구해 오자 기뻐했다. 하지만 에반스가 리오나와의 약속대로 브리테가 어둠의 주술사가 되겠다고 한다면 그녀를 데리고 가겠다는 폭탄 발언을 하면서 궁이 발칵 뒤집어졌다.
“뭐, 뭐라고?”
흥분한 수아레스가 당장이라도 에반스을 어떻게 할 기세였다. 하지만 에반스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두 말 따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아레스에게 짧게 경고했다.
“까불지 마라.”
“헉!”
상대는 대주술사 윈스트런의 후계자였다. 언제 수아레스를 또 개로 만들어 버릴지 몰랐다. 강경한 에반스의 반응에 수아레스가 먼저 꼬리를 말았다.
“그, 그건 생각을 좀 해 보고 나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브리테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에반스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브리테는 이게 다 에반스가 자신을 좋아해서 취한 행동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브리테는 그날 밤에 알게 되었다.
수아레스는 하루 동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에반스에게 얘기했고 에반스는 그 요구를 수락했다. 그래서 에반스와 그 일행들은 수아레스가 제공한 객실에서 하루를 묵어 가게 되었다.
브리테는 에반스를 몰래 만나러 갔다.
“오늘은 내 마음을 고백해야지.”
브리테에게 에반스는 첫사랑이나 마찬가지였다. 브리테가 에반스의 방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녀보다 먼저 에반스를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여자였다.
브리테보다 한발 먼저 에반스를 찾은 것은 바로 리오나였다. 그녀는 브리테를 구해 주고 그녀에게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준 에반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 에반스를 찾은 것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말 고마워요.”
“아니요. 난 내가 한 약속을 지켰을 뿐이요.”
에반스의 입장에서 리오나는 껄끄러운 상대였다. 그렇다 보니 빨리 그녀를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에서 에반스는 다소 그녀에게 냉담하게 대했다. 그러자 리오나가 오히려 그때의 일을 미안해 하며 에반스에게 사과했다.
“그날 당신을 유혹하려 한 건…… 제 실수였어요. 그러니 그때의 일은 잊어 주세요.”
“벌써 잊었소. 그리고 다시 이런 일로 당신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심정이요.”
“알았어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갈게요.”
리오나가 물러가자 에반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힌 진땀을 소매로 닦았다. 그때 리오나가 불쑥 나타났다.
“그, 그게 무슨 말이죠? 어머니가 당신을 유혹하려 했다니요?”
“그, 그건…… 그런데 언제…….”
에반스는 리오나 때문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브리테가 근처에 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흑흑흑!”
브리테는 에반스와 리오나가 그렇고 그런 사이인 줄 오해하고 울부짖으며 달아났다. 하지만 에반스는 굳이 달려가서 브리테를 잡지는 않았다. 오해야 리오나를 만나면 곧 풀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때 에반스의 대응이 너무 안일했고 그것이 차후 어떤 후폭풍을 만들어 낼지 에반스는 미처 알지 못했다.
에반스의 예상보다 사태는 심각했다. 다음 날 아침 브리테가 어둠의 주술사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자 에반스가 그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이건 브리테의 선택이다. 그녀가 어둠의 주술사가 되지 않겠다면 그녀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에반스는 어둠의 주술사들을 데리고 궁을 나갔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리오나가 헐레벌떡 브리테에게 달려갔다.
“브리테. 이게 무슨 소리니?”
리오나를 보자 브리테는 더 화가 났다. 그래서 큰 소리로 울었다.
“흑흑흑.”
그런 브리테를 리오나가 가까스로 달랬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물었더니 브리테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했다.
“에반스 님과 내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생각했단 말이니?”
리오나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브리테가 버럭 소리쳤다.
“어제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길 다 들었단 말이에요. 엄마가 그분을 유혹했다면서요?”
“그랬지. 하지만 그분이 내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네?”
“어젠 그분께 너를 구해 줘서 고맙다는 말도 전하고 앞으로 어둠의 주술사가 될 너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러 갔었다. 그런데 그분이 예전의 일 때문인지 나를 대하는 것을 너무 거북해 하시기에, 그때 일을 잊어 주십사 얘기한 것이다.”
“뭐, 뭐예요? 그럼 그분과 엄마는?”
“그래.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다.”
“아!”
브리테가 넋이 나간 채 주저앉았다. 그런 브리테를 보고 리오나가 말했다.
“브리테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서 그분을 쫓아가렴.”
“하지만 지금 내가 어떻게…….”
“이 어미가 너를 보내 주마.”
리오나는 브리테를 위장시켰다. 하지만 수아레스도 이번에는 브리테를 궁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 없는 듯 그녀 주위에 경계를 몇 배는 강화시켜 놓은 터였다. 그래서 물리적인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차차차창!
리오나는 자신이 몰래 양성한 암살자들을 이번 일에 총동원했다. 그들은 원래는 수아레스를 위해 키워진 암살자들이었지만 이제는 리오나의 사람들로 변해 있었다.
“으아아악!”
“막아라.”
“뚫어!”
고란족 대족장의 궁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그 혼란을 틈타 리오나는 변장시킨 브리테를 몰래 궁 밖으로 내보냈다.
브리테는 즉시 어둠의 주술사들이 머물렀던 여관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에반스와 어둠의 주술사들이 없었다.
“아. 그 시커먼 사람들이라면 저쪽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여관 직원이 그들이 간 방향을 알고 있었다. 브리테는 말을 타고 그쪽으로 내달렸다.
이때 에반스와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들은 그들이 앞으로 지내게 될 새로운 아지트를 찾아 나선 상태였다.
때문에 큰 길을 따라 이동하기보다는 중간에 샛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어둠의 주술사들의 아지트는 인적이 드문 곳이 좋았다. 그들이 연구하는 주술은 주로 혐오스러운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어둠의 주술사들은 외진 곳에 아지트를 만들었다.
그런 어둠의 주술사들을 보고 에반스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우리 진짜 아지트로는 파르미르 고원의 랄트족이 사용했던 동굴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니 여기 아지트는 그리 외진 곳이 아니어도 무방하다.”
그 말에 그제야 어둠의 주술사들도 큰길로 나가서 근처 경치 좋은 곳을 찾았다. 그런데 그때 일단의 무리가 누군가를 뒤쫓는 것이 보였다.
“뭐지?”
에반스가 주술로 살피니 웬 여자가 도둑 떼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얼굴이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안 되겠군. 일단 구하고 보자.”
에반스는 즉시 하늘로 날았다. 그리고 여자를 추격하는 도적 떼를 향해 마력탄을 쏘았다.
쾅!
히히히힝!
갑작스런 폭발에 도적들이 타고 있던 말이 놀라 추격을 멈췄다. 그때 도적들이 하늘을 보고 기겁하며 놀라 도망을 쳤다. 하긴 하늘 위에 사람이 둥실 떠 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도적들이 물러가자 미친 듯 말을 몰던 여자도 말을 세웠다. 그러자 그 말 옆에 에반스가 내려섰다.
“헉!”
“히힝!”
하늘에서 사람이 뚝 떨어져 내렸으니 여자도 말도 놀랄 만했다.
“아니 당신은…….”
가까이서 여자를 본 에반스는 그 여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바로 제너럴 상단의 다이안이었다.
“어머. 당신은…….”
다이안도 에반스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카라스 영지에 있어야 할 사람이 이곳에는 왜?”
의아해 하며 다이안이 묻자 에반스도 그녀에게 물었다.
“제너럴 상단의 상단주가 되어서 수도에서 열심히 장사하고 있어야 할 당신은 왜 여기 있는 거요?”
에반스의 말에 다이안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이안은 한스와 같이 랄트족의 중심지로 갔지만 그곳에서 친절한 상인은 만나지 못했다. 결국 다시 그 중심지에서 나온 다이안과 한스는 제너럴 상단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 도적 떼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도륙하는 것이 아닌가?
“안 돼!”
다이안이 소리친 탓에 도적 떼가 다이안과 한스도 발견했다. 그런데 그때 다이안의 눈에 도적 떼들 사이에 잘 아는 얼굴이 보였다.
바로 루키아 상단의 상인인 드루바였다. 드루바는 곤잘레스의 최측근 상인으로 루키아 상단에서 대외 상단, 특히 야만족과의 거래를 도맡아서 했다.
그런 드루바가 도적 떼에 있다는 것은 이번 일에 루키아 상단이 개입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다이안과 한스는 피눈물을 삼키며 도망을 쳤다. 하지만 도적들의 추격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막 잡힐 뻔할 때 한스가 다이안을 보내고 도적들 앞을 막아섰다.
“다이안. 미안했다. 부디 제너럴 상단을 재건해 다오.”
“오라버니!”
한스가 웃는 얼굴로 다이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때 도적들이 한스를 짓밟았다. 한스로 인해 약간의 시간을 번 다이안은 죽어라 말을 몰았다. 죽은 한스의 뜻을 저버릴 수 없었던 다이안은 살기 위해 악착같이 말을 몰았다.
하지만 도적 떼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서서히 그 거리가 좁혀질 무렵 에반스가 나타나서 다이안을 구한 것이었다. 에반스는 다이안으로부터 한스의 참혹한 죽음을 전해 듣고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제 어쩔 거요?”
에반스의 물음에 다이안이 힘없이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당장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제국으로 돌아가도 루키아 상단이 있는 한 그녀는 제대로 장사조차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런 그녀에게 에반스가 말했다.
“곧 영지로 돌아갈 거요. 그때 나와 같이 영지로 갑시다.”
“네?”
갑작스런 에반스의 제안에 다이안이 어리둥절해 하자 에반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내 영지에서 다시 시작해 보시오. 그곳에서는 누구나 공정하게 장사를 할 수 있으니 말이요.”
“저, 정말이요? 하지만 루키아 상단이…… 저 때문에 누가 피해를 입는 건 제가 원치 않아요.”
다이안의 말에 에반스가 계속 웃는 얼굴로 말했다. 보아하니 다이안은 에반스가 압실론 후작령의 주인이 된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걱정 말아요. 루키아 상단 따위에게 흔들릴 영지가 아니니까.”
다이안으로서는 당장 어떤 대안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 에반스의 호의를 염치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반드시 제너럴 상단을 재건해서 당신에게 진 빚을 모두 갚도록 하겠어요.”
다이안의 다짐에 에반스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요. 빚은 이자까지 쳐서 갚는 거 알지요?”
에반스의 넉살에 다이안도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편 에반스가 어디서 여자 한 명을 데리고 나타나자 어둠의 주술사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누구래?”
“몰라. 제국에서 온 여자는 확실해.”
“시스턴. 혹시 누군지 압니까?”
그새 시스턴과 어둠의 주술사들도 많이 친해진 듯 어둠의 주술사 하나가 시스턴에게 물었다.
“나도 잘…….”
시스턴도 다이안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말 한 필이 어둠의 주술사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어? 저건 브리테 아가씨잖아?”
“뭐?”
잠시 뒤 말이 도착하고 그 말에서 브리테가 내렸다.
“에반스 님은 어디 계시죠?”
얼마나 말을 타고 달렸는지 브리테의 옷과 얼굴이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에반스 님은 저쪽에…….”
눈치 없는 어둠의 주술사 하나가 에반스와 다이안이 있는 쪽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브리테는 곧장 그곳으로 뛰어갔다. 브리테는 자신의 경솔함을 사죄하고 자신을 다시 어둠의 주술사로 받아 줄 것을 에반스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호호호.”
그런데 그때 여자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뒤이어서 남자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브리테가 웃음소리가 난 곳으로 가자 두 남녀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너무도 행복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두 남녀 중 남자가 바로 에반스였다.
‘아, 아니야. 저것도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브리테는 고개를 내저으며 두 남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에반스 님!”
브리테가 먼저 에반스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 에반스와 다이안이 동시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니 당신은?”
에반스가 브리테를 알아보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브리테. 당신이 여긴 어떻게? 몸은 괜찮소?”
다정한 에반스의 말에 브리테는 그만 눈물을 펑펑 흘렸다.
“흑흑흑. 죄송해요. 제가 에반스 님과 엄마 사이를 오해해서…….”
반은 울고 또 반은 말하는 브리테의 말을 듣고 에반스도 그녀가 오해 끝에 어둠의 주술사가 되지 않겠다고 말했음을 알게 되었다.
잠시 고심하던 에반스가 브리테의 주술 스승이었던 크루를 불렀다. 그리고 그와 상의 끝에 일단 크루가 브리테를 맡아서 주술을 가르치기로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좋게 해결된 듯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스턴이 에반스가 구해 온 여자가 다이안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시스턴은 에반스가 다이안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잘 알았다. 때문에 당연히 그녀가 에반스와 결혼할 사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어둠의 주술사에게도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브리테가 또 들은 것이다. 브리테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어둠의 주술사가 되는 것보다 에반스의 곁에 남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런데 에반스가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그의 곁에 남을 수 있겠는가?
결국 그녀는 그날 밤 어둠의 주술사들을 떠났다. 그런데 하필 그녀가 도적 떼를 만났다. 도적들이 그녀를 노예로 팔아먹으려 할 때 도적들 중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혹시 고란족의 대족장인 수아레스의 여식이 아닌가?”
“맞아요.”
그녀의 대답에 그 도적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자가 도적들에게서 그녀만 빼냈다.
도적 떼에서 브리테를 빼낸 것은 바로 루키아 상단의 상인인 드루바였다. 그는 고란족뿐 아니라 랄트족에서도 족장들과도 두루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 같이 먼발치에서 고란족의 대족장인 수아레스와 랄트족의 대족장인 우툴라를 직접 보기도 했다.
고란족 대족장인 수아레스를 봤을 때 그 옆에 있던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수아레스의 여자가 아름답다고 했다가 친분이 있던 족장에게 그녀는 수아레스의 여식이란 말을 듣고 사과한 적이 있었다.
바로 그때 그 수아레스의 여식이 도적들의 수중에 있었던 것이다. 드루바는 그 사실을 도적 떼에 말하지 않고 도적 떼의 두목을 직접 찾아갔다.
“하하하. 어서 오시오.”
도적 떼의 두목인 쿨레기는 루키아 상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야만족에서 그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도적 떼의 규모만 벌써 1만에 달했다. 그러니 웬만한 야만족 족장보다 도적 떼 두목이 더 많은 병력을 지닌 셈이었다.
루키아 상단은 쿨레기를 지원하면서 도적 떼를 이용해서 야만족 내에 다른 상단들을 차근차근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 야만족의 거래 물품의 열에 여덟은 루키아 상단의 물건들이었다.
“그 다이안이란 여자는 좀 더 기다리시면 내 찾아서 연락 드리도록 하겠소.”
쿨레기는 드루바가 제너럴 상단의 다이안이란 여자 문제로 자신을 찾아온 줄 알았다. 꼭 잡거나 죽여 달라고 했는데 추격 끝에 잡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수하들의 말에 의하면 하늘을 나는 자가 그들을 앞을 가로막았다는데 변명 같지 않은 변명에 너무 화가 나서 직접 그 수하들을 두들겨 패다가 수하 하나가 죽기까지 했다. 아무튼 그 일로 쿨레기도 화가 많이 나 있던 상태였다.
“뭐 그 문제는 두목님께서 알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그깟 여자 하나 살아남았다고 우리 루키아 상단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하하. 뭐 그러시다면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지요.”
“저, 그런데 말입니다.”
쿨레기는 그제야 드루바가 다이안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로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속 시원하게 하십시오. 어디 드루바 님과 제가 남입니까?”
“하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이요? 하하하. 부탁은 무슨.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게…… 오늘 잡은 여자 중에……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말하는 중간에 계속 뜸을 들이는 드루바를 보고 쿨레기가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 애들이 잡은 여자들 중에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를 내어 달라는 거 아닙니까?”
“그, 그렇습니다.”
“하하하. 당연히 내어 드려야지요.”
쿨레기가 도적 수하를 불러서 뭐라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드루바에게 말했다.
“자. 이제 가셔서 그 여자를 데리고 가십시오.”
“아이고. 고맙습니다. 두목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신이 난 드루바가 여자를 찾으러 가자 그 모습을 보고 쿨레기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저놈도 여자깨나 밝히는군.”
드루바는 즉각 달려가서 브리테를 빼내서 그녀를 데리고 도적 떼의 소굴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통신구를 통해 수도의 루키아 상단 본점과 연락을 취했다. 통신구에 불이 들어오자 드루바가 급히 말했다.
“급한 일이다. 상단주님을 바꿔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잠시 뒤 통신구에 곤잘레스가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곤잘레스의 물음에 드루바가 바로 말했다.
“상단주님. 실은 제가 우연히…….”
드루바의 설명을 듣고 곤잘레스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거 하늘이 나를 돕는군.
“네?”
-이오네 왕국에 흉년이 든 건 너도 알지?
“네. 그야 잘 알지요. 그 때문에 저희 상단에 지불할 대금도 미뤄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돈 받아 내기는 틀린 것 같아서 좀 무리를 해서 이오네 왕국의 무기를 대금 대신으로 받기로 조금 전 협약을 했다.
“그, 그 말씀은…….”
-맞아. 그 무기를 팔려면 제국에 전쟁이 터져 줘야겠지.
“그, 그래도 무기 팔아먹자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드루바. 넌 상인이다. 상인의 본분이 뭔가?
“상품을 파는 것입니다.”
-단순히 상품만 팔아서는 안 돼. 비싸게 팔아 많은 이윤을 남겨야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우리에게는 지금 무기가 상품이다. 그 상품을 팔기 위해 전쟁이 필요한 것뿐이다. 알겠나?
목적을 위해 그 수단이 뭐든 다 정당화되는 곤잘레스를 보고 드루바는 일단 대답했다.
“네. 잘 알겠습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고란족 대족장의 여식을 랄트족 대족장에게 보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통신을 끝낸 후 드루바는 뭔가 계속 찜찜한 기분으로 브리테에게 다가갔다.
“지금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넌 조용히 하고 나를 따라가기만 하면 돼.”
당연히 브리테는 드루바가 자신을 고란족의 대족장인 수아레스에게 데려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드루바는 브리테를 데리고 랄트족으로 향했던 것이다.
“랄트족은 안 돼요.”
브리테가 애원을 했지만 드루바는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브리테가 다시 랄트족의 중심지에 도착했을 때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때 궁으로 향하던 브리테는 참혹한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다.
궁의 입구와 담 아래로 수백여 명의 수급이 내걸려 있었던 것이다. 드루바도 그 모습에 놀라 지나가던 랄트족 전사에게 물었다.
“저게 어떻게 된 일이요?”
“반란이 있었다오.”
“반란이요?”
“대족장의 첩인 유레카와 그 오라비인 호레비가 작당을 하고 우툴라 님을 없애려다 실패해서 저렇게 된 거요.”
아마도 내부 반란으로 인해 분위기가 흉흉했던 모양이었다. 드루바는 브리테를 데리고 궁으로 향했다.
브리테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궁이 시끄러워졌다. 얼마 뒤 드루바는 직접 브리테를 데리고 우툴라가 있는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의 한가운데 옥좌에 우툴라가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옥좌 양 팔걸이에 두 개의 수급이 끼워져 있었다. 바로 우툴라의 첩이었던 유레카와 그 오라비인 호레비의 머리였다.
그리고 옥좌 아래 수십여 개의 수급이 있었는데 아마도 우툴라를 배신한 족장들의 머리인 듯 보였다.
브리테가 대전 안에 들어서자 우툴라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이게 누군가? 내 며느리가 아닌가?”
우툴라가 바로 브리테를 자신의 며느리로 공표한 것이다. 그때 브리테 옆으로 남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다리를 절고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것이 누가 봐도 정상적인 남자는 아니었다.
“내 아들인 꼬레크다. 너의 남편이니 앞으로 잘 모시거라.”
우툴라의 자식들 중 유일하게 정상이 아닌 자식이 꼬레크였다.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할까 걱정하며 키웠는데 죽지 않고 지금까지 잘 컸고 나이가 차서 결혼을 시켜야 하는데 결혼할 여자가 없어서 고민 중인 아들이었다.
바로 그런 꼬레크를 브리테와 결혼시키려 하고 있었다. 우툴라는 순순히 자신을 따르겠다고 방심시킨 뒤 도망친 깜찍한 브리테에게 이제 더 이상 친절 따윈 베풀 생각이 없었다.
“아!”
털썩!
브리테가 결국 혼절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누구도 브리테를 부축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다.
“흐흐흐. 색시.”
꼬레크가 브리테를 보듬었다. 그리고 대전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우툴라가 외쳤다.
“맨도사. 지금 즉시 고란족의 수아레스에게 브리테와 내 아들 꼬레크의 결혼 사실을 알려라.”
“네. 대족장님.”
“그리고 전 부족에 동원령을 내려라.”
우툴라의 명에 맨도사가 눈빛을 번쩍 빛냈다.
‘드디어…….’
브리테의 결혼 소식이 전해지면서 고란족도 발칵 뒤집어졌다. 그리고 랄트족의 사신들이 수시로 고란족의 궁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고란족에서도 전 부족에 동원령이 내려졌고, 각 부족의 전사들이 속속 중심지로 모여들었다. 브리테와 꼬레크의 결혼으로 고란족과 랄트족은 자연스럽게 혈맹 관계가 형성된 것이었다.
고란족의 수아레스와 랄트족의 우툴라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서로의 이견을 조율하고 크렌시아 제국을 치는 데 합의를 보았다. 이런 초유의 사태는 에반스 역시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바였다.
에반스는 어둠의 주술사가 되겠다고 찾아왔던 브리테가 그날 밤 사라지자 더는 그녀를 어둠의 주술사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경치 좋고 전망 좋은 곳에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들의 새로운 아지트를 짓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에반스의 말대로 진짜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들의 아지트는 파르미르 고원에 있는 랄트족 어둠의 주술사들의 예전 아지트를 사용하기로 했다.
해서 몇 명의 어둠의 주술사만 남아서 새로운 아지트를 짓는 일을 진행하고 나머지는 에반스를 따라서 파르미르 고원으로 가기로 했다.
에반스는 압실론 후작령으로 넘어가는 길에 파르미르 고원에 들러서 그곳에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들의 아지트를 찾아 줄 생각이었다.
그 길에는 다이안도 함께했다. 어차피 에반스를 따라 압실론 후작령으로 가서 그곳에서 새로운 상단을 세우기로 한 다이안이었다.
에반스와 일행들은 곧장 파르미르 고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랄트족 어둠의 주술사들이 사용했던 그들의 아지트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직 수십여 명의 랄트족 어둠의 주술사들이 남아 있었다.
“여기를 내줄 수는 없다.”
그들은 딴엔 자신들의 아지트를 지키겠다고 저항을 했지만 에반스가 아지트 내부에 마계 괴수인 케스피를 불러내자 부리나케 아지트 밖으로 도망 나왔다.
“으아아아!”
그리고 파르미르 고원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랄트족 어둠의 주술사들이 사용했던 각종 연구 시설부터 실험 재료들까지 아지트 안에는 많았다. 때문에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당분간 충분한 연구가 가능했다.
“모두들 연구 열심히 하고 다시 봅시다.”
에반스가 아쉬워하는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에반스 님. 가시지 마시고 계속 저희와 계시면 안 됩니까?”
서운한 듯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 한 명이 에반스를 붙잡았다. 그러자 시스턴이 에반스 대신 말했다.
“여러분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에반스 님에게도 그런 분들이 제국에 있습니다. 그분들을 만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니 모두들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시스턴의 말에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들이 에반스를 순순히 보내 주었다.
“시스턴. 네가 그렇게 말을 잘할 줄 몰랐다.”
이동 중 에반스가 감탄하며 말하자 시스턴도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게 다 스승님을 따라다니면서 좋은 말을 많이 듣다 보니 저도 많이 유식해졌나 봅니다.”
시스턴의 말에 에반스는 앞으로 자신의 여자 제자인 루미나에게도 시스턴과 같이 유익한 말들을 많이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루미나는 아직 어린데 성격이 너무 까칠했던 것이다.
에반스는 시스턴과 다이안을 데리고 곧장 파르미르 고원을 넘었다. 그리고 카라스 영지로 움직였다.
에반스가 카라스 영지에 도착할 무렵 고란족과 랄트족 전사들이 파르미르 고원 아래 집결했다. 고란족 전사들의 수가 2만에, 랄트족 전사들의 수가 3만이었다.
그들은 야만족 연합군의 선발대로 그들의 역할은 파르미르 고원을 넘어 그 아래 평원을 먼저 장악해서 전초 기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본대 병력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야만족에게 있어서 그들은 시간을 끄는 역할도 같이 맡은 상황이었다.
그 선발 부대의 지휘관은 고란족 대족장의 아들인 유스마였다. 유스마는 에반스에게 혼쭐이 나고 나서 꽤 수련을 열심히 했는지 피부도 시커멓게 많이 탔고 표정도 살벌하게 변해 있었다.
“하루 만에 파르미르 고원을 넘는다. 그리고 병력을 다섯으로 나눠서 단숨에 고원 아래 평원을 점령한다. 알겠나?”
“네!”
유스마는 꽤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고란족과 랄트족 전사들을 완전히 장악한 모습이었다.
5만의 병력이 조용히 파르미르 고원을 넘었다. 야만족 특유의 건장한 체력은 높은 파르미르 고원을 하루 만에 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다섯 방향으로 평원에 있는 트렌시아 제국의 변경 마을을 침공했다.
야만족의 침공 소식은 에반스가 카라스 영지에 도착하고 하루가 지난 후에야 전해졌다.
에반스가 카라스 영지에 도착하고 그 다음 날에 카라스 영지의 영주인 라르손이 급히 에반스를 찾았다.
“뭔가?”
“황궁 기사라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황궁 기사?”
에반스가 직접 그들을 만나러 갔다. 그랬더니 그들은 바로 랄트족에서 활약하던 벤젠과 그 휘하 기사들이었다.
“아니 당신은…….”
벤젠도 에반스를 알아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요?”
에반스의 물음에 벤젠은 유레카와 호레비의 반란이 실패했음을 에반스에게 전했다.
“모두 다 죽었소. 우리만 겨우…….”
벤젠은 그 말 이후 다른 말은 기밀이라며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에반스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반란 실패 후 아마도 벤젠과 황궁 기사들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던 모양이었다. 황궁 기사들의 말을 들으니 거의 한 달 동안 제대로 먹고 자지도 못하고 카라스 영지까지 왔다고 했다.
그날 에반스는 벤젠과 황궁 기사들을 안드레이 공작에게 부탁해서 바로 수도로 텔레포트 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 난 후 야만족의 침공 소식이 카라스 영지성에 전해졌다.
에반스는 처음에 그 소식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에반스가 직접 독수리로 변해서 파르미르 고원 아래를 비행하자 그 소식이 사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압실론 후작성에 연락해서 영지 내 병력 동원령을 내리라 하라. 그리고 전 영지성의 영주들에게 기사와 병력을 이끌고 카라스 영지로 집결하라 전하라.”
트렌시아 제국의 10대 제후이자 대영주인 에반스의 명령이 압실론 후작령 전체에 전달되었다. 에반스는 병력을 규합하는 한편 이 사실을 황궁에 전했다.
야만족이 파르미르 고원 아래 평원을 점령했다는 소식에 발칵 뒤집어진 곳은 비단 압실론 후작령만이 아니었다.
파르미르 고원과 접하고 있는 기온 후작령과 콘라드 후작령, 라미셀 후작령, 카라엔 후작령에서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난리가 났다. 그들 영지 역시 즉시 전시체제로 전환하면서 전 영지에 걸쳐서 병력 동원령이 내려졌다.
평화의 시기가 오래 지속된 탓일까?
하르메니아 대륙으로 전쟁의 피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있었다.
(강철영주 8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