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9 탈출 (69/90)

 Chapter 9   탈출

에반스는 브리테에게 그녀를 데려가기 위해 왔다고 사실대로 밝혔다. 그러자 그녀가 눈빛을 빛내며 에반스에게 물었다.

“저를 어떻게 여기서 탈출시키실 건가요?”

브리테의 물음에 에반스가 간단히 대답했다.

“우리가 할 일은 없소. 그들이 알아서 우리를 궁 밖으로 내보내 줄 테니 말이요.”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브리테가 에반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에반스가 유레카와 한 약속을 브리테에게 얘기했다.

“유레카와 그 오라비인 호레비가 저의 탈출을 돕기로 했단 말이죠? 그럼 궁 밖으로 나가는 건 문제없겠군요.”

랄트족의 궁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브리테는 이미 랄트족 궁의 내부 사정을 훤히 꿰고 있었다. 에반스는 브리테를 보고 있자니 제너럴 상단의 다이안이 떠올랐다. 브리테도 다이안처럼 영특하고 현명한 여자였던 것이다.

에반스는 브리테를 만난 뒤 유레카의 오라비로 랄트족 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호레비를 만났다.

“유레카로부터 얘기는 들었네. 잘 선택했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거사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은 데. 자네 의견은 어떤가?”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당장 결행하지. 어차피 대족장께서는 사냥하러 가셨으니 아무 문제없네.”

“그럼?”

“지금 데리고 나가게. 아무도 자네 앞을 막진 않을 걸세.”

데리고 나가라는데 못할 것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빨리 데려 나갈 수 있게 되어 고마운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에반스는 곧장 브리테에게 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나가자고 했다.

“네?”

“지금 나가도 된다는군요.”

에반스의 말에 브리테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정말 브리테가 머물던 궁 주위를 호위하던 랄트족 병력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리둥절해 하는 브리테를 보고 에반스가 눈짓을 보내자 그녀도 간단히 짐을 챙겨 들었다.

“가요.”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그녀의 말에 에반스가 시스턴을 앞장세우고 궁 밖으로 움직였다. 그들을 보고 궁 안의 사람들은 먼저 반갑게 인사들을 했다. 오히려 에반스와 브리테가 어리둥절해 하며 어색하게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바로 호레비와 그 여동생인 유레카였다.

“저 녀석은 여전히 멍청하군.”

호레비가 브리테와 함께 궁을 빠져나가는 중인 모둘라를 보며 말했다.

“호호호. 그만하세요. 이제 얼마 못 살 사람인데.”

“흐흐흐. 하긴 브리테를 데리고 달아났다고 알려지면 대족장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대족장에게는 얘기가 된 거죠?”

“당연하지. 오늘 모둘라가 브리테를 데리고 도시 구경을 할 거라고 다 얘기해 뒀다.”

“도시 구경 중 모둘라와 브리테가 갑자기 사라지다? 호호호. 놀라는 대족장의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싶은데 아쉽군요.”

“네 말대로 둘 다 제거해 버리면 간단한 것을 난 왜 이리 머리가 나쁜 걸까?”

호레비의 말에 유레카가 차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이번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해요. 만약 실수가 있어 그 둘이 살아서 여길 빠져나가기라도 한다면 일은 복잡해져요.”

“걱정 말아라. 그자들이 나섰으니까.”

“그자들이라면?”

“그래. 트렌시아 제국에서 보낸 바로 그자들 말이다.”

호레비의 말에 유레카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호호호. 그들이라면 저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군요.”

검에서 불을 내뿜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나섰다면 안심해도 됐다. 유레카가 궁 밖으로 막 나가는 모둘라와 브리테를 쳐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마치 제 집 드나들 듯 에반스와 브리테는 간단히 랄트족의 궁을 빠져나왔다. 당연히 에반스는 모둘라가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하고 오늘 브리테를 데리고 도시 구경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브리테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둘이 궁을 나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시스턴이 에반스에게 불쑥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 아. 일단 여관으로 가지.”

에반스의 말에 시스턴이 일행들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관으로 가는 도중 브리테는 연방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차나 가마를 타고 다니면서 보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에요.”

브리테가 한껏 흥분한 채 도시 구경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 후 에반스와 브리테는 여관에 도착했다.

“오오. 브리테!”

브리테의 주술 스승인 크루가 브리테를 보고 달려가 그녀를 반겼다.

“스승님!”

“괜찮으냐?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저는 무사해요. 그보다 스승님께서 저 때문에 이곳까지 오시는 수고를 하셨군요?”

“수고는 무슨. 나는 단지 에반스 님께서 시키신 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에반스는 크루뿐 아니라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들의 희망이었다.

“자. 그럼 이제 떠나도록 합시다.”

사제 간의 해후가 끝나자 모둘라에서 어느새 에반스의 모습으로 변신한 에반스가 말했다. 그러자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들이 알아서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떠날 준비를 끝내 놓고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해서 에반스는 점심을 먹고 떠나기로 했다.

지금 떠나면 다시 야영 생활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들은 최대한 음식을 많이 먹었다.

그 덕분에 출발 시간이 30분이나 지연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어쨌든 에반스와 그 일행은 점심을 먹고 나서 예정대로 랄트족의 중심지를 떠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그들이 막 번화가를 지나서 중심지의 외곽으로 나가려 할 때 누가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요?”

앞장서서 걷던 어둠의 주술사가 그자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자들 중 하나가 손으로 브리테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를 내놓아라.”

“뭐?”

두 무리 사이에 살벌한 긴장감이 흘렀다. 언뜻 보기에 길을 막아선 자들은 랄트족의 전사들로 보였다. 하지만 그들 중 몇 명은 랄트족 전사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보고 에반스의 눈이 번쩍였다. 그리고 그건 시스턴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기사들입니다.”

시스턴이 먼저 에반스에게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에반스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런데 저들이 왜?”

에반스가 의아해 할 때 그들이 전면에 나섰다. 하지만 이쪽도 전혀 꿀릴 것이 없었다. 어둠의 주술사들이니 말이다.

제국의 기사들은 모두 8명이었다. 그들이 모두 검을 뽑자 어둠의 주술사들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때 에반스가 나섰다.

“됐다. 모두 물러나라.”

에반스의 명령에 어둠의 주술사들이 고개를 숙이고 바로 뒤로 물러났다. 에반스의 등장에 8명의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에반스에게 집중되었다. 그때 에반스가 시스턴을 손짓으로 불렀다.

시스턴이 나서자 에반스가 그에게 말했다.

“제법 실력이 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네 상대는 아니니 차분하게 싸워라. 여덟 명을 한 번에 상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지?”

“네. 기사들을 상대로는 처음입니다.”

시스턴의 대답에 에반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 에반스와 시스턴을 보고 8명의 기사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치 자신들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 대하듯 하는 두 사람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저 미친놈들이…….”

“참으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8명의 기사 중 한 명이 나섰다. 그러자 시스턴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이런 미친놈. 너 따위를 상대하는데 지금 우리 다 나서란 거냐? 너 혹시 소드 마스터냐?”

“아니다.”

시스턴은 아직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를 죽인 적은 있었다.

“거봐. 까불지 말고 덤벼. 너부터 베고 저기 있는 시커먼 것들도 다 죽여야 한단 말이야.”

8명의 기사들이 부탁받은 것은 모둘라와 브리테를 비롯, 연관된 자들을 모두 죽이는 일이었다. 지금 모둘라라는 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집을 알고 있으니 이들부터 빨리 처리하고 그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기사가 마치 자신의 그의 상대도 안 된다는 투로 말하자 시스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스릉!

시스턴이 자신의 대검을 뽑아 들었다. 시스턴의 대검에는 에반스의 주술력이 걸려 있었다.

때문에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라도 시스턴의 대검에 흠집은 낼 수 있어도 잘라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상대 기사는 시스턴의 대검을 보고 마나를 주입한 검으로 시스턴의 대검을 자르고 단숨에 시스턴을 베어 버릴 위험천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면 시스턴은 상대 기사들이 자기를 우습게 여기자 그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 줘야겠다는 각오로 대검을 불끈 힘주어 쥐었다.

각자 무기를 뽑아 들었으니 싸우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타앗!”

“이얍!”

둘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리고 같이 검을 휘둘렀다. 두 자루의 병기가 맹렬히 격돌했다. 그때 기사의 검에 마나가 선명하게 맺혔다. 그것을 보고 나머지 기사들은 기사의 검이 덩치만 큰 무식한 시스턴의 대검을 잘라 버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쩡!

“헉!”

하지만 기사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마나가 맺힌 기사의 검이 시스턴의 대검과 부딪치자 산산조각 나 버렸던 것이다. 시스턴의 대검에 실린 엄청난 힘을 견뎌 내지 못한 것이다. 검을 잃은 기사는 반사적으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시스턴이 그 틈을 주지 않았다. 시스턴을 죽이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살려 둘 수 없었다.

“잘 가라.”

그 말과 함께 시스턴이 대검을 쑤욱 내밀었다.

푹!

시스턴의 대검이 기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러자 기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스턴은 바로 대검을 뽑았고 기사의 가슴에게 핏줄기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생명력이 사라진 기사가 맥없이 꼬꾸라졌다.

“와아아아!”

“잘 싸운다.”

짝짝짝!

갑자기 어둠의 주술사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고 박수까지 쳐 댔다. 같은 어둠의 주술사는 아니었지만 에반스를 호위하는 시스턴은 이미 어둠의 주술사들에게는 한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시스턴이 상대를 시원하게 이기자 절로 흥이 나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었다.

당연히 이길 거라 예상했던 기사가 맥없이 죽자 나머지 7명의 기사들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시스턴은 그들을 보고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단지 에반스의 지시대로 8명과 싸워야 했는데 한 명이 줄어든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시스턴이 먼저 대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덤벼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7명의 기사들이 시스턴을 향해 짓쳐 들고 있었다. 기사들은 자신들의 검술을 믿고 있었다. 그것이면 시스턴같이 무기와 힘만 믿고 설치는 자는 간단히 처치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 역시 기사들의 오판이었다. 시스턴은 검공 라마스의 검술을 완전히 마스터한 에반스의 제자였다. 검술에서 기사들에 전혀 꿀릴 것이 없었다.

챙! 차앙! 챙챙챙!

시스턴은 여유 있게 7명의 기사들을 상대로 싸웠다. 싸움이 계속되면서 기사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자신들이 최선을 다해 공격하고 있지만 시스턴은 너무도 차분하게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내고 또 반격까지 가하고 있었다.

여기에 한 명의 기사가 더 가세한다고 해도 시스턴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은 7명의 기사들이 더 잘 알았다.

7명의 기사들은 시스턴도 대단하다고 여겼지만 정작 시스턴 혼자 8명의 기사를 상대로 싸워도 시스턴이 이길 거라고 말한 에반스가 더 두려웠다. 만약 시스턴에게 검술을 가르친 것이 에반스라면 시스턴을 이긴다 해도 뒤가 문제였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딴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시스턴이 공격의 패턴을 바꿨던 것이다. 수비에서 반격하던 그가 갑자기 미친 오우거처럼 마구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터엉!

“크윽!”

힘에서 밀리니 검끼리 부딪치면 손해는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시스턴의 대검은 빠르고 정교했다. 때문에 검으로 막지 않고 피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문제는 검이었다. 기사들의 검이 시스턴의 대검에 견뎌 내지 못한 것이다.

쩡!

결국 기사 중 한 명의 검이 박살이 났다.

“헉!”

“루인. 뒤로 물러나라.”

검이 박살 난 기사를 구하기 위해 다른 기사들이 시스턴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스턴이 노리던 바였다. 그러니까 검을 박살 낸 기사는 시스턴이 던진 먹잇감인 셈이었다.

시스턴을 상대 기사의 검을 박살 내면서 충분히 그 기사를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 기사를 미끼로 다른 기사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세 명이나 말이다.

시스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것을 옆에서 발견한 기사가 소리쳤다.

“안 돼!”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시스턴이 몸을 뒤로 날리며 그대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검을 잃은 동료 기사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세 명의 기사들이 시스턴의 검격 안에 들어왔다. 시스턴이 가차 없이 대검을 휘둘렀다.

바우우웅!

터더텅!

시스턴의 검에 세 명의 기사들의 검이 박살이 나서 사방으로 비산했다. 놀란 기사들이 주춤거리다 뒤로, 혹은 옆으로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한 번 걸린 먹이를 그냥 놓아줄 시스턴이 아니었다.

시스턴의 대검이 수평으로 커다랗게 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커다란 원 안을 세 기사는 벗어나지 못했다.

파파파팟!

털썩!

상하로 분리된 세 명의 기사들의 시체가 피를 내뿜으며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주위를 피로 물들였다.

“헉!”

단 일검에 기사 셋을 토막 내 버린 시스턴을 보고 남은 네 명의 기사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도 시스턴은 싸움을 멈춘 것이 아니었다.

푹!

어느새 시스턴이 검을 잃은 기사에게 달려들어서 그의 가슴에 대검을 박아 넣었다.

“컥!”

기사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가슴에 박힌 시스턴의 대검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시스턴의 대검이 가슴에서 뽑혀져 나왔다.

푸쉬이!

기사의 가슴에서 핏줄기가 뿜어지고 기사가 맥없이 쓰러졌다.

“루인!”

그 기사의 죽음에 동료 기사 하나가 괴성을 내지르며 시스턴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노옴!”

하지만 힘과 빠르기에서 모두 위인 시스턴에게 정면으로 덤비는 건 자살행위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 것을 그냥 넘어갈 시스턴이 아니었다.

바우우웅!

시스턴이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스턴의 대검에 마나가 맺혀 있었다. 그냥 대검에도 기사들의 마나 맺힌 검이 박살 나는 마당에 시스턴의 대검에 마나가 맺혔으니 두 검이 부딪쳤을 때 어떻게 될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걱!

기사의 검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대검의 검격 안에 있던 기사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스팟!

기사의 머리가 너무도 간단히 몸통에서 분리되어 허공으로 솟구쳤다. 머리를 잃은 기사의 몸뚱이가 비틀거리다가 픽 쓰러지고 그 기사의 쓰러진 시신 옆에 기사의 머리가 떨어져서 데구루루 굴렀다.

이건 싸움이 아니라 도살에 가까웠다. 마치 기사와 병사가 싸울 때의 모습처럼 기사들은 시스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남은 기사 둘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대로 시스턴에게 덤벼서 장렬하게 죽느냐 아니면 달아나서 이 사실을 보고하느냐를 두고 말이다.

기사들이 덤비지 않자 시스턴이 그들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때 에반스가 나섰다.

“시스턴. 물러나라.”

“네?”

“이미 싸움은 끝났다. 저들은 너를 두려워하고 있다.”

두려워하는 상대로 싸우는 것은 시스턴도 원치 않는 바였다. 시스턴이 물러나자 에반스가 남은 두 기사에게 다가갔다.

이미 기사들과 같이 왔던 랄트족 전사들은 기사들이 도륙 나는 것을 보고 겁들을 집어먹고 달아난 지 오래였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기사들은 괴물 같은 시스턴보다 그를 아이 다루듯 하는 에반스가 더 겁났다.

“마, 말하시오.”

“트렌시아 제국의 기사가 왜 여기 있지?”

에반스의 물음에 두 기사 모두 깜짝 놀라 에반스를 쳐다보았다.

“그, 그것을 어떻게?”

“지금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너희들이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게 옳지 않을까?”

에반스의 말에 그들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우린 죽어도 너에게 알려 줄 말은 없다.”

그러자 에반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어둠의 주술사들도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크흐흐흐. 아이고 배야.”

두 기사들은 왜 시커먼 것들이 웃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에반스를 봤을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에반스의 눈에서 붉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고 그것을 본 순간 두 기사들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허억!”

두 기사 모두 에반스의 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몸도 뻣뻣하게 굳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에반스가 묻는 말에 두 기사는 앞다투어 대답하기 시작했다. 생각으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에반스가 질문하면 즉시 그 대답이 기사들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허어. 그러니까 너희들은 황궁 기사들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에반스는 기사들의 정체를 알고 좀 놀랐다.

“누가 시킨 일이냐?”

“황궁 대내궁장관이신 허크스 백작이십니다.”

“허크스 백작?”

허크스 백작이라면 에반스도 아는 인물이었다. 카라스 영지에서 에반스를 자신의 편으로 영입하려 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크렌시아 제국의 황궁에서 야만족인 랄트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것이 랄트족 대족장인 우툴라가 아니라 호레비란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아마도 크렌시아 제국에서 호레비를 도와 그를 랄트족 대족장으로 만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정확한 이유야 에반스로서도 알 길이 없었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제국 황궁에서 호레비를 지키기 위해 소드 마스터와 소드 익스퍼트급 기사들을 보냈을 리 없었다.

아마도 이들 기사들의 우두머리인 소드 마스터는 지금 호레비를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였다.

찌릿하니 살기가 느껴졌다. 그 살기는 에반스뿐 아니라 시스턴과 어둠의 주술사들 모두 느낀 듯 에반스와 그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한쪽을 향했다.

“멈춰라.”

그곳에 중년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일부러 목소리에 마나를 실어서 외쳤다. 그 소리에 마력과 주술력이 약한 어둠의 주술사들은 귀가 아픈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자를 발견하고 시스턴이 나서려 했는데 에반스가 말렸다.

중년의 남자는 좀 전 기사가 폭로한 그들의 지휘관인 소드 마스터였다. 지금 시스턴이 나서면 시스턴이 죽든 중년의 남자가 죽든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게 자명했다.

그것을 잘 아는 에반스는 먼저 상대를 죽여야 할지 살려 두어야 할지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우선 시스턴을 말린 것이다.

“그들을 놓아줘라.”

중년의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중저음의 중년 남자의 목소리에는 항거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에반스가 두 기사에게 걸었던 주술을 풀었다. 두 기사는 휑하니 중년 남자에게로 뛰어갔다.

그리고 두 기사 중 하나가 외쳤다.

“너희들 이제 다 죽었어. 우리 대장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알아?”

기사 하나가 큰소리를 칠 때 다른 기사는 재빨리 에반스와 어둠의 주술사들의 정체를 그 중년 남자에게 얘기했다.

“대장님. 저놈들 주술사가 분명합니다.”

“주술사?”

중년 남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에반스와 주위 어둠의 주술사들을 쏘아보았다. 그때 에반스가 직접 나서서 중년 남자에게 말했다.

“제국에서 소드 마스터까지 보낸 것을 보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군.”

에반스의 그 말에 중년 남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두 기사를 쏘아보았다.

“저, 저희가 말한 게 아닙니다. 저자가 주술을 사용해서…….”

“휴우.”

두 기사의 궁색한 변명을 들으며 중년의 남자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힐끗 에반스를 쳐다보고 말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나?”

“알고 있다기보다 추측하는 정도랄까? 내 생각에는 제국에 우호적인 호레비를 랄트족의 대족장으로 만들 심산인 것 같은데 아닌가?”

에반스의 말을 듣고 중년 남자가 들고 있던 검을 뽑았다.

“알지 말아야 할 것도 있고 추측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 법이다.”

그러자 시스턴이 나서려 했다. 하지만 에반스가 역시 시스턴을 만류했다.

“시스턴. 싸울 상대인지 아닌지 아직 내가 판단하지 못했다.”

에반스의 말에 시스턴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에반스의 말이 떨어지면 시스턴은 언제든 중년 남자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 저놈입니다. 저 덩치 큰 놈이 기사들을…….”

기사의 말에 중년 남자가 시스턴을 쏘아보았다. 소드 마스터의 살기 띤 눈으로 말이다. 그런데 시스턴이 간단히 그 눈을 받아 내고 뚫어져라 중년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때 에반스가 주술을 사용해서 중년 남자의 머릿속에 얘기를 전달했다.

-나도 크렌시아 제국 사람이다. 목적한 바가 있어서 여기 왔다. 지금 여기서 우리끼리 싸워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떤가?

중년 남자는 갑자기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에 약간 놀란 듯 보였다. 하지만 노련한 인물답게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그 여자를 두고 가라. 그럼 없었던 일로 하겠다.”

중년 남자의 말에 에반스가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말했을 텐데. 목적이 있어서 여기 왔다고.”

“그 목적이 그 여자인 건가?”

“그렇다.”

“하지만 나도 그 여자가 필요하다.”

호레비가 개인적으로 부탁한 일이었다. 중년 남자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러자 에반스가 나서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원하던 바다.”

에반스와 중년 남자가 마주 보고 섰다.

“에반스다.”

먼저 에반스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러자 중년 남자도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벤젠이다.”

에반스가 보아하니 상대는 소드 마스터가 된 지 제법 오래되어 보였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뭐냐?”

“나이가 몇 살이지?”

“몇 년 전인가? 여든 번째 생일을 챙겨 먹었다. 그 뒤로는 나이를 잊었다.”

나이가 80살이 넘는다는 소리였다. 에반스의 예상대로 벤젠은 소드 마스터가 된 지 오래된 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마나양은 중급 소드 마스터에는 못 미쳤다. 반면 에반스는 추정컨대 이미 최상급 소드 마스터의 경지까지도 초월한 경지였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실력으로 벤젠은 에반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에반스는 벤젠을 살려 두어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처음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벤젠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자. 시작하자.”

벤젠이 먼저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주입시켰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점차 선명하게 그의 검에 맺혔다. 그리고 검 끝에서 한 뼘 정도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왔다.

그때 에반스가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주입시켰다.

우우우웅!

검이 울부짖으며 검에 역시 푸른 기운이 맺혔고 점차 선명해졌다. 그런데 에반스의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검의 길이만큼이나 길게 내뿜었다.

“헉!”

그것을 보고 두 기사가 경악했고 벤젠도 할 말을 잃은 듯 허무한 시선으로 에반스를 쳐다보았다. 에반스가 보여 준 오러 블레이드는 상급의 소드 마스터가 아니고선 만들어 내기 불가능한 것이었다.

트렌시아 제국에는 알려지기로 소드 마스터가 대략 백여 명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상급 소드 마스터 많아야 다섯이었다.

지금 벤젠의 눈앞에 그 다섯 명의 상급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이 있는 것이다. 벤젠은 아예 싸울 의지도 잃고 들고 있던 검의 검 끝을 아래로 내린 상태였다.

“가도 되겠나?”

에반스의 물음에 벤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에반스에게 말했다.

“언제고 기회가 되시면 꼭 저와 대련해 주십시오.”

벤젠의 말에 에반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행들과 같이 벤젠과 두 명의 기사 옆을 지나 랄트족의 중심지 외곽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무사히 랄트족의 중심지를 빠져나와 고란족의 영토를 향해 움직였다.

“정말 놀랐어요. 소드 마스터에게 그런 수법이 통하다니 말이에요.”

브리테가 에반스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런 수법?”

“네. 어떻게 주술로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생각을 다 하셨어요?”

브리테는 에반스가 벤젠을 속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어둠의 주술사가 소드 마스터란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에반스였다.

“뭐 그때 그런 생각이…….”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소드 마스터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해서 에반스는 브리테의 말처럼 소드 마스터 벤젠을 주술로 속인 것처럼 말했다.

에반스가 모둘라의 모습으로 시스턴과 같이 랄트족 대족장 우툴라의 궁으로 들어가기 전 아침 무렵, 한스는 에반스가 약속한 대로 가죽이 여관에 도착하자 기뻐했다. 그리고 그 가죽을 가져온 자가 물건 값은 이미 계산되었다고 했다.

“됐다. 됐어. 일단 이걸로 숨통이 트일 거야.”

한스는 가죽을 챙겨서 랄트족의 중심지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바로 다이안이 있는 곳이었다.

다이안도 사정은 한스와 마찬가지였다. 랄트족 상인들은 모두 제국 최고의 상단인 루키아 상단과 거래하기를 원했다. 때문에 루키아 상단에시 시킨 대로 망한 제너럴 상단 사람들에게는 몇 배 비싼 가격을 불렀다.

상인도 물건이 있어야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먼 야만족의 땅까지 와서 팔 물건을 하나도 사 가지 못한다면 더 이상 제너럴 상단의 재기는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다이안이 절망하고 있을 때 한스가 랄트족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최고급 가죽들을 구입해서 나타났다.

“오라버니. 이거 어디서 산 거예요?”

“하하하. 어디서 사긴. 랄트족의 중심지에서 사 왔지. 이런 최고급 가죽은 그곳에서밖에 살 수 없다는 건 너도 알지?”

“당연히 알죠. 하지만 랄트족 상인들이 제값에 팔았을 리 없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사실대로 말해 주세요.”

다이안이 다그치자 한스도 별수 없이 어떤 상인이 자신을 도와주었다고 했다.

“그 상인이 누구에요?”

“그 상인? 이런, 그러고 보니 그자의 이름도 묻지 않았네.”

다이안이 살핀 한스가 가져온 가죽들은 5골드가 넘는 가격이었다. 반면 다이안이 한스에게 준 돈은 3골드였다. 보나마나 상대가 훨씬 싼 가격에 한스에게 가죽을 넘긴 것이다.

“그 사람 찾을 수 있죠?”

다이안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지금 다이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상인이 그녀를 도와준다면 그녀는 분명 목표한 만큼의 물건들을 구입해서 수도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당연하지. 나하고 형님 동생 하는 사인데.”

한스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술술 늘어놓았다. 다이안은 즉시 채비를 갖춰서 한스와 같이 랄트족의 중심지로 움직였다. 그때 그녀가 찾던 그 상인인 에반스는 랄트족의 중심지를 나오고 있었다. 둘 사이의 길이 엇갈린 것이다.

수하 기사 여섯을 잃은 벤젠은 죽은 기사들의 시신을 수습한 후 호레비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에게 사과를 했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 중심지 밖으로 나갔다는 거요?”

“그럴 겁니다. 시간이 두 시간도 더 흘렀으니.”

“이런…….”

벤젠은 즉시 자신의 수하들인 랄트족 전사들을 풀어서 모둘라와 브리테를 찾게 했다. 그리고 모둘라가 브리테를 데리고 도망쳤다는 소식을 사냥 나간 우툴라에게도 알렸다.

“제국에 실망이요.”

호레비가 화를 냈지만 벤젠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호레비에게 말했다.

“우리 측의 실수는 인정하겠소. 하지만 그쪽 역시 실망스러운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당신들이 말한 곳에 가니 모둘라란 자는 보이지도 않았고 브리테란 여자 주위에는 어둠의 주술사들이 득실거렸소. 덕분에 우리 측 기사만 여섯이 죽었단 말이요.”

벤젠의 말에 호레비가 적잖이 놀라며 말했다.

“어둠의 주술사라니. 그게 무슨 말이요?”

“그것을 어찌 내게 묻는 거요?”

벤젠이 처음 역정을 냈다. 그리고 화를 삭이며 말했다.

“그럼 알아보시고 다시 연락 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뒤 벤젠이 나가자 호레비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즉시 알아오게 했다. 그랬더니 정말 브리테가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들과 같이 중심지를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빌어먹을. 갑자기 왜 어둠의 주술사들이 이 일에 개입한 거지?”

어둠의 주술사들을 상대하려면 어둠의 주술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호레비는 즉시 랄트족 어둠의 주술사들을 불렀다. 그렇게 십여 명 모인 랄트족 어둠의 주술사들에게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 얘기를 꺼내자 그들은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알아보니 요 며칠 사이 400여 명에 달하는 랄트족 어둠의 주술사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인 유력한 용의자들이 바로 고란족 어둠의 주술사란 사실도 같이 말이다.

그때 소식을 듣고 호레비의 여동생인 유레카가 나타났다.

“미안하구나. 면목이 없다.”

호레비의 사과에 유레카가 물었다.

“저도 얘기는 들었어요. 브리테를 데려간 고란족의 어둠의 주술사들이 그렇게 강하다면서요?”

“그렇다는구나. 이제 어쩌면 좋겠니?”

“어쩌기는요. 잘됐죠.”

“잘되다니?”

“그들이 강하다는 건 브리테를 데리고 고란족의 영토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잖아요?”

“그야 그렇지. 아! 하하하. 그렇군. 내가 깜박했다. 그 여자만 사라지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브리테가 사라진 이상 개혁파도 더 이상 무리하게 제국을 치자는 소린 못할 거예요.”

“당연하지.”

“그보다 거사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겠어요.”

“거사 시기를 앞당겨?”

“네. 우순바에 이어서 어둠의 주술사들까지 줄줄이 죽어 나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거사를 도모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고 봐요.”

“그, 그런가?”

“오라버니.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에요. 오라버니께서도 최고의 위치에 올라 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야 그렇지. 걱정하지 마라.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다. 거사는 반드시 성공할 거다.”

“그래야죠. 그런데 모둘라 그놈은 어디 간 거죠?”

“그러게.”

호레비와 유레카가 찾던 모둘라는 자신의 저택 지하 창고에 갇혀 있었다. 브리테가 사라지고 나서 하루 뒤, 그가 시종의 도움으로 겨우 그곳에서 나왔을 때는 우툴라가 보낸 랄트족 전사들이 이미 그의 저택 주위를 겹겹이 포위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를 발견하고는 덥석 잡아서 우툴라 앞으로 끌고 갔다.

“네, 네놈이 어찌…….”

당연히 모둘라는 우툴라가 왜 자신에게 화를 내는지 그 이유도 몰랐다.

“저놈 때문에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 꼴도 보기 싫다. 저놈을 끌어내라. 당장!”

모둘라는 중심지 외곽으로 끌려갔다.

“사, 살려 줘. 으아악!”

그리고 그 이후 그를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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