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2 숲의 악마Ⅱ (62/90)

Chapter 2   숲의 악마Ⅱ

부기사단장 마크와 세 명의 기사들이 죽은 곳에 8명의 기사들이 들어섰다. 한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자 그들을 찾겠다고 기사들이 나선 모양이었다.

“끙끙. 이건 피비린내?”

걸음을 멈춘 기사들이 횃불로 주위를 밝혔다. 그러자 나무 아래 내동댕이쳐진 둥그런 물체가 눈에 띄었다.

그것을 발견한 기사가 그쪽으로 횃불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것은 몸통에서 뽑혀 나온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맙소사. 부단장님!”

“뭐?”

기사들이 그 머리통 주위로 모여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기사 중 하나가 검을 뽑아 든 채 조심스럽게 머리통이 놓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크게 뜨여진 마크의 눈동자에는 공포심이 역력했다.

놀랍게도 거칠게 뜯겨진 살점 아래 척추가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그의 목은 잘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통째로 뽑혀진 것임을 알 수 있게 했다.

“다른 기사들은?”

기사들이 흩어져서 다른 기사들의 시신을 찾았다.

“찾았다.”

“여기도…….”

하지만 그 말 뒤 기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머리통이 박살 나 죽고 온몸이 바스러져서 처참하게 죽은 동료 기사들 때문에 할 말을 잊었던 것이다.

파팟!

그때 숲에서 미미한 소리와 함께 거구의 괴물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멍하니 서 있던 기사 세 명을 향해 돌방망이를 강하게 휘둘렀다.

부웅!

퍼퍼퍽!

한 번에 기사 세 명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가공할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머리가 박살 나며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어 머리가 사라진 세 명의 기사가 맥없이 꼬꾸라졌다. 그때 거구의 괴물이 신속하게 숲 속으로 도망쳤다.

“저, 저놈이…….”

기사들 중 네 명이 그쪽으로 뛰었다. 그리고 혼자 남은 기사가 머리통이 날아간 동료 기사들의 시신을 지켰다.

쓰윽!

그때 혼자 남은 기사 뒤에서 큼직한 손이 나와서 그 기사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덥석!

“헉!”

기사는 투구를 쓰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거대 원숭이의 악력을 견뎌 낼 정도가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콰드드득!

거대 원숭이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기사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펄쩍 뛰었다. 투구가 푹 패여 들어가며 안면보호대 사이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허리춤의 검을 잡아 뽑던 손 역시 동작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때 거대 원숭이의 팔에 힘줄이 돋아났다. 동시에 기사가 죽어라 괴성을 내질렀다.

“아아아악!”

콰직!

결국 기사의 두개골이 파열되었다. 그 힘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머릿속에서 과도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눈알까지 툭 불거져 나왔다. 그리고 두 눈에서도 핏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기사의 목이 옆으로 맥없이 꺾였다. 즉사였다.

털썩!

그 기사가 쓰러지자 거대 원숭이도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 원숭이를 추격했던 4명의 기사가 돌아와서 머리가 찌그러져 죽은 동료 기사를 보고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어둠에 잠긴 사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주위 숲 어딘가에서 거대 원숭이가 기사들을 노리고 있을 터였다. 겁에 질린 기사 한 명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도, 돌아가서 기사들을 더 데리고 오는 것이…….”

“맞아. 그러는 게 좋겠어.”

기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다른 기사가 그 의견에 찬성했다. 기사들은 더 말도 없이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남은 네 명의 기사들이 겁에 질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면서 에반스는 저들을 살려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숲에 나타난 기사들과 여자를 강가 야영지로 보내 놓고 에반스의 정신은 거대 원숭이의 몸에서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갔다.

에반스는 페이슨과 데보라가 기사들과 여자를 아는 척하자 즉시 주술을 사용해서 그들의 얘기를 엿들었다. 그리고 기사들과 여자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들은 바로 베일리 후작가의 기사들과 케이런의 여동생이었다.

에반스에게는 거치적거리는 존재들이 아닐 수 없었다. 어째든 오늘 밤 페이슨과 데보라를 제거하려 했던 에반스의 계획에 약간의 차질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이 죽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단지 그 순서가 바뀌고 죽는 시간이 좀 늦춰졌을 뿐이다.

에반스는 우선 야영장 주위 기사들부터 제거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마인드 컨트롤의 주술로 거대 원숭이의 몸으로 돌아간 에반스는 미끼로 돌을 던져 기사 한 명을 처치했는데, 기사 네 명이 그를 잡겠다고 숲으로 우르르 들어왔고 그는 그들을 가능한 잔인하게 죽였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던 듯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를 듣고 나머지 기사들이 일제히 숲 안으로 들어왔다. 에반스에게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에반스는 그 나머지 기사 중 절반인 4명을 먼저 죽였다. 그러자 남은 4명이 기사가 뒷걸음질을 쳤다.

그들은 서로 사방으로 뭉쳐서 경계하며 이동했다. 때문에 어디서 괴물이 나타나든 대처가 가능했다. 그렇게 그들이 숲을 벗어나려 했지만 그것을 그냥 내버려 둘 에반스가 아니었다.

파팟!

어둠 속에서 거대 원숭이가 튀어나와 네 명의 기사를 한 번에 덮쳤다. 거대 원숭이를 발견한 기사가 검을 휘둘렀지만 에반스는 처음부터 기사들의 반격 따윈 깡그리 무시한 듯 거침없이 몸을 날렸다.

콰쾅!

굉음과 함께 4명의 기사들의 몸이 튕겨 나갔고 그중 한 기사가 나무에 정통으로 부딪쳐서 그대로 목이 꺾여 죽었다. 나머지 3명의 기사들은 운이 좋아 주위 수풀에 떨어져 큰 부상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때 뭔가가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씨잉!

3명의 기사 중 한 명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아아악!”

그리고 숲 안쪽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렸다. 놀란 기사들이 강가를 향해 죽어라 뛰었다. 하지만 다시 뭔가 그들을 스쳐 지나면서 맨 앞의 기사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거대 원숭이가 나무를 타고 날 듯이 이동하면서 그 기사의 머리를 한 손으로 낚아챘던 것이다.

바로 뒤에서 그 모습을 확인한 기사는 대놓고 도망치는 것을 피하고 나무 뒤로 숨었다.

우두둑!

그때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털썩!

유일한 생존자인 기사가 숨어 있는 나무 아래로 길게 혀를 빼문 채 죽은 동료 기사의 시신이 떨어졌다.

“으아아!”

머리를 잡아챈 거대 원숭이가 그 기사를 옆구리에 끼운 뒤 팔에 힘을 주어 허리를 부러트려 버린 것이다. 몸이 기괴한 각도로 꺾인 기사의 시체를 보자 혼자 남은 기사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며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그때 그 나무에서 나뭇가지에 다리를 감은 상태로 거대 원숭이가 기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휘잉!

깜짝 놀란 기사가 머리 위로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 전에 거대 원숭이의 긴 팔이 기사의 머리를 잡아챈 상태였다.

거대 원숭이가 탄력을 이용해서 기사의 몸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으아아아!”

기사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상태에서 거대 원숭이가 손목을 비틀었다.

빠각!

허공에 뜬 상태에서 목이 반 바퀴 돌아가 버린 기사가 혀를 빼어 물었다.

강에서 몸을 씻고 무기와 갑옷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나서 12명의 기사들이 야영장 주위로 갔을 때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러게…….”

그들은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부기사단장 마크와 12명의 동료 기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찾지 않은 곳은 숲뿐이었다. 기사들은 일단 그 사실을 페이슨에게 알렸다.

“뭐라고?”

막사에서 쉬고 있던 페이슨은 그 사실을 듣고 놀라며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13명의 기사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소드 마스터의 예민한 기감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기사 중 하나가 숲으로 들어간 동료 기사들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숲 속입니다. 저 안으로 들어간 게 분명합니다.”

기사들이 숲으로 들어가려 하자 페이슨이 바로 제지했다.

“멈춰. 너희들은 여기 있어라. 내가 살펴보고 오겠다.”

숲은 위험했다. 게다가 갖은 장애물이 많아서 사람이 많다고 유리한 곳도 아니었다. 차라리 페이슨 혼자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재빨리 숲 밖으로 나오는 것이 더 나았다. 소드 마스터인 페이슨이 나서겠다니 기사들도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너희는 여기를 잘 지켜라. 내가 기사들을 찾아오겠다.”

그렇게 말하고 페이슨이 검 한 자루를 손에 들었다. 그때 기사 중 한 명이 창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페이슨이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그 창 좀 줘 봐.”

“예. 여기…….”

기사가 건네는 창을 받아 든 페이슨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은 창이로군.”

창은 그 끝이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고 그 무게도 제법 묵직했다. 아마 통째 강철로 제작된 창인 모양이었다.

“이 창 좀 내가 빌리지.”

“얼마든지…….”

소드 마스터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인데 자신의 무기까지 빌려 줄 수 있다니 기사로서 이보다 더 영예스러운 일도 없을 터였다.

페이슨은 허리에 검을 차고 창을 든 채 숲 안으로 들어섰다. 소드 마스터의 시력은 어둠도 그렇게 영향을 주진 못했다. 때문에 페이슨은 횃불도 들지 않고 숲 안으로 들어갔다.

파다다닥!

부스럭!

새가 날고 짐승들이 움직이는 소리들이 페이슨의 귓가로 들려왔다. 하지만 그 이외에 뭔가 위험한 생명체가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슈웅!

그때 뭔가가 페이슨에게로 날아왔다. 페이슨은 슬쩍 몸을 틀어 그것을 피했다.

퍽!

데구르르.

나무에 맞은 그것이 페이슨 앞으로 굴러왔다.

“으음!”

그것은 바로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피투성이로 뭉그러진 터라 그 머리통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페이슨이 숲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누구냐? 썩 나서라.”

페이슨의 목소리가 숲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하지만 숲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를 악문 페이슨이 다시 숲 안으로 들어갔다.

뚝뚝!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페이슨이 그쪽으로 다가가자 나뭇가지에 시체 한 구가 맥없이 걸쳐져 있었다. 축 늘어진 팔다리를 타고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신이 걸치고 있는 갑옷에는 페이슨도 잘 아는 귀족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바로 베일리 후작가의 기사였다. 그렇다면 사라진 13명의 기사 중 한 명이란 소리였다. 그 시신을 보고 페이슨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건 누가 의도적으로 저질러 놓은 짓이었다. 페이슨이 보라고 말이다.

부스럭!

페이슨이 서 있는 뒤쪽 나무 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페이슨은 바로 몸을 돌려 들고 있던 창을 소리가 난 쪽으로 던졌다.

슈우우웅!

파공성과 함께 창이 쏜살같이 나무 위를 향해 날아갔다.

콰직!

창이 나무에 박히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그때 나무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튀어나와 다른 나무로 옮겨 갔다.

“저놈은…….”

페이슨은 그 거대한 실루엣이 거대 원숭이란 것을 바로 알아봤다.

파파파팟!

페이슨이 바로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페이슨은 마치 원숭이처럼 잘도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무에 박혀 있던 창을 뽑았다.

그때 거대 원숭이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듯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 거대 원숭이를 보고 페이슨이 창대를 힘주어 잡았다.

원래 기사들은 창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소드 익스퍼트 이상의 기사들은 검술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또 창대가 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마나를 불어넣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페이슨이 들고 있는 창대는 통째 강철로 만들어진 창이었다.

우우우웅!

창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혔다. 페이슨이 창에 오러 블레이드를 주입시킨 것이다.

“타앗!”

도망치는 거대 원숭이의 거리를 가늠한 뒤 페이슨이 힘껏 창을 던졌다.

바우우웅!

어둠 속에 푸른색 포물선을 그리며 창이 빠르게 거대 원숭이를 향해 날아갔다. 이때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옮겨가며 이동 중이던 에반스의 등 뒤로 무시무시한 기운이 파고들었다.

휘유유웅!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에반스가 급히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옆구리에서 끔찍한 통증이 전해지자 에반스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꿔어어어!”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창날이 왼쪽 옆구리를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고통에 에반스는 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았다. 땅에 내려앉은 에반스는 떨리는 손으로 튀어나온 창날을 보고 괴로워했다.

차차차착!

그때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자 에반스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 밖으로 튀어나온 창대를 뽑아내서 엿가락처럼 강철 창을 휘어 아무렇게나 던져 버린 뒤, 다시금 몸을 날렸다. 순간 거대한 원숭이의 몸이 눈 깜짝할 사이 숲 속으로 사라졌다.

거대 원숭이가 사라지고 나자 페이슨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페이슨은 자신이 던진 창에 거대 원숭이가 맞아 추락하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거대 원숭이가 떨어진 곳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창이 놈에게 치명적인 충격을 입히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놈이 흘린 피의 양이 꽤 많았다. 그리고 그 피의 흔적 역시 주위에 남아 있었다.

“놈. 이제 죽은 목숨이다.”

페이슨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거대 원숭이가 흘린 핏자국을 따라 뛰었다. 그렇게 달린 페이슨은 잠시 뒤 자신의 머리 위까지 훌쩍 자란 수풀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보아하니 놈은 저 수풀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페이슨은 검을 뽑아서 가볍게 휘두르며 눈앞의 시야를 넓혔다. 그렇게 수풀 안으로 들어가던 페이슨의 다리를 뭔가가 잡아챘다. 거대 원숭이가 숨어 있다가 페이슨이 나타나자 그 다리를 잡은 것이다.

거대 원숭이가 그렇게 하려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페이슨은 설마 거대 원숭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예상치 못한 터라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으헉!”

페이슨의 몸이 갑자기 한쪽으로 딸려갔다. 페이슨이 사력을 다해 저항을 했지만 거대 원숭이의 괴력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의 몸이 수풀 안으로 주르르 딸려 들어갔다.

페이슨은 안 되겠다 싶어 들고 있던 검을 다리 쪽으로 휘둘렀다.

서걱!

검이 수풀이 아닌, 확실하게 묵직한 것을 베었다. 그러자 그의 다리를 잡고 있던 손이 풀렸다. 아마도 놈의 팔을 벤 것 같았다. 페이슨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발에서 전해 오는 통증에 페이슨의 입에서 절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윽!”

잡힐 때는 몰랐는데 발을 딛고 서자 발목이 이상했다. 거대 원숭이의 악력에 발목뼈가 손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놈을 쫓는 데 지장이 생겼다. 페이슨은 마치 다 잡은 고기를 놓친 듯 아쉬웠다. 그때 페이슨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자신이 혼자서 너무 숲 속 깊이 들어온 것을 깨달았다.

페이슨은 손을 턱에 괴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페이슨이 절뚝이며 방향을 틀었다.

“일단 나가서 다리부터 치료해야겠군.”

페이슨은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구리를 관통당한 에반스는 얼마 뛰지 않아 출혈이 멈추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거대 원숭이의 치유 능력에 혀를 내 둘렀다.

그때 우거진 수풀이 나오자 에반스는 그쪽으로 뛰었다. 그리고 수풀 안에서 바짝 엎드린 채 페이슨이 쫓아오기를 기다렸다.

페이슨도 거대 원숭이가 설마하니 엎드려서까지 숨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거대 원숭이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에반스는 페이슨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안쪽으로 끌어당기는데 페이슨이 재빨리 검을 휘두르는 바람에 팔에 상처만 입었다.

‘아쉽군.’

바로 낚아채서 패대기를 쳤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얼마 뒤 페이슨이 절뚝거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잡은 발목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에반스는 거리를 두고 페이슨을 바짝 따라붙었다. 에반스는 당연히 페이슨을 이대로 강가 야영지까지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발목까지 다친 페이슨이었다.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기회가 왔을 때 제거하는 것이 좋았다.

에반스는 근처에 나뒹굴고 있는 제법 큼직한 나뭇등걸을 살며시 집어 들었다. 안이 썩어서 그런지 그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았다.

휘익!

뭔가 시커먼 것이 자신을 노리고 덮쳐 오자 페이슨은 반사적으로 오러 블레이드가 맺힌 검을 휘둘렀다.

퍼퍼퍼퍽!

날아든 물체는 순식간에 여러 토막으로 쪼개져서 사방으로 파편을 튀겼다. 그 물체의 정체를 확인한 페이슨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토막 난 거대 원숭이의 시체를 기대했는데 나뒹구는 것은 썩은 나뭇등걸이었던 것이다.

에반스는 썩은 나뭇등걸을 던진 후 잠시 거대 원숭이의 몸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몸으로 돌아갔다. 거대 원숭이는 넋이 나간 채 잠시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다.

어둠의 장막에서 빠져나온 에반스가 숲 속을 향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근처 숲 속에 있던 몬스터와 육식 짐승들이 에반스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에반스로부터 무슨 지시를 받은 듯 몬스터들과 육식 짐승들이 페이슨이 있는 쪽으로 몰려갔다.

그사이 에반스는 거대 원숭이에게 가서 녀석이 입은 상처를 완전히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거대 원숭이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얼추 한 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거대 원숭이의 몸을 한 에반스는 곧장 페이슨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헉헉!”

그때 페이슨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주위로 수많은 몬스터와 육식 짐승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그 시신들 한복판에 페이슨이 버티고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검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의 온몸이 피와 살점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페이슨은 다소 지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갑자기 이놈들이 왜 나를…….”

한 시간 동안 페이슨은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일체 쉴 틈도 주지 않고 몬스터와 짐승들이 미친 듯이 그를 공격했던 것이다. 다친 발목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페이슨은 몰려드는 몬스터와 짐승들을 상대로 계속 싸울 수밖에 없었다.

소드 마스터라도 사람이었다. 휴식 없이 계속 싸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페이슨은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딘가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대 원숭이 때문이었다. 페이슨이 빠짝 마른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빌어먹을 원숭이. 앨빈과 케이런만 오면 네놈의 그 질긴 가죽을 벗겨 주마.”

지친 기색이 역력한 페이슨이 숲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그리고 죽은 몬스터와 짐승들 사이를 빠져나가 강가로 움직였다.

휘이익!

그때 빠른 속도로 시커먼 물체가 페이슨을 덮쳤다. 페이슨은 부랴부랴 검에 마나를 불어넣어서 그 물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처음 에반스가 나뭇등걸을 던졌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오러 블레이드가 검에 맺혔고 대기를 갈랐다.

서걱!

뭔가가 검에 피를 뿜으며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쪼개진 물체는 큼지막한 오우거였다. 앞서 페이슨이 베었던 오우거 중 한 마리였다. 그렇다면 근처에 거대 원숭이가 있단 소리다.

페이슨은 움직임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귀를 쫑긋 세우고 기감으로 거대 원숭이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스르르!

그때 나무 위로 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페이슨은 곧장 그 나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침없이 마나를 검에 집중시켰다.

파츠츠츠!

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르스름한 빛이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페이슨은 망설이지 않고 그 커다란 나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슈가각!

어른 두 사람이 안아도 모자랄 정도의 두터운 나무가 그대로 베어져 나갔다. 검신에 서린 오러 블레이드에 의해 사선으로 깨끗이 베어진 것이다.

우지끈!

아름드리나무는 자체 무게를 이기지 못해 한쪽으로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쿠쿠쿠쾅!

잠시 후 굉음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페이슨의 몸은 이미 잘려진 나무 상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파파팟!

오러 블레이드가 번쩍 하는 순간 시야를 가리는 나뭇잎과 가지가 송두리째 잘려 나갔다. 하지만 페이슨은 나무에 붙은 가지와 잎을 모두 잘라 내고도 거대 원숭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페이슨의 귓전으로 거대 원숭이의 포효 소리가 들렸다.

“쿼어어어!”

페이슨이 고개를 돌리자 거대 원숭이가 다른 나무로 옮겨 가서 그를 보고 한 손까지 들어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페이슨은 맥이 탁 풀렸다. 그때 거대 원숭이가 엉덩이를 돌려 페이슨을 향해 흔들어 댔다.

누가 봐도 페이슨을 조롱하는 행동이었다.

“저놈이…….”

발끈한 페이슨이 거대 원숭이가 있는 쪽으로 절뚝거리며 뛰었다. 그리고 몸속에 마나를 모조리 검에 응축시켰다. 페이슨은 마지막 도박을 결심했다. 창 대신 검을 던져 거대 원숭이를 잡을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거대 원숭이는 페이슨이 또 자신이 있는 나무를 베려는 줄 알고 끽끽대고 있었다. 페이슨이 또 나무를 베면 녀석은 그 옆 나무로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이 숲의 모든 나무를 다 벨 생각이 아니라면 페이슨도 곧 지칠 게 분명했다.

녀석은 아마도 페이슨이 지치면 그때 페이슨을 덮칠 모양인 듯 보였다. 거대 원숭이가 있는 나무 가까이 절뚝거리며 뛰어간 페이슨은 거대 원숭이와의 거리를 대충 가늠했다.

‘됐다.’

다행히 거대 원숭이는 그 나무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페이슨이 들고 있던 검을 거대 원숭이를 향해 내던졌다.

휘리리릭!

오러 블레이드가 맺힌 검이 맹렬히 회전하며 거대 원숭이를 향해 날아갔다.

“끽!”

깜짝 놀란 거대 원숭이가 급히 딛고 있던 나뭇가지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하지만 검은 어느새 거대 원숭이의 허벅지를 사정없이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슈각!

뛰어오르는 것이 조금만 늦었다면 배나 가슴이 꿰뚫릴 뻔했기에 거대 원숭이도 꽤나 놀란 것 같았다.

허벅지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한 손으로 지혈하면서 거대 원숭이가 한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다른 나무로 즉시 몸을 날렸다. 최대한 페이슨과 거리를 벌리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젠장…….”

반면 회심의 일격에 거대 원숭이를 죽이지 못한 페이슨은 아쉬워하며 방향을 틀어서 절뚝거리며 움직였다.

검을 던져 버렸으니 이제 더 이상 거대 원숭이를 대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가면 기사들이 죽은 장소가 나왔다. 그곳에 가면 기사들이 떨어트린 검이 있을 터였다. 다행히 거대 원숭이도 허벅지를 심하게 다쳐 도망갔으니 그사이는 안전했다.

물론 이건 순전히 페이슨이 생각이었다. 거대 원숭이의 몸을 차지하고 있던 에반스는 부상을 입고 도망치는 듯 행동하면서 페이슨의 다음 행동을 살폈다.

그런데 페이슨이 절뚝거리며 숲 속을 뛰어가며 연방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에반스도 페이슨의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 거대 원숭이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거대 원숭이가 나무를 타고 움직였다. 정상인 상태에서도 나무를 타는 거대 원숭이는 숲을 나는 새만큼이나 빨랐다. 하물며 다리를 절뚝거리며 뛰는 페이슨 정도는 금방 따라잡았다.

쿵!

페이슨 앞에 거대 원숭이가 사뿐히 내려섰다.

“헉!”

갑자기 거대 원숭이가 나타나자 페이슨이 기겁을 하며 놀랬다. 그리고 거대 원숭이를 올려다보자 녀석의 눈동자에는 분노의 광망이 일렁거렸다. 아마 자신의 허벅지에 상처를 낸 것에 대해 많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

“으으으…….”

그 모습에 페이슨이 겁에 질려 주춤 뒤로 물러섰다. 손에 검이 없으니 페이슨도 더 이상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물론 검이 없는 소드 마스터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에게 검이 없다는 것은 맹수에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없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문제는 거대 원숭이가 소드 마스터에 대해 잘 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페이슨의 발목 상태가 더 악화되어 그 움직임이 평소 소드 마스터의 빠름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 약점을 이용해서 거대 원숭이가 페이슨이 다친 발목 쪽을 움직이게 그 방향으로 덮쳤고 아픈 발목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페이슨의 얼굴을 거대 원숭이의 큼지막한 손이 움켜쥐었다.

머리를 통째 거머쥔 거대 원숭이는 페이슨의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우우우욱!”

페이슨은 정신없이 몸을 바동거렸다. 하지만 억센 거대 원숭이의 손아귀에서 손에 아무런 무기도 없이 머리를 빼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 페이슨을 거대 원숭이가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그의 손아귀에 있는 소드 마스터는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웁, 웁…….”

머리통을 붙들려 계속 발버둥 치는 페이슨을 쳐다보며 거대 원숭이가 나머지 주먹으로 페이슨의 몸통을 때렸다.

퍽!

둔중한 소리와 함께 페이슨의 몸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보나마나 페이슨의 허리 쪽 척추가 산산조각 난 것 같았다. 페이슨의 몸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거대 원숭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주먹질을 했다.

퍽!

두 번째 주먹질에 꿈틀거리던 페이슨의 몸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거대 원숭이가 잡고 있던 페이슨의 머리를 힘주어 쥐었다. 그리고 페이슨을 놓았다.

털썩!

두개골이 터지고 눈알이 튀어나온 처참한 모습의 시신을 보고 누가 그를 소드 마스터 페이슨이라 생각할까?

거대 원숭이는 죽은 페이슨의 시체를 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베일리 후작가의 사라진 13명이 기사들을 찾아 나선 페이슨으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남은 12명의 기사들이 크게 동요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러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냐?”

“에이. 설마? 페이슨 님은 소드 마스터라고.”

새벽이 오기 직전 밤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이제 곧 새벽이 될 텐데 기사들의 마음도 그만큼 더 조급해졌다.

“안 되겠다. 우리가 들어가 봐야겠어.”

“그래. 레이, 브랑 너희 둘은 여기 남아서 아가씨를 지켜라.”

막내 기사 두 명을 남기고 10명의 기사들이 한 손에 횃불을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에반스는 거대 원숭이의 몸에서 나와 페이슨의 시체를 들고 일행과 만나고 있었다. 페이슨의 시체를 보고 시스턴이 눈빛을 빛냈다. 그리고 에반스에게 말했다.

“그 여자는 제게 맡겨 주십시오.”

시스턴의 말에 에반스가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데보라는 테이거와 다르다. 네가 상대하기에는 위험한 상대다.”

“하지만…….”

시스턴이 동생의 복수를 운운하려 할 때 에반스가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너 여자 죽인 적 있어?”

“네? 하지만 그 여자는 소드 마스터입니다.”

“하지만 데보라가 마지막 순간 여자임을 내세운다면 그때도 바로 그녀를 벨 수 있겠나?”

“…….”

에반스의 물음에 시스턴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무서운 건 여자라는 점이다. 너처럼 기사 출신에게 그건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그 말을 한 후 에반스가 고란족 두 어둠의 주술사들에게 말했다.

“숲 안으로 기사들이 들어온 것 같군. 너희들이 처리해라.”

“네!”

에반스의 말에 두 어둠의 주술사가 대답과 동시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의 주술사 샘과 데릭은 어떻게든 에반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야. 그분께서 만족하시게 일처리를 해야 해.”

“물론이지.”

“내가 소환술을 사용할 테니 넌 환영술로 놈들을 유인해.”

소환술에 자신이 있는 데릭이 점술에 관심이 많은 샘에게 말했다. 샘이 환영술에 뛰어나다는 것을 데릭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그렇게 하지.”

스르르르!

대답과 동시에 샘이 연기로 화해 모습을 감췄다. 그러자 데릭도 서둘러 소환술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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