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스와 루크, 루미나는 동굴에 들어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발걸음을 멈췄다. 동굴 안에 인위적인 벽을 발견한 것이다.
그 벽은 동굴 안에서 흔히 발견되는 거미줄도 하나 없었으며, 최근 것으로 보이는 핏자국 얼룩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 벽에는 구멍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 날카로운 석궁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다.
“여기 같습니다.”
그 벽을 보고 루크가 말했다.
“저 벽만으로 여기가 윈스트런의 무덤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어.”
그렇게 말한 뒤 에반스가 먼저 그 벽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벽에 설치되어 있던 기관이 작동하면서 에반스를 향해 석궁들이 발사되었다.
슈슈슈슝!
석궁들은 그대로 에반스의 몸을 꿰뚫었다.
터터터텅!
하지만 석궁이 맞힌 에반스는 잔상에 불과했다. 석궁보다 훨씬 빨리 에반스의 몸이 그 인위적인 벽을 통과해서 안전한 안쪽에 도착해 있었다. 석궁들은 에반스가 지나간 뒤 맞은편 벽에 맞아 튕겨 나갔다.
촤르르르!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석궁은 발사된 뒤 다음 석궁으로 교체되어 장착되었다.
“거참 의리 없게 혼자 가다니.”
투덜대며 루크가 마법을 시전했다.
“매직 미사일!”
쾅!
기관에 대해 지식이 많았던 루크는 기관 장치에서 석궁의 발사 장치를 부쉈다.
“가자. 루미나.”
루크와 루미나가 그 벽을 통과하도록 석궁은 발사되지 않았다.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에반스는 루크와 루미나가 벽을 통과해서 오자 바로 동굴 안으로 움직였다.
동굴에는 그 이외에도 다양한 기관들이 있었다. 거대한 돌이 굴러오고 벽이 위에서 움직이고 또 옆에서 움직여서 사람을 짓뭉개 놓으려 했다.
하지만 기관에 대해 잘 아는 루크가 간단히 주요 장치를 부수면서 기관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기관까지 통과하자 동굴 입구를 막고 있는 육중한 철문이 나타났다.
그 철문을 꼼꼼히 살피던 루크가 철문 옆의 벽을 더듬었다.
그러자 벽돌이 빠져나오며 그 안쪽에 손잡이가 있었다. 루크가 에반스를 보자 에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루크가 바로 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르르르릉!
철문이 다 올라가서 어두운 입구를 드러내었다. 철문 앞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폭이 좁은 계단이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좁은 계단을 에반스가 먼저 발을 내디뎠다.
에반스에 이어서 루미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루크가 계단을 내려가자 그르릉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다시 내려왔다.
쿵!
잠시 후 철문이 다시 닫혔다. 주위는 온통 어둠에 휩싸였다. 하지만 에반스는 어둠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 소드 마스터였다. 루미나는 그런 에반스의 허리춤을 잡고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루크는 보이지 않는 계단을 내려갈 수 없었다.
“라이트!”
빛의 마법을 시전하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환하게 보였다. 그 계단을 따라 루크도 빠르게 내려갔다.
계단은 그리 길지 않았다. 5분 정도 내려가자 석실이 나타났다. 그때 에반스가 석실 앞에서 말했다.
“여기다.”
윈스트런이 말했던 그의 무덤을, 드디어 에반스가 찾은 것이다.
윈스트런의 무덤 주위의 기관 장치는 윈스트런이 죽은 뒤 한참 뒤에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누군가 윈스트런의 무덤으로 인위적인 접근을 막기 위해 설치한 모양인데 그 덕분에 윈스트런의 무덤은 도굴꾼들과 동굴 몬스터들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다.
석실은 전형적인 무덤의 양식이었다. 석실 내부는 생전에 무덤 주인의 업적을 석화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석실 한가운데 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단 위에 석관이 있었다. 보통 무덤이라면 그 석관 안에 윈스트런의 시신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석관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관을 잘 아는 루크가 석실 내부를 살펴도 윈스트런의 무덤의 비밀을 풀지는 못했다.
에반스는 일단 동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약속대로 이 사실을 안드레이 공작과 나머지 일행에게 알리고 그들과 같이 여기를 다시 찾을 생각이었다.
에반스는 왔던 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에반스가 밖에 나갔을 때 시간이 꽤 흘러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그때 그 옆 동굴에서 먼저 나온 안드레이 공작과 시스턴, 라일라가 동굴 밖에서 그들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나?”
안드레이 공작이 다급히 에반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에반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안에 무덤을 발견했습니다.”
에반스의 대답에 안드레이 공작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잘 됐군. 어서 들어가 보세.”
안드레이 공작이 급하게 먼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시스턴과 라일라가 그를 따랐다.
“쳇. 이제 막 나왔는데.”
투덜거리며 루크가 다시 동굴 안으로 움직였고, 루미나에 이어 에반스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가고 나서 얼마 뒤 검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쓴 자가 동굴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찾은 모양이군.”
동굴 입구에 나타난 검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쓴 자는 바로 우순바였다. 그는 오전에 동굴 지대에 도착해서 에반스와 그 일행들을 찾았다.
하지만 바로 그들을 잡고 윈스트런의 무덤을 열 열쇠인 검을 빼앗으려 들지 않았다. 우순바가 그런 것은 에반스와 그 일행들이 윈스트런의 무덤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부터였다.
우순바는 에반스 일행이 어떻게 윈스트런의 무덤을 찾고 있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 대륙에서 인간들 중 윈스트런을 아는 자는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윈스트런을 아는 인간들 중 대부분은 윈스트런을 전설 속 바바리안으로 여겼다. 그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은 우순바를 비롯해서 야만족밖에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인간들이 윈스트런의 무덤을 찾고 있다니 우순바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우순바는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들이 어떻게 윈스트런의 무덤을 알았으며 무덤을 여는 열쇠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드워프의 검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가는 우순바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순바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내일까지 윈스트런의 무덤을 여는 것이었다.
“흐흐흐. 무덤만 열면 그때는…….”
윈스트런은 에반스 일행이 윈스트런의 무덤을 열고 나면 바로 덮쳐서 그들을 다 죽여 버리고 윈스트런의 소울 베슬을 자신이 차지할 속셈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에반스 일행이 윈스트런의 무덤을 찾도록 그냥 내버려 둔 것이었다.
“자. 그럼 나도 따라가 볼까?”
윈스트런은 기척도 없이 조용히 에반스 일행이 들어간 윈스트런의 무덤이 있는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파다닥!
잠시 후 박쥐로 변신한 우순바가 동굴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우순바가 뒤따라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에반스 일행은 동굴 안에 있는 윈스트런의 무덤으로 들어갔다.
먼저 동굴에 들어갔었던 에반스 일행이 앞장서서 윈스트런 무덤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그 중간쯤에서 에반스 일행은 저녁을 먹었다.
아무래도 어두운 동굴 안에 있다 보니 바깥의 시간이 몇 시인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스턴의 배 시계는 비교적 정확했다.
“꼬르르”
시스턴의 배에서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자 안드레이 공작이 일행들에게 먼저 저녁을 먹자고 한 것이다. 에반스도 점심을 굶었기 때문에 허기를 느꼈다. 그래서 일행과 같이 수프와 구운 요크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에반스와 일행은 부지런히 윈스트런의 무덤으로 움직였다. 다양한 기관을 뚫고 지하로 내려간 일행은 마침내 윈스트런의 무덤이 있는 석실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 시간이 꽤 흘러 자정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무덤 안의 석화를 살피다가 별다른 단서를 발견할 수 없자 석실 중앙에 있는 단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단위의 석관을 살폈다.
“아마도 이 석관도 드워프의 왕인 쿠레거가 만들었겠지?”
안드레이 공작이 에반스를 보며 말했다. 드워프의 검에도 검집 안쪽에 기록이 있었다. 그렇다면 석관에도 무슨 단서가 있을지 몰랐다. 안드레이 공작은 직접 석관 안에 들어가서 석관 내부를 꼼꼼하게 살폈다.
“이건…….”
그때 석관 바닥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 안드레이 공작이 눈빛을 빛냈다. 안드레이 공작은 자신의 짐에서 먹물과 종이를 꺼내서 그 부분에서 탁본을 떴다. 그리고 종이에 찍힌 내용을 면밀히 살폈다.
그런데 탁본에 찍힌 글은 모두가 처음 보는 글이었다.
“완전 지렁이가 기어가는군.”
“이상한 글자예요.”
라일라와 루미나가 한마디씩 했다.
“이건 드워프들의 글이다.”
“드워프요?”
“그래. 십 년 전 던전을 발굴했을 때 드워프 유적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 봤던 글자 체계와 비슷해.”
“무슨 내용입니까?”
에반스가 묻자 안드레이 공작이 그 내용을 해석해서 대답했다.
“무덤은 때가 되면 스스로 열린다.”
“네? 무덤이 열린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죠?”
루미나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안드레이 공작을 쳐다보았다.
“그 이유는 이제부터 알아내야지.”
그렇게 대답한 안드레이 공작은 석관 안에 이어서 석관 뚜껑도 살폈다. 그때 석관 뚜껑에서 안드레이 공작은 중요한 단서를 찾았다.
그것은 엘프족의 족장 히메데스가 석관 뚜껑에 남긴 단서였다.
“석관 안에는 윈스트런의 시신이 아닌 무덤을 여는 열쇠인 검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내가 볼 때 무덤은 어느 시점이 되면 항상 열린 것 같다. 하지만 석관에 그 열쇠가 들어 있지 않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그 시점이 되어도 무덤은 열리지 않았을 테고. 내가 볼 때 석관 안에 검을 넣어 예전의 상태로 원상복귀시킨 후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면서 안드레이 공작이 에반스를 쳐다보았다. 에반스가 가지고 있는 드워프의 검이 필요하단 소리였다.
에반스는 드워프 검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서 그동안 드워프 검의 기능도 사용하지 않았다. 드워프 검도 보통 검처럼 막 사용하고 말이다.
그런 에반스가 드워프 검을 내놓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에반스는 즉시 허리춤에서 검을 풀어서 안드레이 공작에게 건넸다. 그러자 안드레이 공작이 그 검을 받아서 다시 석관 안에 원래 놓여 있던 위치에 검을 놓았다.
쿠쿠쿠쿵!
그리고 석관의 뚜껑을 덮었다. 바로 그때였다.
기이이이잉!
석실의 바닥이 갑자기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루크가 소리쳤다. 분명 석실에 기관은 없었다. 그것은 안드레이 공작도 이미 확인한 바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바닥이 아래로 움직인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행은 다급히 석실 중앙의 단으로 모여서 석관을 붙잡고 균형을 유지했다.
고오오오오!
아래로 가라앉던 바닥은 더 빠르게 지하로 내려갔다. 잠시 후 석실 바닥도 그 끝에 도착했는지 멈췄다.
쿠쿵!
“헉!”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석실 바닥이 횡으로 움직였다. 지하 아래에는 커다란 터널이 있었고 그 터널을 따라 에반스 일행이 딛고 있던 석실 바닥이 퍼즐처럼 맞물려 빠르게 움직였다.
에반스와 그 일행은 갑자기 벌어진 현상에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터널을 통과한 석실 바닥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휴우!”
한숨과 함께 석관을 붙잡고 있던 에반스 일행 중 루크가 석실 바닥끝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리고 힐끗 아래를 내려다보고 경악했다.
“히익!”
“뭐예요?”
그런 루크를 보고 라일라가 물었다. 그러자 루크가 질린 얼굴로 아래쪽으로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런 루크를 보고 라일라가 짜증스런 얼굴로 그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뭔지 말을 하면 될 것을……. 헉!”
라일라 역시 석실 바닥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목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석실 바닥 아래는 낭떠러지였다. 시커먼 절벽 아래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석관 뚜껑에서 빛이 나며 그 위에 글이 생겨났다. 그 글은 역시 처음 보는 글이었는데 다행히도 안드레이 공작이 그 글을 아는 모양이었다.
“믿어라.”
“네?”
“‘믿어라.’라고 쓰여 있다.”
안드레이 공작이 서서히 빛이 사그라지는 가운데 그 글 역시 빛을 잃고 사라지는 것을 쳐다보며 말했다.
“젠장. 밑도 끝도 없이 믿으라니. 대체 뭘 믿으란 소리야?”
루크가 투덜댔다. 그때 에반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낭떠러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에반스의 걸음은 석실 끝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예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에반스는 허공을 향해 발을 내 디뎠다.
“어어. 위험합니다.”
“스승님!”
시스턴과 루미나가 소리를 쳤다. 안드레이 공작과 루크, 라일라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에반스를 쳐다보았다.
척!
절벽 아래로 추락해야 할 에반스가 허공에 발을 내딛고 서 있었다. 그리고 순간 에반스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에반스는 전면을 보고 계속 걸었다.
“뭐, 뭐야?”
“저게 어떻게 된 거지?”
허공을 걸어가는 에반스를 보고 일행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걸어가던 에반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도 가요.”
그때 루미나가 앞장서서 에반스가 내디딘 허공을 향해 발을 내뻗었다.
척!
역시 루미나도 절벽 아래로 추락하지 않고 허공에 발을 내디뎠다. 루미나는 에반스가 사라진 전면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루미나의 뒤를 라일라와 시스턴, 그리고 루크와 맨 마지막으로 안드레이 공작이 뒤따랐다.
허공의 정체는 바로 투명한 수정이었다. 만약 믿고 발을 내딛지 않았다면 일행은 아마 여기서 좌절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했거나 굶어 죽었을지 몰랐다.
“놀랍군요. 수정으로 다리를 만들다니.”
루크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러자 안드레이 공작도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에반스의 뒤를 따라 그 일행들도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펑 소리와 함께 우순바가 석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쥐로 변신해서 줄곧 에반스 일행을 감시하던 우순바는 석실이 지하로 내려가자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에반스와 그 일행이 수정 다리를 건너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들이 모두 수정 다리를 건너고 나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운이 좋은 놈들이로군.”
우순바가 수정 다리 건너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순바가 그렇게 말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우선 안드레이 공작이 에반스로부터 드워프의 검을 받아서 그 검을 석관에 넣었을 때가 바로 자정이 갓 지날 무렵이었다. 윈스트런이 죽은 날이란 소리였다.
안드레이 공작의 말처럼 윈스트런의 무덤은 그가 죽은 날 하루 동안 열려 있었다. 그러니까 우순바는 예전에 안드레이 공작의 제자가 윈스트런의 무덤에서 검을 훔쳐 가지 않았다면 진즉 윈스트런의 진짜 무덤을 발견했을 수 있었단 소리였다.
그 검이 사라지면서 윈스트런의 무덤은 그가 죽은 날에도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우순바는 분통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다.
아무튼 윈스트런의 무덤은 석관에 적혀 있는 말처럼 때가 되자 스스로 열렸다. 그런데 무덤은 열렸지만 윈스트런의 소울 베슬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 중요한 보물을 이리 쉽게 찾을 리 없었다. 결코 쉽지 않은 난관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윈스트런의 소울 베슬이 있는 곳으로 가는 그 첫 번째 관문을 에반스가 간단히 풀었다. 우순바가 박쥐로 변신해 있다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수정 다리는 반드시 발을 딛고 걸어서 건너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다. 그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에반스 일행이 수정 다리를 건널 때 석실 안에 있던 풍뎅이 한 마리가 그쪽 공간으로 날아올랐는데, ‘파직’ 소리와 함께 풍뎅이가 사라졌다.
그것을 보고 우순바가 그 공간을 살피자 수정 다리 주위만 안전하고 나머지 공간에는 엄청난 뇌전이 흐르고 있었다.
만약 우순바가 먼저 윈스트런의 무덤을 열고 이 관문에 도착했다면 그는 박쥐나 다른 날 수 있는 생명체로 변신해서 반대편으로 날아가려 했을 터였다.
그랬다면 그는 풍뎅이처럼 꼼짝없이 죽고 말았을 터였다. 인간들 때문에 쉽게 첫 번째 관문을 넘게 된 우순바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래. 놈들이 윈스트런의 소울 베슬을 찾기 전까지 살려 두기로 한 건 잘한 일이야.”
스스로에게 만족해 하며 우순바도 허공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수정 다리를 건넌 에반스가 도착한 곳은 거대한 광장이었다. 그런데 그 광장은 바닥은 존재하지만 벽과 천장이 없었다. 에반스는 그 광장의 끝 부분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아래를 내려다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광장이 허공에 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공중 광장이로군.”
에반스의 말을 듣고 그 뒤에 있던 루미나가 말했다.
“공중 광장이라니요?”
그 말을 하고 역시 아래를 내려다본 루미나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시 뒤 에반스와 그 일행이 광장의 한가운데 모였다.
“여기까지 온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여기서 뭘 어쩌란 걸까요?”
루크의 말에 에반스가 광장 안을 빙둘러보고 말했다.
“여긴 원형 광장이다. 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에반스의 물음에 루크가 바로 대답했다.
“그야 원의 중심이겠지요.”
“맞아. 일단 그 원의 중심을 찾도록 하자.”
에반스의 생각대로 일행은 광장의 중앙에서 원의 중심을 찾았다.
“여기예요.”
그때 루미나가 뭔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에반스와 일행이 그쪽으로 가자 금으로 만든 작은 원이 있었다. 위치로 봐서 그 원이 공중 광장의 중심일 가능성이 높았다.
에반스가 그 원의 표면을 닦아 내자 금으로 만든 원에서 아까 석관처럼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원에 글이 나타났다. 안드레이 공작이 그 글을 즉시 해석했다.
“버려라.”
“네?”
“버리라고 적혀 있다.”
안드레이 공작이 힐끗 에반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에반스가 심각한 얼굴로 버리라는 말을 입속에 여러 차례 곱씹었다.
‘뭘 버리라는 걸까?’
에반스는 윈스트런과 그의 무덤을 만든 윈스트런의 세 친구, 드워프의 왕인 쿠레거와 엘프족의 족장 히메데스, 휴먼족의 신전 대주교 프로세우스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평화였다.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무기를 버리는 일이었다.
‘그래. 무기다. 하지만 무기라는 건 너무 추상적이다. 라일라가 가지고 다니는 머리핀만 하더라도 쓰이기에 따라 얼마든지 무기가 될 수 있다. 아! 그렇군.’
뭔가 생각이 난 듯 에반스가 그 일행들에게 말했다.
“철로 된 건 모두 버려라.”
“네?”
에반스의 말에 일행들이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안드레이 공작이 에반스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에반스는 자신의 생각을 안드레이 공작과 일행들에게 설명했다.
“그러니 버리라는 것이 무기고, 보편적으로 무기는 철로 만들어지니 철은 다 버려 보잔 소리군.”
“그렇습니다.”
“으음. 일리가 있는 말이야.”
안드레이 공작이 먼저 자신의 짐 속에서 철이란 철은 다 꺼냈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들도 무기며 철이 붙은 물건은 다 내놓았다. 에반스는 그 철들을 미련 없이 공중 광장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자 공중 광장의 한쪽에서 불빛이 밝혀졌다. 그 불빛은 점차 환해졌는데 그 빛이 어둠을 가르며 쭈욱 나아갔다.
“저, 저건…….”
공중 광장에 있던 또 다른 수정 다리였다. 그 다리가 빛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냈다.
“가자.”
에반스가 눈빛을 빛내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그 빛나는 수정 다리에 발을 내디뎠다.
빛나는 수정 다리는 꽤나 길었다. 10여 분을 넘게 걷자 수정 다리가 끝나고 에반스와 그 일행은 다시 땅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고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여기서 잠깐 쉬어 가지요.”
긴장했던 탓인지 일행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지쳐 있었다. 그래서 에반스가 잠시 쉬면서 물도 좀 마시고 여유도 좀 찾자고 했다. 그 제안을 일행들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에반스와 일행은 10여 분 동안 말없이 각자 물도 마시고 몸의 긴장도 풀어 주며 휴식을 취했다.
바로 그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던 에반스가 번쩍 눈을 떴다. 소드 마스터의 민감한 그의 청각과 후각에 뭔가가 감지된 것이다.
크르르르!
괴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역한 피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강렬한 기운이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조심들 하도록.”
에반스의 말에 안드레이 공작과 루크는 바로 마법 캐스팅에 들어갔고 시스턴과 라일라, 루미나는 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무기가 없었다. 그때 에반스가 먼저 땅바닥에 돌을 주웠다.
그것을 보고 시스턴과 라일라, 루미나도 최대한 주위에 돌멩이들을 주워 모았다.
“마법 지원을 부탁합니다.”
그때 에반스가 힐끗 뒤돌아 안드레이 공작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안드레이 공작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반스가 굳은 얼굴로 전면을 주시하다가 갑자기 앞으로 뛰어나갔다.
“타앗!”
에반스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캬아아악!”
“크아아앙!”
에반스가 뛰어 나간 전면에서 괴물들의 비명과 함께 포효가 가득하게 일었다. 그리고 뒤이어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순간 루크와 안드레이 공작이 마법을 시전했다.
“썬더 볼트!”
“기가 파이어!‘
파지지직!
화르르르!
뇌전의 기운이 작렬하고 불기운이 괴물들을 휘감았다. 그때 시스턴과 라일라, 루미나는 보았다. 수많은 괴물들 사이에서 악귀처럼 싸우고 있는 에반스를 말이다.
에반스는 검도 없이 두 손에 돌멩이만 들고서도 괴물들과 잘 싸우고 있었다. 에반스의 돌멩이를 쥔 주먹에 머리를 맞은 괴물은 머리통이 터져 나갔고 몸통을 맞은 녀석은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 모습에 일행은 떡하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안드레이 공작이 시전한 화염 마법 덕분에 장내는 환했다.
에반스를 덮치는 2-3미터 정도 되는 괴물들을 에반스는 닥치는 대로 죽였다. 몸들은 악어 머리를 하고 있으면서도 튼튼한 두 다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손도 길고 손톱도 날카로웠다.
그래서 놈들은 에반스를 향해 손톱을 휘두르며 언제든 기회가 되면 입을 ‘쩌억’ 벌리고 에반스를 향해 덤벼들었다.
다행히 루크와 안드레이 공작의 마법 공격이 주효해서 수백 마리의 녀석들이 한 번에 떼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에반스도 한결 여유 있게 놈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놈들이 끝이 아니었다.
크르르륵!
누런 가래 같은 침을 뚝뚝 떨어뜨리는데 도마뱀의 머리를 한 괴물들이 나타났다. 놈들의 피에 젖은 날카로운 이빨은 위아래 모두 두 개 열로 솟아 있어 거기에 걸리면 쇳덩이도 찢어질 것처럼 보인다.
시뻘겋고 동그란 눈은 번뜩거리며 수백 마리의 놈들이 에반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때 안드레이 공작과 루크도 다시 마법 캐스팅을 끝낸 뒤였다.
“썬더 볼트!”
“기가 파이어!”
파지지직!
화르르르!
앞서 악어 괴물과 같이 도마뱀 괴물들에게 뇌전의 기운과 뜨거운 불길이 휘감겼다. 그러자 놈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그러자 암흑 속에서 두 눈에 붉은 광망을 뿜어내며 악마의 현신인 양 에반스가 날뛰었다.
하지만 괴물은 끝이 없었다. 이번에는 사자의 머리를 한 괴물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뒤에는 독수리의 머리를 한 괴물, 또 쥐의 머리를 한 괴물…….
괴물은 끝없이 달려드는데 인간인 에반스와 그 일행은 한계가 있었다. 마나가 완전히 고갈된 안드레이 공작과 루크는 더 이상 후방 지원을 해 주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에반스 혼자서 괴물들을 상대했다.
에반스도 사람이기 때문에 지쳤다. 하지만 그의 품속에 있는 마나 스톤이 그의 피로를 풀어 주어 그는 근근이 괴물들과 싸웠다. 하지만 그런 에반스도 점차 한계에 이르렀다.
스윽!
“크윽!”
괴물의 날카로운 손톱이 에반스의 등을 할퀴었다. 피가 튀고 에반스의 입에서 절로 비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스승님!”
그 모습을 보고 루미나가 에반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루미나!”
그러자 라일라와 시스턴이 놀라 루미나를 보호하기 위해 뛰었다. 에반스의 허벅지를 괴물이 덥석 물었다. 하지만 에반스는 그쪽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표범 머리를 한 괴물이 그의 목을 물려고 덤벼들었던 것이다.
에반스는 주먹을 휘둘러 그 표범 머리의 괴물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그때였다.
퍽!
“떨어져!”
루미나가 돌멩이를 쥔 주먹으로 에반스의 허벅지를 문 괴물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런 루미나를 주위 괴물들이 공격했는데 그때 라일라와 시스턴이 나타나서 루미나를 구했다.
에반스와 루미나, 라일라와 시스턴은 서로 등을 기대고 빙 둘러섰다. 그들을 포위한 괴물들이 입에서 누런 침을 질질 흘리며 그들을 쏘아보았다.
“헉헉! 왜 왔어?”
에반스의 물음에 루미나가 바로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죽을 땐 같이 죽어야죠.”
당돌한 루미나의 말에 에반스의 입에서 절로 미소가 어렸다. 그때 포션과 마나 로테이션으로 억지로 끌어모은 마나까지 모두 소진한 채 더 이상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 어려워진 안드레이 공작과 루크도 비장하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바닥에서 돌멩이를 주워서 에반스와 나머지 일행들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이야앗!”
안드레이 공작과 루크는 마구잡이로 두 팔을 휘두르며 괴물들을 포위망을 뚫고 에반스와 루미나, 라일라, 시스턴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괴물들이 사정을 봐준 것인지 안드레이 공작과 루크는 무사히 나머지 일행과 합류 할 수 있었다.
“잘 왔어요.”
루미나가 안드레이 공작과 루크를 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크르르르!
하지만 상황은 좋지 못했다. 바로 그때 안드레이 공작이 자신의 발 아래서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앞서 원형 공중 광장의 원의 중심에서 본 금판과 비슷했다. 안드레이 공작이 손으로 그 금판을 닦자 그 금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뭐, 뭡니까?”
루크가 놀라하며 안드레이 공작을 쳐다보자 안드레이 공작이 금판에 생겨난 글을 보고 외쳤다.
“비로소 하나가 되다.”
그때 거짓말처럼 에반스 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괴물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을 앞두고 서로 하나가 된 너희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가라. 이제 마지막 관문이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안드레이 공작이 발견한 금판에서부터 시작해서 바닥에서 빛나는 점들이 생겨났다.
그 점들은 하나의 기다란 선이 되어 에반스 일행에게 다음 관문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에반스와 일행들은 서로에 의지해서 그 빛나는 점들을 따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