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4 윈스트런의 후계자Ⅰ (54/90)

Chapter 4   윈스트런의 후계자Ⅰ

어둠은 우순바에게 있어서 힘의 원천이었다. 어디든 어둠만 있다면 우순바는 마력을 만들어 냈다. 어둠의 주술사가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경지는 자신의 몸을 버리고 어둠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순바도 어느새 성큼 그 경지에 근접한 셈이었다. 그 경지에 오른 유일한 인간이 바로 대주술사 윈스트런이었다.

우순바도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 경지는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그가 막상 손을 내밀면 저 멀리 멀어졌다.

그래서 우순바가 선택한 것이 바로 윈스트런의 영혼의 그릇, 소울 베슬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윈스트런의 도움을 받아서 그 경지에 오를 생각이었던 것이다.

우순바는 윈스트런의 제자들이 왜 그리 윈스트런의 소울 베슬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으며 결국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 가면서까지 그것에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그랬다. 그들 역시 우순바처럼 어둠의 주술사가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경지에 오르고 싶었던 것이다. 윈스트런에 이어서 대주술사로서 세상을 지배하고 싶었던 것이다. 신마저 무시했다던 그 절대적인 힘의 주인 윈스트런의 후계자가 되고자 한 것이다.

“라드디 마르산 루시아 베르도…….”

나지막한 주술의 주문이 석실 내를 공명했다. 석실은 넓어서 그의 주문의 반향이 한참 지난 뒤 일어났다.

검은 로브에 후드를 뒤집어 쓴 우순바는 기대에 찬 눈으로 어둠을 주시했다. 그의 몸 주위에는 검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검은 기운은 바로 어둠에 잠식되었다.

우우우우웅!

보이지는 않지만 우순바의 몸 주위에는 엄청난 미증유의 힘이 일렁이고 있었다. 폭발할 듯 거세게 움직이던 그 미증유의 힘, 즉 어둠의 파동이 조금씩 가라앉자, 우순바의 입에서 다시 주술의 주문이 흘러나왔다.

“라하다 딘.”

벌써 몇 차례에 걸쳐서 똑같은 실패를 반복해 오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우순바는 긴박하게 움직이던 어둠의 기운이 점차 수그러들면서 점차 규칙적으로 변해 가자 긴장감을 풀었다. 일단 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고비를 넘어야 할지 모르지만 일단 순조롭게 출발을 한 것이다.

보통 한 번 이 일을 시작하면 짧아도 닷새, 길면 보름 가까이 어둠의 기운과 싸워야 했다. 어둠의 기운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어둠의 주술사는 먼저 어둠을 굴복시켜야 했다. 하지만 어둠은 거대하고 강한 상대였다.

결코 굴복할 것 같지 않은 어둠의 힘 앞에 우순바는 이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무릎을 꿇었다. 이번 역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지. 아니야. 나약한 생각은 금물이다.’

로브의 소맷자락으로 이마에 구르는 땀방울을 닦아 내며 우순바가 머리를 내저었다. 어둠은 싸움에서만큼은 자비로웠다. 언제든 덤벼도 상대해 주고 또 멈추면 쉴 수 있게 배려를 했다.

하지만 우순바가 쉬면 쉴수록 어둠 역시 더 강해졌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순바는 인간이었다. 싸우기 위해서 휴식도 취하고 마력도 보충해야 했다. 너무 마력의 소모가 심하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어둠에 굴복할지 몰랐다.

우순바의 입이 달싹거렸다. 그러자 그의 몸을 검은 연기가 휘감았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석실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그의 몸 주위를 휘감아 돌던 미증유의 힘들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우순바는 랄트족 어둠의 주술사들의 아지트인 동굴 가장 안쪽에 마련된 자신의 방에서 쉽사리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어둠과 싸우느라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몸은 천근처럼 무거웠지만 예민해진 머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릴 뿐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억지로 몸을 침상에 눕힌 우순바가 맨손으로 얼굴을 문지르자 꺼끌꺼끌한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한참 동안 면도를 하지 않은 탓에 꽤나 수염이 자란 모양이었다. 순간 우순바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순바는 항상 검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쓰고 있었지만 더러운 것은 보지 못하는 결벽증이 있었다. 자신의 얼굴에 수염이 자라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의 결벽증이 나타났다.

우순바는 천근처럼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거울 앞에 다가와 앉았다. 긴 시간 햇볕을 쪼이지 않아 창백해진 얼굴 사이로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이 그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

우순바는 서둘러 면도칼로 수염을 깎았다.

사각사각!

잠시 후 깨끗해진 얼굴의 우순바가 거울에 비춰졌다. 그제야 우순바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우순바는 억지로 주술로 자신을 잠재웠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가 몸이 한결 가벼워진 우순바는 다시 어둠 속 그 석실로 향했다. 그에게는 어느새 또 어둠과 싸우기 위한 투지가 샘솟아 있었다.

어둠과의 지루한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우순바는 자신의 몸속의 마력이 눈에 띄게 안정된 것에 고무되어 이번에는 어둠과의 싸움에 승산이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꿀꺽, 우순바의 입에서 마른침이 넘어갔다.

‘침착해라. 우순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몇 번을 중얼거리던 우순바가 조심스럽게 어둠을 자극했다. 그러자 어둠이 맹렬히 반응을 보였다.

우우우우웅!

그리고 거칠게 우순바를 압박했다. 본격적으로 다시 어둠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어둠의 힘이 격렬해지자 우순바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어렸다. 벌써 몇 번이나 이 단계에서 어둠에 무릎을 꿇었던가?

다행스럽게도 우순바의 체내 마력은 어둠의 힘에 맞서 잘 견뎌 주었다.

‘좀 더, 그래 조금만 더.’

우순바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온통 진땀으로 덮여 있었다. 어둠의 힘이 정점에 이르자 우순바도 마지막으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어둠의 힘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우순바는 더 버티지 못하고 몸을 축 늘어트렸다.

‘틀렸다.’

우순바는 또 실패했음을 직감했다. 어둠의 힘에 또다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역시 윈스트런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 어둠을 굴복시킬 수 없는 것인가?’

우순바는 다시 한 번 거대한 어둠의 힘 앞에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실감했다. 그리고 윈스트런의 소울 베슬을 반드시 차지해서 당당히 어둠을 굴복시키고 세상을 지배해야겠다는 욕망이 더 강하게 일었다.

“윽!”

그때 갑자기 우순바가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구르탄!”

우순바의 입에서 그의 다섯 제자 중 하나인 구르탄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우순바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크윽!”

우순바가 다시 괴로운 듯 가슴을 움켜쥐었다.

“맙소사. 크로아. 너마저…….”

우순바는 자신의 제자인 구르탄에 이어서 크로아까지 죽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순바와 그의 다섯 제자는 서로 영혼이 이어져 있었고 그들의 영혼이 끊어질 때마다 우순바는 마치 가슴이 꿰뚫리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우순바는 자신이 어둠의 힘 앞에 굴복한 것보다 아끼던 두 제자를 잃은 것이 더 가슴 아팠다. 더불어 루브카에 이어서 구르탄과 크로아의 목숨을 뺏어 간 자들에 대한 그의 원한은 더욱 커졌다.

“이놈들…….”

바우우웅!

어둠의 힘과 싸우느라 기력을 소비한 우순바였지만 그가 화를 내자 엄청난 마력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쿠쿠쿠쿵!

그러자 그 힘의 영향으로 랄트족 어둠의 주술사들의 아지트인 동굴이 심하게 진동했다.

스르르르!

그때 두 명의 검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쓴 자들이 우순바 앞에 나타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스승님?”

“진정하십시오.”

그들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우순바를 향해 외쳤다.

“필로타, 로콘스!”

두 검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쓴 자들을 보고 우순바가 소리쳤다.

“네. 스승님. 저희들입니다. 그러니 일단 고정하십시오.”

“네. 왜 화가 나셨는지 그 이유를 저희들에게 말씀하십시오.”

그들의 말에 우순바는 화를 누그러트렸다. 그러자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던 동굴이 점차 요동을 멈췄다. 그때 격분한 듯 우순바가 두 검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쓴 자들에게 외쳤다.

“루브카에 이어서 구르탄과 크로아가 놈들에게 당했다.”

우순바의 말에 두 검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쓴 자들이 동시에 움찔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좀 더 상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그들의 말에 우순바는 루브카의 죽음에 이어서 구르탄과 크로아를 루브카를 죽인 자들에게 보낸 사실을 둘에게 얘기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희는 몰랐습니다.”

“왜 저희에게는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너희들까지 나설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저희가 나서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놈들을 잡아 오겠습니다.”

두 검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쓴 자들의 말에 우순바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검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쓴 자들은 우순바가 가장 아끼는 다섯 제자 중 나머지 두 명이었던 것이다.

그 둘은 필로타와 로콘스로 불리지만 우순바는 그들을 주로 쌍둥이로 불렀다. 실제 필로타와 로콘스는 쌍둥이였다.

“너희 쌍둥이가 나서 준다면 나야 안심이지.”

크로아와 달리 우순바는 쌍둥이가 나서자 훨씬 믿음직스러워했다. 개개인의 능력으로 따지면 필로타와 로콘스는 크로아나 구르탄보다 마력도 약하고 변신술이나 소환술 실력도 떨어졌다.

하지만 그 둘이 합치면 얘기는 달라졌다. 크로아와 구르탄이 합쳐서 2의 힘을 발휘한다면, 쌍둥이인 필로타와 로콘스가 합치면 4의 힘을 발휘했다. 우순바도 쌍둥이의 진정한 힘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우순바보다는 못하더라도 그 둘이라면 그 어떤 인간 마도사나 소드 마스터도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었다.

“그놈들은 어디 있습니까?”

“위치만 알려 주십시오.”

쌍둥이의 말에 우순바는 크로아가 마지막으로 연락한 위치를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놈들은 동굴 지대에 있다.”

“동굴 지대라면 윈스트런 님의 무덤이 있는 곳이 아닙니까?”

“혹시 놈들이 윈스트런 님의 무덤을 찾고 있는 것 아닐까요?”

쌍둥이들의 말을 듣고 보니 조금 이상했다. 게다가 내일이면 윈스트런이 죽은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순바는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이 윈스트런 님에 대해 알 리 없다. 너흰 어서 놈들을 잡아서 내게 연락하여라. 그럼 내가 바로 그곳으로 가도록 하마.”

우순바는 쌍둥이가 그들을 잡으면 그곳으로 직접 가서 검을 찾은 후, 윈스트런의 무덤을 열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쌍둥이가 검은 연기로 화해 사라졌다. 우순바는 그들만큼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만큼 쌍둥이는 강했던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검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쓴 자들이 동굴 지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어둠의 주술사 필로타가 주술을 외자 어둠속에서 박쥐들이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인간들이 있는 동굴이 어디지?”

필로타가 묻자 박쥐 중 몇 마리가 찍찍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듣고 필로타는 에반스 일행이 있는 동굴을 파악해 냈다.

“저기다.”

필로타가 손짓을 하자 로콘스가 먼저 그쪽으로 움직였다. 이때 에반스 일행들은 피곤해서 거의 실신한 듯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동굴 입구에서 에반스가 지키고 있었다.

마나 스톤 덕분에 에반스는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제에 이어서 연이어 에반스가 불침번을 섰다.

“응?”

에반스는 뭔가가 동굴 쪽으로 접근해 오자 몸을 일으켜서 동굴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잠시 후 두 어둠의 주술사가 에반스의 눈앞에 나타났다.

“너희들이냐?”

“구르탄과 크로아를 죽인 놈들이?”

에반스는 연달아 이어서 말을 하는 두 어둠의 주술사를 보고 태연하게 말했다.

“이름이 구르탄과 크로아인 것은 모르겠고 두 시커먼 놈들을 죽인 건 사실이다.”

에반스의 말에 두 어둠의 주술사가 발끈했다.

“뭐? 시커먼 놈들?”

“저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군.”

에반스는 일단 계속 품속에 마나 스톤을 지니고 있었다. 혹시 놈들의 뒤에 누가 있을지 몰랐던 것이다. 에반스가 주술사와 천적이란 것이 밝혀지면 자칫 뒤에 있던 놈들이 달아나 버릴 수 있었다.

에반스는 우순바라는 어둠의 주술사들의 우두머리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능력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우순바가 보내서 왔나? 그런데 그놈은 왜 안 나타나고 계속 똘마니들만 보내는 거야?”

“또, 똘마니?”

“저 찢어 죽일 새끼가…….”

에반스가 도발하자 두 어둠의 주술사는 완전히 흥분했다. 하지만 그들 뒤쪽에서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시끄럽게 굴 것 없다. 살고 싶거든 썩 꺼져. 그리고 우순바에게 전해. 우리에게 볼일이 있거든 직접 오라고 말이야.”

“미친 새끼. 뒈져!”

결국 참지 못한 필로타와 로콘스가 에반스를 향해 마력을 쏘았다. 에반스는 그들이 쏜 마력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검으로 재빨리 오러 블레이드 방패를 만들어서 그들의 공격을 그대로 막아 냈다.

콰콰콰쾅!

마력은 강했고 폭발은 거셌지만 에반스는 그들의 공격을 간단히 막아 냈다. 에반스가 둘이 쏘아 낸 마력을 혼자서 다 막아 내는 것을 보고 피로타와 로콘스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둘은 바로 손을 잡았다. 둘이 힘을 합치면 마력은 4배로 증강했다. 그 힘은 우순바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그 둘은 운이 나빴다. 하필 상대가 주술사와는 천적인 에반스였으니 말이다. 에반스는 둘이 손을 잡자 그들의 마력이 갑자기 증대하는 것을 보고 품속에 지니고 있던 마나 스톤을 빼내서 동굴 옆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두 어둠의 주술사 앞으로 나섰다.

“헉!”

“뭐, 뭐야?”

피로타와 로콘스는 손을 맞잡자 솟구쳐 오르던 마력이 갑자기 사라지자 경악했다. 그때 그런 그들 앞에 에반스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우, 우리에게.”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둘이 연이서 말을 연결시키는 것이 신기했던 에반스가 그들이 덮어 쓰고 있던 후드를 벗겼다. 그러자 중년의 거울을 보듯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들 쌍둥이였냐?”

그래서 말하는 것도 그렇고 둘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던 모양이었다. 다행이라면 둘 다 독에는 능하지 못했다. 마력이 바닥이 난 둘은 에반스 앞에 보통 사람에 불과했다.

“죽어!”

“뒈져!”

그래도 성깔은 있는지 둘이 한꺼번에 에반스에게 덤볐다. 보통 사람이 소드 마스터인 에반스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악착같이 에반스에게 덤볐다.

에반스는 둘을 사로잡아서 우순바가 있는 곳을 밝혀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은 접었다. 어둠의 주술사들은 에반스에게는 아니지만 다른 일행들에게는 너무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그들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을 잃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이놈들을 죽이고 나면 우순바 그자가 올 텐데 내가 뭐 하러 먼저 그자를 찾아간단 말인가?’

에반스는 술래잡기를 하듯 자신을 잡으려 달려드는 두 어둠의 주술사를 가볍게 피하며 생각했다.

“헉헉. 로콘스. 이쪽으로 몰아.”

놈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맨몸으로 덤벼서 에반스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에반스는 자신을 무슨 가축 몰듯 두 팔을 벌리고 몰려는 어둠의 주술사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한 손을 쭉 내밀었다.

퍽!

“컥!”

에반스의 주먹에 안면을 얻어맞은 어둠의 주술사가 비명과 함께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런 그의 코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것도 한 쪽도 아닌 두 쪽에서 말이다.

“이이. 저 새끼가…….”

쌍코피가 터진 로콘스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미친 듯 괴성을 지르며 에반스에게 달려들었다. 에반스는 미친 들소처럼 달려드는 로콘스를 옆으로 피하며 슬쩍 다리를 내밀었다.

턱!

“헉!”

에반스의 다리에 걸려 중심이 무너진 로콘스의 몸이 허공으로 ‘부웅’ 떴다가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철퍼덕!

“로콘스!”

그때 쌍둥이 필로타가 자신의 발 아래 엎어진 로콘스를 일으켜 세웠다.

“이런 빌어먹을. 우리가 어쩌다가…….”

주술사인 그들은 주술은 전혀 사용하지 못한 채 맨몸으로 에반스를 상대해야 하는 현실이 왠지 처량했다.

하지만 지금은 싸우는 중이었다. 그것도 서로 목숨을 내놓고 말이다. 자칫 방심하는 순간 목숨을 잃을지 몰랐다.

그것을 일깨워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쌍둥이가 덤비지 않자 에반스가 달려들었다. 로콘스를 부축한 채 멍하니 서 있던 필로타의 배에 에반스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일부러 마나는 싣지 않았지만 소드 마스터인 에반스의 주먹을 보통 사람인 필로타로서는 감당해 낼 수 없었다.

퍽!

“커억!”

필로타의 몸이 충격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그대로 수직으로 꺾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에반스의 무릎이 필로타의 턱을 강하게 걷어찼다.

빠각!

턱이 부서지고 필로타의 몸이 허공으로 쑤욱 솟구쳤다가 맥없이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털썩!

이미 턱이 부셔질 때 필로타는 기절한 뒤였다.

“필로타!”

자신을 부축했다가 쓰러진 필로타를 보고 로콘스가 소리쳤다. 그때 에반스가 로콘스를 보고 싸늘하게 말했다.

“그동안 네놈들에게 죽어간 많은 생명체들을 대신해서 내가 너희들의 목숨을 거둬 주마.”

에반스의 죽이겠다는 사형 선고에 로콘스의 얼굴이 겁에 질려 창백하게 변했다. 도대체 왜 마력이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쌍둥이가 힘을 합치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에반스가 말한 대로 그들은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을 죽였다.

로콘스는 자신이 죽인 생명체들이 죽이기 전 보였던 그 살려 달란 애절한 눈빛으로 에반스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에반스가 로콘스에게 준 것은 주먹이었다.

퍽!

에반스의 주먹이 로콘스의 안면을 때렸다.

우두둑!

앞서와 달리 주먹이 힘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코피가 아닌 코뼈가 주저앉았다.

“크윽!”

내려앉은 코를 잡고 로콘스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하지만 로콘스의 엉덩이가 땅에 닿기 전에 에반스의 발이 녀석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퍽!

에반스가 작정을 하고 강하게 걷어찼기 때문에 로콘스의 갈비뼈가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 뼈들이 로콘스의 내부 장기에 박혔다.

“우욱!”

로콘스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때 에반스가 쓰러져 있던 필로타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멱살을 잡지 않은 남은 한 손으로 필로타의 턱을 손으로 잡았다. 그것을 보고 로콘스가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안 돼!”

하지만 에반스는 무정하게 필로타가 잡고 있던 턱을 옆으로 강하게 틀었다.

빠각!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필로타의 머리가 등 뒤로 돌아갔다. 필로타의 몸이 퍼떡였지만 에반스는 볼일을 다 끝냈다는 듯 잡고 있던 필로타의 멱살을 놓았다.

털썩!

“이 새끼…….”

입에서 피를 주르르 흘리면서 로콘스가 악에 받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에반스를 향해 걸었다. 하지만 에반스와 불과 두 걸음을 앞에 두고 로콘스는 쓰러졌다.

털썩!

부러진 갈비뼈에 찔린 장기들이 로콘스가 무리해서 움직이면서 더 크게 상처가 났고 결국 그것이 로콘스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자신의 발 앞에 엎어져서 숨이 끊긴 로콘스를 무심히 내려다보며 에반스가 말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다.”

그렇게 말 한 후 에반스는 동굴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날이 밝자 에반스의 일행들도 하나둘씩 깨어났다. 그리고 에반스가 그들을 위해 어제에 이어 불침번을 섰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때 동굴 밖으로 가장 먼저 나섰던 라일라가 처참히 죽어 있는 두 주술사의 시체를 보고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일행에게 얘기하자 안드레이 공작과 루크가 동굴 밖으로 나가서 시신을 확인했다.

“또 그놈들이군.”

검은 로브만 보고도 안드레이 공작은 두 시신이 어둠의 주술사들임을 알아봤다.

“도대체 놈들은 얼마나 많은 걸까요?”

루크의 질문에 안드레이 공작이 바로 대답했다.

“다른 놈은 몰라도 우순바란 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처단하고 말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은 자신의 제자를 죽인 것으로 알고 있는 우순바를 죽이기 전에는 파르미르 고원을 떠나지 않을 각오였다.

“자. 어서들 식사하세요.”

그때 동굴 안에서 라일라가 소리쳤다. 시스턴이 일어나자마자 식사를 준비했고 당장 물을 구할 수 없어서 루크가 일행의 얼굴과 손을 마법으로 씻겨 주었다. 그렇게 서둘러 아침을 먹은 뒤 에반스 일행은 어제처럼 윈스트런의 무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라일라와 루미나의 안전을 고려해서 그녀들을 동굴에 남겨 두지 않고, 에반스가 루미나를 데려가고 안드레이 공작이 라일라를 데려갔다.

“점심은 각자 해결하도록 하지요.”

어제 윈스트런의 무덤을 찾지 못한 터라 에반스는 오늘은 총력을 기울여서 윈스트런의 무덤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런 에반스의 의중을 읽고 안드레이 공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

안드레이 공작이 에반스의 제의를 승낙하자 에반스가 먼저 루크와 루미나를 데리고 움직였다. 그 뒤 안드레이 공작도 시스턴과 라일라를 데리고 어제 탐사하던 동굴 쪽으로 이동했다.

어제 동안 에반스 일행은 모두 48군데의 동굴을 뒤졌다. 어둠의 주술사들의 방해만 없었어도 더 많은 동굴 탐사가 가능했고 그중에 윈스트런의 무덤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에반스 일행이 머물고 있는 동굴에서 반나절 거리 안에 있는 80여 곳의 무덤 중 그 절반 이상을 뒤졌기 때문에 곧 윈스트런의 무덤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았다.

에반스는 긴장한 채 아직 탐사하지 않은 동굴 내부로 들어갔다. 에반스는 윈스트런의 무덤 가까이 가면 윈스트런이 자신을 찾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윈스트런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안에 생명체는……. 으음, 제법 큰 동굴 몬스터 세 마리가 있군요.”

마법으로 안을 탐색한 후 루크가 말했다. 하지만 에반스도 루크도 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캐애애액!”

잠시 뒤 동굴 안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얼마간 잠잠했다가 다시 괴성이 울렸다. 그렇게 30분 뒤 에반스와 루크, 그리고 루미나가 동굴 밖으로 나왔다. 동굴 안에서 윈스트런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정오까지 에반스 일행은 열심히 동굴을 뒤졌다. 그러다가 에반스와 루크, 루미나와 안드레이 공작과 시스턴, 라일라가 같이 동굴에서 나와 서로 마주쳤다.

“후우. 이제 이 근처에서 동굴은 저 두 군데뿐이다.”

그 뒤쪽으로는 능선을 하나 더 넘어야 했으므로 죽은 안드레이 공작의 제자가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안드레이 공작의 생각이었다. 때문에 남은 두 곳의 동굴 중 하나가 윈스트런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았다.

“가죠.”

에반스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둘 중 하나라면 더 시간 끌 것도 없었다.

에반스가 먼저 앞장서서 두 동굴 중 한 곳에 들어갔다. 그러자 그 뒤를 루크와 루미나가 뒤쫓았고 안드레이 공작과 시스턴, 라일라는 그 반대편 마지막 남은 동굴로 들어갔다.

우순바는 자정이 훌쩍 넘어 떠난 쌍둥이 필로타와 로콘스라면 루브카와 구르탄, 크로아를 죽인 놈들을 잡을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연락이 오면 곧장 동굴 지대로 떠날 준비를 했다. 특히 내일은 윈스트런이 죽은 날로 무덤의 열쇠인 검으로 유일하게 무덤을 열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새벽이 다 되어 갈 무렵 우순바는 필로타와 로콘스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쌍둥이한테서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초조하게 기다리던 우순바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크윽!”

그리고 우순바가 고통스러워하면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필로타!”

우순바는 필로타의 죽음에 경악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잠시 후 우순바가 절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로콘스!”

쌍둥이가 모두 죽은 것이다. 마력에서 둘이 합치면 거의 적수가 없는 그 쌍둥이 필로타와 로콘스가 말이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도대체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기에…….”

지금까지 에반스 일행을 경시하고 있었던 우순바는 다섯 제자를 모두 잃고 나서 에반스 일행에 대해 경각심이 일었다. 그리고 도대체 그들이 누군지 의구심이 들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결코 우순바가 자랑하는 다섯 제자를 다 죽일 수는 없었다.

“…….”

석실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우순바는 더 이상 화를 낼 기력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끼던 다섯 제자들의 복수와 윈스트런의 무덤을 열기 위해서 이제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을 잘 알았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우순바의 부름에 석실 문이 열리고 두 명의 검은 로브에 후드를 덮어쓴 자들이 나타났다.

“찾으셨습니까?”

그들은 우순바의 일반 제자들이었다. 다섯 제자들과 달리 그들은 모두 우순바에 의해 금제가 되어 있었다. 우순바의 일반 제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쓸 만한 제자는 몇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최강이었던 다섯 제자들로도 상대가 되지 않는 자들이었다. 괜히 일반 제자들은 데려가 봐야 거치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우순바는 그냥 혼자가기로 했다.

우순바는 만약을 대비해서 자신이 만든 독 하나와 자신의 자식과 마찬가지인, 마계 괴수를 교잡시켜 탄생시킨 케스피를 소환 대상 1호로 삼았다. 즉 우순바가 소환술을 펼치는 순간 케스피가 소환되어 그의 눈앞에 나타날 터였다.

케스피는 얼마나 강한지 아직 정확히 검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순바는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케스피가 마계로 가게 되면 마계가 발칵 뒤집어질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독과 케스피를 챙긴 뒤 우순바는 랄트족 어둠의 주술사들의 소굴인 동굴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랄트족 어둠의 주술사들이 차지한 동굴은 파르미르 고원에서도 가장 큰 동굴이었다. 그 동굴 안은 엄청나게 넓었다.

그 동굴에서 어둠의 주술사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동굴 안쪽은 어둠의 주술사들에 의해 동굴 내부로 내몰린 동굴 몬스터들이 차지하고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더 안쪽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살았다. 자연스럽게 동굴 몬스터들이 죽으면 언데드 몬스터가 되었다.

그 언데드 몬스터들을 이끄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데스 나이트였다. 데스 나이트의 이름은 콴으로, 우순바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어렵사리 지상에 데려온 존재였다.

데스 나이트는 강하기로는 전설의 드래곤에 못지않다고 알려져 있었고 영원에 가까운 긴 세월을 살 수 있었다. 원래는 케스피를 교잡해 내는 데 성공하기 전까지 우순바가 가장 아끼던 존재는 바로 데스 나이트 콴이었다.

우순바는 동굴 몬스터들이 사는 동굴을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갔다. 우순바의 몸에서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느끼고도 그를 잡아먹겠다고 덤비는 미친 동굴 몬스터는 없었다.

콴이 살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의 거주지에 가까워질수록 우순바는 어둠의 기운이 몸을 강하게 옭죄어 오는 것을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콴이 내뿜는 어둠의 기움을 느끼자 우순바는 본능적으로 그쪽을 향해 걸었다. 어떤 존재가 동굴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 갑옷에 싸여 있는 존재. 바로 데스 나이트였다.

-어떻게 왔는가? 나의 로드여.

탁한 음성이 허공에서 울리는 것처럼 우순바의 귀로 공기를 타고 스산하게 울렸다. 일체 생명의 감정이 없는 죽음의 데스 나이트답게 언제나 콴의 음성은 높낮이의 변화가 없이 음산했다.

“나와 같이 가 줘야겠다.”

우순바의 말에 데스 나이트의 투구 사이로 붉은 빛이 번뜩였다. 순간 데스 나이트 콴이 움직였다. 콴은 선 채로 그대로 날아서 우순바 앞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외출이군. 로드여.

콴의 말에 우순바는 속으로 뜨끔했다. 케스피 때문에 콴을 동굴 안쪽에 처박아 둔 지도 10년이 넘었던 것이다. 그동안 데스 나이트 콴은 바깥 공기도 쐬지 못한 것이다.

“미안하다. 콴. 하지만 지금 나가면 피에 흠뻑 취하게 해 주마.”

-그거 기대되는군.

음산한 데스 나이트 콴의 말을 뒤로하고 우순바가 다시 동굴 바깥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무릎을 굽히지도 않고, 꼿꼿이 선 자세로 데스 나이트 콴이 허공에 둥둥 뜬 채, 우순바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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