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2 용병대장 시스턴 (42/90)

Chapter 2   용병대장 시스턴

데보라가 술집에 들어섰을 때는 술집 주인과 종업원이 막 대자로 뻗은 마틴을 밖으로 끌어내고 있을 때였다.

문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데보라에게 집중되었다.

“오!”

그 중 몇 명은 데보라를 보고 놀라 탄성까지 내질렀다.

짙은 금발의 미녀.

거기에 날렵하면서도 매끄러운 몸 라인이 한눈에 들어나는, 딱 달라붙는 가죽 슈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꿀꺽.

술집 안 여기저기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노골적인 소리에 데보라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에반스와 그 일행을 발견하자 이내 그녀의 얼굴도 환하게 밝아졌다.

데보라는 술집 안쪽, 에반스 일행이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새로 들어온 미녀가 성질 더럽고 무서운 여자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자 급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서둘러 시선을 거둔 사람들은 각자의 일행과 자신이 들고 있는 술잔으로 관심을 돌렸다.

테이블로 다가간 데보라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여기 계셨군요.”

“아! 데보라 양!”

루크가 반가운 얼굴로 데보라를 맞았다. 살짝 손을 들어 인사한 데보라가 싱긋 웃으며 안드레이 공작 옆으로 다가갔다.

“앙리, 여기 있었구나?”

갑작스런 데보라의 등장에 안드레이 공작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색을 바꾸고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서 와요. 데보라 누나.”

“어머, 누나라니? 너하고 몇 살 차이가 난다고……. 호호호!”

데보라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슬쩍 에반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에반스가 데보라를 향해 말했다.

“여기 맥주가 유명하다는데, 한잔 하시겠습니까?”

“전 술은 잘…….”

데보라가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내젓자 그 모습을 보고 라일라가 투덜댔다.

“어제는 잘만 칼질해대더니 내숭은…….”

“뭐, 뭐라고?”

한 성격하는 데보라가 라일라의 말을 듣고 가만있을 리 없었다. 그때 루크가 나섰다.

“하하하, 저에게 한 말입니다. 어제 제가 라일라에게 좀 짓궂게 장난을 쳤거든요.”

그렇게 말한 루크가 라일라를 쏘아보았다. 에반스와 안드레이 공작을 화해시키기 위한 자리인데 데보라와 라일라까지 다투게 된다면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가 무색해 질 터였다.

라일라도 취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루크가 자신을 쏘아보자 알았다며 한 손을 들어 보였다.

라일라가 꼬리를 내리자 데보라도 더 이상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때 또 다른 손님이 나타났다.

데보라가 술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 술집 안으로 들어선 테이거였다.

“데보라, 여기서 뭐하는 거야?”

데보라와 테이거는 동갑으로, 다섯 귀족 일행 중 그나마 친한 편에 속하는 사이였다.

“…….”

테이거의 등장에 에반스 일행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무겁게 바뀌었다.

데보라와 달리 네 명의 젊은 남자 귀족들은 에반스에 대해 그리 호의적인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에반스의 수하인 루크와 라일라 역시 그들이 부담스러웠다. 더욱이 상대는 소드 마스터가 아니던가?

잠시 테이블에 적막이 감돌았다. 데보라는 테이거가 나타나면서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우중충해지자 얼굴을 찌푸렸다.

‘저 자식은 왜 따라와서는…….’

데보라는 에반스가 마음에 들었고, 가능한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에반스에게 접근을 시도한 것인데, 눈치 없는 테이거가 따라와서 초를 친 것이다.

“테이거 형. 이쪽으로 와요.”

“어어, 그래.”

그나마 테이거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눴던 안드레이 공작이 나서자 겨우 어색한 분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테이거도 그냥 데보라를 따라 술집 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으로 인해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무안한 얼굴이었다.

“여기 맥주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한잔 어때요?”

“아 네. 한잔하지요.”

에반스의 말에 테이거가 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라일라가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맥주 여섯 잔!”

쾅!

그때, 술집 문이 거칠게 열리고 용병 여덟 명이 우르르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떤 년이야! 어떤 년이 마틴을 이 꼴로 만들었어!”

그들 맨 앞에는 두 명의 용병이 조금 전 라일라에게 쓰러졌던 용병, 마틴을 부축하고 있었다.

“…….”

안 그래도 데보라가 에반스에게 꼬리 치는 것이 눈꼴사나웠던 라일라는, 자신이 주문을 할 때 용병들이 술집 안으로 들어서며 시끄럽게 방해하자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더 짜증나는 것은 좀 전, 자신이 한 방에 보내 버린 그 용병까지 데리고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이것들이…….”

꼭지가 돌아 버린 라일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씩씩대며 용병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까지 용병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른 채,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여자를 보고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용병들도 눈치는 있었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아서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대충 대여섯 테이블에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술집 분위기가 조금 묘했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좋은 구경거리기 때문에 술집 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 술만 마시고 있었다.

‘우리가 무서워서인가?’

용병들은 이 마을 사람들이 상당히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라일라가 용병들 앞에 섰다.

“자. 그년이 왔다. 어쩔 테냐?”

라일라가 팔짱을 끼고 대놓고 시비조로 건들거리며 말했다. 그런 라일라의 말과 행동에 용병들은 기가 막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뭐 이런 겁대가리 상실한 년이 다 있어?”

“허어, 거 참……. 세상 많이 좋아졌군. 어디서 미친년이…… 컥!”

맨 앞에서 마틴을 부축하고 있던 두 명의 용병들이 각자 한 마디씩 내뱉을 때, 라일라가 자신을 보고 미친년이라고 한 용병의 얼굴에 가볍게 주먹을 내밀었다.

별로 세게 친 것 같지 않았지만 맞은 용병은 달랐다. 눈앞에 별이 반짝이고 코에서는 두 줄기 핏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런 처 죽일…….”

함께 마틴을 부축하고 있던 다른 용병이 부축을 풀고 라일라를 향해 덮치려고 할 때였다.

퍽!

라일라의 발이 그 용병의 사타구니 사이를 파고들었다.

“허…… 어억……!”

펄쩍 위로 솟구쳤던 용병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입에서 게거품을 게워 냈다. 두 명의 용병이 순식간에 당하자 용병들도 얼굴 표정이 굳었다.

“제법 거친 년이로군.”

“흐흐흐……. 난 저런 년이 좋아.”

용병 네 명이 나섰다. 라일라가 무기를 꺼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용병들도 맨손이었다. 용병들이 천천히 그녀에게 접근했다.

건장한 남자 네 명을 상대로 과연 어떻게 싸울지 궁금했던지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라일라에게 쏠렸다.

그때 술집 주인이 나섰다.

“아이고, 손님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싸우려거든 제발 나가서 싸우십시오.”

상황이 심각해지자 허겁지겁 나선 술집 주인이 싸움을 뜯어말렸다. 네 명의 용병들은 이를 부드득 갈더니 라일라에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따라 나와!”

그들이 막 등을 돌리자 라일라가 히죽 웃더니 옆에 있는 테이블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그 테이블을 네 명의 용병들을 향해 내던졌다.

“어어!”

동료 용병들이 손짓을 하며 소리치자 네 명의 용병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휘익 하고 테이블이 네 명의 용병들을 향해 날아왔다.

“허억!”

우당탕!

네 명의 용병 중 두 명이 느닷없이 날아든 테이블에 맞아 바닥에 넘어졌다.

남은 두 명의 용병이 테이블에 깔린 두 명의 용병을 우두커니 선 채 쳐다보고 있을 때, 그 테이블 위로 라일라가 뛰어들어 거칠게 짓밟았다.

우지끈!

테이블이 으스러질 정도로 말이다.

“크아아악!”

깔려 있던 두 명의 용병이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에 겨워 몸부림쳤다.

“이 년이 정말……!”

“죽여 버리겠다!”

두 명의 용병이 테이블을 짓밟고 있는 라일라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라일라는 절묘한 동작으로 몸을 뒤로 뉘이며 두 용병의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두 손을 뻗어 한 용병의 머리를 잡고, 두 다리를 뻗어서 다른 용병의 목을 옭아맸다.

“흐억!”

용병들이 헛숨을 들이키자 라일라가 그 상태 그대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두 용병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한 바퀴 빙그르 돈 뒤 바닥에 메쳐졌다.

쿠쿵!

“와아아아!”

구경하던 손님들이 라일라가 보여 준 멋진 몸놀림에 감탄하며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크으윽!”

바닥에 메쳐진 두 명의 용병이 등과 허리를 잡고 일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라일라가 몸을 날렸다.

퍼퍽!

그녀의 두 발이 두 용병의 턱과 얼굴을 걷어찼다.

“케엑!”

두 용병은 입과 코에서 피를 내뿜으며 뒷걸음질 치다 동료 용병들과 뒤엉켜 쓰러졌다. 술집 안의 손님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큰소리로 웃었다.

짝짝짝!

“하하하! 정말 대단한 아가씨로군.”

사람들의 반응이 그리 싫지 않았던지, 라일라도 좀 전처럼 성질을 내진 않았다.

“썩 꺼져!”

라일라는 남은 용병들을 보고 손을 털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막 몸을 돌렸을 때였다.

동료들이 여자 하나에 당하자 화가 날 대로 난 두 용병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자들로, 주로 뒤에서 기습 공격을 가하는 것을 즐겨 하는 자들이었다.

용병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은 그들이 무기를 꺼내들고 라일라를 향해 몸을 날렸다.

“헉!”

그것을 보고 주위 구경꾼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워낙 근거리에 있었던 터라 라일라가 그 공격을 피할 수는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스르르르!

라일라의 옆에 금발의 아름다운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번쩍!

두 줄기 섬광이 번쩍였다. 동시에 라일라를 향해 흉기를 휘두른 두 용병의 몸이 기우뚱거렸다. 이어 몸이 두 쪽이 나며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긴 정적이 흘렀다.

털썩.

두 조각으로 갈라진 두 용병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삽시간에 작은 개울을 만들었다.

“으아아아!”

“사, 살인이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들 중 몇 명이 술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술집 안에 남아 있었다.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느닷없이 일어난 살인에 경황이 없었다.

살인 사건이 발생했으니 조금 있으면 마을 관리와 병사들이 올 터였다. 용병들에게 마을 관리와 병사들은 귀찮은 존재들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들이 피해자였다.

“이, 이런 미친년들……! 우리가 누군지 알고 살인을…….”

죽은 용병의 동료 하나가 구역질을 참아 가며 소리쳤다. 그는 여덟 명의 용병들이 술집 안에 들어가고 나서 뒤늦게 안으로 들어선 용병이었다.

두 용병을 두 조각 내 놓은 금발의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그래? 네 놈들이 누군지 정말 궁금해지는 군.”

금발 여자의 말에 술집 안에 있던 용병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때 용병들 중 하나가 나섰다. 용병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깨끗한 가죽옷을 걸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용병들 중 우두머리인 모양이었다.

“나는 오테거 용병대의 반루이다. 내 형이 오테거 용병대의 용병 대장인 시스턴이지. 네년들이 우리 용병대 용병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고도 무사할 성 싶더냐?”

오테거 용병대란 말에 술집 안이 술렁댔다.

“오테거 용병대라면 요즘 압실론 후작령에서 제일 유명한 용병대잖아?”

“맞아. 그 용병대의 대장인 시스턴이 그렇게 대단하다며?”

“말도 마. 오거도 맨손으로 때려잡았다잖아!”

“문제는 오테거 용병대의 용병 수가 백 명도 넘는 다는 거야.”

“백 명?”

술집 안에서 떠들어 대는 말을 듣고 반루이가 잔뜩 어깨에 힘을 주며 두 여자를 쳐다보았다. 두 여자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 반루이는 자신의 말이 먹혀 든 것 같아 얼굴이 펴졌다.

‘흐흐흐, 그럼 그렇지. 제깟 것들이 용병대를 상대로 감히…….’

하지만 금발 여자의 눈에서 불꽃이 일렁거리는 것을 보고 반루이의 얼굴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라일라는 두 용병이 자신을 덮칠 때 이미 그들이 공격할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몸을 돌릴 때, 두 사람이 눈짓을 주고받는 것을 그녀도 봤던 것이다.

그녀의 뇌리에는 이미 그들이 덮칠 때 어떻게 녀석들을 바닥에 메다 꽂을지 그 대책까지 다 세워 둔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훼방꾼이 나타났다.

소드 마스터, 데보라가 움직인 것이다. 라일라가 아무리 특급 어쌔신이라도 소드 마스터인 그녀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라일라가 어떻게 대응을 하기 전에 이미 데보라의 검은 두 용병의 몸을 쪼개 버린 상태였다. 당연하게도, 두 용병의 참혹한 죽음에 술집은 발칵 뒤집어졌다.

사람을 장작 패듯 쪼개 놓고도 데보라는 전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때 용병들 중 하나가 나섰고, 라일라는 심각한 얼굴로 데보라를 쳐다보며 더 이상 살생은 안 된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데보라와 막 눈이 마주쳤을 때, 데보라의 눈에서는 이미 살기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라일라가 어떻게든 데보라를 막아 보려 했지만 늦은 감이 있었다.

스르르르!

데보라가 잔상만 남기고 라일라의 눈에서 사라진 것이다.

사라진 데보라는 반루이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한 손을 반루이의 어깨에 올렸다.

툭툭!

데보라가 반루이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떨어 주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반루이의 얼굴에 절망감이 감돌았다.

‘엿됐다.’

반루이도 조금 전 보여진 데보라의 움직임에서 감히 상대할 수 없는 강자를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의 형인 시스턴은 기사 출신이었다. 그리고 반루이 역시 한때 기사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기사 시절의 감각이 그의 신경을 옥죄였다. 반루이는 본능적으로 옆구리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갖다 댔다.

하지만 절반도 채 뽑지 못한 상태에서 차가운 바람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입만 뻐끔거리는 그를 보며 데보라가 가소롭다는 듯,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바람은 반루이 주위에 서 있던 세 명의 용병들도 예외로 두지 않았다.

철퍼덕!

반루이를 비롯한 세 명의 용병이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조각났다. 두 동강 난 그들의 몸이 피에 물든 바닥으로 피를 더했다.

“헉……!”

”뭐 저런 잔인한 여자가 다 있지?”

데보라의 잔혹한 손속에 질린 몇몇 사람들이 겁에 질려 슬금슬금 술집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여섯 용병들이 조각난 채 널브러져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세 명의 용병이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서 있다가 데보라와 눈이 마주쳤다.

“이놈들 동료지?”

데보라의 물음에 세 명의 용병은 잽싸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다가 출입구 가까이 이르자 냅다 밖으로 도망을 쳤다.

“흥!”

도망치는 세 용병에게 비웃음을 날린 데보라가 돌아서서 라일라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정리되었으니 술이나 더 마실까요?”

술집을 처참한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 술을 더 마시자는 말에, 라일라는 앞서 마신 맥주가 다 올라왔다.

라일라가 토악질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을 때 소식을 들은 듯, 병사들이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히익!”

술집 안으로 들어선 병사들은 피로 얼룩진 술집 안의 참혹한 모습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 데보라는 라일라를 지나쳐서 에반스가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누, 누가 이런 짓을……!”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순순히 포박을 받아라!”

병사들이 술집 안을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그들의 바로 앞에 라일라가 서 있었지만, 병사들은 설마 여자 혼자서 용병 여섯을 토막 내 놓았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쾅!

그때 술집 문이 떨어져 나가고 용병들이 우르르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달아났던 세 명의 용병들이 다른 용병들을 데리고 술집을 다시 찾은 것이다.

“반루이!”

그 중 다른 용병들에 비해 머리 하나는 더 큰 덩치 큰 용병이 괴성을 지르며 조각 난 시체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직접 조각 난 시체를 맞춰 보고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 반루이!”

용병은 피 묻은 두 손을 꽉 쥐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술집 안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누구냐? 누가 내 동생 반루이를 죽였느냐?”

그의 목소리가 술집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에반스와 안드레이 공작은 데보라의 잔인한 손속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데보라는 조금의 죄책감도 없는 듯, 웃으며 돌아와 자신의 자리에 태연히 앉았다.

그런데 그때 병사들이 들어오고, 이어서 용병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용병 중 하나가 괴성을 내지르며 살상을 저지른 데보라를 찾았다. 그러자 데보라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데보라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턱!

테이거가 데보라의 어깨 위에 한 손을 올렸다.

데보라가 사나운 눈으로 테이거를 쏘아보았다.

“내가 처리하지.”

그렇게 말한 테이거가 에반스를 힐끗 쳐다보았다. 데보라는 그제야 자신이 에반스 앞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남자가 사람을 토막 내서 죽이는 여자를 좋아하겠는가?

“고마워.”

자신을 대신해서 일어서는 테이거를 향해 데보라가 작게 말했다. 그러자 테이거가 싱긋 웃으며 가볍게 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괴성을 질러 대고 있는 덩치 큰 용병을 향해 걸어갔다.

용병대장 시스턴은 술집 안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젊은 남자를 발견하고 소리를 쳤다.

“네놈이냐? 네놈이 네 동생을 토막 냈느냐?”

시스턴의 외침에 테이거가 실룩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라. 너도 곧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

테이거의 도발에 발끈한 시스턴이 등 뒤에 차고 있던 거대한 검을 뽑아 들었다. 길이가 2미터는 족히 되고 폭만 40센티가 넘어 보이는 정말 큰 검이었다.

그런 대검을 한 팔로 든 시스턴이 그대로 테이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으아아아!”

괴성과 함께 미친 오거처럼 달려드는 시스턴의 모습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특히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검은, 보통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릴 만했다.

하지만 시스턴이 덤벼든 상대는 소드 마스터인 테이거였다. 그는 시스턴이 대검을 휘두를 때까지 검을 뽑지도 않았다.

부우웅!

시스턴의 대검이 크게 원호를 그리며 테이거의 몸통을 쪼개 놓을 듯 날아들었다. 죽은 동생처럼 테이거의 몸을 두 쪽으로 쪼개 놓을 심산이었다.

스륵!

쾅!

하지만 시스턴의 대검은 아슬아슬하게 테이거의 몸을 스치며 바닥을 때렸다. 얼마나 강력한 일격이었던지 괴음과 함께 술집 바닥이 들썩이며 먼지가 풀풀 날렸다.

우직!

시스턴은 바닥 깊숙이 박힌 대검을 단숨에 뽑아 들었다.

테이거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천성적으로 힘을 타고난 놈이군. 하지만 운이 없구나. 나를 만나다니 말이야.”

“크아아아!”

그 말을 듣고 시스턴이 짐승처럼 포효하며 테이거를 향해 다시 대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크게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테이거라도 이번 공격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듯 보였다.

바아아아!

공기를 갈가리 찢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시스턴의 대검이 벼락같이 테이거를 휘몰아쳤다. 그때 테이거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지면서 어렵지 않게 시스턴의 공격을 피해 냈다.

“말했지. 운이 없다고.”

시스턴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테이거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테이거는 시스턴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가볍게 검을 찔러 넣었다.

푹!

기척도, 소리도 없이 테이거의 검이 시스턴의 어깨를 찔렀다. 검은 그리 깊게 박히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힘줄을 끊어 놓았다.

“으아악!”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지른 시스턴이 몸을 틀면서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스르르르!

하지만 시스턴이 휘두른 대검은 이번에도 사라지는 테이거의 잔상만 벴을 뿐이다.

시스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무 강하다.’

상대가 자신이 상대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처참하게 죽은 동생의 복수를 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시스턴이 귀를 쫑긋 세웠다.

스륵!

그때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타앗!”

시스턴은 앞서와 달리 소리가 들린 쪽으로 몸을 틀며 짧게 대검을 내려쳤다. 하지만 시스턴의 회심의 일격도 결국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테이거의 속도는 반사 신경의 한계를 넘은 것이었다.

‘설마…….’

시스턴의 뇌리에 소드 마스터란 존재가 떠올랐다. 만약 상대가 소드 마스터라면 그는 오늘 죽은 목숨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발악이라도 해 보고 죽자.’

이를 악문 시스턴이 미련 없이 바닥을 박차고 테이거를 향해 뛰어올랐다.

시스턴이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은 힘이었다. 오거도 맨손을 잡을 정도의 힘이라면 소드 마스터에게도 먹혀들지 몰랐다.

바우우웅!

테이거의 대검이 테이거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내리꽂혔다.

실룩 웃은 테이거가 시스턴의 대검을 피하지도 않고 불쑥 들고 있는 검을 들어 올렸다. 시스턴의 대검을 검을 들어 막겠다는 의도였다.

‘됐다.’

시스턴은 있는 힘을 모두 대검에 주입시켜 강하게 내려쳤다. 누가 봐도 검의 크기와 힘에서 시스턴의 검이 테이거의 검을 박살 낼 것처럼 보였다.

차앙!

“커억!”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시스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그의 몸이 반탄력이 밀려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어이없게도 공격을 한 시스턴이 뒤로 밀린 것이다. 힘에서조차 시스턴은 테이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시스턴의 얼굴에 절망감이 드리웠다. 그와 동시에 테이거의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폭사되었다.

스르르!

테이거의 신형이 다시 사라졌다.

파팟!

“크윽!”

비명과 함께 시스턴의 왼쪽 어깨에 길게 혈선이 그어지며 선혈이 흘러내렸다. 오른쪽 어깨에 이어서 왼쪽 어깨 근육마저 잘려 나가면서 대검을 들고 있는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테이거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놈의 몸은 차근차근 난도질해 주마.”

섬뜩한 말에 시스턴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말이 시스턴에게 투지를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저 놈 옷깃이라도 베어 보자.’

이를 악문 시스턴이 두 손으로 검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시스턴은 아직 모든 것을 내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비록 테이거에게 먹히지 않을지 몰라도 그것이 최선인 이상, 시스턴은 목숨을 내걸 각오가 되어 있었다.

에반스는 선불 맞은 곰처럼 미쳐 날뛰는 덩치 큰 용병을 보고 그 힘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너무 나빴다.

‘하필 소드 마스터라니!’

싸움을 더 볼 것도 없이 테이거가 이길 것이고, 덩치 큰 용병은 결국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질 터였다.

에반스의 예상대로 테이거가 일방적으로 덩치 큰 용병을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에반스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덩치 큰 용병은 확실히 마구잡이로 테이거를 공격하고 있었지만, 그 대검에는 일체 흔들림이나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 말은 덩치 큰 용병이 검술의 기본기를 잘 갖췄다는 소리였다.

그런 자가 제대로 된 검술을 펼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다. 에반스는 좀 더 집중해서 덩치 큰 용병의 움직임을 살폈다.

덩치 큰 용병은 여전히 미친 듯이 테이거를 공격했고 테이거는 여유 있게 공격을 피하며 용병의 몸에 상처를 냈다.

몸에 생채기가 나면서도 덩치 큰 용병은 이를 악물고 테이거를 계속 공격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덩치 큰 용병이 테이거가 눈치채지 못하게 점점 술집 구석 쪽으로 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리도 좋군.’

에반스가 눈빛을 빛냈다.

촤악!

덩치 큰 용병의 허벅지에 길게 상처를 남긴 테이거가 그리고 뒤로 물러섰다.

턱!

뒤쪽의 벽이 테이거를 가로막았다.

“헉!”

그제야 테이거는 자신이 구석에 몰렸음을 깨달았다.

“크아아아!”

시스턴이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코너에 몰린 테이거는 순간 놀라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테이거는 소드 마스터지만 아직 경험이 많이 모자랐다.

하지만 운은 테이거가 더 좋았다.

콰직!

시스턴의 대검이 술집 천장을 받치는 나무 기둥에 가로막힌 것이다. 그 때문에 테이거는 여유 있게 코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

절호의 기회를 놓친 시스턴이 탄식하며 나무 기둥에 깊숙이 박힌 대검을 뽑았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테이거는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놈! 그 검과 네놈의 몸통을 토막 내 주마.”

우우우웅!

테이거의 검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혔다.

“오러 블레이드……! 정말 소드 마스터였구나!”

오러 블레이드를 본 시스턴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그렇게 테이거가 시스턴을 향해 몸을 날리려 할 때였다.

바우우웅!

“……!”

테이거는 뒤쪽에서 파공성이 울리자 재빨리 몸을 틀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덩이를 향해 오러 블레이드가 맺힌 검을 휘둘렀다.

콰쾅!

폭발과 함께 불덩이가 터지면서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불덩이를 쳐낸 테이거가 술집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그때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에반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테이거를 향해 말했다.

“더 이상 살생은 허락지 않겠소.”

“그, 그런…….”

테이거가 뭐라 말을 하려 하자 에반스가 그 말을 끊으며 잔뜩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끝내시오. 내 인내를 더 시험하고 싶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요.”

압실론 후작령에서 에반스는 황제나 다름없었다. 그 정도는 테이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테이거도 자존심이 있었다. 테이커는 시스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베어 버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에반스와의 사이가 틀어지게 될 터였다. 여기서 에반스와의 사이가 틀어지면 앨빈을 비롯해서 케이런과 페이슨이 자신에게 뭐라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

‘참자.’

테이거는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리고 힐끗 에반스를 쏘아본 뒤 술집 밖으로 걸어 나갔다.

오러 블레이드를 본 병사들과 용병들은 알아서 그를 향해 길을 내어 주었다.

테이거가 술집을 나간 뒤, 마을 관리가 허겁지겁 술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술집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에반스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에반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후작님을 뵙습니다.”

마을 관리의 말에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경악했다. 에반스의 옆에 있던 루크가 소리쳤다.

“압실론 후작령의 대영주님이시다! 어서 부복하라!”

그 소리에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에반스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시스턴은 자신을 구해 준 젊은 남자의 정체를 알고 반쯤 넋이 나갔다.

암실론 후작령의 대영주라니!

“이놈! 어서 꿇지 않고 뭐하는 게야?”

마을 관리의 호통에 시스턴이 대검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부복하자 에반스가 말했다.

“모두들 일어나라.”

에반스의 명에 마을 관리부터 시작해서 술집 안에 무릎 꿇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섰다.

“조용히 머물다 가려 했는데 일이 시끄러워졌군.”

에반스는 그렇게 말한 뒤 시스턴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시스턴은 애반스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긴장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에반스가 물었다.

“부상은 어떤가?”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대답한 시스턴의 어깨에 에반스가 손을 올렸다.

“크윽!”

그러자 시스턴이 고통에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아 보이지 않는군. 루크, 이 자의 상처를 살펴 줘.”

“네, 후작님.”

에반스는 루크를 남겨 두고 마을 관리의 안내를 받아서 라일라와 안드레이 공작, 그리고 굳은 얼굴의 데보라와 같이 술집을 빠져나갔다.

데보라가 에반스에게 물었다.

“테이거에게 그럴 필요는 없었잖아요. 천한 용병 때문에 말이에요.”

그 말에 에반스가 걷던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데보라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 영지민들 중 천한 자는 없소. 그리고 내 영지에서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마시오. 이 말은 다른 네 사람에게도 꼭 전해 주시오.”

말을 마친 에반스가 마을 관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가지.”

“네, 후작님.”

마을 관리가 앞장서고 그 뒤를 에반스가 따라갔다. 그런 에반스를 보고 안드레이 공작의 얼굴이 복잡하게 변했고, 데보라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지어 보였다.

“같이 가요!”

라일라만이 에반스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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