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4 자중지란Ⅴ (34/90)

 Chapter 4   자중지란Ⅴ

엘렌은 첸들러 백작의 명령에 충실하게 라마스 영지 내 병력을 차근차근 끌어모았다. 마을마다 군적에 올라 있는 병사들을 모으고, 또 따로 징병해서 훈련소에서 훈련이 끝난 병사들까지 합류시키면서 엘렌은 사흘 만에 영지 절반을 돌아 1만 명의 병사를 소집했다.

그 후 나머지 영지를 돌면서, 결국 2만의 병력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했다. 남자도 해내기 힘든 일을 해낸 엘렌은 2만의 병력을 이끌고 라코프 백작성으로 향했다.

첸들러 백작은 라마스 영지의 정보 조직원들을 통해서 엘렌이 2만의 병력을 이끌고 라코프 백작성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그래! 이제 됐다. 내 꿈이 이뤄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축하드립니다. 이거, 곧 후작님이라 불러 드려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 귀족이 첸들러 백작에게 아부성 발언을 했다.

“후작님? 하하하하! 그거 듣기 좋군. 지네단 남작.”

지네단 남작은 압실론 후작가의 핵심 가신 중 한명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라코프 백작성에서 첸들러 백작과 같이 있는 것이다.

“루버첸과 제 2기사단의 기사들이 그렇게 많이 죽다니, 아쉽군. 내가 후작이 되면 루버첸을 중용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후작 부인이 에반스를 죽이지 못해서 아주 안달이 났군 그래.”

첸들러 백작은 지네단 남작으로부터 압실론 후작성에서 일어난 일과 가신 회의에서의 일을 전부 전해 들은 듯 보였다.

“후작의 세 아들들이 에반스를 찾아서 혈안이 된 가운데 서로 견제를 하느라 후작가도 냉랭하고, 후작성 내 분위기도 살벌합니다.”

“흐흐흐흐, 후작가가 시끄러워지면 나야 좋지. 아니, 아예 싸움이라도 나면 좋겠는데……. 안에서 치고 박고 할 동안 나는 병사를 이끌고 압실론 후작성까지 진격해 들어가는 거지. 그리고 혼란스런 후작가를 압실론 후작의 친동생인 내가 바로 잡으면서 당당히 제후의 자리에 오르는 거야!”

“정말 훌륭하신 생각이십니다. 듣고 있는 제가 다 전율이 일어납니다.”

지네단 남작의 아부에 첸들러 백작은 만족해 하며 말했다.

“해서 자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네.”

“뭐든 명령만 내리십시오.”

“세 형제끼리 제대로 치고 박고 싸웠으면 하는데 말이야……. 자네, 테오르의 처인 소피아는 잘 알지?”

“네. 콘라드 후작 영애이신 소피아 님이라면 잘 알지요.”

첸들러 백작이 비릿하게 웃으며 지네단 남작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지네단 남작이 옆으로 바짝 붙어서 첸들러 백작에게 살짝 귀를 내밀었다.

첸들러 백작은 주위를 살핀 뒤 낮은 목소리로 뭐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던 지네단 남작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자네가 나를 진심으로 따르기로 했다면 이 정도야 해 줄 수 있겠지? 안 그런가?”

첸들러 백작이 아예 거절할 수 없게 못을 박았다.

“아…… 아, 네. 그래야지요.”

지네단 남작은 결국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첸들러 백작의 비위를 맞추던 지네단 남작은 이제 그만 돌아가 보라는 말을 듣고서야 라코프 백작성을 빠져나와 압실론 후작성으로 향할 수 있었다.

“퉤!”

백작성의 성문을 나서며, 지네단 남작은 성안을 향해 침을 뱉었다.

“나쁜 새끼. 나도 나쁜 놈 소리를 듣지만 너보다는 낫다. 어떻게 조카며느리에게 그런 짓을 다 할 생각을 한단 말인가! 제길, 압실론 후작가도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지네단 남작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압실론 후작성으로 말을 몰았다. 어차피 누가 압실론 후작령의 주인이 되던 지네단 남작은 상관없었다. 그래서 그는 만약을 대비해 테오르 쪽에도, 또 램버튼 백작 쪽에도 한 다리씩 걸치고 있었다.

만약 첸들러 백작이 불리해지면 그는 즉시 테오르나 램버튼 백작 측에 붙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후작가의 가신 회의에 참석한 후, 라오치는 자신을 지지하는 가신들과 몰래 회동을 가졌다. 그 자리에는 칼도 참석했지만, 라오치는 칼을 가신들에게 소개시키지는 않았다.

이는 라오치도 아직 칼이 미덥지 못했고, 칼도 바라는 바였기 때문에 둘의 합의 하에 당분간 가신들에게 칼의 존재는 알리지 않기로 결정 내렸기 때문이었다.

“후작 부인께서 가문의 장남인 에반스를 싫어하시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미워하셨을 줄 몰랐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저희에게 나쁠 것은 없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에반스를 잡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후작 부인께서도 잡지 못한 그자를 우리가 무슨 수로 잡는단 말입니까?”

가신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오치가 잠시 자신을 지지하는 가신들을 둘러보았다.

‘쓸 만한 자가 어찌 하나도 없단 말인가?’

현 사안을 마치 남 얘기하듯 떠들어 대는 가신들을 보면서 라오치는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참다못한 라오치가 피곤하다며 가신들에게 그만들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자 가신들이 기다렸다는 듯, 냉큼 그 자리를 떠났다.

라오치가 허탈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저런 자들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그때, 총관이 라오치에게 다가와서 귓속말로 뭔가를 전했다.

라오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오! 레어폴 자작이 왔단 말인가?”

성 밖의 영주들 중, 라오치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인물이 직접 압실론 후작성으로 온 것이다.

“어서 모셔라.”

“허면 칼이란 자는……?”

원래 라오치는 가신들을 만난 후에 칼을 만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라오치에게는 칼보다는 레어폴 자작이 더 중요했다.

라오치가 차가운 어조로 총관에게 말했다.

“더 기다리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간 총관이, 곧 레어폴 자작을 데리고 라오치 앞에 나타났다.

“오오……! 어서 오십시오. 레어폴 자작님.”

“하하하!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결례라니요. 자작님은 언제 오셔도 환영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자, 앉으시지요.”

라오치가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총관이 미리 준비시켜 둔 차를 들고 시녀가 나타났다. 총관은 잠시 그녀와 대화를 나눈 뒤, 시녀에게 고갯짓을 했다. 시녀는 조심스레 라오치와 레어폴 자작 앞에 찻잔을 내려놓고 나갔다.

시녀가 나가자 라오치가 레어폴 자작에게 차를 권했다.

“자, 드시시죠.”

“하하하! 고맙습니다.”

레어폴 자작은 찻잔을 들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 모습을 본 라오치가 안에 대기 중이던 총관을 보고 잠시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총관마저 나가자 레어폴 자작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후작 부인께서 다소 황당한 결정을 내리셨다지요?”

“네. 내게는 나쁘지 않은 일인 것을 알겠는데 어떻게 이 기회를 살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신들이라고 있는 것들은 모두 내 눈치만 보고 쓸 만한 의견은 하나도 내놓지 못하고……. 하아! 속이 답답합니다.”

“하하하! 그러실 줄 알고 제가 이렇게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레어폴 자작의 말에 라오치가 몸을 들썩였다.

“무슨 좋은 계획이라도 있는 겁니까?”

“네. 어쨌든 에반스를 잡거나 죽이기만 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후작 부인은 그 일을 해낸 아들에게 압실론 후작의 유언장에 후계자로 그 이름을 올리겠지요.”

“하지만 그동안 그렇게 죽이려 해도 죽이지 못한 자입니다. 무슨 수로 녀석을 제거한단 말입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그자가 이곳 성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레어폴 자작의 말에 라오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말도 마십시오. 어머님과 테오르 형님, 그리고 나까지 성을 샅샅이 뒤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녀석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오치의 말에 레어폴 자작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찾으니 그렇지요.”

“네?”

라오치가 의아한 얼굴로 레어폴 자작을 쳐다보자, 레어폴 자각이 갑자기 웃음을 싹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라오치에게 말했다.

“라오치 님. 녀석이 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그건…….”

“녀석은 자신의 아버지, 즉, 압실론 후작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흥, 누구 맘대로 아버지를 만나! 어림도 없소.”

“아닙니다. 만나게 해 줘야 합니다.”

“뭐, 뭐라고요?”

“우린 녀석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녀석이 우릴 찾아올 테니 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라오치 님께서는 지금 곧 후작 부인을 찾아가셔서 후작님을 저희 영지로 비접 보내자고 말씀하십시오.”

“헉! 설마 아버지를 미끼로?”

“맞습니다. 후작의 비접 소식을 들으면 녀석은 알아서 저희 영지로 올 것이고, 그때 함정을 파 두었다가 녀석을 잡는 겁니다.”

“하지만 과연 어머니께서 그 계획을 승낙하실까요?”

“후작 부인께서는 승낙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그 누구보다 에반스, 그 자를 잡고 싶을 테니 말입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역시 제게는 레어폴 자작님뿐입니다. 제가 후작이 되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그런 자잘한 일에 신경 쓰지 마시고 반드시 제후가 되십시오.”

“레어폴 자작께서 이렇게 도와주시는데 제후가 되어야지요. 하하하!”

“언제 시간되시면 저희 저택을 찾아 주십시오. 일라이저가 라오치 님을 뵙고 싶다고 하더군요.”

“자작 영애께서 그러시다니 어서 가 봐야겠군요. 내 수일 내로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레어폴 자작은 자신의 여식과 라오치를 결혼시킬 생각이었다. 라오치로서도 레어폴 자작과 인척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그래서 조만간 자작 영애에게 청혼을 할 생각이었다.

‘다음에 가면 청혼을 해야겠군.’

레어폴 자작의 계획을 듣고 난 라오치는 결혼을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러는 편이 레어폴 자작을 완전히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다. 그만큼 라오치는 레어폴 자작을 신뢰하고 있었다.

***

칼의 입장에서 라오치가 레어폴 자작에게 크게 의지하는 것은 결코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칫 레어폴 자작에 대해 말이라도 잘못 했다가 라오치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미 칼은 라오치가 곁에 두고 신뢰하던 호위 기사 올렌을 몰래 제거했다. 은밀하게 진행시켰고, 증거도 전혀 남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올렌을 죽인 것을 램버튼 백작이나 테오르 쪽 소행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라오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올렌이 죽고 나서 며칠 동안 라오치의 기사들이 변복을 하고 칼의 주위를 서성댔다.

그래서 레어폴 자작을 제거해야 하는데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다 결국 에반스와 상의했다. 그러자 에반스가 간단히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믿음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배신을 당했을 때 그 충격이 크다는 말이다. 지금 네가 할 것은 라오치가 레어폴 자작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야.”

“하지만 레어폴 자작에 대한 라오치의 믿음이 워낙 단단해서 그것을 깨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답은 찾을 수 없어. 전에 라오치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정보 조직원들로 하여금 그를 습격하게 하고 나서 라오치를 구해줬다고 했지?”

“네. 그렇게 해서 라오치에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라오치를 습격했는지 그 배후는 밝혀내지 못했을 테고 말이야?”

“당연하지요. 정보 조직원들이 물증을 남길 리 없잖습니까?”

“아니, 물증을 남겼어.”

“네?”

에반스가 웃으며 칼에게 뭔가를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칼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하하하!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렇게 되면 저는 라오치에게 더 신뢰를 받을 것이고, 반면 레어폴 자작은 의심을 받게 되겠군요.”

칼은 에반스의 의견대로 우선 라오치의 저택에 첩자를 심었다. 그리고 지금, 에반스가 말한 그 계획을 써먹을 찬스가 왔다.

***

라오치는 가신 회의를 마친 후 칼을 찾았다. 칼은 즉시 라오치의 저택을 찾았지만, 바로 라오치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는데 총관이 나타났다.

“라오치 님께서는 지금 급한 손님을 만나고 계신다. 그러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총관은 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족도 아닌 양아치 두목 따위를 가까이 하려는 라오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 칼을 대하는 총관의 태도 역시 좋을 리 없었다.

총관은 라오치의 명령대로 칼에게는 기다리라고 하고 레어폴 자작을 정중히 모셔서 라오치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 전에 시녀로 하여금 차를 준비케 했다. 그런데 차 심부름을 하는 시녀가 바뀌어 있었다.

총관이 시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레이나는 어디가고 네가 여기 있는 것이냐?”

총관의 물음에 시녀가 황급히 대답했다.

“레이나가 갑자기 배탈이 나서…….”

“하필 이럴 때…….”

총관은 시녀에게 고갯짓을 보냈다. 그러자 시녀가 조심스럽게 찻잔을 라오치와 레어폴 자작 앞에 내려놓았다. 그때 레어폴 자작의 찻잔을 내려놓으며 손에 쥐고 있던 뭔가를 그가 앉아 있는 의자 밑으로 떨어트렸다.

시녀가 총관과 등지고 서 있었기 때문에 총관은 시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실수나 하지 않을까하는 시선으로 그녀를 볼뿐이었다.

다행히 시녀는 별다른 실수 없이 찻잔을 놓고 일어섰다. 총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방을 나왔다.

레어폴 자작과 대화를 마친 라오치는 바로 칼을 불렀다. 칼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앉아 있던 라오치가 손짓으로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그때, 자리에 앉으려던 칼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몸을 수그려 의자 밑에서 뭔가를 주웠다.

“뭔가?”

라오치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칼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자 칼이 자신이 바닥에서 주운 것을 라오치에게 보이며 물었다.

“이 단추…… 누구 것입니까?”

“단추?”

라오치가 살피니 과연 칼의 손에 금 단추가 들려 있었다. 그런데 그 금 단추는 조금 전 레어폴 자작이 입고 있던 옷에 달려 있던 단추와 똑같았다.

그때 라오치가 호주머니에서 똑같이 생긴 금 단추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라오치에게 말했다.

“실은, 전에 라오치 님을 습격했던 자들 중 하나가 떨어트린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 서, 설마 그것이 그 단추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칼의 대답에 라오치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 그럴 리가 없다. 레어폴 자작이 나를 죽일 이유가 없지 않는가?’

라오치는 애써 고개를 내저었다.

“그 단추를 줘 보게.”

칼이 두 개의 단추를 건네자 라오치가 받아서 두 단추를 자세히 살폈다.

과연 두 개의 단추의 모양이 똑같았다.

문제는 그 단추의 문양이 레어폴 자작 가문의 문양이란 점이었다. 한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은 아무나 함부로 만들 수 없었다.

창백하게 질린 라오치의 얼굴을 보고 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단추의 주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

라오치는 대답 대신 칼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칼은 무덤덤한 얼굴로 두 눈을 깜빡거리며 라오치의 눈을 직시했다.

고민하던 라오치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이 단추는…… 레어폴 자작의 단추네.”

라오치의 말에 칼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럴 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칼의 얼굴을 보며 라오치가 말했다.

“무슨 흉계가 있는 것이다. 레어폴 자작이 나를 죽일 이유가 없다.”

라오치의 말에 칼이 바로 수긍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요. 아무래도 누가 농간을 부린 것 같습니다.”

칼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맞장구치자 라오치의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어떤 자의 농간인지는 네가 반드시 밝혀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칼은 라오치에 들려 있던 두 개의 금 단추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며 단추를 달라고 했다.

하지만 라오치는 단추를 넘기지 않고 가만히 그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칼은 그런 라오치의 눈에서 그가 레어폴 자작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 있네.”

라오치는 칼에게 금 단추를 건넸다. 그러면서 슬쩍 말했다.

“사실 레어폴 자작이 내게 한 말이 있네. 그걸 자네에게 말해 줄 테니 이상한 점이 있으면 기탄없이 내게 말해 보게.”

그렇게 말한 후 라오치는 레어폴 자작의 계획을 칼에게 전부 얘기했다.

“어떤가? 괜찮은 계획 같나?”

라오치의 물음에 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훌륭한 계획입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우선 왜 후작님께서 레어폴 자작 저택으로 비접을 가야 하는가입니다. 성내에 후작님께서 자주 이용하셨던 별장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왜 하필 후작님을 미끼로 쓰려 하는 걸까요?”

“그야 녀석이 아버지를 만나려 할 테니 당연한 것 아닌가?”

“제 말은, 그냥 라오치 님 임의로 후작님께서 비접을 가신다고 성내 소문만 내고, 후작님으로 위장한 자를 이용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진짜 후작님을 미끼로 쓰려 하는가 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그 일을 후작 부인께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은 결코 라오치 님께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칼의 대답에 라오치의 눈빛이 흔들렸다.

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세상 어떤 부인이 자기 남편을 미끼로 내놓겠는가?

대외적으로 세간의 눈을 신경 쓰는 후작 부인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실제 그렇게 된다고 해도 라오치의 입장은 또 뭐가 되겠는가?

‘만약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레어폴 자작, 무슨 속셈이지?’

레어폴 자작에 대해 라오치가 본격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런 라오치를 보며 칼이 비릿하게 웃었다. 물론 그 모습을 라오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만약 자네가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오치의 물음에 칼이 바로 대답했다.

“남의 장점을 내 장점으로 만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저 같으면 후작 부인께 말씀드리지 않고 후작께서 별장으로 비접하신다는 소문만 내고 그 별장에 함정을 파고 에반스를 기다리겠습니다.”

칼의 말에 라오치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렇게 하면 되겠어.”

라오치는 기뻐하며 칼에게 전적으로 그 일을 맡기겠다고 했다. 라오치가 칼을 신뢰하기 시작한 것이다.

칼이 은근히 물었다.

“그런데 레어폴 자작께서 서운해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칼의 물음에 라오치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부터 레어폴 자작의 뒤를 캐게. 그리고 그가 나를 속였거나 이용하려 한 정황이 포착되면 내게 즉시 알려 주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칼은 라오치가 완전히 레어폴 자작을 의심하게 된 것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라오치의 저택을 나선 칼은 곧장 칼 파의 아지트로 향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지.”

이미 레어폴 자작에 대해선 조사가 끝나 있었다. 칼은 레어폴 자작의 비리를 모두 라오치와 연관시켜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라오치를 찾아가서 레어폴 자작이 저리는 비리를 알려 주었다.

어차피 레어폴 자작이 라오치를 선택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그를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레어폴 자작이 라오치를 이용하려 했다는 정황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다.

“레어폴 자작이 어찌 내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라오치는 많이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곧 근심 어린 얼굴로 변했다.

“왜 그러십니까?”

칼의 물음에 라오치가 힘없이 대답했다.

“레어폴 자작은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 가신들 중 누가 나를 지지하는 가부터 시작해서 나의 비밀 상당 부분을 알고 있단 말이야. 그가 그것을 외삼촌이나 테오르 형에게 알린다면……. 후우, 정말 큰일이야.”

라오치의 말에 칼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 문제는 제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네가 어떻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요.”

레어폴 자작을 제거하겠다는 소리였다. 그러자 라오치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 안되네. 만약 실패라도 하는 날이면…….”

레어폴 자작이 자신에게 등을 돌렸을 때 벌어질 일들이 주마등처럼 라오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라오치가 두려운 표정을 짓자 칼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 말에 라오치가 칼의 눈을 쳐다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알았네. 그렇게 해. 단, 이 일에 내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알아선 안 돼.”

“그 점이라면 걱정 마십시오. 이 일은 저만 알 테니까요.”

칼이 빙긋 웃었다.

모처럼 마음과 표정이 일치되었다.

가장 걸림돌인 레어폴 자작만 제거하면, 앞으로 라오치는 칼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

라오치가 칼의 손바닥 위에 있다면 램버튼 백작은 애덤스, 즉, 에반스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총관인 모건 남작의 죽음 이후 램버튼 백작은 누구도 믿지 못했다. 그 점은 에반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에반스는 램버튼 백작이 의심하는 것에 전혀 거부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보란 듯이 램버튼 백작에게 모든 것을 투명하게 내보였고, 램버튼 백작은 그것을 보고 만족해 했다.

그러나 램버튼 백작의 다른 수하들은 달랐다. 그들은 램버튼 백작이란 커다란 울타리에서 그의 수하란 특권을 이용해 갖은 이권 사업에 다 개입되어 있었다. 즉, 비리가 많다 보니 숨길 것 또한 많았다.

에반스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꺼내 보일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숨기려고 드는 자신의 수하들을 보고, 램버튼 백작은 더욱 수하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런 그의 믿음은 자연히 에반스에게 집중되었고, 램버튼 백작은 이제 에반스가 고블린을 오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신뢰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표면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애덤스, 에반스를 찾는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칼 파의 조직원들이 성내를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오늘, 내일이면 그자가 어디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램버튼 백작은 에반스의 이런 점이 좋았다.

램버튼 백작이 물으면 에반스는 뭐든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은 꼭 그 기일을 넘기지 않고 이뤄졌다. 그만큼 에반스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유능한 인재였다.

램버튼 백작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에반스에게 말했다.

“에반스를 찾거든 내게 바로 얘기해. 내가 직접 녀석을 잡으러 갈 테니 말이야.”

램버튼 백작이 직접 나설 것이란 소리에 에반스가 눈빛을 반짝 빛내며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반스는 램버튼 백작의 집무실에서 램버튼 백작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한 후, 일 처리에 바쁘다는 핑계로 일단 그의 집무실에서 빠져나왔다.

백작 저택 내 배정받은 방으로 가자 그곳에는 이미 카라스의 정보 조직원들이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램버튼 백작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에반스였다. 정보 조직원들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램버튼 백작에게는 칼 파의 조직원들 중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이미 말해 뒀다.

방에 도착한 에반스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카라스 영지는?”

“영주님께서 전시 체제 선포 후, 총관이신 메디슨 남작께서 로체스 자작성을 중심으로 더욱 체계적으로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무기를 제작하고 계십니다.”

“라마스 영지는?”

“라마스 영지의 움직임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병사들이 라코프 백작성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엘렌에게 연락 온 것은 없나?”

“네. 아직은…….”

“레이언의 움직임은?”

“지금까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그쪽에서도 일단 램버튼 백작 측을 주시하며 그에 따라 대응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라오치 쪽은?”

“칼 님께서 라오치의 걸림돌인 레어폴 자작을 오늘 제거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으음, 레어폴 자작만 제거되면 라오치는 칼의 수중에 떨어진다. 좋아, 테오르 쪽은?”

“테오르는 자신의 모든 인맥을 다 동원해서 영주님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테오르가 믿고 있는 자들이 충심으로 그를 따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에반스는 램버튼 백작의 저택에서 대담하게도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태연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한술 더 떠 그의 방에는 통신구를 비롯해 신속하게 보고를 듣고, 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시설이 다 갖춰져 있었다.

에반스가 램버튼 백작의 저택에 머물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후작 부인과 테오르, 그리고 나머지 두 아들들은 에반스를 찾기 위해서 지금도 후작성을 구석구석 뒤지고 있었다.

에반스는 정보 조직원들의 보고를 듣고 즉각 명령을 내렸다.

“후작가에 잠입한 요원에게는 가능한 움직이지 말라고 해. 후작 부인과 그 측근들도 바보가 아닌 한 저택 내에 첩자가 있을 거라고 한 번쯤 생각했을 거야. 지금쯤 이미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그러니 아예 모든 정보 활동을 접고 평상시대로 행동하라고 해.”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테오르의 수하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알아내. 아마도 테오르에 대해 불만이 많은 자가 그 내부에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레이언은 계속 감시만 해.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까 근접해서 감시하면 들킬지도 몰라. 그러니 멀찌감치 떨어져서 감시하도록.”

에반스가 차례대로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을 때 정보 조직원 하나가 에반스에게 방금 전해 온 소식을 전했다.

“엘렌 님으로부터 온 소식입니다.”

“엘렌이? 어서 말해 봐.”

“지금 2만의 병력을 이끌고 라코프 백작성으로 향하고 있는데 차후 어떻게 할지 묻고 있습니다. 감시의 눈이 많으니 빨리 회신 바란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당분간 첸들러 백작의 뜻대로 움직여 주라고 해.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그곳 정황을 이쪽에 알려 달라고 하고.”

“네.”

정보 조직원은 마법 통신구를 통해 빠르게 에반스의 뜻을 엘렌에게 전했다. 에반스는 엘렌의 일을 처리하고 나서 다시 명령을 내렸다.

“칼에게 레어폴 자작을 처리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물어 봐. 지원이 필요하면 내가 돕겠다고 전하고.”

에반스는 차근차근 닥친 문제를 해결해 가며 자신이 목표한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계속 머리를 굴렸다. 그때 정보 조직원 중 하나가 에반스에게 말했다.

“영주님, 좀 수상쩍은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에반스는 정보 조직원들에게 작은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피라고 항상 당부했다. 그들이 못 보고 놓친 것이 나중에 대형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에반스의 말이었다. 그래서 정보 조직원들은 항상 의심스러운 것은 에반스에게 이런 식으로 보고를 했다.

“실은 며칠 전, 콘라드 후작령에서 사람들을 보내왔습니다. 테오르의 부인인 소피아가 불러서 온 자들로, 요리사와 시종들이라는데 아무래도 수상쩍었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잘 벼려 놓은 칼 같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 자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나빴습니다.”

사람에게는 직감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간혹 그런 직감이 무섭도록 잘 들어맞는 경우가 있었다. 듣기에 따라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에반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알았다. 시간 나면 내가 직접 가서 살펴보도록 하지.”

에반스는 나머지 일들도 일사천리로 정리했다. 그리고 자신의 할 일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다시 애덤스로 돌아가 볼까?”

에반스는 방을 나서며 램버튼 백작이 가장 신임하는 애덤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램버튼 백작에게 오늘 내일 사이, 자신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 후, 칼 파의 아지트를 찾았다.

마침 아지트에 칼이 있었다. 그는 레어폴 자작을 제거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오늘 밤에 움직일 건가?”

“네. 아무래도 암살은 밤이 유리하니까요.”

“레어폴 자작에 대한 사전 조사는 끝났나?”

“네. 그 집에 있는 기사와 병사의 수는 모두 파악되었습니다. 이제 레어폴 자작 저택에 잠입시킨 첩자의 보고만 남은 상태입니다.”

칼의 대답에 에반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칼에게 말했다.

“엘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만의 병력을 이끌고 지금 라코프 백작성으로 이동 중이라고 하더군.”

“이 만이요?”

뜻밖의 많은 병력에 칼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첸들러 백작도 욕심을 낼 만하지. 이곳 상황이 그 정도로 엉망이지 않나?”

“네, 이 만의 병력이면 충분히 위협적입니다. 후작성에 무슨 일이라도 터진다면 자칫 첸들러 백작의 수중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칼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에반스에게 말했다. 그러자 에반스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첸들러 백작에게 그런 행운은 없을 거야.”

에반스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 말은 곧 그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그때 칼 파의 조직원이 뭔가를 들고 칼에게 다가왔다.

“뭐냐?”

“레어폴 자작가에서 보내온 소식입니다.”

칼 파의 조직원이 쪽지 하나를 칼에게 건넸다.

“그래?”

칼은 조직원이 건네는 쪽지를 받아 펼쳐 보았다.

쪽지를 읽던 칼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칼은 쪽지를 다 본 후, 그 쪽지를 그대로 에반스에게 건넸다.

에반스는 칼이 건넨 쪽지를 받아서 읽었다.

쪽지에는 두 줄의 글과 작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쪽지에 적힌 내용은 레어폴 자작가에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십여 명 머물고 있으며, 그들의 검에 새겨진 문양을 그려 보낸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문양이 문제였다.

“이건…… 라미셀 후작가의 문양이로군.”

“아무래도 레어폴 자작이 그쪽과 연관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그자를 제거하는 게 수월치 않겠군. 더욱이 라미셀 후작가의 문양이 새겨진 검을 가진 자들이라면 후작가의 기사들이 가능성이 높다. 너 혼자는 어렵겠어.”

“그렇겠군요.”

칼도 실력이 뛰어났지만 아무래도 후작가의 기사 여러 명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에반스는 쪽지를 벽난로에 던지며 말했다.

“이따 밤에 데리러 와. 같이 가도록 하지.”

“네.”

에반스가 나서 준다면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었다. 칼은 오늘 밤 자신이 데려가려 했던 조직원들에게 그만 됐으니 각자 자신들이 맡은 구역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에반스가 가는 한, 다른 조직원들은 거치적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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