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10 압실론 후작의 부름 (20/90)

Chapter 10   압실론 후작의 부름 

로체스 자작성에 도착한 에반스는 곧장 영주관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총관인 메디슨 남작이 에반스를 맞았다.

“영지에 무슨 일 없지?”

“네, 별일 없습니다.”

“개혁은 잘 진행되고?”

“네, 현재는 영지로 관통하는 가도가 완성되었고 세부 도로 공사가 한창입니다. 또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마을 중 다리가 필요한 마을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조사가 끝나는 대로 현장 검증 후, 다리 공사 역시 진행할 예정입니다.”

“각 마을마다 마을 회관을 새로 짓는 문제는 어떻게 되었나?”

“아직 시설이 괜찮은 곳도 있어서 제가 각 마을을 돌면서 상태를 직접 점검하고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마을 회관에 도서관과 병원 시설은 반드시 있어야 해. 도서관 사서와 병원에서 일할 치료사도 준비해야 하고.”

“알고 있습니다. 그 문제를 담당할 관리를 따로 뽑아 두었습니다.”

“잘했어. 식사는 했나?”

“네, 저는 먹었습니다.”

“나는 아직이야. 먼저 식사부터 부탁해.”

에반스가 집무실로 들어가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메디슨 남작은 즉시 하인을 불렀다.

“영주님의 집무실로 식사를 가져오도록.”

명령을 내린 후, 메디슨 남작도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집무실 안의 테이블에는 그동안 영주가 없어 처리하지 못한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에반스는 책상에 앉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에반스가 하루 종일 서류와 씨름을 하고 나자 겨우 책상에 쌓였던 서류들이 사라졌다.

“휴우 대충 끝냈군.”

에반스가 겨우 한숨과 함께 휴식을 취하려 할 때 라일라와 칼이 집무실에 나타났다.

“어서들 와.”

라일라와 칼은 그동안 일이 많았던지 얼굴이 많이 핼쑥했다.

“고생들 많지?”

에반스의 물음에 라일라와 칼이 동시에 대답했다.

“네!”

에반스가 척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불만이 많아 보였다.

“압실론 후작령에 정보망을 구축하는 건 어떻게 되었나?”

에반스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라일라와 칼이 그동안 그들이 겪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니까 결국 조직망이 갖춰졌단 말 아닌가?”

“네, 후작성은 물론 압실론 후작령의 모든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이곳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에반스가 기뻐하며 치하했다.

“수고 많았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조직망만 갖춰졌지, 아직 제대로 정보를 수집할 인원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야 완벽한 조직망이 갖춰진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아신다니 다행입니다. 현재로 봐선 한 달 정도는 더 있어야 정보망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한 달이라…… 일단 계속 일을 진행시켜. 그리고 야만족의 동향은 어때?”

에반스가 칼을 쳐다보며 물었다.

“별다른 동향은 없습니다. 중개무역 후 구입해 간 물품들이 각 부족으로 유통되면서 야만족 내 분위기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입니다.”

“괜찮다고 방심해서는 안 돼. 그쪽은 항시 주시해야 해.”

“알겠습니다.”

에반스는 라일라와 칼과 함께 정보조직에 대해 좀 더 심도 깊게 얘기를 나눴다.

***

카라스 영지의 개혁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때문에 카라스 영지에서는 거지를 구경하기 어려웠다. 일자리가 풍부하니 영지는 언제나 활기에 넘쳤다.

영지민들이 모두 경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시장도 더 원활하게 돌아갔고 더 이상 굶주리는 영지민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카라스 영지 자체가 워낙 치안 상태가 좋다 보니 경제가 살아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카라스 영지는 하루가 다르게 살기 좋은 영지로 바뀌어 갔다.

에반스는 무엇보다 영지민들이 스스로 개혁에 동참할 필요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에 지속적인 교육을 잊지 않았다.

에반스는 영지 순시를 자주 다녔다.

총관인 메디슨 남작이 바쁠 때는 그를 대신해서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일을 처리하기도 했다.

메디슨 남작이 영지 내 공공시설 건립으로 바쁜 관계로 다리 건설 문제를 돌볼 수 없자 에반스가 직접 나섰다.

카라스 영지의 남쪽에 위치한 가톤 마을과 바실 마을은 강이 흘렀다.

두 곳 모두 인구가 1만도 되지 않았기에 큰 마을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가톤 마을에서 철광산이 개발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가톤 마을에서 캐낸 철광은 옆 마을인 바실 마을의 제철, 제련소에서 철로 거듭났다.

문제는 배를 통해 옮길 수 있는 철광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강에 배를 띄울 수도 없었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에반스는 튼튼한 다리를 만들 생각이었다. 현장 검증을 위해서 에반스가 직접 가톤 마을로 향했다.

“스승님. 어제 배운 검식에서 찌른 후, 비트는 동작에서 말인데요. 이렇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에반스는 약속대로 루미나에게 검술을 가르쳤다. 에반스의 눈이 틀리지 않았는지 루미나는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에반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루미나의 검술에 대한 이해력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이런 루미나라면 검공 라마스의 검술을 완벽하게 익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정무를 돌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시 그녀를 곁에 데리고 다니면서 검술을 가르쳤다.

“으음. 그렇구나. 네 말대로 그 수법이 훨씬 더 간결하면서도 위력적이로구나.”

에반스는 자신이 스승이라고 해서 강압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항상 루미나와 토의하며 자신도 수련자의 입장에서 같이 검술을 수련했다.

그런 까닭에 에반스는 최근 검공 라마스의 검술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면서 한 차원 높은 경지에 올라섰다. 카베인을 상대할 때는 사용할 수 없었던 검탄도 이제는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영주님. 저기 가톤 마을이 보입니다.”

다리 공사를 위해 에반스를 따라나선 관리 중 하나가 외쳤다.

검술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가톤 마을이 눈앞에 다가왔던 것이다.

“한 시간 정도만 가면 더 가면 이제 쉴 수 있다.”

그동안 에반스는 중간에 하루 쉬었다가 가면 될 것을 꼭 밤을 새워 가면서 이동했다.

어제 낮에 출발한 카라스 영주 일행은 하루를 꼬박 말을 타고 움직였다. 아마 해가 지기 직전쯤이면 목적지인 가톤 마을에 도착할 터였다.

독종인 에반스라도 해가 졌는데 다리를 지을 장소로 가서 현장 조사할 리는 없었다. 때문에 관리들은 일단 가톤 마을에만 가면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 저건 뭐지?”

가톤 마을로 향하던 카라스 영주 일행 중 하나가 뒤쪽에서 피어오르는 먼지 구름을 보고 소리쳤다.

두두두두!

분명 말 소리였다. 에반스가 말을 멈춘 채 그쪽을 돌아보았다. 소드 마스터인 에반스의 눈에도 이제 막 지평선을 지나 달려오는 기마의 모습이 아지랑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에반스가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보자 그제야 뭔가 보였다.

“저건…….”

순간 에반스의 얼굴에 놀람이 스쳤다.

“이랴!”

동시에 에반스가 그쪽을 향해 갑자기 말을 달렸다.

“스승님.”

루미나가 에반스를 부르며 말을 몰려 하자 에반스가 뒤돌아서 소리쳤다.

“다들 움직이지 마라.”

그 말을 하고 에반스는 다시 앞쪽을 향해 열심히 말을 몰았다.

***

제레미언은 압실론 후작가의 제1기사단장이며 후작의 호위기사이기도 한 나이트 프레드릭의 아들이었다. 아버지인 프레드릭만큼은 아니지만 제레미언도 검술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프레드릭은 아들에게 직접 검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성인식을 치루는 날, 압실론 후작에게 소개 시켰다.

압실론 후작은 제레미언의 실력에 감탄하며 즉시 제1기사단의 기사로 삼았다. 그렇게 제레미언은 부친에 이어 압실론 후작가의 기사가 되었다.

제레미언에게 프레드릭은 그의 자랑이자 가장 존경하는 기사였다.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였던 프레드릭은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군인 압실론 후작이 병석에 드러누우면서 그는 주군의 곁을 지키느라 더 이상 수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프레드릭은 소드 마스터의 경지보다 그의 주군을 택했다.

제레미언은 그런 프레드릭을 존경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프레드릭이 제레미언을 호출했다.

“아버님, 무슨 일입니까?”

“후작님께서 위중하시다. 너는 지금 즉시 카라스 영지로 가라.”

“카라스 영지로요?”

“그곳에 가서 에반스 님을 반드시 모시고 와라, 어서.”

“네.”

기사란 명령을 받으면 그 명령에 따르면 그만이었다. 제레미언은 다른 것은 묻지 않고 그 길로 압실론 후작성을 떠났다.

한데 그가 후작성을 나설 때부터 문제가 터졌다. 그를 잡기 위한 추격대가 그의 뒤를 계속해서 쫓았다.

제레미언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닷새 만에 카라스 영지의 경계를 넘었다. 하지만 추격대는 계속해서 그의 뒤를 쫓았다.

두두두두!

제레미언은 말고삐를 잡고 있지만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그의 등과 옆구리에는 화살이 꽂혀 있었고 그가 타고 달리는 말 역시 엉덩이와 옆구리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카라스 영지까지는 어떻게 잘 도망을 쳤는데 경계에서 매복하고 있던 자들에게 당하고 만 것이다.

제레미언은 어떻게든 카라스 영지의 마을로 가 그곳에서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을까지 가는 것도 어려웠다. 뒤에서 추격해 오는 자들은 점차 거리를 좁히고 있는데 마을은 멀기만 했다.

두두두두!

그때 제레미언의 흐릿한 시야로 누군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제레미언은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입으로 나오지 못했다. 화살에 독을 묻혔는지 제레미언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자칫 중심을 잃는다면 달리는 말에서 바로 낙마할 수밖에 없었다.

제레미언은 다섯 살부터 말을 탔다. 말에서 먹고 자면서 이틀을 버틴 적도 있었다. 그런 기마술의 기본기를 갖춘 제레미언이었기에 독 기운이 퍼지는 가운데에서도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에반스가 놀란 것은 맨 앞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자가 제1기사단의 기사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압실론 후작가의 제 1기사단은 후작의 친위대였다. 즉, 압실론 후작의 명령이 아니면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제 1기사단의 기사로 추정되는 자가 가톤 마을로 달려오고 있었다.

한데 그 뒤에 어떤 자들이 그를 맹추격하고 있었다. 당연히 에반스로서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빠르게 말을 몰며 마주 오는 기사와 점차 거리가 좁혀지자 에반스는 그 기사와 그 기사가 타고 있는 말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기사와 말 모두 화살을 맞은 상태였다.

그때 에반스가 나타나자 추격자들이 더 빠르게 말을 몰았다.

‘저런……!’

추격자들이 기사와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기사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추격자가 접근해서 공격을 가하게 되면 바로 낙마할 것이 분명했다.

추격자 둘이 각기 양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하는 모습이 에반스의 눈에 띄었다.

에반스가 고삐를 잡고 있던 양손을 놓고 말 뒤쪽에 매달려 있던 활과 화살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시위를 먹여 화살을 쏘았다. 활을 쏠 때 에반스는 살짝 마나를 실었다.

화살에 마나를 실으면 훨씬 더 빠르고 정교하게 쏠 수 있었다. 물론 파괴력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쉬릭!

화살은 좌측에서 기사에게 접근하던 추격자에게 직선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퍽!

화살은 추격자의 가슴팍을 정확히 꿰뚫었다. 화살에 실린 힘이 얼마나 컸던지 화살에 맞은 추격자는 말에서 붕 떠서 그대로 낙마했다.

이번엔 우측의 추격자였다. 에반스가 이어서 쏜 화살이 그의 이마를 꿰뚫었다. 추격자는 그대로 말 뒤로 꼬꾸라져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에반스의 화살에 두 추격자가 쓰러지자 더 이상 기사의 옆으로 접근을 시도하는 추격자는 없었다. 하지만 추격자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기사의 뒤를 추격했다. 에반스는 계속해서 화살을 쏘았다.

쐐애액!

마나를 머금은 화살이 대기를 갈랐다.

“컥!”

에반스가 화살을 쏠 때마다 추격자들이 말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겁을 집어먹은 추격자들이 말의 속도를 늦추었다. 그사이 앞쪽에서 달리던 기사와 추격자 간의 거리가 벌어졌다.

그 차이가 많이 나자 추격자들은 추격을 멈추고 말 머리를 돌렸다. 에반스는 추격자들이 포기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는 말을 몰고 계속 앞쪽으로 달려왔다.

에반스가 그 앞을 가로막자 말이 급히 멈췄다. 반발력에 겨우 말에 앉아 있던 기사의 몸이 앞쪽으로 붕 솟구쳤다.

에반스는 몸을 날려서 공중에서 기사의 몸을 받아 지면에 착지했다.

“무슨 일인가?”

에반스가 기사를 바닥에 눕히고는 바로 물었다. 기사가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후작께서 위중…… 에반스 님을 어서 후작성으로…….”

“뭐, 뭐라고. 아버님께서 위중하시다고!”

에반스가 놀라 벌떡 일어섰다. 안 그래도 이번 영지 일만 정리되면 후작성으로 가서 부친을 만날 생각이었던 에반스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위중함을 알리러 온 기사의 상태를 보아하니 상황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았다.

“당장 후작성으로 가야겠다.”

에반스가 현 위치에서 후작성이 있는 서쪽을 쳐다보았다. 마치 앞날을 예고하듯 서쪽 하늘이 석양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강철영주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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