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7 살인마들 (17/90)

 Chapter 7   살인마들

카베인은 먼저 후디치를 헤산 마을의 정보 길드로 보냈다.

얼마 후, 카베인이 호위기사들과 차를 마시고 있을 때 후디치가 돌아왔다.

“에반스에 대한 기록은 이게 전부입니다.”

후디치는 간략한 서류를 카베인에게 건넸다.

“에반스. 압실론 후작령의 카란 마을 출생, 올해 스물다섯 살로 십 년간 용병 생활을 하다가 최근 그만두고 고향인 카중 마을로 가던 중, 하란 마을에서 위기에 처한 산체스를 구하면서 그의 호위무사가 됨. 이게 전부인가?”

“네, 그자에 대해 더 자세히 조사하려면 카란 마을과 용병 길드에 다시 의뢰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으음…….”

카베인은 잠시 고심했다.

그때 8명의 호위기사 중 1명이 말했다.

“왜 그자에게 신경을 쓰시는지 모르지만 카베인 님답지 않습니다.”

“나답지 않다?”

카베인이 그 기사를 쳐다보았다.

“네, 저희도 있고 무엇보다 카베인 님은 소드 마스터가 아니십니까? 거슬리면 제거하면 되지 않습니까.”

“갈라스, 너다운 대답이다. 하지만 내가 누누이 말했듯이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만약 그자가 목적한 바가 있어서 내게 접근한 것이라면 그 이유를 알아내고 나서 죽여야지.”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괜찮아. 그보다 하란 마을에서 실전 훈련은 좀 했나?”

카베인이 8명의 호위기사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나 호위기사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중개무역 시장이 열리는 마을인 만큼 떨거지들이 넘쳐 날 줄 알았는데 별로 없더군요. 해서 그리 많이 죽이진 못했습니다.”

“그럴 리가? 하란 마을에는 꼴레오네파란 조직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떨거지들이 보이지 않다니?”

“저희도 그 점이 이상해서 물었더니 꼴레오네파가 갑자기 해산했다더군요.”

“쯧쯧. 운이 나빴구나.”

“오늘이 지나면 검에 사람 피 묻힐 일도 없는데 오늘 밤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갈라스란 자가 카베인에게 물었다.

“으음, 하란 마을에서 실전 훈련을 못했다니 여기서라도 해야겠지. 상대를 잘 보고 문제 일으키지 않게 시신은 잘 처리하고.”

카베인이 허락하자 호위기사들의 얼굴에 일제히 미소가 어렸다. 그 미소를 본 후디치는 자신도 모르게 몸에 소름이 돋았다.

차를 다 마신 기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후디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승님, 그럼 에반스란 자는……?”

“그냥 둬. 내가 너무 민감했다. 갈라스의 말이 맞아. 신경이 쓰이면 제거해 버리면 그만이지. 남쪽 숲에 가면 제일 먼저 그 녀석을 애들의 장난감으로 던져 주어야겠어.”

“네? 애들이라니요?”

“응? 아! 별거 아니야. 오늘 수고 많아서 그만 물러가서 쉬어.”

“네.”

후디치는 카베인이 자신에게 숨기는 게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불안했다. 그가 보기에 카베인과 호위기사 8명은 확실히 이상했다.

“제길, 모르겠다. 나야 산체스 님과 루키아 상단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니.”

후디치는 더러운 기분을 잊기 위해 술집으로 가서 독한 술을 마셨다.

자정이 넘어서야 산체스는 에반스를 놓아주었다. 같이 자자는 산체스의 제의를 에반스가 깔끔하게 거절했기 때문이다.

‘대머리 아저씨가 누굴 잡으려고…….’

에반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때였다. 카베인의 호위기사들이 방에서 나와 여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에반스의 눈에 띄었다.

“이 시간에,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모두 다 움직인단 말인가?”

카베인까지 움직였다면 몰라도 카베인은 그의 방에 있었다. 그렇다면 호위기사들끼리 움직였다는 것인데, 그것도 전원 무장을 갖춘 채 말이다.

“뭐지?”

에반스는 일단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검을 챙겨서 창문을 열었다. 그의 방은 3층이지만 창문 밖에 바로 나무가 있어서 간단히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호위기사들의 뒤를 쫓았다.

호위기사들은 헤산 마을의 번화가에서 각자 흩어졌다. 에반스는 그중 한 기사를 쫓았다.

이상하게도 그 기사는 밝은 곳은 놔두고 어두운 곳만 골라 다녔다.

‘무슨 의도지?’

에반스는 궁금해 하며 은밀히 그 호위기사의 뒤를 밟았다. 이제 소드 익스퍼트 초급의 기사는 그가 뒤쫓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다.

호위기사가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에반스는 골목 밖에 그냥 서 있었다. 안쪽은 막다른 골목이니 호위기사가 곧 나올 터였다.

“크아아악!”

그런데 그때 골목 안쪽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호위기사가 후다닥 골목 밖으로 뛰어나왔다. 에반스는 골목 벽에 몸을 숨겼기 때문에 호위기사는 에반스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골목 밖으로 달려 나갔다.

에반스는 즉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 안에는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 세 명의 남자들이 쓰러져 있었는데 성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머리가 잘려 나간 시체부터 팔다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 그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었으며 골목 벽은 온통 피 칠갑이 되어 있었다.

죽은 세 명의 남자는 그 얼굴에서 자신들이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당혹감이 역력하게 묻어 있었다.

그때였다.

“아아아악!”

근처에서 다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반스는 골목의 담 위로 몸을 솟구쳤다.

파파파팟!

골목의 담벼락을 타고 빠르게 비명 소리가 들린 곳으로 내달렸다. 에반스는 담과 건물의 지붕을 타고 어둠 속에서 한 마리 새처럼 몸을 날려 그곳에 도착했다.

“이런……!”

그곳 역시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에는 다섯 명의 남자들이 토막 난 채 널려 있었다.

“대체 왜?”

아까와 달리 에반스는 죽은 시신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체를 벨 때마다 검의 각도와 거기에 들어간 힘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을 상대로 검술을 테스트한 듯 보였다.

“미친…… 정말로 산 사람을 상대로 검술을 시험하고 있단 말인가?”

에반스는 이 늦은 시간에 카베인의 제자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이 참혹히 살해한 자들은 깡패, 도둑, 강간범 등 어둠 속에서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죽든 세상은 그들의 죽음에 무관심했다.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카베인의 제자들은 실전 훈련이란 명분으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다녔던 것이다.

“살인마들이 아닌가? 용서할 수 없다.”

에반스의 눈에서 두 줄기 살광이 폭사되었다.

검이 살을 가르고 뼈를 자를 때 느껴지는 손맛은 짜릿했다. 주체할 수 없는 쾌감에 그의 눈이 번들거렸다.

“크흐흐흐. 바로 이 맛이야.”

그의 검에 의해 잘린 두 개의 팔과 하나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아아악!”

팔이 잘린 자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목이 잘린 자의 몸이 비틀거리다가 다른 시신에 걸려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냥 힘으로 자를 때와 마나를 사용해서 사람의 목을 칠 때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카베인의 호위기사 휘태커는 검에 마나를 주입한 채 닥치는 대로 다 잘라 버렸다. 그와 마주친 재수 옴팡지게 더러운 자들은 가상하게도 무기를 빼 들고 제법 저항했다.

물론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말이다.

“사, 살려 주세요.”

여섯 놈 중 다섯이 휘태커의 검에 사지가 잘리고 목이 날아갔다. 이제 남은 녀석은 하나뿐이었다. 휘태커는 어릴 적 맛있는 과자를 다 먹고 마지막에 딱 하나 남았던 순간을 기억해 냈다.

“크흐흐. 어차피 죽을 거 마음 편히 먹어라.”

휘태커는 마지막 남은 녀석은 좀 더 가지고 놀다 죽일 생각이었다.

‘먼저 손목부터 자르고 그 다음 팔, 다리, 마지막으로 목을 쳐야겠군.’

휘태커의 눈에 공포에 질려 덜덜 떨고 있는 사람은 그저 검술 수련에 이용되는 허수아비와 다를 것이 없었다. 휘태커도 처음엔 산 사람을 상대로 검술 수련한다는 것이 꺼림칙했다.

하지만 피를 보면 볼수록 그의 검술 실력은 향상되었다. 그러니 이런 살육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죽어도 마땅한 놈들이다.’

휘태커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멈춰!”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누가 외쳤다. 그 말을 듣고 휘태커는 눈앞에서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는 허수아비를 베지 못했다.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휘태커는 검을 든 채 조심스럽게 뒤돌아섰다. 만약 상대가 등 뒤에서 공격했다면 휘태커도 무사하지 못했을 터였다. 긴장감에 휘태커의 등 뒤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행히 휘태커가 완전히 돌아설 때까지 상대는 휘태커를 공격하지 않았다.

마침내 휘태커가 상대에 마주 보고 섰을 때,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너, 너는……?”

상대는 휘태커도 잘 아는 자였다. 그의 스승인 카베인이 오늘 밤 눈에 거슬린다고 했었던 그 에반스란 자가 떡하니 서 있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에반스가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

“이런 짓이라니?”

휘태커가 그게 무슨 말이냐며 오히려 에반스를 쳐다보았다.

“저들이 너에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토록 참혹하게 죽였느냐?”

“아아. 이놈들을 죽인 것 말인가? 어차피 몇 달, 몇 년 후 감옥이나 형장에서 죽을 녀석들, 내가 먼저 죽여 준 것뿐이다.”

“뭐라고?”

“후후. 웃기는군. 네가 뭔데 마치 나를 단죄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는 거지?”

“분위기를 잡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너를 단죄할 것이다. 하지만 너는 내가 아닌 다른 자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스르르르!

그 말을 끝으로 에반스의 몸이 흐릿하게 변했다. 휘태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블링크!”

블링크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신체를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기술이었다. 이는 오러 블레이드와 함께 소드 마스터만이 펼칠 수 있다는 기술로 잘 알려져 있었다.

휘태커도 그의 스승인 카베인이 이 블링크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잘 알았다.

서걱!

섬뜩한 느낌과 함께 휘태커의 두 팔이 그의 눈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잘린 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어어!”

휘태커의 입에서는 고통의 비명 소리보다 당혹감에 놀란 탄성이 먼저 튀어나왔다. 어떻게 잘랐는지 아직 잘린 팔에서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그의 몸이 기울었다. 그리고 아래로 몸이 뚝 떨어졌다. 고개를 내리자 그의 잘린 두 다리가 보였다.

쿵!

휘태커는 뒤로 넘어지며 뒤통수를 강하게 바닥에 찧었다. 그제야 뒷머리가 아팠다.

“크윽!”

휘태거의 입에서 처음으로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의 잘린 두 다리에서 피가 뿜어졌다. 하지만 잠시뿐 피는 이내 잦아들었다.

이번엔 에반스가 그의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는 휘태커의 머리를 잡아챘다. 그런 후, 그를 간단히 위로 들어 올렸다.

“다리가 없어 서 있을 수 없는 게 아쉽군.”

에반스는 휘태커를 들고 골목 벽 쪽으로 갔다. 그리고 들고 있던 검으로 휘태커의 배를 찔렀다.

푹!

“컥!”

그의 검은 교묘히 휘태커의 내장을 비껴서 등 뒤로 삐져나왔다. 휘태커는 검에 꿰인 채 그대로 벽 깊숙이 박혔다.

“이렇게 하면 서 있을 수 있지.”

에반스가 손을 놓아도 휘태커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때 에반스가 골목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마지막 생존자를 불렀다.

“이리 와.”

“사, 살려 주십시오.”

“널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너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거기 검을 들고 이리 와라.”

에반스의 말에 그자는 이미 토막 나 죽은 동료의 검을 들고 다가왔다.

“저자의 목을 쳐라. 네 동료들을 대신해서 네가 심판해라.”

“저, 정말 그래도 됩니까?”

“그렇다.”

눈앞에서 자신의 동료를 장난치듯 토막 내서 죽이던 살인마가 이제 팔다리가 잘린 채 그의 앞에 있었다.

꾸욱!

마지막 생존자는 잡고 있던 검에 힘을 주었다.

“크흐흐. 저런 놈은 나를 죽이지 못해. 헛수고 말고 그냥 네 손으로 나를 죽여라.”

휘태커가 에반스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눈이 뒤집힌 마지막 생존자가 검을 휘둘렀다.

퍽! 퍽! 퍽!

한 번에 휘태커의 목을 베지 못하자 도끼질하듯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털썩!

너덜너덜해진 휘태커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으으으아!”

자신이 사람의 목을 벴다는 사실에 놀라 마지막 생존자는 기겁하며 피에 물든 검을 버리고 미친 듯 골목 밖으로 달아났다.

그제야 에반스가 벽에 박힌 검을 뽑았다.

털썩!

사지가 잘리고 목이 거의 뜯겨 나간 휘태커의 몸이 골목 바닥에 널브러졌다. 에반스는 검에 묻은 피를 닦고는 무심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

헤산 마을은 압실론 후작령의 남쪽 끝에 위치한 인구 2천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런 마을에 범죄자들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호위기사 탈랭은 피비린내 나는 골목을 빠져나왔다. 골목 안에는 더 이상 그가 죽일 범죄자는 없었다. 그는 좀 더 밝은 곳으로 나섰다.

일 순위는 범죄자들이지만 지금처럼 피에 대한 갈증을 심하게 느끼면 보통 사람도 시험용으로 이용했다.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시체를 골목에 치워 두면 범죄자에 의해 죽은 것으로 충분히 위장이 되었다.

골목을 나온 탈랭은 먹잇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이봐. 괜찮은 아가씨 있는데 어때?”

골목 안쪽에서 걸걸한 목소리로 누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탈랭이 몸을 돌리자 골목 안에 몸을 감춘 그자가 말했다.

“관심 있으면 따라 오시오.”

그자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탈랭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는 곧장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포주인 모양이군. 그렇다면…….’

탈랭은 포주가 안내하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자들을 상대로 한바탕 피의 파티를 열 생각이었다. 보통 불법 매음굴은 철저히 감춰진 곳에 있었다. 때문에 탈랭에게는 더없이 좋은 시험 장소였다.

포주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탈랭은 혹시 놓치기라도 할까 싶어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막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턱!

누가 탈랭의 멱살을 잡았다. 놀란 탈랭이 본능적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곤 빠르게 검을 뽑으려 할 때였다.

척!

멱살을 잡은 남자의 다른 한 손이 검을 잡은 탈랭의 손목을 잡았다. 마치 강철 수갑을 찬 듯 탈랭의 반쯤 뽑힌 검은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으윽!”

탈랭이 용을 썼지만 그의 검은 오히려 검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남은 한 손을 뒤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등 뒤에 숨겨 둔 단검을 뽑았다.

“타앗!”

빠르게 속도로 멱살을 잡고 있는 자의 옆구리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한데 그의 단검은 허공을 찔렀다. 동시에 그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이 갑자기 사라졌다. 탈랭이 목에 허전함을 느낄 때, 단검이 들린 그의 손이 갑자기 위로 솟구쳤다.

“헉!”

누군가 그의 손을 맘대로 조종하고 있었다.

탈랭이 손과 팔에 힘을 주었지만 도저히 사람의 힘이라고 볼 수 없는 그 무지막지한 미증유의 힘을 감당해 낼 수 없었다.

“컥!”

단검은 그의 턱밑을 파고들어 뒤통수로 튀어나왔다. 탈랭의 부릅뜬 두 눈에서 생기가 빠르게 빠져나갔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러자 탈랭의 턱밑에 단검을 찔러 넣은 자가 손을 놓았다.

털썩!

썩은 고목이 쓰러지듯 탈랭의 몸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둘이군.”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어두운 골목에서 에반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위기사들은 골목 안에 가지고 놀 범죄자들이 없자 하나둘씩 밖으로 기어 나왔다.

곧 밤길에 술 취해 비틀거리는 취객이나 늦게 귀가하는 무고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아아아악!”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함께 에반스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호위기사 스니터는 피 묻은 검을 혀로 핥았다. 그 모습에 겁에 질린 여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자는 너무 무서워 오줌을 지렸다. 스니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더럽게…….”

여자 주위에는 그녀의 애인과 그의 친구 두 명이 난도질당한 채 쓰러져 있었다. 스니터는 사람을 토막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피를 좋아했다. 그래서 검술을 시험할 때, 단숨에 급소를 베어 죽이는 일은 없었다.

그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계속 피를 흘리다가 결국 피가 모자라서 죽었다.

한데 여자의 애인과 그 친구들은 여자를 지키려 필사적으로 스니터에게 달려들었다. 그래서 충분히 즐기지 못한 스니터는 여자만큼은 천천히 가지고 놀다가 죽일 생각이었다.

“더러워서 안 되겠군.”

스니터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천히 검을 한껏 위로 치켜들었다. 그가 단숨에 여자의 목을 베고 이 자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그의 등 뒤에서 누가 말했다.

“더러운 건 너다.”

놀란 스니터가 막 몸을 틀려 할 때 푹 소리와 함께 검이 그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뚫고 왼쪽 어깻죽지로 빠져나왔다. 심장과 폐를 관통당한 스니터는 잠깐 부르르 몸을 떨다가 바로 절명했다.

슈욱!

에반스가 검을 뽑자 스니터의 몸이 맥없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털썩!

에반스는 바로 등을 돌렸다.

“나쁜 놈. 죽어, 죽어!”

푹! 푹! 푹!

살아남은 여자가 스니터의 검을 뺏어서 이미 죽은 그의 몸에 계속해서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악!”

그때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여자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목을 잃은 그녀의 몸이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털썩!

그녀로부터 등지고 있던 에반스가 다시 몸을 돌렸다. 또 다른 호위기사 하나가 죽은 스니터의 시신 옆에 서 있었다. 그는 무심하게 스니터의 시신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네놈 솜씬가?”

호위기사의 물음에 에반스가 바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스니터를 등 뒤에서 이렇게 단숨에 죽일 정도면 특급 어새신인가?”

호위기사가 스니터의 상태를 자세히 살피며 물었다. 그러자 에반스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렇다면?”

에반스의 같은 말에 호위기사의 눈썹이 실룩거렸다.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에반스가 그의 심기를 꽤 거스른 모양이었다.

“이렇게 노출되었으니 너의 장점도 사라진 셈이로군. 오늘 살아남긴 틀렸단 말이다.”

호위기사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에반스를 향해 짓쳐 들었다.

에반스는 호위기사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팔짱을 낀 체 서 있었다. 마침내 한 걸음 거리까지 접근할 때까지도 검을 뽑지 않았다.

“타합!”

호위기사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오고 동시에 그가 빠르게 검을 뽑았다.

‘발검술!’

검을 뽑음과 동시에 상대를 베는 쾌검의 정화라 할 수 있는 기술을 호위기사가 선보였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하필 에반스 앞에서 검의 빠르기로 승부를 걸다니 말이다.

호위기사가 검을 휘두를 때까지 에반스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호위기사는 자신의 검이 에반스의 목을 벨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휙!

한데 그의 검은 목표물을 잃고 허공을 갈랐다.

“헉!”

스르르르!

눈앞의 목표물이 흐릿하게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브, 블링크!”

호위기사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을 때, 그의 눈앞에 에반스가 다시 나타났다.

번쩍!

눈부신 섬광과 함께 의식이 사라졌다.

찰칵!

에반스의 검이 다시 검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뒤돌아섰을 때 허공으로 솟구쳤던 호위기사의 머리가 지면으로 떨어졌다.

퍽! 데구르르!

기사의 머리통이 골목 안쪽 구석으로 굴러갔다. 그런 후에야 그의 몸통이 기우뚱거리다가 모로 쓰러졌다.

갈라스는 다른 호위기사들과 달랐다. 그는 자신의 신성한 검에 더러운 범죄자의 피를 묻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동료 기사들과 달리 어두운 골목으로 가지 않고 번화가의 술집으로 향했다. 갈라스는 타는 갈증을 술로 달랬다. 그의 테이블 위에는 언제든 피를 뿌릴 수 있게 검이 놓여 있었다.

헤산 마을에서 두 곳뿐인 술집 중 하나, ‘나그네의 쉼터’의 주인 타마렌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덜덜 떨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저녁이 되자 문을 열었다. 평소처럼 자정이 되기 전까지는 손님으로 붐볐다. 하지만 자정이 넘어가고 술에 취한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가자 술집 안에는 몇 명밖에 남지 않았다.

뒤늦게 취기가 오른 몇 명의 손님들은 한 시간쯤 뒤에 술집을 나갔다.

타마렌은 한 시간 뒤에 술집 문을 닫기 위해 일찌감치 정리에 들어갔다.

그때 자정도 넘은 시간에 검을 든 한 남자가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잠이 안 와서 한잔하러 왔나?’

보아하니 오늘 헤산 마을에 찾아온 손님 중 한 명이었다. 타마렌이 듣기로 수도에서 온 꽤 고상한 손님들이라고 했으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뭘 드릴까요. 손님?”

“보르도 14년산 있나?”

과연 수도에서 온 손님답게 귀족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와인을 주문했다.

“물론입니다. 한 잔 올릴까요?”

“아니. 병째 가져오게.”

병째라는 말에 타마렌의 입이 귀에 걸렸다. 보르도 14년산은 한 병에 10골드나 하는 귀한 술이었다. 보통 술집에서는 15골드에 팔았다. 5골드나 남는 장사니 당연히 타마렌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타마렌은 즉시 술 창고로 달려가 귀하게 보관하고 있던 최고급 와인을 꺼냈다. 그러곤 술잔과 함께 손님에게 내놓았다.

수도에서 온 손님은 눈앞의 최고급 와인을 음미하듯 마셨다.

그사이 시간이 흐르면서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도 거의 다 나갔다. 타마렌이 문 닫을 시간이라 생각했던 그 한 시간의 시간이 다 지났던 것이다.

술집은 텅 비었지만 갈라스는 전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와인을 마셨다.

타마렌도 그런 갈라스를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두 시간만 더 참으면 술값으로 15골드를 받을 수 있는데 조금 기다리는 것쯤이야 못 참을 것도 없었다.

그때, 술집의 문이 벌컥 열리며 남자 다섯이 들어섰다. 그들의 모습을 본 순간, 타마렌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일대에서 악명 높은 드래커와 그 일당이었기 때문이다. 드래커는 용병으로 뭐든 돈 되는 일은 다하는 악질이었다. 네 명의 수하들 역시 드래커에 못잖은 나쁜 놈들이었다.

“문 닫을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웬일이야. 설마 우리가 올 줄 알았던 거야?”

드래커가 타마렌에게 말했다.

‘젠장, 재수 없게…….’

하필 이럴 때 드래커과 그 일당이 나타날 줄이야. 타마렌은 완전 뭐 씹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아니. 손님이 있어서.”

“손님?”

드래커가 술집 안을 둘러보았다. 한쪽에서 고급 와인을 마시고 있는 갈라스의 모습이 보였다.

“오오. 저건 보르도 14년산이잖아?”

드래커가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드래커의 수하 중 하나가 갈라스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우와. 누군 이런 비싼 술을 마시는데 누군 텁텁한 싸구려 술이나 마셔야 하고 말이지. 형씨. 좀 불공평한 것 같지 않아?”

드래커의 수하가 갈라스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 이봐. 그분은 수도에서 오신 귀한 손님이란 말이야.”

타마렌이 황급히 소리쳤다.

“오오. 그러셔? 그럼 돈도 많겠네. 적선하는 셈치고 우리도 댁이 마시는 술 좀 사 주쇼. 이야. 수도는 물도 좋은가 보네. 이 부드러운 머리칼하며 피부도 뽀얀 게…….”

녀석은 겁도 없이 갈라스의 머리를 만지다가 목을 만졌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참을 수 없는 모욕인데 급소인 목까지 만졌다는 것은 기사인 갈라스에게 있어 최악의 모욕이었다.

다시 막 입을 열려던 드래커 수하의 몸이 기우뚱했다. 장난기 어린 눈으로 갈라스와 동료를 바라보던 드래커와 그 일당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버렸다.

어느새 드래커 수하의 몸이 그대로 두 쪽이 나 버린 채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술집 안에 긴 정적이 흘렀다.

털썩!

두 조각으로 갈라진 드래커 수하의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피가 삽시간에 작은 개울을 만들었다.

“우욱!”

드래커의 수하 중 하나가 토악질을 해 댔다. 용병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드래커도 울컥 구역질이 나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사람 하나를 통째로 반으로 잘라 죽인 갈라스는 피 묻은 검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는 남은 와인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미친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드래커가 남은 수하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토악질하던 녀석을 빼고 나머지 세 명이 무기를 빼 들었다.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갈라스가 입을 열었다.

“너희가 누군지 궁금하군. 어디 말해 봐라.”

아무 감정 없이 내뱉는 갈라스의 음성은 얼음만큼이나 차가웠다. 곧바로 그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헉!”

그제야 드래커는 상대가 감히 건드려선 안 될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겁을 상실한 세 명의 수하가 갈라스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아, 안 돼!”

드래커가 소리칠 때 푸른빛이 번쩍였다. 갈라스의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하 세 명을 피에 물든 바닥에 쓰러뜨렸다.

“으으으아아!”

토악질한 탓에 드래커에게 달려들지 않았던 수하 하나가 너무도 쉽게 죽어 버린 동료들을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우성치며 가게 밖으로 도망쳤다.

후두두둑!

갈라스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고 드래커를 쳐다보았다. 드래커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뻣뻣하게 경직된 채 눈동자도 마음대로 돌리지 못했다.

“크아아악!”

곧 처절하게 울부짖는 드래커의 비명 소리가 술집 밖으로 울려 퍼졌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목격한 술집 주인, 타마렌의 머릿속에는 갈라스에게 술값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지워진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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